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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4

        

       그녀는 방긋방긋 웃으며 자기 손에 들린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치이이익.

         

       아나스타시아가 ‘그것’을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것의 몸체에서는 하얀 증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밥솥이 하얀 연기를 내뱉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아하! 별것 아니랍니다~ 아니, 아니에용? 아니예용? 아니…. 음. 암튼 그래용! 별것 아니애-오-”

         

       아나스타시아는 진성의 물음에 횡설수설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자신이 꿈에서 가져온 ‘그것’….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페퍼로니로 곳곳이 기워져 있는 데다가 몸 곳곳에 꽂혀있는 배관에서는 하얀 연기를 뿜어대고, 등에 달린 기계 날개를 펄럭이면서 굳이 땅 위에 둥둥 뜬 채로 존재하는 사람 머리통만 한 토마토의 위에 자연스럽게 폴짝 뛰어올랐다.

         

       폭-신.

         

       그러자 폭신함을 그대로 소리로 옮기기라도 한 것처럼 토마토가 푹 꺼지며 아나스타시아를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심지어 누군가 바람을 불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부풀어 올라서, 어지간한 빈백 소파 뺨치는 크기로 변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말 그대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몸체의 특성인지,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 혹은 구름 위에 앉은 것처럼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주었고.

         

       “이것은 노벨리즘 34형 스팀엔진을 장착한 페퍼로니 임플란트 토마토 엔젤-촌촌 타입이랍니다!”

         

       “음. 그러하군요.”

         

       박진성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름을 듣고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대신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대단한 것을 가져왔다고 손뼉을 쳤을 뿐이다.

         

       “꿈속을 평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군요.”

         

       “물론! 제 토마토 군단은 모든 것을 파괴하며 평정했어요!”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이 꿈에서 어떤 것을 겪었는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붙잡아서 군단을 만들고 다 부수고 다녔다는, 듣고 있기만 해도 혼미해질 것만 같은 귀여운 무용담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붙잡힌 포로’와 ‘자발적으로 군단에 합류한 전사’들에게 알아낸 정보에 대해서도 늘어놓았다.

         

       “그거 아시나요! 진짜 까르보나라는 달걀노른자에 비벼서 먹는 파스타래요! 조금 퍽퍽하긴 하지만 맛이 담백하고 건강에 좋다고 해요!”

         

       “이탈리아 사람을 잡으셨나 보군요.”

         

       “그리고 음. 다이어트를 할 때는 브로콜리를 떠올리면 좋다고 해요! 브로콜리를 떠올리고도 식욕이 계속 유지되고, 브로콜리라도 산더미처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진짜 배고픈 거라고 하네요! 하지만 아니면 그냥 가짜 배고픔이니 참는 게 좋다고….”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었군요.”

         

       “아 맞아! 우유를 먹을 때에는 소금을 조금 넣어서 먹는 것도 좋다고 들었네요~ 짭짤한 소금의 맛이 우유의 고소함을 강조시켜주고, 풍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네용! 하지만 질 좋은 에스프레소를 타서 먹지는 말라고도 했어용!”

         

       “이런. 이탈리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나 보군요.”

         

       물론 그중 대부분은 쓸모없는 정보인 경우가 많았다.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유용한 것 같지만 뭔가 애매하기 짝이 없는 잡학에 해당하는 것들 말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에서 각 잡고 고문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꿈은 논리의 비약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은 무의식이 조립되고 정보가 정리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인 곳이기도 했다.

       규칙이 있는 것 같지만 파편화 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말 그대로 환상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꿈은 인간에게 신비의 영역으로 남고, 여러모로 활용되면서도 개척되지도 않고 개척하려 하지도 않는 미답지. 그와 동시에 신비와 정신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만이 건드리는 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애매하기 짝이 없는 요소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나스타시아.

         

       박진성의 눈앞에 있는 마녀였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능력은 꿈속에서 무언가를 가져와 실체화시키는 행위고, 그녀가 다른 사람의 꿈에 방문하거나 거기서 어떠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녀의 능력이 가져다주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효율로 말이다.

         

       인류가 존재했던 그 시간 동안 미답지로 남았던 곳.

       그렇기에 경계하지도 않으며, 의심하지도 않는 그곳.

       신비와 연관을 지을 생각은 하면서 다른 사람의 개입은 크게 의심치 않는.

         

       그곳에서 정보를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

         

       “아! 그리고 요새 미국 뉴스에 ‘자유’라는 단어가 되게 많이 등장한다고 하네용~”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자유, 자유라.”

         

       박진성은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팽창한 토마토-빈백에 몸을 맡긴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에~ 자유. 음. 하지만 일반적인 자유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 다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물씬 풍기는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자유가 느껴지네용~”

         

       “뭔가 뒤틀린 것 같은 자유란 말이로군요.”

         

       “넹. 바로 그거예요~! 자유는 자유인데 몬가 애매한? 방종에 가까운 그런 느낌?”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자유’라는 키워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개인주의가 심한 나라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건 그걸 고려하더라도 좀 그래요. 자신의 자유를 남이 침범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주장할 수 있다? 그 어떤 자유도 세상에 존재할 자격이 있다? 뭐 이런 느낌이었답니다.”

         

       “특이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미국의 풍경 같기도 한데….”

         

       아나스타시아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장난감 펜처럼 보이는 것을 주머니에서 꺼내 허공에 슥슥 그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허공에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음~ 잘은 못 그리겠는데, 대충 이런 느낌의 깃발이 있었어용. 이런 깃발이 도시 전체에 걸려서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뜻이 제한 없는 자유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물론 그 자유는 제 토마토 군단이 금이빨까지 씹어먹었답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박진성에게 깃발을 보여주었다.

         

       별과 비둘기가 잔뜩 박혀 도형을 만들고 있는 깃발의 모습을.

         

       “흠. 저 깃발은….”

         

       그 깃발은 박진성에게 익숙한 것이었으며.

         

       “절대자유연맹의 것이로군요.”

         

       회귀 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하지만 회귀 전에는 질릴 정도로 보았던 것이기도 했다.

         

         

         

        * * *

         

         

         

         

       절대자유연맹.

         

       그것은 미국 내에 존재하는 어떠한 사회단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한 사상을 가진 사회단체’들’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야겠지.

         

       이 절대자유연맹에 속한 이들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하여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자유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라는 것을 종교의 교리처럼 지킨다.

       이웃집의 청년이 빌딩 하나를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의 폭탄으로 테러를 저지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피해가 올 것 같지 않다면 존중해주었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기뢰로 외국의 화물선을 터뜨리려고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 같지 않다면 존중한다.

       심지어는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 역시 ‘존중’해서 내버려 두기까지 한다.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 같지 않다, 성공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이들이 모인 것이니만큼 제대로 된 곳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극단적이고 뒤틀려 있는 사상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며,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들도 저기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더 까다로운 것은, 미쳐버린 족속들이 능력은 왜 좋은 것인지.

       저기에 속한 이들 중에는 미친 놈이지만 권력이나 재력을 갖춘 이들이 꽤 있었으며,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전 재산을 내놓을 각오가 된 이들이 넘쳐났다.

         

       평범한 사회단체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었지만-

       그러한 인식과는 별개로, 어찌 되었든 이들의 로비력은 꽤 대단했다.

       이들은 자기 돈과 권력과 인맥을 잘 사용할 줄 알았으며, 유능한 로비스트들을 사용해 자신에게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거나 막을 줄 알았다. 게다가 입을 잘 터는지 후원자들을 끌어오기도 잘했으며, 몸집을 불리는 것 역시 잘했으니-

         

       그야말로 재앙이 아닐 수가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세계를 정복하는 악의 조직이라도 되는 것처럼 몸집을 키우는 이들은 훗날.

         

       펑-

         

       터져버린다.

         

       ‘허허. 이들의 광기는 3차 세계대전의 광기를 이기지 못했음이니.’

         

       딱히 이들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전쟁의 광기가 상상을 초월했을 뿐이지….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때만 힘을 쓸 수 있는 이 단체는 빠르게 힘을 잃었고, 사분오열되며 찢겼다.

         

       하지만 이들의 유산은 남아서 싹을 틔우게 되었으니.

       바로 이들이 끌어온 후원자와 권력자가 찢긴 단체들로 분산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찢겨진 단체들 중에는 콘 벨트를 불태우는 이들이나, 국가 요직의 엘리트들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야 한다며 운동하는 이들이나, 기뢰를 전 세계의 바다에 뿌려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군수물자를 찍어내서 세계 곳곳에 팔아먹어야 한다는 이들 등의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는 이들이 많이 있었으니….

       

       이들은 미국의 광기에 큰 일조를 한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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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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