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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5

        

       그러한 이들의 깃발이 도시 전체에 걸려 있었다…라.

       묘한 이야기다.

         

       그들은 단체들의 연합일 뿐 주체가 될 수는 없을 터인데.

         

       ‘물론 하고 싶은 이들도 있기야 하겠지.’

         

       그리고 연맹은 그 자유를 존중해줄 것이다.

       깃발로 도시 하나를 물들이는 행위도, 주 하나를 깃발 천국으로 만드는 행위도.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을 존중해줄 것이다.

       분명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그들의 성향에 맞는다고 해서, 그들의 성향과 다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로 평범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흐음. 이 시기에 그쪽과 연관이 될 일이 있던가?’

         

       잘은 모른다.

       회귀 전 이 시기의 박진성은 하찮은 용병에 불과하였으니까.

       본래 용병이 하찮다고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였으니까.

       인맥도 없고, 주술사라는 이유만으로 대접받을 뿐이었던 그런 하찮은 존재.

       기생술사라는 멸칭조차도 얻지 못하였던 그 시기….

         

       ‘자유. 그리고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깃발.’

         

       자유, 자유, 자유라.

         

       무서운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말 그대로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긍정하는.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사악한 존재들이 품은 것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아나스타시아가 본 것은 어쩌면 ‘사악한 징조’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늘에 흉성(凶星)의 빛이 반짝이고, 땅울림이 일고 바다가 붉게 물들고, 강에서 수많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이 역시 사악한 징조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박진성은 고민했다.

       그리고 창으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보았고, 별의 속삭임을 들었다.

         

       언어가 되지 못한.

       오감 중 무엇도 되지 못하였으며, 오감 중 무엇도 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내려앉은 미약한 빛은 산들바람처럼 귓가에 머물렀다가 사라져버렸고, 그것에는 끝과 시작이 없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함이 없으니 그 빛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 속삭임이 말하기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으니.

         

       “허허허. 자연은 속임수와 거짓 속에서 나아가는 법이니.”

         

       박진성은 그것이 자신을 속이려 드는 것임을 알았고.

       미국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사실에 방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고, 다시 아나스타시아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좋은 걸 깨달을 수 있었군요. 감사드립니다.”

         

       “오오. 진-성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아나스타시아는 박진성의 말에 기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아니, 웃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팔을 위로 쭉 뻗으며 환호성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걸로도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는지 제자리에서 일어나서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박진성이 잠을 청하는 침대에까지 다다랐다.

         

       폴짝.

         

       그리곤 자연스럽게 점프.

       박진성이 눕는 침대에 그대로 다이빙했다.

         

       “오오…! 이것은, 이거슨…!”

         

       그렇게 침대에 포옥 안겨버린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을 감싸는 매트리스의 감촉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성! 이건 정말 주술적인 포근함이네요…! 침대에 잡아먹혀 버릴 것 같아요오오으아아….”

         

       그리곤 찬사 아닌 찬사를 내뱉음과 함께 서서히 눈을 감았고, 아까 전 자신이 잘 때 사용했던 자신의 전용 침대와는 다른 폭신함에 그대로 잡아먹혀 버리고 말았다. 폭신함에 그대로 녹아내린 채, 잠의 세계로 빠져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짠! 하지만 그건 트릭 마스터 아-샤의 트릭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아까 전 모습이 장난이었다고 선언하며 부활했다.

       그리곤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배시시 웃으며 침대 위를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뒹굴뒹굴, 뒹굴뒹굴.

         

       이불을 몸에 돌돌 말아 애벌레가 되어버린 주말 직장인의 생명이 빙의라도 한 것인지 아나스타시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침대 위를 뒹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꺼냈는지 모를 폭신해 보이는 베개를 껴안고는 이 침대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었다.

         

       박진성은 그러한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하하하. 그래요. 그곳에서 좀 쉬시지요.”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용병 시절 아나스타시아에게서도 자주 보였던 모습이었으니까.

         

       그 시절의 아나스타시아는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풍-수-지-리? 적으로 잠을 자기에 좋지 않다.’, ‘몬가 수맥이 흐르는 것 같다. 응? 우리가 있는 곳이 배 안이라고? 그건 상관없다. 어쨌든 수맥이 흐르는 것 같으니까 이곳을 써야겠다.’ 등의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다른 이들의 잠자리를 강제로 강탈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이는 박진성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나중에는 그가 사용하는 침낭이나 해먹까지 빼앗기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마음에 드는 베개가 없다는 이유로 같은 텐트로 들어와서 박진성을 베개처럼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런 것을 생각해본다면 저런 모습은…. 용병 시절 아나스타시아의 횡포의 새싹같은 면모라고 볼 수 있겠지.

         

       “와- 그럼 잘 자겠습니다- 안뇽!”

         

       그렇게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이 꿈에서 가져온 특제 침대를 버려둔 채, 박진성의 침대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꿈속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박진성의 의뢰를 더 완벽하게 들어주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잠을 자는 아나스타시아를 뒤로 하고, 박진성은.

         

       “허허. 보자. 덫이 있는 것 같으니 시험을 해보는 것이 옳을 것이겠지….”

         

       스마트폰을 조작해 어떠한 것을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보자. 미국행 비행기가….”

         

       그것은 직감에서 비롯된 것.

       별들의 속삭임에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짜낸 가벼운 꾀.

       동물이 미끼를 보고 그 아래에 덫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과 같은, 아주 가벼운 술수였다.

         

         

         

        * * *

         

         

         

       “허허. 이거 참.”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진성에게 답이 돌아왔다.

         

       『 ………취소(Cancellation)되었습니다. 』

         

       취소.

       Revocation이 아닌 Cancellation.

         

       중국에 입국이 거절된 것과는 다른 이유로의 거절.

       절차상에 문제가 있어서 입국이 거절되었음을 알리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름이 잘못 표기되었다거나, 생년월일이 잘못 표기되었다거나, 어떤 오류나 정정이 필요해서 취소시킨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냥 다시 신청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하기 짝이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게 거절되었다는 답이 왔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리 이상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취소, 취소라….”

         

       하지만 박진성은 이 별것 아닌 것에서 어떠한 냄새를 맡았다.

       아예 처음부터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던 중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온건하기 짝이 없는 이 답이, 이 취소 행위가…충분히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을 말이다.

         

       취소.

       취소.

       취소.

         

       오류로, 표기 실수로, 정정이 필요해서, 행정적 문제로 인하여, 파업 등의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직원의 태만으로, 누락이 되어서-

       갖다 붙이기만 하면 통용되는 수많은 이유를 사용해서 이 ‘취소’가 아주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온건해 보이는.

       하지만 합법적이고, 기약이 없는 지연 행위.

         

       ‘허허. 내가 작업을 당하다니?’

         

       사보타주(sabotage).

         

       박진성이 여럿 해보았던 그 작업의 냄새가, 메일에서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박진성은 그러한 낌새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국에 가려 한 것은 우연이었는가?’

         

       그것은 되짚어보는 것.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의 의지가 끼어들었는지, 어찌하여 이 사보타주가 자신을 대상으로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행위였다.

         

       ‘인도로 가게 된 것은?’

         

       생각한다.

         

       ‘아슈토쉬 싱을 만나게 된 것은?’

         

       생각한다.

         

       ‘아슈토쉬 싱에게서 불로불사의 단서를 알게 된 것은?’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와서 아나스타시아를 찾은 것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흐음. 아슈토쉬 싱, 미국, 불로불사의 단서….”

         

       그것은 그림이 채워지지 않는 퍼즐.

       파편 몇 개만 듬성듬성 박혀있는 퍼즐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파편들만으로도 짐작은 할 수 있으니.

         

       거기서 박진성은 미국에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감하였고, 미국에 있는- 혹은 그와 얽히게 될 누군가는 박진성이 그것과 접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역시 쉽게 유추할 수가 있었다.

         

       그래.

         

       그렇기에 그는 방해받는 것이다.

         

       미국에 발을 디디게 된다면 그는 그것에 가까워지게 될 테니까.

       그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그 ‘단서’와 접하게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사람, 혹은 어떠한 단체가 바라는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박진성은 그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웃었다.

         

       “허허허.”

         

       비웃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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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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