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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6

        

         

       “이거 참. 행동거지가 수준이 높지 않지만, 격장지계로서는 나쁘지 않으니.”

         

       박진성은 유치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수작질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권력을 가진 이가 막무가내로 일을 지시하고, 아랫사람이 그 지시받은 일을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일을 해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기에, 그는 도저히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꼭 이렇게 된다.

       권력을 가진 이가 터무니없는 주문을 하면, 이런 유치하기까지 한 결과물이 나오곤 한다.

         

       법을 어기기는 싫고.

       힘은 없고.

       그러니 공연히 트집을 잡고 시간을 질질 끌게 되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

         

       박진성은 잘 알고 있었다.

       꼭 의뢰해놓고 의뢰비를 주기 싫어하는, 의뢰비를 다른 것으로 뭉개려고 하는 욕심 그득한 놈들이 하는 짓이 바로 이러했다. 그러다가 반쯤 협박 섞인 말에 마지못해서 돈을 내기도 하고, 아예 끝까지 내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카니발’이 되어서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몸이 되곤 했지….

         

       그리운 이야기다.

         

       ‘정신 역시 몸의 영향을 받는 법. 어린 나이의 몸뚱이라 그런지 이러한 신선한 기분마저 느껴보는구나.’

         

       그는 허허 웃었다.

         

       이 치졸하기까지 한 수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거 참. 모호하기 짝이 없는 일이로다….”

         

       하지만 좋은 대처법을 떠올리기에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파편화된 것들을 조합해서 간신히 그 윤곽을 추측하는 것뿐. 그나마도 완성품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는, 말 그대로 확률 낮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달이 뜨지 않은 밤에 팔을 뻗어 사물을 더듬더듬 짚으며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계획을 짜고 실현하는 사람의 특권이 바로 그것인 것을.

       남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계획을 자신은 또렷하게 전부 알고, 조종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에게 주어지는 권한인 것을.

         

       그래….

       박진성은 어떠한 계획에 빠져들었다.

       작전이라고 해도 좋고, 작업이라고 해도 좋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박진성을 곤경에 빠뜨리려 한 것이다….

         

       ‘어쩌면 나를 확실하게 겨냥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계획’이라고 하기도, ‘작전’이라고 하기에도 미묘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유치하기까지 한 행위는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다. 위협적인 목표에 행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하잘 것이 없는 행위라는 암시가 말이다.

         

       이것은 마치 개미집이 집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는 데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개미 약을 곳곳에 뿌려놓고 한 놈만 걸리기를 기다리는 느낌과도 닮아 있는 것이다.

         

       개미가 분명히 보였는데.

       개미가 이 집 어딘가에 집을 지은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어딘가에 분명히 개미가 드나드는 곳이 있고, 무리가 있는데.

       그런데 도저히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으니 그냥 미끼처럼 개미 약을 사방에 쫙 뿌리고, 그것을 건드려서 티가 나면 그것을 토대로 추적하려 하는 것 같은- 그런 낚시꾼의 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미끼.’

         

       그래. 미끼다.

       반응하면 바로 낚싯바늘이 꿰어진 채 수면 위로 끌려들어 가게 되는 미끼.

       향긋한 냄새에 다가가서 앙 물었다가는 바로 덫이 닫히게 되는 그런 미끼….

         

       ‘다만 능숙하지는 않군.’

         

       물론 그 솜씨가 능숙하지는 않지만-

       그래.

       여권에까지 이런 치졸한 수작을 부릴 수 있는 것을 본다면, 괜히 경시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아무리 어설프다고 해도 몸집 자체가 힘이지 않은가.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살쾡이라도 싸움 못하는 코끼리를 이기기는 힘든 법.

       권력이란, 질서가 유지되는 세상의 권력이란 바로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박진성은 미끼를 뿌려대는 이 유치한 수작질에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행은 취소한다.’

         

       미국으로 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바로 취소한다면 의심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 한 번만 더 신청한 다음 취소하는 것이 좋겠지. 두 번 연속 취소되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서 그냥 여행 자체를 취소했다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다만 미국에 손을 뻗기는 해야겠구나.’

         

       하지만 그것이 미국에서 완전히 손을 놓는다는 것은 또 아니었다.

       ‘박진성’이라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제 일을 방해하는 권력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처리할 방법으로.

         

       그래.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에 손을 뻗기도 좋을 것이요, 미국이 혼란이 빠지게 된다면 중국 역시 경계심이 좀 풀리게 될 것이다. 미국이 흔들리는 틈을 타 세계 1위의 국가로 올라서기 위해서 집중하게 될 테니까….’

         

       그래.

       모든 것이 참으로 좋겠지.

       그리한다면 말이다….

         

         

         

         

        * * *

         

         

         

         

       한때 한국과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갔던 일본.

       한국과 전면전에 이르기 직전까지 갔을 때, 일본에선 수많은 시민이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하고, 많은 시민이 예전처럼 은행에 맡겨놓은 돈을 그대로 정부에 몰수당할까 두려워 은행으로 몰려가 예금을 빼고, 재산을 현금이나 귀금속으로 바꾼 뒤 피난 준비를 했다.

       평소 전쟁을 해서 제국 시절의 영광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는지 전쟁 금지, 한국과의 협상을 통한 평화 추구를 목 놓아 외쳤고, 힘이 남아도는 무인들은 어서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면서 각자의 인맥을 통해 전쟁의 선봉장으로 서기 위해 난리를 피웠더란다.

         

       짧은 시간.

       하지만 지극히 컸던 혼란.

         

       그 혼란이 끝난 후의 일본은 역설적으로 평화로웠다.

         

       바닥을 뒤집어 흙탕물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연못은 다시 깨끗해지는 것처럼.

       일본 역시 예전처럼 평화롭게 변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평화로워진 것 같기도 했다.

         

       평소 제국 시절을 찬양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병사로 끌려갈 상황이 되자 노선을 바꾸었었고, 현재까지 입을 꾹 다물거나 아예 평화를 추구하자면서 목이 터질 듯 소리를 외친다. 물론 아직도 난리를 치는 우익들이 많기는 했지만, 한국과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을 때와 비교하자면 확연히 그 수가 줄어있었다….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무인들?

       그들은 불만이 조금 쌓이기는 했다.

       자신의 무공으로 공훈을 세워 입신양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 전국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공을 세워서 부와 권력을 얻고, 나중에는 일본 천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물이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 그깟 수준으로 무얼 하겠다고! 』

         

       『 무공은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서 꽃이 피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꽃을 아름답게 피우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식물에는 발이 달리지 않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 후에야 비로소 씨를 뿌릴 수 있게 되는 법. 너희의 행동은 뿌리로 움직여서 핏물을 마셔 꽃을 피우려 하는 것이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 너희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 』

         

       일본제일무사 소타로(蒼太朗)와 일본제이무사 카즈오(計夫)가 마음이 들떠 있던 무인들을 강하게 꾸짖으면서 그러한 불만이 쏙 들어갔다.

         

       그들은 ‘무공으로 일가를 이룰만큼 성취가 높지도 않고, 아직 그 끝에 다다랐다고 하기조차도 부끄러운 놈들이 어찌 사람을 베어 공을 세우기만을 기대하고 있느냐.’며 일갈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을 때려눕히기도 하고, 무(武)의 본질이 아니라 무가 가져다주는 달콤한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놈들의 정신을 개조해주겠다면서 그들을 단체로 굴리기까지 했다.

         

       그 때문일까.

       현재 알게 모르게 행패를 부리던 무인들, 우익 측에 힘을 실어주던 무인들 역시 싹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소타로와 카즈오의 뜻에 공감한 강력한 무인들이 합세하여 무사도를 깨우쳐주겠다면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한때 일본 전체를 지배했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그때 두려워했던 것을 보상받고 싶어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나게 놀거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한-일 합작으로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

       예를 들자면 한-일 합작으로 만든 드라마.

       예를 들자면 애니메이션이나 대회.

       예를 들자면.

         

       [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저 깜찍하고 귀여운 리포터, 아카바네 히나가 히간바나(彼岸花) 축제를 중계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

         

       축제.

         

       [ 여러분! 저 흐드러지게 핀 히간바나(彼岸花)가 보이시나요? 이곳 사이타마현이 히간바나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울 줄은 이 히나는 알지 못했어요! ]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농장.

       그곳에 빠알간 꽃들이 피어나 땅을 불태우고 있다.

       바람에 흔들흔들 춤을 추며 불꽃이 넘실거리는 듯, 붉은 파도가 일어나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이곳에는 히간바나를 콘셉트로 수많은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히나, 생각만으로도 하이텐션(high tension)이 될 것 같네요! ]

         

       붉은 꽃.

       석산.

       꽃무릇.

         

       가장 유명한 이름으로는.

         

       피안화(彼岸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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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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