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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7

       

       

       

       ‘이것 참.’

       

       창살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다소 습하다 느껴지는 공기.

       

       햇빛이 오는 것 치고 묘하게 어두운 공간.

       어느 정도 관리가 되어 있는 듯 보이나 묘하게 낡은 물건들까지.

       

       보이는 것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이게 이렇게 되네.’

       

       취조실이라며 의자와 탁상이 배치된 공간이다.

       위치는 맹의 지하였고, 아마 시간이 더 흐르면 다른 역할로 쓰일 곳이기도 했다.

       

       ‘여길 다시 오게 될 줄이야.’

       

       바라보고 있는 곳은 멀쩡한 벽이었지만, 벽을 허물고 철창이 세워질 것이다.

       

       지금은 취조실이나 그때가 되면 감옥이라 표현하게 되겠지.

       그래, 이곳은 전생에 내가 죽은 지하감옥의 위치와 동일 했다.

       

       단지, 지금은 취조실이라 불리며 쓰임이 다를 뿐이다.

       

       이를 깨닫고 쳐다보고 있으니 묘한 감상이 스민다.

       

       전생에 죽은 곳에 다시금 왔다는 찝찝함과.

       그때와는 다소 달라진 위치로 왔다는 이질감이 섞여 들어왔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시선을 돌리고 있던 사이.

       

       딸깍.

       

       쪼르르르륵.

       

       앞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놓인 찻잔에 무언가 따라지는 소리였다.

       나는 가득 따라지는 찻물 너머 물잔을 든 노인을 쳐다봤다.

       

       맹의 인물임을 상징하는 도포.

       그 안에 살며시 보이는 무당의 상징.

       

       거기에 방안을 가득 채운 은은하면서 진득한 도기(道氣)까지.

       어설픈 무인이 아니라, 진짜 무인이라는 듯 퍼지는 존재감에 털이 바짝 돋는다.

       

       검제(劍帝)를 봤을 때 느꼈던 감각처럼.

       앞서 노인을 봤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기야. 당연하겠지.’

       

       검제가 십대 고수 반열에 오른 인물이듯.

       이 노인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찻물이 모두 따라지고, 도안(道眼)이 내게 향한다.

       

       “오랜만이구나.”

       

       노인의 인사에 내가 호흡을 골랐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문님…. 아니지. 지금은 맹주님이라 해야겠네요.”

       

       나는 무당의 장문인 무당검선. 

       

       현 무림맹을 책임지고 있는 이와 마주하고 있었다.

       

       내 말에 검선이 미세하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무어라 불러도 상관없다. 무당의 장문인 또한 내가 감당할 이름이니 말이다.”

       

       그 말에 고개를 까딱였다.

       

       ‘무당의 장문인 또한…이라.’

       

       뭐랄까 순서가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저건 마치, 맹주의 이름이 우선이라는 것 같잖아.’

       

       안 그래도 검선이 무당 쪽에 개입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추세다.

       

       장문인 대리까지 세워 일을 줄여놓은 시점이라 들었거늘, 저리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다소 느낌이 온다.

       

       ‘무림맹 쪽이 더 중요하다는 방증인가.’

       

       이는 맹측으로선 잘 된 일이 아닐까 싶다.

       

       ‘지난 수 세기간 문파의 인물은 맹주로 세우지 않은 이유가 있었으니까.’

       

       역대 맹주들을 떠올리자면, 가주들은 소수로나마 존재했다. 장문인은 검선이 최초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보통 장문인들은 문파가 더 중요하니까.’

       

       대게 문파의 이들이 그러하듯.

       제 목숨보다 문파를 중요시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하물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문인이었으니, 대다수 이들이 그들에게 맹을 맡기는 걸 꺼려했던 것이다.

       

       심지어 도인(道人)이라는 특성상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보니 정치를 맡긴다는 것 자체도 믿음이 안 갔던 것인데.

       

       ‘이 양반은 참.’

        

       검선, 이 노인네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맹주라는 이름엔 적합한 인간이 아닌가 싶었다.

       

       하기야 예전부터 도인치고는 묘하게 물욕이 엿보이기는 했다.

       

       그렇게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검선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귀한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기에 한 번 찾아와보았다.”

       

       “제가 딱히 귀한 쪽은 아니긴 합니다만….”

       

       “하하. 귀하지. 후기지수들이야말로 정파의 미래거늘. 어찌 귀하지 않겠느냐.”

       

       “말씀이라도 감사하네요.”

       

       정말 하나도 안 고맙지만, 혓바닥에 꿀을 우선 칠했다.

       

       여기서 개개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 선배 무인과 일이 있었다고.”

       

       “아주 사소한 오해로 인해 다툼이 있었습니다.”

       

       “오해로 인한 다툼인가….”

       

       말을 들으며 맹주가 웃음의 짙어진다.

       그걸 보며 속으로 찝찝함을 감춰야 했다.

       

       ‘설마 이 인간이 직접 올 줄이야.’

       

       적당히 조사나 받을까 싶었는데. 설마 맹주가 대면하러 올 줄은 몰랐다.

       

       해도 검제가 올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노인네가 뭣 하러 날 찾아온 걸까.

       머리를 굴려봤다.

       

       설마 진짜 후기지수가 잡혔다고 보러 온 건 아닐 것이다.

       그럴 양반이 아니란 건 진즉 알고 있었다.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특이하게 흘러갔다고 보이는구나.”

       

       “…”

       

       “유탄검과 호각으로 붙었다고 하던데. 맞느냐.”

       

       머저리 같은 새끼.

       

       빈틈이 그렇게 많은데 어찌 안 때리고 배길까.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그놈이 워낙 약해서 예상보다 크게 밟아버렸다.

       

       ‘차마 그렇겐 말할 수 없으니….’

       

       입술을 굴려 가며 말을 뱉어냈다.

       

       “우연과 기적이었습니다. 유탄검 선배께서 많이 봐주셨지요.”

       

       “기적이라….”

       

       묘한 표정을 짓는 검선.

       그를 보며 나 또한 눈을 좁혔다.

       

       “아무리 기적이라 한들. 네가 가진 가능성이 월등함을 알 수 있었다. 대단하구나.”

       

       “아닙니다. 말씀드렸지만, 유탄검께서 많이 봐주신 것이지요.”

       

       “검제가 내게 그러더구나. 자신조차 너의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고.”

       

       “…”

       

       겸손을 떨어보려다 뒤이어 들려온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예상외의 상황이었던 탓이다.

       검선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실수다.

       

       ‘…아 이런, 좀 더 낮췄어야 했나.’

       

       검제를 본 순간 힘을 어느 정도 들춰냈는데. 그조차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명백한 실수였다.

       

       ‘생각보다 내 경지가 더 높았군.’

       

       검제 정도면 바로 알아볼 수준까지 낮췄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낮춰야 했던 모양.

       

       “그날따라 검제께서 피곤하셨던 게 아닐까요.”

       

       “검제가? 하하.”

       

       검선이 웃었다.

       

       그렇겠지. 

       그 냉철한 인간이 피곤하다고 실수했을 리 없지.

       

       검제를 맹주의 호위라 칭하고는 하나.

       더 나아가 무림맹 그 자체를 수호하는 인물이었다.

       절대 실수하지 않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철혈의 검제. 

       그의 이명이 그러했다.

       

       검선은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웃음을 머금었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처음엔 특이한 무공을 익혔다 싶었는데. 직접 보니 그와는 다르구나.”

       

       검선이 말을 이어갈수록 속내가 보이기 시작했던 탓이다.

       

       “너는 강해. 아마 세상이 알기보다 많이 강한 모양이야.”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는 안 듣긴 했습니다.”

       

       표정을 달리했다. 표정 관리를 하려 했으나 이제는 쓸데없어졌다.

       

       우스갯소리를 뱉어보지만, 검선은 여전한 표정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으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도인치고도 마르기 그지없다.

       

       “중원에 아주 큰 복이 온 게지.”

       

       “맹주님.”

       

       검선의 말을 막아내며 내가 그에게 물었다.

       

       “하고픈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모자란 후배가 경청하겠습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내뱉어라.

       

       그런 속뜻을 속에 담아 뱉어냈다. 하니, 검선의 미소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생겼다.

       

       ‘간 보는 것도 지치네.’

       

       맹주가 날 찾은 이유는 알 것 같다.

       유탄검과의 대결 자체가 문제였던 모양인데, 그걸 포함해서도.

       

       ‘내가 강한 게 뭔가 문제라도 되는 모양이야.’

       

       예상보다 훨씬 웃도는 힘.

       그걸 내가 가지고 있음에 무언가 문제가 되는 듯했다.

       

       “듣기론 비무제에 참가할 거라고 하던데. 맞느냐.”

       

       “맞습니다. 무림맹에서 직접 주관하는 축제라 하는데. 정파 혈족으로서 꼭 참석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말 안에 명분을 숨겼다.

       

       별 뜻 없이 너네가 여는 비무제라 해보려는 거다.

       그런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저같이 경험 없는 무인에겐 더 없는 경험이지 않을까 해서요.”

       

       “맞다. 너뿐이 아니라 모든 무인에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예. 기대가 참 많이 됩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지만, 네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구나.”

       

       “경청하겠습니다.”

       

       시선을 집중하며 검선을 쳐다봤다.

       

       “맹 내부에서 다툼이 있었던 만큼, 자칫 잘못했다간 비무제 참석 권한이 박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선의 말에 즉시 눈을 키웠다.

       

       “헉…! 정말인가요?”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반응했다.

       

       “몰랐습니다…! 그런 큰일이 있을 줄이야!”

       

       “하여, 상황에 따라 비무제에 참석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군요….”

       

       눈을 내리깔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맹의 율법이 그러하니, 처분하신 대로 행동하겠습니다. 제 잘못이 맞으니까요.”

       

       웃으며 말했다.

       원한다면 빼라. 그 선택을 존중할 수 있었다.

       

       이는 진심이었다.

       

       ‘상태를 보니 일이 있는 것 같으니까.’

       

       맹주인 검선이 직접 와서 날 살필 정도면 뭔가 일이 끼어있다.

       그래서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정말 날 뺄 수 있을지 말이다.

       

       정황상 잘못을 구하긴 했으나, 처음 들어올 때의 내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날 뺄 수 없다.

       

       ‘정확히는 유탄검과 엮인 나를 뺄 수 없겠지.’

       

       다툼이 벌어졌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여기 개입된 이들이 중원 백대 고수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중원 백대고수가 비무제에 참석한다.

       

       그것만으로도 비무제 이름에 상당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데.

       

       뭣도 아닌 일로 백대 고수를 비무제에서 제외하게 된다?이건 무림맹에게도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하니, 어떻게든 좋게좋게 넘어가려 할 것이다.

       심지어 나에 관한 소문도 이미 퍼졌을 것이다. 

       

       ‘백대 고수를 상대한 청년이니 뭐니…. 그런 쪽으로 말이야.’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다. 

       그걸 무림맹에선 쉽게 내칠 수 없겠지.

       

       특히 지금같이 관심을 끌어야 할 시기라면 더욱이 말이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판단을 하고 들어온 것인데.’ 

       

       검선의 반응을 보니 뭔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날 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통이라면 규칙을 어겼으니 당연히 탈락시켜야 하지만, 무림맹이 그렇게 일 처리를 할 리가 없다.

       

       이것도 나름의 믿음이었다.

       놈들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걸 알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날 뺀다면.

       

       ‘필히 뒤에서 뭔가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에 내가 방해된다는 방증일 터.

       방증을 얻었다면, 계획을 다소 변경하면 그만이었다.

       

       ‘비무제? 옘병 안 나가면 그만이야.’

       

       봉순이를 이용한 계획은 다소 뒷순위에 밀려있었으나.

       일이 꼬인다면 당장 써먹어도 문제가 없으리라.

       

       그리 판단하며 검선을 쳐다보는데.

       

       “…”

       

       침묵이 흘렀다.

       

       내 말을 듣고 검선 또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까.

       혹은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해하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하하.”

       

       검선이 다시금 웃음을 머금는다.

       

       “그리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오늘은…. 순전히 네가 궁금하여 찾아왔을 뿐이다.”

       

       “그, 그렇군요.”

       

       “취조 또한, 다 끝났다고 하니 금방 풀어주기도 할 것이다. 이는 내 억지로 인한 만남이었으니 시간을 빼앗았다면 미안하구나.”

       

       “정말 다행스러운 말씀이네요.”

       

       아무래도 예상대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내부에서 확인을 해봐야 할 테지만. 아마 별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맹주가 한 말이다. 

       저건 확답에 가까웠다.

       

       “이런 사사로운 일로 중원의 큰 별이 뜨는 걸 막을 수는 없지. 그렇지 않더냐.”

       

       “…별이라니. 쑥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래, 고작 별 따위로 남을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드르륵.

       

       검선이 말을 뱉으며 몸을 일으킨다.

       

       “시간을 뺏어 미안했다. 다음에는 다른 일로 얼굴을 보게 되면 좋겠구나.”

       

       아무래도 담화는 이걸로 끝인 것 같았다.

       별로 대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검선은 목적을 이룬 것인가.

       

       ‘아니면, 더 뭔가 시도하기 애매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지.’

       

       뭐가 됐든 검선은 내게 목적이 있어 찾아왔다.

       그걸 알았음으로 충분했다.

       

       검선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네가 비무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가길 바라마.”

       

       “말씀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아 참. 듣기로는 우리 아이와 친우라 하던데.”

       

       당연하게도 검선이 언급한 아이란 우혁을 뜻하는 말이다.

       

       “예. 둘도 없는 친우지요.”

       

       “항시 걱정스러운 아이였는데. 뛰어난 친구를 얻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이는구나. 부디 잘 어울려주면 좋겠어.”

       

       “하하….”

       

       말을 듣고 웃었다.

       정말 우습지도 않다.

       

       전생엔 면전에 대고 우혁에게 나 같은 놈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던 인간이,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심지어.

       

       ‘걱정스러운 아이였다고?’

       

       참 지랄도 풍년이다.

       전생에 쓰레기 버리듯 버린 양반이 걱정스럽기는 지랄.

       

       ‘우혁이 왜 죽었는데.’

       

       거기엔 다름 아닌 무당이 저지른 짓도 포함되어 있건만, 이리 착한 장문인처럼 나오니 토악질이 쏠릴 지경이다.

       

       하지만 참았다.

       참아야 했다.

       

       “예.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그래그래. 고맙다.”

       

       탁-!

       

       검선이 끝내 방문을 나서며 문이 닫혔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도 웃고 있던 표정을 지울 수 있었다.

       

       ‘쉽지가 않네.’

       

       정말 쉽지가 않다.

       세상에 죽일 놈이 너무 많아도 너무 많음을 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참 쉽지가 않았다.

       

       

       

       

       

       

       

       ******************

       

       

       

       

       

       

       

       검선이 떠난 뒤 길어봤자 반 시진 정도가 흘렀을까.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맹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맹의 이들의 안내를 따라 바깥으로 나오자 대뜸 얼굴에 무언가 불쑥 튀어나온다.

       

       “…뭔데 이거.”

       

       “두부예요.”

       

       “진짜 어이가 없네.”

       

       해맑게 내게 당소열이 두부를 건네왔다.

       

       그걸 조심스레 받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중에 맛있네…. 잘 만들었어.

       

       “고생하셨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그냥 앉아 있다고 나온 건데.”

       

       말 그대로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취조라고 하기는 하는데, 한껏 내 눈치를 보며 상황을 몇 개 물었을 뿐이고.

       

       유탄검 쪽에서도 별다른 말을 안 했을 것이었다.

       

       ‘쪽팔려서 얘기나 하겠어.’

       

       무인이란 그런 존재다.

       

       승리에 관한 건 지겹게 자랑해도 패배에 관한 건 입을 꾹 다무는 이들이다.

       

       그것도 한참 선배라는 양반이 여자한테 찝쩍거리다가 사타구니가 깨질 뻔했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깨질 ‘뻔’이 아니라 확실히 깼어야 했는데.’

       

       조금 더 강하게 찼으면 진짜 깨졌을 텐데, 정말 깼다면 문제가 커졌을지 모를 일이기에 나름 조절을 해주었다.

       

       치료는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놨달까.

       

       ‘그런 쪽으로는 전문이라서 말이야.’

       

       이게 또 고도의 고문 방식인지라 숙련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니까 하는 거지 나니까.

       

       나는 손에 들린 두부를 씹으며 당소열에게 물었다.

       

       “그 인간은 어디 갔대?”

       

       유탄검에 관한 물음이었다. 

       분명 나보다 먼저 나왔을 텐데, 별일은 없었겠지?

       

       “아…아까 나오긴 했는데. 저희 쪽을 노려보다가 금방 사라졌어요.”

       

       “그래?”

       

       더 이상의 다툼은 없던 모양이다.

       

       “너희는 뭣 하러 기다리고 있었어. 먼저 가라고 했잖아.”

       

       맹 내부로 들어가기 전, 위설아와 당소열에게 가 있어도 된다고 말을 해놨거늘.

       두 사람은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 같다.

       

       봉순이와 성율은 얌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다행이다 그놈들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면 더 귀찮았을 텐니 안 보이는 게 이득이었다.

       

       “어떻게 먼저 가겠어요…. 저 때문에 끌려가신 거잖아요.”

       

       당소열이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에 내가 소리 내서 웃었다.

       

       “그게 끌려간 거로 보였어?”

       

       “제 발로 가셨든 타의로 가셨든. 저 때문에 가신 건 맞잖아요…. 그냥 제가 조금 참았더라면.”

       

       “별일 없었으면 된 거지 뭘. 그리고 참긴 뭘 참아.”

       

       당소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그때 안 참았으면 내가 더 아작 냈을 거야. 그게 그거라는 뜻이지.”

       

       그나마 당소열이 화를 내는 것 같았기에 그 정도로 끝낸 것이다.

       

       뭐라 했기에 유탄검이 그토록 화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시선이 좀 더 끌리긴 했다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야.’

       

       내게 끌리는 시선이 많아지는 것? 그쯤이야 뭐 상관없었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대충 말을 꺼내 들며 위설아와 당소열을 데리고 가려는데.

       

       “아, 공자님….”

       

       당소열이 내 손을 피하며 말했다.

       

       “저는 공자님 나오시는 것도 봤으니…. 저는 먼저 가볼게요.”

       

       “어디 가게?”

       

       밥도 안 먹고 어딜 간다는 거지?

       

       내 물음에 당소열이 웃으며 말한다.

       

       “일이 좀 있어서요. 늦기 전엔 갈게요.”

       

       “…그래. 잘 다녀와.”

       

       일이 있다고 하니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근래 당소열이 자주 안 보이는 것 같다만, 큰 문제는 없겠지. 알아서 잘 할테니 말이다.

       

       이후 당소열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우린 뭐 먹지. 만두라도 먹을까?”

       

       저번에 먹었던 만두를 떠올리며 묻자, 위설아가 해맑게 웃었다.

       

       “저는 뭐든 좋아요.”

       

       “가자 그럼.”

       

       위설아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

       

       

       

       

       

       검선은 물론이고 구양천이 예상했던 대로 하남에는 슬금슬금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젊은 무인이 백대 고수인 유탄검과 맞붙었고 승부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당시 다툼을 본 이들이 입과 말로 전하기 시작한 일들이었다.

       

       “거짓말이로군.”

       

       “거 거짓말을 할 거면 좀 현실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소?”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이들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 진짜라니까 그러네! 내가 봤다니까?”

       

       “정말이오. 나 또한 같이 보았소!”

       

       실제로 본 이들이 워낙 많았고 퍼트리는 이도 많았기에 소문이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은 무인.

       

       그것도 후기지수급의 무인과 백대 고수가 호각으로 맞붙었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을 뜨겁게 달구기 충분했다.

       

       “유탄검이면 절대 고수 중 한 명이건만, 그런 이와 싸운 이가 누구란 말이오.”

       

       “듣기로는 소염라라고 하더이다.”

       

       “소염라…? 설마 신룡관….”

       

       개방과 맹이 의도적으로 잠재워둔 이의 소식도 퍼져나갔다.

       

       “당시에도 새로운 영웅이다 말이 많더니만. 몇 년이 지났다고…. 아무리 천재라 한들 그게 말이 된단 말이오?”

       

       “유탄검이라면 화경의 무인일 터인데…. 그와 막상막하로 싸웠다면, 설마 소염라도 화경에 닿았다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소염라라면 이제 약관을 넘었다고 하였거늘! 화경이 말이나 된단 말이오? 화경이 무슨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왜 말이 안 되는 소리오. 당장 신룡도 화경에 이르렀지 않소.”

       

       “그것이야 당연히 신룡이니까…!”

       

       “소염라도 진룡이라 불렸던 걸 잊으셨소? 심지어 그때는 최연소 화경이다 뭐다 소문이 먼저 퍼졌었지 않소이까.”

       

       “하나 무림맹은 신룡이 맞다고 공식적으로….”

       

       논쟁 또한 끊이지 않는다.

       

       그 짧은 싸움 하나로 주변이 점차 달궈지고 있었고.

       이는 구양천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반동이 크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 소문이 사실이 맞는가.

       소염라는 정녕 화경에 닿았는가.

       

       그렇다면 언제 화경에 이르렀고 과거의 소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정녕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신룡(信龍)의 가치는 어찌 되는가.

       

       많고 많은 얘기가 하남에 작은 돌풍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여기 있소.”

       

       여전히 인파가 바글바글한 비무제 접수대로 누군가 서찰을 건네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소염라가…여기서….”

       

       “유탄검이 글쎄….”

       

       주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들.

       그걸 들이며 흑발의 청년이 묘한 눈을 취했다.

       

       마치 어이없다는 표정 같았다.

       

       “며칠 못 봤다고 뭔 짓을 하고 다닌 건지. 쯧쯧….”

       

       일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워 놓았건만, 그 틈에 또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언제는 이름 날리는 거 쪽팔려서 하기 싫다더니. 이럴 거면 뭣 하러 참는다고 했는지 의문이구나.’

       

       하여튼 개똥 같은 놈이었다.

       그런 놈을 잡아다 키우고 있는 자신도 웃기지만 말이다.

       

       청년이 건네는 서찰을 맹의 무인이 잡아 펼친다.

       

       “…엇.”

       

       서찰을 받고 읽어가던 접수원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서, 서안비가의 비의진…. 공자. 확인되셨소이다.”

       

       청년, 비의진이 접수원의 말에 픽 웃음을 머금었다. 

       접수원이 조심스레 목패를 준비하던 찰나.

       

       “아 참, 그리고 이건 스승님께서 전해달라 하셨던 것이오.”

       

       “예?”

       

       “서찰은 고마우나, 본신이 바빠할 수 없음에 미안하단 말을 전해달라고 또한 하셨소.”

       

       “그게 무슨….”

       

       말과 함께 서찰 하나를 더 건네고.

       접수원이 이를 받아 다시금 펼치는데.

       

       “…허억!!!”

       

       접수원의 표정이 아까 와는 달리 훨씬 경악에 차 몸을 떨기 시작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찰의 주인이 다름 아닌.

       

       “패, 패…패존…!”

       

       정파의 하늘 삼존(三尊)의 한 명.

       무투제일인 패존(敗尊) 비주.

       

       그의 서찰이었기 때문이다.

       

       접수원이 바들바들 떨며 서찰을 보고 있던 찰나, 비의진이 목패를 쓱 잡고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다 전달했으니 이만 가보겠소.”

       

       “자…잠시-!! 비 공자…!”

       

       접수원이 다급히 비의진을 부르지만, 이미 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비무제 접수 이틀 차.

       

       투룡(鬪龍) 비의진이 패존의 서찰과 함께 비무제에 참석을 요구했다.

       

       이는 즉.

       

       투룡이 패존의 직계 제자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남에는 또 다른 소문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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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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