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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8

    <688 – 충격고백(6)>

     

    호수의 기사 란돌프는 금역의 강대한 마력재해에 의해 변질된 마나파동이 중간계 그 자체의 세계보존을 목표로 하는 세계순력과 충돌하여 일종의 공간단층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공간단층이 마치 자신들의 도주를 비웃으며 조롱하듯 뒤에서 가볍게 내던진 지팡이에 공간이 밀려 나가며 박살 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오오, 우리가 진정 세계의 새로운 거악을 마주했도다.”

    “세계에 삼대거악이라 불리던 이들이 이제는 사대거악으로 거듭나겠구나.”

     

    초대 혁명가의 빈자리는 2대 혁명가가 차지했다.

    만신의 대리인과 재단의 이사장은 건재하다.

    여기에 또 하나.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기존 삼대거악의 최악이라 불리는 이사장에 못지않은 심상치 않은 괴물이 탄생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몸소 겪어보니 명백해졌다.

     

    “저것은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괴물이다.”

    “세상에는 마경보다 위험한 존재도 있단 말인가.”

    “호수의 기사 란돌프여. 부디 우리가 나아갈 길을 인도해주십시오.”

     

    란돌프는 가장 마지막까지 오크노디와 대화를 나누었던 호수의 기사.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본국의 유물, <지팡이>를 회수하여 호수의 왕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인들과 사악한 무구, 부정한 힘을 봉인한 호수의 봉인이 풀리기 전에 봉인을 보강한다. 본래 해야 할 사명을 다할 뿐이다.”

     

    목표가 있는 자들은 현실의 역경과 어려움을 잠시 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마경의 깊은 곳에 자리한 값진 보물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변경지역의 가장 깊은 구덩이를 파헤치며 발굴 작업을 이어 나갈 정신력을 지녔다.

    초심을 되찾는 순간, 사명을 완수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란돌프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크노디가 던진 지팡이를 짚기 전까지는.

     

    [호수의 기사여… 왕국의 배신자가 들고 나간 저, 유물 <호수의 에고지팡이>를 찾아주셨군요…]

    “그렇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안타깝게도 저는 그리 강녕치 못합니다… 조금 전, 저를 쥐었던 존재가 지닌 극도로 고순도의 암흑마나가 제 안의 마지막 정화의 힘을 더럽히며 기능을 파괴하였습니다…]

     

    란돌프의 무릎에 힘이 풀렸다.

     

    “그럴 수가. 그럼 본국의 호수에 들끓는 불길한 힘의 봉인이 풀리는 것은…”

    [저의 힘으로 막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호수에는 아직 10년은 더 봉인해야 하는 <전대 마왕군 사천왕>도 남아있단 말입니다!”

    [사명을 이룰 방도를 놓쳤다고 헤매지 마십시오… 길 잃은 어린양의 이정표는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 비친 밤하늘의 별자리에 있습니다…]

    “평정을 잃지 말란 말씀이십니까?”

    [세상에는 힘을 잃은 옛 신들이 있습니다… 호수의 여신 또한 지금은 존재의 힘을 상실하고 쇠락해가는 옛 신… 저희의 마지막 성지가 빛을 잃기 전에 옛 신들의 유해를 모아 호수에 공양하십시오…]

     

    란돌프는 깨달았다. 호수의 기사단에게 사명을 이룰 새로운 방법이 생겼음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옛 신의 유해를 지닌 자. 그런 인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저희에게 그의 토벌을 명하신 겁니까?”

    [여러분에게는 그를 토벌할 시간이 없습니다… 거악과 손을 잡거나 굴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조력을 얻어야만 합니다…]

    “어찌 그런 망언을!”

     

    왕국의 여왕이나 시민들이 듣는다면 기함을 토할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교황과 성녀를 배출한 나라.

    가장 많은 악을 토벌해온 성직자의 고향.

    봉인과 정화의 상징.

    호수의 나라.

    그런 나라를 대표하는 세 개의 유물 중 하나가 거악과 손을 잡으라는 말을 내뱉다니!

     

    “칠대금림에서 머무른 시간이 길어 유물에 깃든 성령께서도 성스러운 의지에 빛이 사라지셨습니다. 영글지 못하고 시든 정의의 싹을 탓하진 않겠습니다. 후인들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그 삿된 말을 입에 담지 말아주십시오.”

     

    지팡이에서 흐르는 목소리에 서글픔이 배였다.

     

    [저를 의심하시는군요… 탐욕의 진창 속에서 백 년을 버티며 영험한 기운을 잃었을지언정, 저의 숭고한 의지는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면 어찌하여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입에 담으셨단 말입니까?”

    [그것은… 저를 쥐었던 악의 결정체가 지닌 기억의 일부가 제 내면의 호수를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엿보았다는 지팡이의 말에 란돌프는 식겁하였다.

    수십의 성을 하루가 멀다고 무너뜨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파멸시켰음을 어린아이 장난처럼 헤픈 웃음과 함께 자랑하는 아이.

    여아의 탈을 쓴 괴물.

    재단의 후계자, 거악이 탄생시킨 새로운 거악.

    악의 결정체와 마주한 것만으로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그에게 그녀의 ‘내면’마저 엿보았다는 성령의 말은 공포로만 다가왔다.

     

    “대체 당신께서는 무엇을 보았기에 다른 거악과의 결탁과 굴복마저 감내하란 말이십니까?”

    [그것은… 셀 수 없이 많은 파멸의 가능성입니다… 언더월드의 가장 깊은 어둠에서 올라오는 죽음, 산을 무너뜨리며 일어서는 거인, 만월과 함께 찾아오는 영원한 밤…]

    “!!!”

    [세계 단위의 거대한 마력재해 앞에서 세계순력이 힘을 다하고 세계가 무너질 것이니, 그 여파는 칠대마경의 금역으로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호수에 깃든 마를 봉인하는 것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세계는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마경을 침략한 새로운 거악의 뜻 또한 세계영역의 발현을 위한 마경의 지배에 있을 터… 그녀의 걸음이 금역에 머무르는 동안이 저희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기회입니다…]

     

    란돌프는 성령의 뜻을 의심했던 자신에게 반성하며 다짐했다.

     

    “당신이 인도하는 빛을 따르겠습니다.”

     

    만신의 대리인.

    삼대거악의 가장 비밀스러운 일축을 향해 호수의 기사 란돌프가 추적을 개시하니, 오크노디의 <대적자>의 가능성을 지닌 작은 씨앗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 * *

     

     

    칠대마경의 금역.

    고립무원의 마경.

    제 1 계층 <변방지대>를 넘어서자, 발굴흔적이 남은 진창들이나 그 속에 난잡하게 늘어선 보물들 대신, 번듯한 황금빛의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설명충으로 전직해서 환심을 사려는 악천군 곽조가 이를 보고는 냉큼 재잘재잘 지식을 뽐내었다.

     

    “이곳은 먼 옛날 실존하였던 <황금의 도시> 아발론입니다. 고위계 상인클래스이자 한 도시의 주인이었던 아발론의 이름을 본뜬 도시이기도 하지요.”

    “우왕, 똑똑하다!”

    “아발론은 마력재해를 일으키며 이곳 고립무원의 마경을 탄생시킨 주범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중심으로 향할수록 필시 고가치 물질이 더 잦은 빈도로 발견되고, 이를 얻는 난이도나 위험성, 머무르는 행위만으로도 소모되는 금화의 양이 많이 증가하겠죠.”

     

    게임 설정의 일부는 고정요소로 이어지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몇몇 설정은 랜덤요소로 변한다.

    금역의 비화쯤 되면 고정요소로 삼아질 법도 하지만, 의외로 이건 회차마다 몇 개의 각기 다른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벤트 던전의 비화야 사실 스토리충이 아니고서야 아무래도 상관없기는 하지!’

     

    스토리가 다르면 업적이 다른 걸 주냐 하면 도시의 기능이 똑같으면 막상 그렇지도 않다.

    이름만 다른 클론무장처럼 똑같은 옛 도시에 재해유발자인데 알게 뭐람?

    오히려 고정요소는 방금 날려 보낸 <너무 똑똑한 지팡이>처럼 희귀한 유물이다.

     

    ‘드랍테이블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매번 바뀌면 정신 사납고 귀찮긴 하지!’

     

    문제는 지팡이의 성능에 있다.

    가지고 다니면 성검의 효능을 유사하게 흉내 내는 성직자나 성녀가 착용하는 신성계열 아이템인데, 장착하면 은근 성가신 부작용이 생긴다.

    이상하게 지팡이를 든 사람이 자꾸만 사기가 떨어지고 위험한 짓을 하다가 덜컥 죽어버리는 것!

     

    ‘뉴비가 쓰기엔 조금 위험한 물건이지만 호수의 왕국에서 나온 기사한테 줬으니 뒤탈은 없겠지!’

     

    호수의 왕국은 회수한 성물을 그대로 지들 나라 호수에다가 퐁당 던진다.

    이는 호수에 봉인한 사악한 존재들의 봉인술식에 힘을 보태기 위함이다.

    지팡이 때문에 억까당하는 존재도 자연스럽게 없어지니 아이템의 올바른 사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크프린세스께서는 혹시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고립무원의 마경에서 아이템과 기능을 모두 빼앗기고도 탈출하지 못한 존재들은 도시의 <아이템>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를.”

    “아저씨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쁜 놈들은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마련입니다. 의도적으로 성가신 상대의 탈출을 방해하고 <아이템화> 시켜서 수급하는 조직이 있다는 소문이 은근 있습니다.”

    “헉 정말요?”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다크프린세스 님만큼은 아니어도 저희 악인들의 세계도 만만치…”

    “으앙, 이럴 줄 알았으면 여태껏 담갔던 애들 다 여기로 데려올걸!”

    “?!”

     

    아카데미에 이따금 들이닥치는 경험치도 안 되는 허접 암살자들을 템으로 바꿔서 득템했으면 돈으로 바꿔서 파는 재미가 쏠쏠하기라도 했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니 곽조가 한결 다소곳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거악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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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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