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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88

        

         

       시선.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단순히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인공위성을 관찰하는 시선도 아니다.

       명확하게 그를 인지하고 바라보는 시선이다.

         

       ‘누구이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 그가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이런 시선을 보낸단 말인가.

       그의 존재는 어떻게 알았으며, 그가 이 인공위성이 있는 것은 어찌 알았기에 이러한 시선을 보낸단 말인가.

         

       심지어 무기질적인 것도 아니다.

       차라리 기계라면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 중국 등의 나라가 자신을 찾아냈구나 납득이라도 하련만.

       아무리 느껴봐도 이것은 생물이다.

       생물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부좌를 풀고 천천히 다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벽 한쪽에 걸려있는 낡아빠진 보호복을 착용하고, 벽면에 자력으로 고정해둔 검을 들었다.

         

       치이이익-

         

       그리곤 복잡하면서도 투박한 개폐장치를 열고, 인공위성 바깥으로 나왔다.

         

       —.

         

       밖으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고요함.

       온갖 기계장치들이 바삐 돌아가기에 필연적으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인공위성의 내부.

       하지만 밖은 다르다.

       이 고요의 바다는, 소리가 전달될 매질마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별과 별의 사이에는 그조차도 인지할 수 없는 자그마한 물질들과 암흑물질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을 뿐이었으니까.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그는 고요함을 느낀다.

       다만 그 고요함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느끼던 것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라서.

       고향의 혹독한 날씨와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의 손짓이 절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새까맣고 끝이 없는.

       한없이 거대하고 강인해 보였던.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손을 휘두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떠오른다.

       숨만 쉬어도 폐에 고통이 느껴지던 차가운 겨울날.

       술에 한껏 취해있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그러고는 벌이라면서 그를 바깥으로 집어 던졌었지.

       그때의 고통이란.

       화상과 동상을 동시에 느끼는 그때의 고통이란.

       시끄럽다며 맞지 않기 위해 울음을 꾹 참고 소리를 죽이며 새하얀 설원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 기억은.

         

       지금의 고통이 그와 같다.

       살갗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정말로 그때와 같다.

         

       ‘과거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육체가 뒤바뀌고 이 고요의 바다 속에서도 맨몸으로 헤엄칠 수 있는 몸이 되었건만.

       아.

       과거의 기억은 끈질기게도 그를 쫓아온다.

       신발 바닥에 들러붙은 진흙이 그렇듯이, 그에게서 도무지 떨어지려 하지를 않는다.

       다만 술에 취해 추위와 나쁜 기억 전부를 잊는 것은 하고 싶지 않으니.

         

       그저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이 환상통을 감내하며, 그는 이 고요의 바다를 담담히 유영한다. 인공위성과 연결된 케이블 하나를 구명줄로 삼은 채, 그는 꼿꼿하게 선 채 이곳을 떠다닌다….

         

       천천히.

         

       바다에 꽂을 압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삐죽 튀어나온 검을 움직인다.

         

       텅스텐으로 만든 검.

       사슬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몸이 될 적 가져왔던 텅스텐 막대기를 두들겨서 만든 검.

       다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오직 그만의 물건.

         

       ‘나의 것. 나만의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날이 제대로 서 있지도 않은 검.

       극단적으로 말해서 조금 납작한 금속 막대에 지나지 않는 검.

         

       하지만 텅스텐이라는 재질이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이 검에 묻어있는 사연이 이 금속 막대에 가치를 부여한다.

         

       검이여, 닻이여.

       비어있는 듯 보이나 꽉 차 있는 이곳.

       물 대신 암흑물질이 흐르는 이 공간을.

         

       ‘그러니 죽어라.’

         

       자르라.

         

         

         

        * * *

         

         

         

         

         

       허공(虛空)을 가르는 한 줄기의 선.

       무겁고 무거운 금속 재질이 자아내는 은색의 선.

       멀리서 보기에는 사람은 너무나 미약해서, 그렇기에 그 존재가 그어내는 선조차도 점처럼 보이게 만든다.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크기는 작아져, 종국에는 먼지가 허공을 부유하는 것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듯 그저 잠깐 존재했다는 것도 각인시키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다.

         

       우주라는 그런 것이다.

       거리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다.

       멀다.

         

       그 모든 것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존재하는 개념.

         

       그렇다면 그 비교조차도 힘들다면.

       머릿속으로는 알고는 있지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면.

       그렇다면 이 상대적인 개념에는 의미가 있는가?

       이 압도적인 둘의 차이에서 본질은 변질하고 사그라지지 않을 수 있는가?

         

       그 해답이 이곳에 있다.

         

       은색.

       은색의 선 하나.

         

       저 먼 곳에서 그은 획 하나가 바로 그 대답이다.

         

       스아악.

         

       소리.

       허공을 찢어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날카로운 바늘이 바다를 유영할 때 나는 것처럼 조용하고, 빠르고, 치명적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퍼어어엉-!

         

       그 소리는 마침내 목표에 닿는다.

         

       ‘터졌군.’

         

       허공을 가르는 소리.

       먼지로 그려낸 것 같은 은색의 얇디얇은 선 하나.

         

       그 선이 열기구를 관통하였고, 열기구는 터졌다.

         

       퍼어엉-!

         

       선 하나에 열기구 하나.

       은색 티끌이 레이저처럼 쏘아지면 열기구 하나가 터진다.

       은색 티끌이 유성처럼 꼬리를 만들며 지나가면 열기구가 터진다.

         

       퍼어엉-!

         

       그렇게 열기구가 터지고.

       모든 ‘눈’이 사라진다.

         

       불꽃이 되고팠던 눈은 그렇게 바늘에 찔려서 전부 터져버린다….

         

       “여신이시여. 바다의 딸이여. 가엾이 여기시어 나를 주시하소서. 용맹함에 눈독을 들이되 손을 뻗지는 아니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되 그것이 지나치게는 하지 말아주소서. 다만 잠이 들 적에는 요람을 흔드사.”

         

       불꽃과 함께 추락하는 열기구들.

       불의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그 풍경 속에서.

       주술사는 주언을 외운다.

         

       “꿈에서나마 깊은 바다에서 곁에 있게 하소서.”

         

       그가 안배해둔 것들이 주언에 호응하고, 각자의 의미를 뿜어내며 역할을 다한다.

       떨어지는 불꽃의 비는 흩날렸다가 부서지는 파도가 되었고, 불똥은 산산이 흩어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물방울로 변해간다. 새까만 어둠은 하늘의 별 무리와 어우러져 그를 감싸는 포근한 이불이 되었고,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흔들흔들 움직이는 피안화는 파도가 되었다.

         

       보아라.

       흔들흔들.

         

       새빨간 피안화가 잘도 춤을 춘다.

       눕혀졌다가 일어섰다가.

       좌에서 우로 춤을 잘도 춘다.

         

       불꽃의 파도가 일어난다.

       어둠의 장막에 가려진 채, 제 위에서 노는 사람들을 태운 채 흔들흔들 움직인다.

       하늘의 열기구도 놀이의 일부로 여기게 만들고.

       다만 그 위험을 입에 담지는 아니하고, 신경도 쓰지 아니하며.

       조용히 사람을 삼키는 바다처럼 그렇게 꽃은 흉내를 낸다.

         

       불꽃이 되기를 갈망했던 눈들은 온데간데없이.

       그렇게 바다가 되어버린 피안화는 파도를 철썩철썩.

         

       신나게도 추는구나.

         

       그리고 그 파도 속에 사람 하나가 서있나니.

       어둠을 덮고 흔들흔들.

       떨어지는 불꽃을 경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서 있는 용맹한 자가 있다.

         

       용맹한 자야, 젊은 자야.

       바다는 그 담대함을 사랑하고 있으니.

         

       리코리스.

       바다의 딸이 그대를 눈독들였다.

         

       갈래갈래 퍼지는 손을 움직여 손가락을 쫙 펴고.

       출렁이며 몸을 사뿐하게 감싸 안으니.

         

       뱃사람아, 뱃사람아.

       너는 바다의 딸에게 간택되었느니라.

       다만 순결을 지켜라, 다만 순결을 지켜라.

         

       바다는 한 번 잡은 이를 쉽게 놔주지 않느니라.

         

       “손으로 쥐고, 눈으로 바라보니.”

         

       그렇기에 내려보지 말고 올려다보라.

       바다에는 별로 조각된 수많은 눈이 있으니까.

         

       “보소서. 저렇게 하늘의 눈이 많습니다.”

         

       박진성의 주언이 울려 퍼진다.

       피안화로 만들어진 밧줄이 촉수처럼 춤을 추고, 이윽고 채찍으로 내려치는 것처럼 땅을 후려친다.

         

       출렁.

         

       그렇게 후려친 채찍은 충격을 고스란히 땅으로 옮긴다.

       흙을 물처럼 움직이게 만들고, 땅속에서부터 뒤집어엎기라도 하는 것처럼 울룩불룩 튀어나오게 만들며 물결치게 만든다.

       피안화.

       불꽃의 파도와 함께 어우러지며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파도로 변화하고, 곳곳에 흉터 자국과 같은 흔적을 남기며 그렇게 농장 전체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바다가 눈을 뜬다.

         

       피안화와 흙, 비어있는 공간으로 빚어낸 눈.

       땅에 새겨진, 하지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피안화를 뭉쳐서 만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는 하늘을 바라본다.

       바다가 별을 담기 위하여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처럼.

       그것은 하늘을, 하늘 너머의 공간을.

       우주에 유영하고 있을 한 명의 무인을 응시한다.

         

       그 시선은 수없이 많아서.

       그렇기에 자신을 인지하는 시선을 거슬려 하는 그 무인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라서.

         

       그리하여 그 무인을 직접 움직이게 만든다.

         

       —–.

         

       느껴진다.

         

       별의 바다를 걷는 자의 기척이.

       땅이 없음에도 그는 달리기라도 하려는 듯 다리를 움직이고, 한 번 허공을 박찰 때마다 공간을 줄여나간다.

         

       공간을 뛰어넘으며 궤적이 끊기고, 끊기고, 끊기고.

       은색 검을 들고 질주하는 무인은 점선을 그린다.

         

       그리고.

         

       “…왔군.”

         

       공간의 깨달음을 얻은 자.

       미래에 가장 유명해질 무인.

       나중에는 재앙이라고까지 불리게 되는 존재.

         

       그가 마침내 도착했다.

         

       그가.

       지구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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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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