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89

        

       화아아아아악-!

         

       지구에 진입하자 느껴지는 저항.

       보이지 않는 장벽이 지구로 진입하려 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것이 설령 지구에서 나고 자라났다가 돌아오는 그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 장벽에 예외는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찬란하고 아름답고 포근한.

       그만큼 제 것을 소중히 여기기에 외부의 것을 거부하는 푸르른 별.

       지구여, 지구여.

       나를 받아주오.

         

       화아아악-!

         

       자세를 바꾼다.

       허공답보와 염력으로 각도를 조정하고, 다리를 창으로 삼아 저항을 뚫는다.

       다리의 끝 쪽은 최대한 가늘게.

       다리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서서히 부풀어 유선형의 형태가 되도록.

       팔은 가슴 앞에 X자로 교체하고 어깨 부근을 부풀린다.

       그리고 어깨에 새로 생긴 코어(Core)를 회전, 기(氣)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도록 해서 추진력을 더한다.

         

       화아아아악-!

         

       그렇게 진입.

       대기권을 손쉽게 진입한다.

       한없이 적어진 공기의 저항을 느끼며.

       호신강기와 환골탈태로 바뀐 신체로 흐르는, 뜨겁지만 따스하게까지 느껴지는 공기를 맛보며.

         

       후우우우웅-!

         

       속도는 대략 초속 8km.

       우주왕복선의 그것과 같다.

         

       온도는 약 1500에서 2000도쯤 될까?

       뜨거워진 공기는 마치 그가 운석이 되어버리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여기서 더 가속한다면 네 자릿수가 아닌 다섯 자릿수 온도까지 치솟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문제는 없겠지.

       다만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뜨거움.

       그것은 어릴 적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니까.

       뜨거운 물이 끼얹어졌을 적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터엉-!

         

       터엉-!

         

       터엉-!

         

       자세를 바꾸고, 공간을 도약한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크기를 조종한다.

       손가락 끝은 바늘처럼, 어깨 부근은 부풀게.

       그리하여 머리를 원뿔 형태로 보호하는 형태로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다리는 쭉 뻗되 언제든 팽창시킬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리고, 공간을 박찬다.

         

       터엉-!

         

       공기를 터뜨리며 한 발.

         

       터엉-!

         

       허공을 밟으며 또 한 발.

         

       한 번 박찰 때마다 수십 미터가 삭제된다.

       과정이 없이 원인과 결과만이 나타나고, 일직선을 그리던 운석은 점선을 그린다.

         

       그렇게 속도를 줄여간다.

       공간을 박차며.

       다리를 부풀려 저항을 약간이나마 만들며.

         

       몸을 둥글게 말고는, 회전시킨다.

       다시 다리부터 땅에 닿을 수 있도록, 그렇게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콰아아앙-!

         

       맨몸으로 그대로 낙하한다.

       이 정도 충격은 충분히 버틸 수 있기에.

         

       강력한 호신강기는 충격과 그 여파에서 신체를 보호한다.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오는 것들은 환골탈태로 바뀐 신체가 해소한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바닥에 착지하면서 터져 나온 그 충격.

       그 충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신체를 순환하고, 폭발하는 추진력이 되어 그의 팔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것은 에너지.

         

       그의 경지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에너지다.

         

       검을 잡고.

         

       하나.

       둘.

         

       세상이.

       잘린다.

         

         

         

        * * *

         

         

         

       소리조차 나지 않는 휘두르기.

       시작점과 끝부분만이 존재하는 하나의 선.

       원인과 결과는 있지만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 횡.

         

       텅스텐으로 만든 검조차 그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잘린 공간 역시 제 몸을 유지하기 힘든지 그 선을 공백으로 남기려 든다.

       공간을 자르는 공백.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이 얇디얇은 선은, 하지만 동시에 굵디굵은 선은 이 순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세상과 괴리된 단절.

         

       그렇게 공간은 분리되고.

         

       서걱.

         

       감히 우주를 엿보려 한 여신의 눈이 잘려 나간다.

       꽃 뭉치들은 그대로 동강이 나고, 땅거죽은 포를 뜨는 것처럼 얇게 썰려 위로 뜬다.

       그렇게 꽃들은, 남자의 주위에 있는 꽃들은 이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휘두름 하나로.

       휘두름 한 번으로 땅을 포를 뜨고, 뿌리를 죄다 잘라버리는 신과 같은 솜씨의 검술 하나로.

         

       하지만 그 검술의 힘은 너무나 넘치는 것이라서.

       낙하했을 때의 에너지를 그대로 품고 있는 것이라서.

       그래서 그것은 꽃에 그치지 않고, 정원에 그치지 않고, 땅의 위쪽에 있는 사람들의 몸마저 간단하게 수확하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몸은 반절로 잘린다.

         

       “세상의 시작점에는 수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어 위와 아래가 없고, 다르고 같음이 없었고, 밝고 어두움이 없었느니라.”

         

       횡으로.

         

       가볍게.

         

       잘린다.

         

       “그러던 중 불꽃이 하나 피어나 세상을 밝히며 타오르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세상의 시작이니라. 그리하여 불꽃의 따스함이 퍼져나가 생명이 태동하기 시작하였으니, 가장 먼저 창조된 것이 풀과 벌레인지라. 그리하여 풀벌레가 날아다니고 식물이 번성하며 짐승이 탄생하기 시작하였으니 그중 으뜸이 인간이로다.”

         

       서걱.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사람들의 몸에 선이 그어지고,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철퍼덕하는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사람들이 널브러지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이들이 속출한다.

         

       “불꽃은 시작이요 모든 것의 요람이니, 의심하는 자들은 이것을 보아라.”

         

       제 몸이 잘린 것도 인지 못 하는 몸뚱이는 우뚝.

       횡으로 잘려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하체들은 꼿꼿이 서 있다.

       상체가 바닥에 널브러지고 경악에 찬 표정으로 허우적대고 있음에도, 하체는 피 한 방울 내지 않고 그렇게 서 있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정원은 한순간 정적에 빠진다.

       마치 무덤가처럼.

       혹은 피안화가 흐드러지게 핀, 저승의 입구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불꽃에서 벌레가 탄생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 순간 몸이 반토막이 나버린 주술사 하나가 입을 열어 주언을 내뱉으니.

         

       아.

       보아라.

         

       피안화는 불꽃이 되고.

       그 불꽃에 감응하여 잘린 몸들도 태초로 회귀하고자 하는구나.

         

       그리하여 불꽃이 된 몸들은 피어나고, 흩어지며 형상을 만드니.

         

       저것이 바로 벌레이며.

       태초에 불꽃이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로다.

         

       불신자여,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여.

       보아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것이라는 증명이다.

         

         

         

        * * *

         

         

         

       파도가 일어난다.

       일찍이 꽃이었던, 하지만 이제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꽃으로 만들어진 파도가.

       얇게 포가 뜨인 땅은 손쉽게 출렁이고, 잘린 사람들-아니, 사람인 척하고 있던 인형들이 양초처럼 활활 타오르며 횃불이 된다.

         

       불꽃의 파도.

       인형을 재료로 삼아 타오르는 횃불.

         

       이 몽환적인.

       기괴하기까지 한 풍경은 이 광경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다.

         

       “주술사…?”

         

       주술사.

       그것도 꽤 강력한 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술사가 이 판을 만들었음을.

         

       남자는 이 불꽃의 파도 속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함정이냐?”

         

       빨갛게 달아오른 텅스텐 검을 쥐고, 기를 폭력적으로 순환시키며.

       팔과 다리를 부풀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며 남자는 불꽃의 바다를 만든 주술사에게 묻는다.

         

       “주술사여. 소비에트 시절의 일을 복수하러 왔는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래전의 은원(恩怨).

       그가 몸을 담았던 국가가 행했던 탄압.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이 행했던 주술사 탄압의 역사.

         

       “그 시절의 탄압을, 폭거를, 폭압을. 보복하기 위하여 나를 부른 것이냐?”

         

       옛적 소비에트는 종교와 미신을 배척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주술은 인민을 현혹하는 미신이자 그들이 타파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였으며, 동시에 부르주아 계급에 빌붙어 무산계급의 피를 빨아먹고 자란 사악한 존재였다.

         

       민중과 친하게 지낸 주술사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현혹하는 미신적 존재로.

       권력자와 친하게 지낸 주술사는 무찔러야 할 부르주아 계급의 애완동물로.

         

       주술사는 물리쳐야 할 적으로 규정되었다.

       이 거대한 광기에서 개인에 불과한 주술사는 그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맞이한 미래는 두 가지.

         

       죽거나.

       내쫓기거나.

         

       지주 계급에도 허용되었던 자기비판 후의 전향 기회도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고, 오직 주술사는 죽거나 도망치는 두 가지의 선택만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탄압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는 주술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마음을 달리 먹어서 주술사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대대적인 프로파간다를 통해 주술사에 대한 인민들의 인식을 바꾸었으며, 주술사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아예 주술의 맥이 끊겨버리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한은 깊고 깊은 법.

       돌에 새긴 것보다도 오래 가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원한이다.

       특히나 탄압당하고 목적을 이루는 것이 방해받은 주술사의 원한은 끔찍한 수준이었으니….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은 모르지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주술사들은 원한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이며 보복하거나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소비에트가 약해졌을 때를 노려,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주술사의 탄압에 찬성한 자들이 하나둘씩 죽는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주술 의식을 망친 인민들의 마을에 재앙이 닥친다.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와 함께 해충이 창궐하고, 가축이 죽고, 농작물이 시든다.

       물고기가 죽어서 배를 까뒤집고 둥둥 떠오르고, 동물들이 눈이 뒤집혀 사람들을 습격한다.

       튼튼하게 지어졌어야 할 건물이 손쉽게 무너지고, 지반이 물러져 아파트가 기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움직인 능력자들이 죽어 나간다.

         

       무인이 죽고.

       마법사가 죽고.

       그렇게 하나둘.

       원한의 고리가 끊겨 나간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주술사들의 손에 의하여.

         

       그리고 마침내.

       주술사를 탄압하게 시킨 스탈린, 그리고 그 씨앗을 심었던 레닌의 무덤이 훼손된다.

       죽어서도 편히 지낼 수 없도록, 끔찍하고 사악한 저주와 강령주술이 동원된다.

       모독적인 상징이 사방에 걸리고, 그들이 묻힌 땅은 오염된다.

       그들의 영혼마저 오염시키려는 듯….

         

       그렇게 주술사들의 복수는 완성되었다.

         

       조용하고 잔혹하게.

         

       하지만 완벽이란 것은 없는 법.

       그 주술사들은 복수가 완성되었음에도 끝을 내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미처 행하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원한이 나타나면 바로 손을 써야 했으니까.

         

       그래.

       예를 들자면….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특정 시설물’을 부수는 데 이바지를 했으며.

       그 공로와 충성심을 인정받아 ‘소비에트 유인 우주 계획’에 참가하게 된 이 무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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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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