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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생각해보자.

       

       에레보스는 자신의 턱 아래에 있는 비늘을, 내가 빌려준 비늘을 반으로 쪼개는 것으로 마력의 폭발을 만들어 냈고 그 폭발로 생긴 빈틈을 틈타 도망쳤다.

       

       나의 육체는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정도로 강건하고 단단한 육체인데, 그런 나에게 아픔을 느끼게 할 정도의 폭발을 에레보스가 일으켰다는 이야기.

       

       내가 그렇게 아플 정도의 폭발이라면…. 턱 아래에서 폭발을 일으킨 에레보스에게는 어떻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존재에게 통증을 느낄 정도의 자폭을 터트린 에레보스는 어떻겠는가?

       

       자세히는 몰라도 무사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몰골이 되어버리다니…. 쯧쯧.”

       

       

       나는 어둠으로 만들어진 낚시바늘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는 작은 어둠의 조각을 보며 혀를 찼다.

       

       조금의 말조차 하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미약한 움직임만을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어둠의 조각.

       

       고작 이런 꼴이 되려고 그렇게 도망을 친 것인지. 나는 안타까움을 느낄 따름이었다.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어!! 라고 하는듯한 느낌으로 비늘까지 터트려가며 도망을 갔으면 좀 멀쩡한 모습으로 지내던가! 이게 뭐야! 너무 하찮아졌잖아!!

       

       나는 걸려있는 낚싯바늘조차 빼내지 못한 채 꿈틀거리고 있는 어둠의 조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상태로 내버려 둘 순 없겠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작은 어둠의 조각에게 조금씩 마력을 흘려넣었고, 그러자 어둠의 조각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마력을 삼키며 조금씩 크기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급한 불은 끈 것 같지만. 흐음.

       

       일단 이 조각에게서 기억을 읽어볼까?

       

       그동안 에레보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니까 말이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인지가 궁금하고.

       

       이런 작은 조각에 기억이라는게 남아있는지도 의문스럽긴 하지만…. 뭐, 살펴봐서 손해볼 것은 없을테니까.

       

       

       – – – – – – – – – – – – – – – – – – – –

       

       

       잠깐 기억을 살펴 본 결과.

       

       건질만한 내용은 아주 조금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 조각에 남아있는 기억의 시작은 내 비늘을 쪼개는 것으로 만들어낸 강력한 자폭의 충격과, 긴급한 순간이동으로 인해 생겨난 반동으로 인해 에레보스가 스스로의 육체마저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로 인해 에레보스의 본질인 영원한 어둠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지게 되고, 영원한 어둠을 담고 있는 조각들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상당수는 흩어져 도망가고, 나머지는 서로를 집어삼키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조각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쪼개진 은색의 비늘을 품고 있는 커다란 두개의 조각과, 홀로 외롭게 남아있는 작은 조각 뿐.

       

       다른 조각들이 제멋대로 날뛰며 서로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이 조각만큼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에레보스라는 존재의 핵심이자 본질이 담겨있었던 조각. 지금은 작은 어둠만이 남아있는 조각.

       

       내가 기억을 읽어보고 있었던 조각이었다.

       

       아마도, 다른 조각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조각을 삼키게 되면, 에레보스라는 존재의 이름을 이어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된다면…. 나의 추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다른 조각들은 이 작은 어둠의 조각을 방치한채, 어디론가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이 작은 어둠의 조각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깊은 땅 속에서 홀로 조용히,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드리운 낚싯바늘이 에레보스의 존재를 추적하여 이 어둠의 조각을 낚아채기 전까지.

       

       

       – – – – – – – – – – – – – – – – – – – –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이렇게 작아진 상태에서 벌을 주거나 하면…. 잘못하면 그대로 소멸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다곤 하지만…. 소멸시키고 싶진 않은데.

       

       그냥 좀…. 적당히 세계의 끝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저승에서 일을 시킬 생각이었는데. 다른 애들처럼 3교대 같은건 없이 휴일 없이 계속 일을 시킬 생각이었는데.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하겠지. 음….

       

       나는 내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에레보스였던 작은 어둠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이런 꼬라지가 되어버렸어도, 그런 짓을 저질렀어도, 소멸시키는 것은 안되겠지.

       

       좀 더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지 않고 소멸하는건 도망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니까. 음. 대충 그런거니까.

       

       벌을 주는건…. 다른 조각들을 모두 모은 후에나 하도록 하자. 그게 좋겠어.

       

       하지만 저 조각들을 어떻게 모아야 할까? 모두 제멋대로 흩어졌는데.

       

       차라리 큰 덩어리 하나나 둘 정도로만 나뉘었으면 어떻게든 찾아서 두들겨팬 후 모아보겠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흩어진 상태인데….

       

       일단 다른 조각들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지금은 이 작은 조각부터 신경을 쓰자. 이대로 뒀다가는 흩어져버릴 수 있을테니까. 보석 같은 것에 봉인해두는게 좋겠지.

       

       나는 에레보스의 조각을 손 위에 올려둔 후, 주변을 감싸는 모양으로 보석을 창조했다.

       

       만들어지는 보석은 가장 단단한 보석. 다이아몬드. 만들어지는 모양은 다이아몬드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위쪽에서 보았을때 원형으로 보이는 형태. 이른바 라운드 브릴리언트컷.

       

       그 속에 어둠의 조각이 들어가도록 감싼 후, 마력을 밀어넣어 그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도록 견고한 형태로 만든다. 그리하여 물리적으로는 절대 파괴되지 않는 다이아몬드가 완성된다.

       

       거기에 접촉한 어둠의 조각을 흡수해 힘을 복원할 수 있도록. 봉인해둔 어둠의 조각이 다른 조각을 집어삼키며 성장할 수 있도록. 외부의 마력이나 어둠의 기운 같은 힘을 보석 안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기능을 짜맞춘다.

       

       마력이나 어둠의 기운 같은 것을 흡수하고,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도록…. 아, 아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보석 내부의 힘을 꺼내는 문을 준비해두자. 내부에서는 절대 열지 못하는 문을. 외부에서는 꺼낼 수 있도록.

       

       그렇게 언젠가, 에레보스의 조각이 모여 그 아이의 자의식이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내가 봉인을 해제해주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도록 안배도 해두고.

       

       그리고 무척이나 중요하니까, 혹여 잃어버리더라도 그 위치를 쫓을 수 있도록 위치 추적 기능까지 넣어두도록 하자.

       

       그렇게 완성된 다이아몬드는 마력에 의해 변질되었는지, 아니면 안에 들어있는 어둠의 조각 때문인지, 새까만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게 그 블랙 다이아몬드인가 뭔가 하는건가? 뭔가 멋진 느낌이네.

       

       나는 엄지와 검지로 다이아몬드를 집어들고 햇볕에 이리저리 비춰보며 살펴보았다.

       

       봉인은 큰 문제 없이 잘 되었는지, 어둠의 조각은 보석 안에서 자리잡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보석 안으로 마력을 밀어넣었고, 보석 안으로 빨려들어간 마력은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작은 어둠의 조각에게 스며들어 흡수되었다.

       

       음. 좋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없이 가능하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건 잘 제어되는 느낌이다.

       

       내부의 힘을 원하는대로 꺼낼 순 있지만, 내부에서는 마음대로 나오지 못하는 감옥과도 같은 보석.

       

       이거라면 에레보스였던 조각이 소멸하거나 하는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언젠가, 흩어진 이 바보녀석의 조각이 모두 모인다면…. 그때 제대로 벌을 주리라.

       

       두번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고 싶을 정도의 벌을 말이야.

       

       

       – – – – – – – – – – – – – – – – – – – –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날 이후로 이 세상에 기묘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슬라임을 제외하고는 지구에서의 생물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생물들이, 기묘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좀 더 강하게, 좀 더 거칠게, 좀 더 사납게.

       

       덩치가 커지거나 기존에 없던 신체기관이 생겨나는 것은 예사고, 마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는지 온 몸에서 불을 뿜는 멧돼지나, 발톱과 이빨에 전기가 흐르는 늑대 같은 것도 나타났으니.

       

       오죽하면 겁이 많던 토끼들도 머리에 뾰족한 뿔이 돋아나 박치기로 작은 나무에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모든 동물들이 흉포해진 것은 아니지만…. 머리에 뿔이 달린 말 같은 경우에는 공중을 밟고 뛰어오르거나 안개를 만들어내 스스로를 감추며 예전처럼 초식동물의 삶을 살아갔으니.

       

       그렇게 변화한 짐승들 중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드래곤이 되지 못한 공룡들이었다.

       

       와이번, 드레이크, 시 서펀트 등. 드래곤이 되지 못한 공룡. 이른바 래서 드래곤이라 불리우는 녀석들은 공룡보다 발전된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래서 드래곤들도 그 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흉포해지더니 마력을 활용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와이번이 입에서 불을 뿜고, 드레이크가 땅을 솟구치게 하며, 시 서펀트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등. 무척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음…. 이 놈들을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할까? 아직은 인간들이 많이 약해서 저 와이번 한마리가 도시에 뛰어들면 도시가 그대로 몰살당할텐데….

       

       역시 최저한의 방비는 해둬야겠지. 나중에 생명신전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서 인간의 마을을 지키는 결계를 치도록 하자.

       

       하는 김에 흉포해진 짐승들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아, 참고로 이런 변화는 짐승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 중에서도, 본능적으로 마력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마력을 변화시켜 손에서 불을 뿜고, 빛덩어리로 이루어진 화살을 쏘아내거나, 염동력으로 다른 물건을 띄워올리는 새로운 능력의 인간들.

       

       그런 이들의 힘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경악하며, 배척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리라.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감춘 채 살아가거나, 비슷한 능력을 지닌 이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능력에 다루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갔으니.

       

       

       이 세계에 몬스터라는 존재와, 마법사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Melalo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는 언제까지 3코인 연타가 계속되는 것인가…!!!

    (반응이 없다. 평범한 시체인듯 하다.)

    (새벽에 올리는데, 계속 노벨피아 서버가 터져대서 분노한 모양이다.)

    (표지를 바꿔본 모양이다. 수십장 정도 뽑아서 마음에 든 것을 골라냈지만, 어째 손이 멀쩡한게 없어서 슬픈듯 하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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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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