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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비녀를 입에 물고 머리를 매만졌다.

       

       먼 기억의 과거일 지라도 한 번 몸에 새겨진 것은 쉬이 잊혀지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러모로 헤매었으나 얼마 안 가 손이 과거의 길을 기억해 따라가기 시작했다.

       

       머리를 모으고, 빙빙 돌려, 비녀로 고정시키는 간단한 절차.

       

       이제와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한다만 이걸 막 배울 적에는 빙궁의 아해에게 잔소리를 안 듣는 날이 없었다.

       

       무공에 관해서라면 천부적인 사람이 왜 이런 건 알려 줘도 못하냐면서.

       

       꽤 억울했었다. 무의 이치를 따르는 것과 단순히 꾸미기 위한 행동이 어찌 같단 말이더냐.

       

       손으로 툭툭 매만져 잘 되었나 확인을 한 후 거울을 앞에다 띄웠다.

       

       심드렁한 눈매도 무심한 눈동자도 그대로였으나 머리가 긴 것만으로도 인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유하게 보이는 구나.

       

       “모두 다 묶는 게 아니라 반만 묶어서 고정시키는 식이네요?”

       “나에게 머리 묶는 법을 알려준 녀석이 말하길 이게 본인에게 더 잘 어울린다 하더구나.”

       

       뒤에서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있는 편이 무공을 펼칠 때에 더 멋있다나 뭐라나.

       

       본인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불편하다 여겼으나 당시의 나는 그 녀석의 놀잇감을 자처하던 중이었기에 내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목이 좋으시네요!”

       “그럴 것이다. 이런 데에 한해선 한없이 까탈스러웠으니.”

       

       이 머리 모양을 정할 때까지 몇 번이나 비녀를 뺐다 꽂았다를 반복했는지.

       

       “그래서 어떠냐. 어울리느냐?”

       “네! 입만 다물고 계시면 정말 미소녀 같아요!”

       “무어냐. 내 말하는 것이 어떻다고.”

       “솔직히 말해서 좀 늙은이 같잖아요.”

       “그게 문제라도 되느냐.”

       

       늙은이가 늙은이다운 말투를 하는 것이 무어가 잘못된 일이라 그러는 것이야.

       

       본인이 하린이 그러는 것처럼 밝은 어투를 사용한다 생각을 해보거라. 징그럽지 않느냐.

       

       그러니 본인은 이 말투를 바꿀 생각이 없다.

       

       내 투덜거림을 들은 엔리는 자그마하게 웃음을 흘리더니 기지개를 켰다.

       

       “일단 오늘은 이걸로 끝내죠! 나머진 VR캡슐이 오고 나서 생각을 해보자구요.”

       “그래. 그러자꾸나.”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사주도록 하마.

       

       “맞다. 아라 씨. 첫 방송에서 할 게임 말인데요. 생각해 두신 거 있어요?”

       “그냥 아피스나 할 생각이었다.”

       

       내가 하는 게임이라고 해봐야 그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뭣보다 다른 이들이 본인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천마로써의 모습 아니더냐.

       

       다른 것을 하는 것보다 모든 이들이 바라는 걸 보여주는 게 낫다 생각한다마는.

       

       “특별히 생각해 두신 게 없다면 하나 추천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 보거라.”

       “용사냥 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자세히 설명을 해보아라.”

       

       용이라 함은 두 가지 형태가 있지 않느냐.

       

       동양의 용은 흔히 신수라 불리는 것이다.

       

       자연의 도술을 다루는 녀석들은 자신이 뭐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항상 점잔을 떨어대지.

       

       위압적으로 생긴 것에 비해 그리 강하지는 않다. 여러 기이한 도술을 써대서 상대하기가 귀찮을 뿐.

       

       만일 엔리 그대가 이야기하는 용이 이러한 용이라면 내 관심을 끊을 것이다.

       

       허나 서양의 용이라면 다르다.

       

       거대한 두 날개로 세상을 날아다니는 폭군이라면 커다란 흥미가 있느니라.

       

       과연. 엔리가 말하는 것은 내가 기대했던 서양의 용이었다.

       

       “아라 씨가 아피스에서 학살을 하고 다니는 건 너무 뻔하니까요. 이거라면 재밌지 않겠어요?”

       

       그 말대로다. 분명히 재미있을 것 같구나.

       

       

       한참 동안 자신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엔리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는 방송을 켜야 한다며 다급히 떠나가 버렸다.

       

       홀로 남겨진 나는 VR에서 나가는 대신 어머님의 방으로 향했다.

       

       다시 돌아와 방을 보니 내 기억과 다른 점이 여럿 보였다.

       

       방에 들어오면 나던 특유의 냄새도.

       

       바깥에서 들려오던 새소리도.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도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오면 마음이 안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언제나 어머니가 누워 있던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지금의 나는 당시의 어머님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이 곳에선 아이가 되는 느낌이구나.

       

       “비녀를 낀 저는 당신이 보기에 어떻습니까. 당신께서 기대하던 모습입니까?”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

       

       엔리와 함께 방송의 준비를 하고서 며칠이 흐른 어느 날.

       

       집에서 늘어져 쉬던 중 걸려 온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이 VR캡슐을 설치하러 온 사람이라고 했다.

       

       물건을 들고 들어가야 하니 문을 열어달라는 그의 말로 나의 휴식은 끝을 맞이했다.

       

       설치기사는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VR캡슐이 담긴 상자를 들고 들어와서는 어디에 설치하면 좋을 지를 나에게 묻더니 능숙하게 작업을 이어나갔다.

       

       잠시 그 모습을 관람하던 가만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하겠다 싶어 한 쪽으로 물러나 스마트폰을 켰다.

       

       엔리가 말을 하길 방송을 시작하기 몇 시간 전쯤에 미리 예고를 해두는 게 좋다고 했지.

       

       내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한들 내가 방송을 켰다는 걸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글을 써보는 게 처음이었기에 이래저래 헤매기는 했으나 본인도 요 한 달간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던지라 시행착오 끝에 글을 쓰는 데 성공했다.

       

       글재주가 없어 짧게 적기는 했다만 확인할 사람은 확인하겠지.

       

       그리고 나서 대략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기사들이 설치를 끝마쳤다.

       

       둘 중에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이가 내게 VR기기의 연동방법이니 주의사항이니 하는 것을 이야기 해주었지만 난 그것을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기계가 작동만 하면 됐지. 뭘 그리 다양한 것을 알아야 한단 말이더냐.

       

       뭣보다 나에게는 엔리가 보내 준 설명서가 있었다.

       

       한 달 전 VR기기를 샀을 때 장문의 문자를 보냈던 엔리는 이번에도 단편 소설 하나를 적어 나에게 보냈다.

       

       다만 안에 적힌 내용은 이전과 달랐는데, 지난 번 문자가 어느 정도 상식이 있다는 전제 하에 쓰인 것이었다면 이번 문자는 무구한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듯 하나하나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엔리. 그대는 본인이 그리도 불안했던 것인가.

       

       실수를 할 여지 자체를 막아 놓은 설명 덕택에 나는 무리 없이 VR기기의 연동을 끝낼 수 있었다.

       

       캡슐의 문을 열고 안에 몸을 뉘이니 푹신한 쿠션이 나를 반겨 줬다.

       

       으음. 좋구나. 침대 대신 이 안에서 잠들어도 되겠어.

       

       캡슐의 문을 닫은 후 희미한 졸음을 지나 다시 눈을 뜬 순간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익숙하지만 그립지는 않은 천마신교의 모습.

       

       이 곳이 텅 비어 있는 것은 영 적응이 안 되는 구나. 내가 중앙에 설 때마다 본관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양쪽에 신교의 장로들이 도열을 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교인들의 모습이 보였지.

       

       실로 부담스러운 풍경이었다. 그에 비하면 공허한 것이 훨씬 더 낫구나.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문 나는 엔리가 적어 준 설명서를 따라서 방송을 켰다.

       

       – 진짜 화령님이신가요?

       

       방송을 키기 무섭게 시청자 하나가 들어와 채팅을 쳤다.

       

       “보면 알지 않으냐?”

       

       – 머리가 많이 길어지셔서.

       

       “조금 바꾸었다. 어떠냐. 잘 어울리느냐?”

       

       – 네! 잘 어울려요.

       – 와! 진짜 화령님이다!

       – ㄹㅇ? 찐임?

       

       – 세나로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님 장발도 잘 어울려요! 비녀도 멋져요!]

       

       “그래. 고맙구나. 세나로. 그대의 호의에 감사토록 하겠다.”

       

       점점 시청자의 수가 불어나며 채팅의 속도가 가속을 붙기 시작했다.

       

       엔리가 말을 한 대로 미리 예고를 해둔 것이 효과를 본 모양이구나.

       

       *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인 한민준은 잠에서 깨어난 지 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침대는커녕 이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6일 동안 일을 하고서 겨우 찾아 온 휴일. 해야 할 집안일이 산더미라는 건 그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포근한 침대에서 벗어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민준은 위험한 이불 바깥으로 가는 대신 이불 안에서 스마트폰을 만졌다.

       

       오늘도 아피스 커뮤니티는 평화로웠다.

       

       

       성적이 안 좋았던 프로를 퇴물이라 까내리는 이들. 어느 캐릭터가 사기라고 징징거리는 이들. 브실이나 골플이나 똑같다 주장을 하는 이들.

       

       각기 제 할 말을 하는 게 커뮤니티라지만 그래도 하나 쯤은 공통의 주제가 있기 마련이었다.

       

       오늘 커뮤니티를 달구는 주제는 이것이었다.

       

       ‘천마 캐릭 너프 해야 하지 않나?’

       

       발단은 지난 번 데케이가 연 대회에서 화령이 보인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조금만 더 재능이 있었다면 프로가 될 수 있었을 아마추어의 최고수들을 양학하듯이 찍어 누르는 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누군가는 화령의 실력이 좋구나. 하고 넘겨버렸을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달랐다.

       

       한 사람이 말했다. 화령이 아무리 괴물 같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1:9를 압도하는 게 말이 되냐고. 천마 캐릭터 자체가 너무 사기인 거 아니냐고.

       

       그게 도화선이 되었고 싸움이 시작됐다.

       

       일견에서는 천마 너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무리 난이도가 높은 캐릭터라지만 고점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면서.

       

       대처할 여지는 남겨둬야지 아피스 최상위권 유저들이 압도를 당하는 게 말이 되냐며.

       

       반대편에서는 그게 화령이 규격 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마를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저만한 성능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실제로 화령에게 발린 사람 중엔 같은 천마 유저인 당소일도 있지 않았냐며.

       

       그렇게 시작된 논쟁은 천마의 너프가 필요하다는 쪽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화령이 보인 압도적인 모습도 문제였지만 다른 예시가 하나 더 있는 게 컸다.

       

       대한민국의 천마 장인으로 유명한 한서우. 그는 지난 1:1 공식 리그에서 여러 실력 있는 프로를 깨부시며 우승을 거두었다.

       

       천마를 잘하는 사람이 화령 하나였다면 그녀가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천마 유저인 한서우마저 성적으로 자신을 입증했으니 천마가 사기라는 설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반대 측에선 그렇다기엔 다른 천마 유저들의 성적이 낮지 않느냐 반박을 했지만 그 의견은 그리 힘을 받지 못했다.

       

       어쨌든 고점이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높아 보이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천마 유저인 민준은 그래도 너프는 너무하다며 필사적으로 실드를 쳤지만 이미 여론은 상대의 것이었다.

       

       천징징 약캐 코스프레를 그렇게 하고 싶냐는 소릴 들은 민준은 분노의 반박글을 쓰려다 현자타임이 와서 쓰던 글을 지웠다.

       

       이제 일어나자. 빨래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왜 이리 할 일이 많아? 대체 어제와 그저께의 나는 뭘 했던 거야?

       

       스마트 폰을 끄려던 그의 눈에 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화령입니다.]

       

       이상한 어그로일 게 뻔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민준은 글을 눌렀다. 원래 알고도 당해주는 게 어그로의 참맛 아닌가.

       

       [화령입니다.]

       오늘 터렛에서 방송을 키겠습니다.

       

       하지만 그 글은 어그로조차 되지 못하는 무언가였다.

       

       인증도 없고, 자세한 설명도 없고, 방송을 한다는 곳이 어딘지, 언제 킬 건지조차 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화령 특유의 오만한 어투도 없었다.

       

       최소한 합성을 하는 정도의 정성을 보여야 누군가가 낚여주지 글만 이렇게 띡하고 적어 놓으면 누가 믿겠는가.

       

       조회수가 백이 넘었는데 댓글 하나 안 달리는 것 좀 봐라. 이 글은 실패한 어그로였다.

       

       스마트폰을 던지듯 내려놓은 민준은 침대에서 일어나 현실의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집안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원룸에 혼자서 살고 있는 그다. 집안일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단순히 한단 사실 자체가 귀찮아서 그렇지.

       

       한 시간 만에 모든 일을 끝마친 민준은 게임을 하기 위해 VR기기를 들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주말이니까 여태 못했던 게임을 해야 했지만 게임을 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불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는 터렛을 켰다.

       

       으음. 볼만한 사람이 없는데?

       

       방송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볼 방송은 없다는 괴리를 겪던 그는 문득 얼마 전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정말로 화령이 방송을 켰을 수도 있잖아?

       

       화령의 이름을 검색한 그는 정말로 화령의 이름으로 켜진 방송이 있음을 발견했다.

       

       정말로?

       

       홀린 듯이 방송에 들어간 그는 곰방대를 입에 문 화령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지만 민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의 화령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마님 69화만에 방송을 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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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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