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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밀림을 돌아다녔다.

         

        덥고 습한 날씨.

         

        하지만 파충류에게 있어선 나름 쾌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씨였다.

         

        네 발로 움직이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간 소룡등천보를 위시한 무공 때문에 두 발로 다니는 걸 고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족보행에도 분명한 장점은 있다.

         

        이제 고모도쯤 되었으니, 네 발의 장점을 살리는 것도 나름 괜찮을 거다.

         

        사족보행을 한다고 무공을 아예 못 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나는 한 마리의 도마뱀이다.

         

        원래는 안 그랬냐 하겠냐마는, 도마뱀 특유의 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말이다.

         

        코모도의 후각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 물었던 대상의 피 냄새를 추적해, 섬 반대편으로 도망가더라도 쫓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난 그 코모도를 초월한 고모도라는 존재다.

         

        고모도류, 제3식.

         

        날름거리기.

         

        쉬릭.

         

        스아아아악.

         

        곳곳에 있는 냄새가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졌다.

         

        후각이 좋다는 게 이게 다 구별된다는 건 아니었구나.

         

        여러 가지 냄새가 뒤죽박죽 섞였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런 범위의 냄새를 맡는 게 익숙하지 않더라도, 구별이 될 수밖에 없는 냄새가 하나 있었으니까.

         

        비릿한 냄새.

         

        피 냄새였다.

         

        피 냄새가 난다고 코카트리스가 주변에 있다는 건 아니겠지만, 그러지 않은 구역보단 있을 확률이 높을 거다.

         

        사사사삭.

         

        은밀하고, 빠르게.

         

        그렇게 피 냄새의 근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물론 피 냄새가 풍기는 곳은 한두 장소가 아니었다.

         

        서로 영역을 침범당해 싸우는 공룡들이 흘리는 피도 있고, 누군가의 한 끼 식사가 된 불쌍한 공룡의 사체도 있었다. 지금 막 사냥감을 사냥해 배를 채우려던 유타랍토르도 한 마리 있었고.

         

        뭐에 데인 건지, 날 보고 호다닥 도망가서 어쩔 수 없이 흘린 고기를 주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남기는 건 중죄였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런 식으로 피 냄새를 추적하다 보니, 조금 이질적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사방에 떨어진 깃털.

         

        그리고 깔끔하게 잘린 공포새.

         

        마치 날카로운 검에 베인 듯한 모양새였다.

         

        검을 가진 인간에게 베인 걸까?

         

        확신할 수 없었다.

         

        이곳에는 검룡들이 돌아다녔으니까.

         

        스테고사우루스의 꼬리에 당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질적인 건 이질적이었다.

         

        나뭇가지가 모여 있는 모양을 보면, 꼭 누군가 불을 피우려던 거 같기도 하다.

         

        씁.

         

        굉장히 수상하다.

         

        도마뱀의 직감이 말해준다.

         

        이 주변에 무엇인가 있다고.

         

        “꼬끼오오오오오오오!”

         

        멀리서 들리는 닭의 울음소리.

         

        닭이 미치지 않고서야 공룡이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어필할 리가 없을 거다.

         

        평범한 닭이 아니다.

         

        저건 아무리 봐도 코카트리스다.

         

        이제 뱀 여왕에게 돌아갈까?

         

        아니, 이걸로는 부족하다.

         

        정말 미쳐버린 닭일 수도 있고, 놈이 다른 곳으로 이동 중일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놈의 둥지 정도는 발견해야 한다.

         

        “꼬끼오오오오오!”

         

        다행히 놈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자.

         

        스사사삭.

         

        그렇게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나아갔을 때였다.

         

        “흐…. 흐윽….”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인간의 목소리다.

         

        그것도 남성.

         

        내가 관심을 둘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딱히 귀한 집 자식도 아닌 거 같고.

         

        그냥 시간이 남으면 적당히 보내줘야지.

         

        “고, 고모도여…. 흐핫…..”

       

       사내는 고모도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우연일까?

         

        아직 저 사람에게 내 모습을 들키진 않았다.

         

        날 보고 한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고모도를 아는 거지?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왜 고모도를 찾는 거지?

         

        원시천존 어쩌고 중얼거린 걸 보면 그냥 자신이 알고 있는 영험한 존재들에게 마지막 소원을 비는 걸 수도 있겠다.

         

        매우 영험한 신수, 고모도에게도 그 소원을 빈 거고.

         

        별 관심은 없었는데, 상태나 한번 봐볼까?

         

        코카트리스의 울음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아직 거리가 꽤 있는 거 같으니 여유가 좀 있을 거다.

         

        “게게겍.”

         

        그렇게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가던 중,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흐, 흐으으읍!”

         

        겁을 먹은 거 같다.

         

        그래도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최대한 줄이려는 걸 보면, 아직 상황 판단은 할 수 있다는 뜻일 거다.

         

        “허억…. 서, 설마….”

         

        두려워 말라.

         

        …가만.

         

        이 양반 뭔가 좀 익숙한데?

         

        개성 없이 생긴 얼굴.

         

        평범한 몸.

         

        이거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그르르….”

         

        그래, 늪지대.

         

        아직 악어왕도마뱀이었던 시절에 한 번 봤었다.

         

        나름 좋아 보이는 칼을 흘리고 도망친 그 사람이잖아.

         

        칼은 잘 썼어.

         

        불판으로도 쓰고 딜로포사우루스를 잡는데도 쓰고.

         

        …어디에 있냐고는 묻지 말아줘.

         

        “고, 고, 고모도?”

         

        내 모습을 보고 고모도라는 걸 알아보다니.

         

        고모도가 나름 유명한 신수였을까?

         

        이 양반은 아무리 봐도 당가의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사, 살려주시오….”

         

        왜 이래.

         

        이래 보여도 고모도는 인명 피해를 입힌 적 없는 착한 동물이라고.

         

        겉보기엔 부상을 입은 거 같지 않으니 이 사람은 그냥 휴식을 취하면 멀쩡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꼬끼오오오오오!”

         

        멀리서 들리는 저 소리만 없으면 말이다.

         

        “그르르륵….”

         

        사내에게 눈짓했다.

         

        빨리 도망가라고.

         

        괜히 여기 있다가 코카트리스에게 들키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몰래 잠입하려는 내 계획이 깨질 테니까.

         

        사내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저기!”

         

        날 부르는 사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염치없는 부탁인 걸 압니다…. 저, 저기에 다른 사람이 돌로 변해있습니다…. 제, 제발 도와주십시오….”

         

        돌로 변했다.

         

        역시 저 소리의 정체는 코카트리스가 맞았다.

         

        정보는 고맙긴 한데, 도와달라고?

         

        나 보고 코카트리스랑 싸우기라도 하라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늪지대에서 만난 그 인간들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왜 저를 밀쳤을까요?’

         

        당소영을 밀치고 도망갔었으니까.

         

        물론 눈앞의 이 사내가 직접 밀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가녀린 여성 하나를 발로 차고, 그 틈을 타서 도망을 쳤다? 좋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르르….”

         

        나처럼 착한 도마뱀이 아닌 다른 공룡이었다면 당소영은 그대로 죽었을 거다.

         

        ‘뭐, 비오대세가인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요.’

         

        물론 당소영이 그런 명랑한 소리를 내뱉고, 별 감정이 없는 거 같긴 했다.

         

        그게 아니라면 당가의 방식으로 나중에 조용히 복수를 할 생각이겠지.

         

        내가 보기엔 당소영을 밀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명백히 잘못했다고 본다.

         

        한 명 정도는 그녀를 부축했어야지.

         

        당소영을 밀친 사람을 대신 바치던가.

         

        …물론 내가 제물을 탐하는 그런 도마뱀은 아니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내 눈앞에 있는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저 사내가 흘린 검을 요긴하게 썼기에, 그리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기 싫기에 조금의 호의를 베푼 것뿐이다.

         

        “제발…. 제발…. 또 저 때문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사내.

         

        “고모도시여…. 평생 속죄하겠습니다…. 제발….”

         

        아무래도 이 사내는 나를 정말로 신화 속에 나오는 생물로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소원을 빌면 별 노력 없이 들어주는 그런 존재.

         

        내 스승이 뭐라고 했더라.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도마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지.

         

        공포에 의한 착란.

         

        그런 상태일 거다.

         

        시간을 더 끈다면 코카트리스가 이곳을 찾고 말 거다.

         

        목덜미를 물고 저 멀리 던져버리는 게 내 마지막 배려다.

         

        “…평생을 겁쟁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는 말.

         

        “이번에도 한탕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얹혀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뻔하디뻔한 이야기였다.

         

        자기 삶에 대한 회고.

         

        “당 소저를 구하지 못한 것도…. 백 대협에게 방해만 된 것도….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마지막 순간에 하는 반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지금의 사과는 당소영에게 닿을 수도 없었고 백 대협이라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다.

         

        “제발…. 제발…. 백 대협을 구해주십시오…. 고모도시여….”

         

        나를 신수로 착각해,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극적인 상황에 나타난 영험한 존재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있고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 있는 거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나보고 구해달라?

         

        그것도 목숨을 걸고?

         

        세상에 그런 멍청한 짓이 어디 있겠나.

         

        코카트리스를 쓰러트린다고 해도 석화가 풀릴 거라는 근거도 없는데.

         

        아무런 이득도 없었고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다.

         

        무협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특유의 감성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무를 갖춘 주인공이 협을 행하려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저런 걸 하는 걸까.

         

        그냥 무시하고 이득을 취하면 되는 거 아닐까?

         

        고작 밍밍한 죽 한 그릇 때문에 산적의 산채에 쳐들어가는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백연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천마신교의 사람.

         

        마교라는 멸칭이라고 부르는, 어쩌면 사악할지도 모르는 종교 집단.

         

        저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못 본 척했을까?

         

        아니.

         

        내가 아는 내 스승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게 손을 내민 것처럼, 아주 무심하게도 비효율적인 일을 할 것이다.

         

        “그르르르르….”

         

        촤라라라락.

         

        용린의 모습이 변했다.

         

        전투에 최적화된, 용의 모습으로.

         

        대단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저 사내를 좋게 보는 것도 아니다.

         

        이 일은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그냥 무시하고 뱀 여왕에게 돌아갈걸.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아는 협이란, 극도로 비효율적인 일이었으니까.

         

        “크아아아아!”

         

        코카트리스를 향해 포효했다.

         

        스사사사삭.

         

        파바바밧!

         

        정면을 향해 달려갔고, 놈도 마찬가지였다.

         

        촤아아악!

         

        풀숲을 헤치며 놈을 향해 돌진했다.

         

         

        【코카트리스 lv45】

         

        __________________________

        【코카트리스】

         

        새와 뱀이 합쳐진 괴수.

        수탉이 낳은 알을 독을 품은 생물이 품으면 탄생한다고 전해지는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바실리스크와 동일시되는 괴물로, 상대방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석화의 힘을 다룹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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