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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EP.69

     

   “지구 좌표의 플레이어들이 조금 전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낯선 소음에 정찰을 갔던 어인 척후병이 무리로 돌아오자, 그의 보고를 들은 청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그곳에 깃발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고?”

   “거리가 거리인지라 깃발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은 못했지만, 정황상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행위다.

   특히 김시인이라는 그 인간을 포함해, 지구 좌표의 인간들은 다른 좌표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영악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깃발을 대놓고 숨긴다고?

     

   “동굴 입구를 지키는 병력은?”

   “그게……”

     

   청린의 물음에 어인이 뜸을 들이며 잠시 동굴이 있던 방향을 힐끗거렸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동굴을 파고 내부에 무슨 장치를 해 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잘 숨겼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있는 것인지……”

     

   어인의 어처구니없는 설명에 청린은 골똘히 그와 개인전에서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뜬금없이 동맹을 맺자며 손을 내밀었던 여자, 그의 옆에서 알짱거리며 모든 상황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던 꼬마.

     

   그리고 그의 동료들을 떠올리자, 그는 절대 그들이 땅을 판 이유가 단순히 깃발을 숨기기 위함이 아닐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깃발을 가져올까요?”

     

   이야기를 들은 다른 어인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어인들도 거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동맹을 운운했다지만 이건 너무 미련합니다.”

   “맞습니다. 저런 단순한 지능이라면 동맹으로서의 가치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심지어 전력도 약하지 않습니까.”

   “그냥 눈 딱 감고 깃발만 뺏어 오면…”

     

   어인들이 슬슬 시동이 걸리자 청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금린을 바라봤다.

   결국 명령을 내리는 것은 금린. 물론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어인도 금린의 명령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청린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이시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청린의 말에 금린이 고개를 슬쩍 숙인다. 하지만 이번에도 침묵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금린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선 호수부터 찾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그,금린이시여…!”

   “어찌 이런 좋은 기회를…!”

     

   금린의 말에 어인들이 작은 반발을 일으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완전히 날로 먹을 수 있는 굴러들어온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그들의 지도자가 못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청린은 손을 뻗어 그들을 진정을 시킨 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깃발을 숨길 수 있는 호수부터 찾는다.”

   “……”

   “……”

     

   청린의 말에 토를 다는 어인은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청린은 이번만큼은 금린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깃발을 회수하러 가자고 했다면……’

     

   아마도 이번만큼은 금린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을까.

     

   모든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깃발은 함정일 것이라는 판단이 세워진다.

     

   하지만 청린이 몰랐던 사실.

   그것이 모종의 함정일 것이라는 판단을 마친 이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굴을 향한 그룹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

     

   채챙!

     

   “다 죽여!”

   “젠장! 시작부터 이게 무슨…!”

     

   쇠와 쇠가 마찰을 일으키며 만들어 날카로운 소리.

   남궁천호가 파낸 작은 동굴 앞에는 백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단순히 작은 소음 하나에 이끌려 정찰을 보냈던 것이 발단이었다.

     

   척후를 보냈을 때는 주변을 경계하며 땅을 파고 있던 그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동굴에 깃발을 숨기는 것으로 추정되는 행동을 했고 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원을 꾸려 동굴 내부를 탐사하도록 했다.

     

   하지만 웬걸.

     

   정찰을 하던 중에는 모든 플레이어가 숨을 죽이고 있었기에 눈치채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다른 좌표의 척후병들도 똑같은 장면을 보고 똑같은 전략을 세웠다는 것을 그들이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콰과광!

     

   병력의 일부라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생기는 손실은 뼈아팠다.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상대해야 할 적이 많은 상황에서 전력이 약해졌다는 정보가 세어나간다면 그들이 먹잇감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랬기에 그들은 ‘죽더라도 깃발은 챙기고 죽자.’라는 심리가 발동했고 동굴을 두고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쿠우우……

     

   하지만 그 상황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옷을 입고 몇몇을 제외한다면 오합지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룹.

     

   그리고 그 상황을 여유롭게 구경하던 남궁천호가 대뜸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시인 씨도 RTS 장르 좋아하셨습니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줄여서 RTS.

   게임사 블X자드의 스X크래프트가 이 장르에 속한 게임이니 RTS라는 말이 생소할지는 몰라도 무슨 느낌인지는 대충 알 것이다.

     

   “특별히 즐긴 건 아니지만 저도 게임사 직원이었으니까요.”

     

   가상의 전쟁 환경에서 전략을 짜고 병력을 만들어 서로의 진영을 공격해 승리를 따내는 게임.

   스타가 지금이야 워낙 다양한 게임이 나오고 인기가 식어서 예전 같지는 않지만, 한때는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으로 한국의 민속놀이라 불리기도 했다.

     

   “제대로 된 병법은 아니겠지만 이게 먹히는군요.”

   “아마도 다들 긴장한 탓에 걸려든 걸 겁니다. 이런 편법은 더 이상 안 통할 거예요.”

     

   나의 대답에 남궁천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꽤 멀어진 거리에 쇠가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는 상황. 병장기와 사람들이 뒤엉킨 저들은 현재 저곳이 개미지옥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낚시를 이런 맛으로 하는 건가 보군요.”

     

   남궁천호가 웬일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깃발은 동굴에 없었다. 동굴을 파고 안을 들락거린 것은 그저 블러핑이었을 뿐.

   처음부터 우리의 작전은 다른 좌표의 플레이어들을 유인해 단체전에 전체적인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천호 씨, 작전 좋았습니다.”

   “별말씀을요.”

     

   처음에 동굴을 파서 플레이어들을 충돌시키자 말한 사람은 남궁천호였다.

     

   땅을 파는 행동 하나로 충분히 의심스러운 것이었겠지만, 다른 좌표를 공격하기가 꺼림칙한 상황에서 땅에 떨어진 공짜 깃발이 얼마나 맛있어 보였겠는가?

     

   “시인 씨가 Lv.4 짜리 괴물을 소환할 수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덕분에 제대로 낚았네요.”

   “별말씀을.”

     

   하지만, 만약 동굴을 빠르게 확인하는 그룹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전투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땅을 판 소음을 듣고 정찰을 온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의심한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력을 보내고 그들끼리 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싸움으로 일어난 소음에 정찰을 보내 본 좌표.

   그들은 동굴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모습에 특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심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힘겹게 견제를 뚫고 들어가니 개인전에서 봤던 Lv.4의 몬스터까지! 이건 분명 뭔가 있다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세영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똑같지 않나요? 전력이 줄어드는 건 나쁠 게 없지만 힘이 강한 좌표가 약화된 좌표를 흡수하면 전력 손실이 큰 손해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도리어 고개를 저으며 응답했다.

     

   “저희는 그걸 노릴 겁니다.”

     

   나의 말에 서세영의 미간이 조금 더 좁아진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 서세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당분간 싸우지 않습니다.”

   “네?”

   “세영 씨가 방금했던 생각을 다른 좌표 사람들이라고 안 했겠습니까?”

   “……아?”

   “함정에 속지 않아 힘이 비축된 좌표는 약화된 좌표를 한시라도 빨리 물어뜯으려고 최선을 다 할 겁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말이죠. 왜 그렇겠습니까?”

     

   당연하다. 다른 놈들이 약해진 먹이를 채가기 전에 빨리 강해져야 하니까.

     

   전략 게임에서 빈집털이는 기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떠올렸다면 적들이 떠올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를 잡았다 착각한 놈들 뒤를 칠 겁니다. 요컨대 빈집털이의 빈집털이죠.”

     

   분명히 대규모 전투를 보고 약화된 좌표를 선제공격하는 좌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병력이 빠진 그들이 곧 우리의 먹잇감이 될 예정이었다.

     

   “자, 그럼 슬슬 시동이 걸린 것 같으니 우리도 움직이죠. 분명 지금쯤 상황을 파악하고 병력을 돌리는 좌표가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개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차분히 체크하는 것. 나는 그나마 은밀하고 신속한 사람들을 선별해 병력이 빠진 좌표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

     

   에키온의 좌표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힘만 믿고 나대는 놈 하나 때문에 이딴 개고생을 해야 한다니…”

   “어쩌겠나, 2층에서 성좌하고 계약도 했다는데 그냥 닥치고 따르기라도 해야지.”

   “특전으로 기본 능력치가 Lv.15라니… 밸런스를 맞추기는 개뿔.”

     

   그 이름도 악명 높은 데스에 대한 이야기.

   개인전에서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한 이후, 신경이 곤두서 있던 그는 같은 좌표의 모든 인원에게 깃발을 빼앗아 오라는 억지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쿠구궁…」

     

   「이게 무슨 소리지?」

   「척후병의 말로는 작은 동굴 앞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답니다.」

     

   그 말을 들은 데스는 기회를 잡았다 생각했던지 검은 로브의 사람들을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병신 같은 것들이 시작부터 싸움이 붙었어? 병력 파악되면 거기 깃발만 뺏어오면 되겠네?」

     

   병력 손실이 일어난 다른 그룹을 공격하자는 말.

   하지만 에키온의 좌표에도 브레인은 있었고 그는 조심스럽게 그의 생각을 데스에게 전했었다.

     

   “우리 깃발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들어 처먹어요!”

     

   이건 깃발을 뺏는 게임이기 이전에 깃발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임이었다.

   과한 욕심은 반드시 파멸을 불러 온다. 지금까지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랬고 개인전에서 데스가 딱 그랬었으니까.

     

   “자네가 참아. 그래도 그렇게 강한 놈인데 깃발을 빼앗기진 않겠지.”

   “젠장, 그렇게 말해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

     

   띠링.

     

   [해당 좌표의 깃발을 소지한 플레이어가 사망했습니다.]

   [소속된 좌표의 모든 플레이어를 로비로 이송합니다.]

     

   “어?”

   “씨발.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서서히 발목부터 사라지기 시작한 그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이전까지 승승장구하며 성장한 에키온의 좌표.

   그들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성채는 판을 깔아놓은 한 좌표에 의해 완벽하게 박살나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02-29] 스타크래프트 비유에 대한 여론을 보고 다시 읽어본 결과, 저도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69화에 대한 수정을 진행했습니다.

작품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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