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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지피지기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나는 마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재앙급이니 절멸급이니 하는 분류체계 정도가 지식의 전부다. 절멸급 마수의 능력이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리라. 현재 절멸급 마수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버멜일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아니면 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도 빙의자는 필요하다.

        

       특히 나에게는 학기 초와 다르게 지켜야 할 상대가 생겼다. 내 친구와 은사,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함께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진 모두 함께 가야 할 이들이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거나 하는 선택지는 없어야 한다. 이번 흑사병 사태를 겪고 나서부터 정신을 차린 나는 등교가 재개되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 모든 추론은 흑사병에서부터 시작한다.

        

       고작 절멸급 마수 한 마리가 제국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래, 고작 한 체가.

        

       절멸급 마수가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다. 한 아홉 마리 되려나? 구천지대계의 구천(九天)이라는 표현을 중의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들어야 한다.

        

       왜 얘네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국을 전면 침공하지 않는가?

        

       그 답을 찾고자 마수들이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는 나라를 뒤져봤다. 역사책도 참고하고, 세계지도도 훑었다.

        

       멸망하거나 쇠퇴한 나라 간 공통점은 없었다. 지리적인 위치, GDP, 군사력, 정치, 사회문화, 종교, 그 어떤 것도.

        

       즉 공통점이 없는 게 공통점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었다. 얘네는 지금 제국을 멸망시킬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있다는 걸.

        

       마수는 멍청하지 않다. 당장 입학식 때만 해도 성동격서 전술을 사용했고, 이번에는 북부 전선이 밀리자 내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전염병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다.

        

       얘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

        

       그 꿍꿍이가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계획에 내가 무관하지 않다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입학식 때 아이언 드레이크의 몸을 빌려 내 앞에 나타났던 의문의 절멸급 마수.

        

       날 보자마자 싸우지도 않고 곧바로 성도에서 발을 뺀 새부리 가면의 마수.

        

       둘 다 나를 알고 있었으며, 나를 직접 공격하는 것 또한 삼갔다.

        

       ─ 네가 플레어를 만들었다는 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위험하다.

        

       마수들이 날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장 좀 보태서 아예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을 치밀하게 계획해 인간들의 허점을 찌르는 그들의 특성 상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날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막말로 천리안이라도 지닌 개체가 절멸급에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정말 그렇다면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제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무용지물이 돼 버린다.

        

       아마 지하수로에서 있었던 일을 기점으로 버멜에게도 놈들의 감시가 붙었을 것이다. 내가 버멜과 접촉해서 뭔가 일을 벌이려고 한다면 저쪽에서 눈치채고 선제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카데미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없네? 이런저런 이유를 모아놓고 봤을 때 우릴 감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걸 어쩐다.”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취합해서 이면지에 써내려갔다. 직접 고안한 다이어그램을 그려서 인물 간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의문이 하나.

        

       왜 성도에 금안족이 나밖에 없지?

        

       나는 입학식에서 본 마수와 역병의사의 지난 발언들을 토대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금안족과 마수가 모종의 관계를 가진다는 가설을 세웠다.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 에테르 학생은 아무래도 흑사병에 안 걸리는 체질인 것 같아요. 혹시 연구를 위해 나중에라도 피 검사를 하러 저희 병원에 오실 수 있으실까요?

        

       원래라면 나는 로테를 간호했을 때 같이 흑사병에 걸렸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않았고, 가벼운 피로만을 앓은 채 이번 사태를 쉽게 넘어갔다. 비말로도 전파되는 흑사병의 감염성을 생각해본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이 몸이 된 뒤로는 피를 흘려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단 한 방울도!

        

       그래, 채혈. 피를 뽑아보자.

        

       나는 적당한 날을 잡아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뒤 위가 얹혔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송곳을 찾았다. 손을 따기 위함이었다.

        

       “뭐야.”

        

       힘을 줘도 송곳이 안 들어간다. 분명 피부는 말랑말랑한데, 진피층이 딱딱한 무언가로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힘을 더 세게 줘도 들어가기는커녕 날이 튕겨나온다.

        

       시발 뭔데.

        

       이렇게 된 이상 계획 변경이다.

        

       “실험 다 하시면 알아서 정리하고 나오세요. 원래라면 학부생이 여기 실험실 쓰는 거 허가 안 되는데, 그래도 플레어 개발하신 분이니까 허락해주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화계마도 연구실 한 쪽에 자리를 잡은 나는 플레어를 고정한 채 마력초를 빨았다.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이런 식으로 피를 뽑아야 하나 싶은데.

        

       명목은 별 거 없다. 플레어의 개량.

        

       실상은 병신 짓을 하기 위함이다. 나는 몇 차례 동안 스크롤의 위력을 검증하는 것처럼 플레어를 작동하다가, 어느 순간 손가락 끝을 출력부에 가져갔다.

        

       “악! 아악! 아아악!!”

        

       존나 아파!! 마취 안 하고 프락셀 맞는 거 같아!!!

        

       오른쪽 중지에 옅은 열상이 생겼다. 아니, 옅진 않은가.

        

       아무튼 빔에 맞은 상처 사이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손가락을 지혈함과 동시에 미리 가져온 플라스틱 병에 피를 조금이나마 흘렸다.

        

       어, 확실히 사람 새끼 피는 아니네.

       

       이걸 의사들 눈앞에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아찔해진다. 물론 그 전에 주사바늘이 몸에 들어올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 말이다.

        

       피는 전반적으로 붉은 색이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응어리진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 응어리 부분을 잘 꺼내 하루간 말리자 뭉클거리는 구슬처럼 변했다. 이딴게 왜 내 몸에 있냐고.

        

       “당분간 못 했던 연구실 탐방을 이번 주부터 시작할 거야. 모두들 원하는 랩실을 찾아서 선생님들 하는 일을 견학해보렴.”

       “에테르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그럼. 미리 알아뒀지.”

        

       나는 연성술을 연구하시는 교수님을 찾아가 실험을 직관했다. 강아지마냥 똘망거리는 눈으로 교수의 연금술 시연을 보고 있자니 그분께서 날 알아보시고는 랩실에 관심 있냐고 작업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흥미 있다는 구라를 치고 연금 수업에 대해 더 깊은 설명을 들었다.

        

       연금. 한 마디로 요약해서 이 세계의 화학이었다. 지구에서도 두 학문은 역사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었지.

        

       계속해서 실험하고, 뭐 섞어보고. 일 다 끝나고 나면 약물 폐기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연구실을 견학하러 온 친구들은 신기한 눈으로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시시각각 지켜보았다.

        

       나는 적당한 틈을 타 교수에게 내 피가 담긴 병을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알고 싶어요.”

        

       옆에 있던 애들이 현자의 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가볍게 넘어가고. 전공자인 교수님은 플라스틱 시험관 안에 들어있는 붉은 결정을 보시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대답을 내놓으셨다.

        

       “음, 이건 주사(朱砂)구나.”

        

       아 이런 슈발.

        

       “이런 위험한 걸 잘도 휴대하고 다녔구나. 그래도 보관을 잘 했으니 상관은 없다. 자, 재미있는 걸 보여줄 테니 실험복으로 갈아입고 이리 따라오려무나.”

        

       내 피는 가루가 된 것도 모자라 곧장 태워졌다. 일부는 증기가 되었고, 또 일부는 산소가 붙어 어딘가로 날아갔다. 남은 부분을 채 치듯 받아낸 교수님은 대학원생에게 냉각 스크롤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냉각 스크롤 위에 증기가 담긴 박스를 가둬놓고 기다리자 어디선가 본 듯한 녀석이 튀어나왔다.

        

       은색 광택이 도는 액상 물질이었다. 표면장력이 큰 탓에 자기들끼리 뭉쳐 있으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액체 쇠구슬이 물컹거리며 흔들렸다.

        

       “이렇게 진사로부터 수은을 추출해낼 수 있단다.”

        

       시발, 그러니까 그게 왜 내 몸속에 있었냐고.

        

       의사들이 내 피를 뽑아다가 분석했더라면 인생 좆될 뻔했다. 너 이 새끼 누구냐면서 교회에서도 찍히고 나라에서도 찍혀서 갈 곳이 없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때, 신기하지 않니?”

       “네, 신기해요.”

       “우리 학과에서 인턴할 생각 있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이 점은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

        

       이걸로 마수들이 날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버멜에게 천리안을 지닌 마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거기서 있다는 답변까지 받았다.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마수들이 당신을 어디선가 지켜보느라 한 달간 평범한 학생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나는 이 과정 중 대부분을 양장본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래, 대부분. 전부 얘기하진 않았다.

        

       [아니, 그런데 그러면 앞뒤가 안 맞는데요?]

        

       얘기를 들은 양장본은 혀를 차는 듯 책장을 팔락거리며 내 논리적 전개에서 오류가 될 만한 부분을 짚어주었다.

        

       [마수 중에 천리안 비스무레한 기술을 지닌 개체가 있다고 쳐요. 그러면 걔가 주인님을 지켜보고 있을 텐데 뭐하러 빙의자에게 서면으로 질문을 한 거예요? 이러면 당신이 그 마수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정확하네. 나는 그 말에 침묵으로 응대했다.

        

       내 무응답에 양장본은 불만족스러운 침음만을 낼 뿐이다. 나는 주변을 활공하고 있던 녀석을 잡아다가 덮어버린 뒤 그대로 책상 서랍에 처넣었다.

        

       [저기요. 뭐하세요…?]

        

       철컥.

        

       […주인님?]

        

       “나 오늘 종강파티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아, 진짜 얼탱이 없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야! 당신 연구 안 해?!]

        

       뭔 소리인가. 당연히 연구할 생각으로 가득이지.

        

       암,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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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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