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9

       전투 종료 직후, 다행히 불안정한 통신 역시 완전히 복구되었다.

       

       [ (속보)히어로 아카데미에 발생한 이상현상…… 원인은? ]

       [ (속보)섬 전역 게이트, 모두 소멸. ]

       [ (속보)시민 사망자 0명, 중상자 15명. 히어로 아카데미는 건재했다. ]

       [ (속보)두문불출하던 <원소술사>의 활약…… 그는 진정 영웅이었다. ]

       [ (속보)정부, 제주도 긴급재난구역 해제…… 대통령은 그동안 뭘 했나? ]

       

       자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온갖 뉴스 속보가 도배되었다. 허나 그 어디에도 ‘일성’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마치 짜고 친 고스톱처럼 모두가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 전부.

       

       바깥 세상은 재난이 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복구됐다. 사람들은 

       

       스윽.

       

       “건강에 이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심한 무기력감의 원인은 도통 찾을 수가 없군요.”

       

       물론 그동안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복귀 직후 안젤리카는 믿을만한 의사를 수배했다.

       

       애당초 히어로 아카데미 전역에 일성의 마수가 뻗지 않은 곳을 찾기는 요원한 일이니, 신뢰할 수 있는 의사가 한유리의 진료를 보게 한 것이다.

       

       “난 정말 괜찮아요. 임혜성, 당신 걱정은 너무 심하다니까.”

       “그렇다고 정밀 검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네 몸 안에 게이트 너머의 물질이 주입된 건 사실이니까.”

       

       한유리는 줄곧 정밀 검사를 거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워낙에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우응?”

       

       그리고 동시에. 가만히 나와 한유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송수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당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송수아는 천진난만한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 그게 왜요? 이상할 것 없는 호칭일 뿐인데.”

       “나는 이상한데? 유리몬이 누군가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건 나 외에 처음 보거든.”

       “…….”

       

       ……그것도 친밀감의 척도였나?

       

       송수아의 일격을 허용한 한유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땅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던 건지, 그녀는 괜스레 침대의 이불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부드럽네. 이 이불.”

       “잠깐! 또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려고 한 것 같은데에!”

       “하아.”

       

       결국,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한유리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뭔가 말하려고 하는 건가?

       

       척, 고개를 치켜든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복잡미묘한 심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

       

       끼이익.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사랑싸움 도중이던 것입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치 호수 위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상황은 한 사람의 등장으로 환기됐다.

       

       안젤리카,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고마워요, <성녀>와 수아, 그리고 임혜성까지 모두.”

       

       급한 볼일이 있다며 사라진 안젤리카가 돌아오자, 침대에 있던 한유리는 감사를 표했다.

       

       “으음, 음음.”

       “……?”

       

       한유리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수아가 요상한 소리를 내뱉은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건가?

       

       왜 이리 혼자 끙끙 앓고 있는데.

       

       “우음, 음.”

       “……송수아, 뭐 할 말 있어?”

       “응.”

       “그럼 신경 쓰지 말고 바로 해. 어차피 여기 모인 사람들이 괜한 내용을 외부에 발설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마음 속에 고민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젠가 가슴에 병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으응…….”

       

       나와 안젤리카의 목소리에 송수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의 결심을 내린 걸까? 주먹을 불끈 쥔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우, 우리 게임하지 않을래?!”

       “……게임?”

       

       갑작스러운 송수아의 제안에 나는 황당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원래 요 녀석이 철딱서니 없는 순수녀라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히어로 아카데미의 거물, ‘랭커’가 아닌 평범한 한창때 소녀처럼 보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게임이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니.

       

       “좋습니다.”

       “……엣. 정말?!”

       

       헌데 안젤리카는 지금 상황에서 진행하는 ‘게임’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송수아가 말하는 ‘게임’과 안젤리카가 이해한 ‘게임’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다.

       

       “내,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게임은 바로…… 지, 지, 진실게임이야!”

       “……하.”

       

       내 이럴 줄 알았다.

       

       송수아의 깜찍한 폭탄 선언을 들은 <성녀>께서는 가볍게 콧방귀를 터뜨렸다.

       

       모니터 너머의 적을 죽이는데 혈안이 된 미치광이 사제에겐 귀엽다 못해 어이가 없겠지.

       

       아무튼.

       

       “갑자기 진실 게임이라니. 싫지는 않은데…… 조금 갑작스럽네.”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는 걸까.

       

       한유리는 조금은 불안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한유리의 모습에 송수아는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소리쳤다.

       

       “그래서 하자고 하는 건데?!”

       “알았으니까 흥분 좀 가라앉혀. 갑자기 얘가 왜 이래?”

       “헤헤, 그럴까?”

       “…….”

       

       이건 뭐, 사람이야 댕댕이야.

       

       일단은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 하지만 갑작스레 ‘진실게임’을 하자는 걸 보니 송수아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거겠지.

       

       “수, 순서는 유리 부터 하는 게 어떨까? 그리고 이렇게…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질문에 답하는 거야.”

       

       작게 중얼거린 송수아는 하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렸다.

       

       “좋습니다.”

       “……나도. <성녀>와 임혜성도 싫은 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녀가 말하는 순서란 한유리 – 나 – 안젤리카 – 송수아로 이루어지는 질문과 답의 순서.

       

       “그래, 가자.”

       

       너무 뜬금 없어서 황당했지만, 모두가 콜을 외치니 나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거리는 게이트가 모두 소멸되고 몬스터를 처치한 탓에 평소처럼 조용하다. 이런 여유 쯤이야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다.

       

       “그, 그러엄! 시자악!”

       

       그리하여.

       

       갑작스러운 ‘진실게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작을 알리는 송수아의 빼애액, 내지른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유리를 향해 돌아갔다.

       

       “음…… 룰을 먼저 묻겠습니다. 모두가 질문을 하면, 제가 솔직하게 답변하면 되는 겁니까?”

       “응! 쉽지? 간단하지!”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안젤리카는 시선을 한유리에게 던졌다.

       

       한유리 마치 ‘덤벼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왜인지 모를 전의가 활활 불타는 모습이었다.

       

       “그럼,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찰나의 침묵을 깨트린 것은 안젤리카였다. <성녀>로서 한유리와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을 텐데?

       

       “당신이 품은 악의는 그대로입니다. 따라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태 이전과 같은 <재창조의>한유리가 맞습니까? 학생회장.”

       “……엑.”

       

       이거, 초장부터 어마어마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송수아도 일순간 숨을 참는 걸 보니 이런 질문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안젤리카는 신묘한 힘을 지닌 고위사제. 그런 그녀의 레이더망에 모호한 감정의 편린이 감지된 모양이었다.

       

       “……악의?”

       

       해당 질문을 받은 당사자, 한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아마 ‘악의’가 여전하다는 안젤리카의 질문의도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악의라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네, 저는 <재창조의>한유리. 이제는 가문과 척을 지게 된 ‘일성’의 장녀.”

       “…….”

       

       삽시간에 얼어붙은 공기에, 모두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뜸을 들인 한유리는 이내 입을 열어 말을 이어갔다.

       

       “그게 전부에요. ‘악의’라는 단어를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네. 저는 이전과 같은 한유리, 본인이죠.”

       “참으로 감사한 답변입니다.”

       

       ……이게 끝?

       

       왜인지 납득한 안젤리카의 모습에 나와 송수아는 황당하다는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갑자기 무게를 잔뜩 잡더니, 겨우 이거냐.

       

       “그럼 다음, <비를 내리는>. 질문하십시오.”

       

       자신의 용무는 끝났다는 듯, 툭 던지는 말이 우스웠다.

       

       “으, 으응!”

       

       ……얘는 또 왜 이래.

       

       무게를 잔뜩 잡은 송수아는 묘하게 신경이 곤두선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인 그녀는 마치 전장에 선 장수처럼 무게를 잡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유리몬은, 혜성이를 역시 좋…….”

       

       콰아아앙!

       

       “어이! <현상거절>!”

       

       허나 방해꾼 하나가 등장했다. 교단 지부 주변의 몬스터를 청소하던 <신속> 최영웅, 녀석이 예고 없이 벌컥 문을 열며 나타난 것이다.

       

       “<신속>이 개새…….”

       

       고귀하며, 만물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성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귀여운 걸걸한 욕은 넘어가도록 하고.

       

       안젤리카도 뭔가 궁금하던 게 있었나보네.

       

       아무튼.

       

       갑작스레 등장한 <신속>은 엄청난 사실을 접한 건지, 경악으로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평소 천둥벌거숭이 같은 애송이 치고는 해괴한 반응이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모습에 내가 이유를 물으려 하자.

       

       “결국 일이 났다. 뉴스 기사, 기사에 네 이름이 올라왔단 말이다!”

       

       ……이런 씹?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이번 사태에서 한 일이라고는 열심히 구른 죄밖에 없단 말이다.

       

       “뉴, 뉴스라니. 그게 무슨?”

       

       <신속>이 던진 목소리에 분위기가 한차례 뒤바뀐다. 게임 같지도 않은 게임을 진행 중이던 모두가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를 뒤진 것이다.

       

       “……이게 뭐야아?!”

       

       가장 먼저 문제의 내용을 확인한 것은 놀랍게도 송수아였다. 일전의 기계치 같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눈물겨운 장족의 발전이었다. 다른 사람 몰래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 본 모양이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서둘러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나는 <신속>이 말했던 뉴스거리를 찾았다.

       

       [ (단독)일성 그룹, 히어로 아카데미 재학생 ‘저격’…… 아카데미에 전격 퇴학 요구. ]

       [ (단독)히어로 아카데미 D등급 임혜성, ‘승천전’의 돌풍이 이번 사태의 원인? ]

       [ (속보)일성 전략 연구소 내용 ‘충격’…”올초부터 발생한 사태 대부분이 <현상거절> 임혜성의 작품.” ]

       

       그런데.

       

       “미친새끼들.”

       

       평소 욕설을 입에 잘 담지 않는 나도 이번만큼은 참기가 힘들었다.

       

       일성, 이 빌어먹을 것들. 추하게 패퇴한 놈들이 결국 ‘언론’을 움직인 것이다.

       

       [ (단독)D등급 <현상거절> 임혜성, 배후에 <재창조의>한유리가 개입했을 가능성 높아…… 폐쇄 커뮤니티엔 이미 ‘임혜성 리스트’ 돌아. ]

       

       일성의 언플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놈들은 오너 일가의 장녀인 한유리마저 함께 묶어 나락으로 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판단한 건지, 아주 징그럽게 냉철한 작업이었다.

       

       꽈아악!

       

       핸드폰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짜증나고, 화가 난다. 기가 차다 못해 황당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다니. 일성 그룹, 놈들의 음침함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모조리 쓸어버릴까?’

       

       놈들은 <공간왜곡>과 <페이즈 체인저>를 통해 내가 가진 능력을 파악했을 터, 그러니 이건 선전포고다. 무력을 동원하기 전에 항복하거나, 아예 그룹 전체와 대립할 건지 선택하라는 포고문말이다.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도륙을 내버릴 수도 있다.’

       

       <현상거절>…… 놀랍게도 지하 연구소의 전투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부상을 입은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가 아니란 뜻이다.

       

       잃을 수록, 잊을 수록 강해진다. 아직까지 내 모든 걸 내던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증오를 갖게 해주는구나.’ 

       

       일성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내가 가진 힘은 놈들이 파악한 현실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문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