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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끄으으윽?!”

         

       

       벨레드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통증이 점차 커진다. 믿을 수가 없어 제 손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으득! 으지직!!

         

       분명 자신의 몸이 저 하등생물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건만.

       어째서 점점 뭉개지고 있는 건 제 손이지? 왜 내가 뒤로 밀리고 있는 거지?

         

       움직여야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성가신 놈들이 또 덤벼들 것이다.

       하여 몸을 빼내려고 하는데 어찌 된 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움직일 수가 없다.

         

       제 손을 쥐고 있는 저 하등생물이 웃고 있다. 그의 손은 아직 자신을 붙잡고 있다.

       그 모습이 심히 불쾌하여 더더욱 힘을 주어본다. 하지만 여전히 빼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 이이!”

       

         

       세 남녀에게 하던 것처럼 감히! 하고 노호를 터트리려는 찰나. 벨레드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상대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확인했다.

         

       

       ‘이 냄새는? 설마?’

       

         

       익숙한 향이다. 피. 그것도 자신과 같은 악마들이 흘리는 피의 냄새다.

       

         

       “네놈. 하겐티와 하르파스는 어떻게 한 것이냐.”

       “….”

        “이 몸이 묻고 있지 않느냐! 하겐티와 하르파스는 어찌 한 것이야!!”

       “아. 그 둘 이름이 그거였구나. 미안. 엑스트라 이름까지 기억하기는 힘들어서.”

       

         

       나름 지옥에서 고르고 골라 보낸 최고의 인선이었건만. 데우스 입장에서는 그냥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난 엑스트라. 잠깐 스쳐지나가는 페이크 보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반으로 갈라서 땅바닥에 심어두었어.”

       “뭐, 뭐라고?”

       “한놈은 자꾸 재생하려고 하고. 다른 한년은 자꾸 흡수하려고 해서.”

       

         

       원래 시체 티배깅까지는 안 하는 주의인데 이건 좀 그렇다. 이해해주기 바란다.

       데우스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벨레드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놈이 농담을 하는 건가? 아니면 도발이라도 하려는 목적인가?

         

       아무리 그 여명이라지만. 나팔이라지만. 그래도 하겐티와 하르파스다.

       그 둘의 조합은 벨레드 본인조차도 상당히 성가시다고 평할 정도다.

       평범한 대련에선 매번 이기지만 생사를 두고 벌이는 결투에선 장담키가 힘들다.

         

       그만큼 둘을 한번에 제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죽이는 것은 더더욱.

       한데, 뭐? 둘을 넷으로 만들어서 땅바닥에 심어두었다고? 무슨 작물도 아니고?

       

         

       ‘…제길!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이 앞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성가신 벌레들이 셋이나 더 있다는 것을.

       하여 고개를 돌린 벨레드는 이내 당혹감이 가득 서린 눈빛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놈들이 지금 뭐하는 짓이냐?”

       

         

       세 남녀가 사이좋게 서로를 챙기며 뒤로 물러설 준비를 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두 여자가 난처해하는 한 남자를 데리고서 ‘우리는 빠지는 게 좋아요. 그 좋다는 게 우리한테 좋다는 일이랍니다.’ 하고 있는 중이다.

         

       협공을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남자에게 전부 맡기고 본인들은 뒤로 빠진다.

       그 광경에서 벨레드는 아주 거대한 치욕을 느꼈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두고, 벌레들이 단체로 덤비는 게 아니라 이 한 놈만 싸우려고 한다고?

         

       

       “하등생물들이 지금 누구를 상대로―”

         

       

       안타깝게도 그의 말은 거기서 끊기고 말았다.

       

         

       ―쩌억!!

         

       

       “컥!”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대번에 뺨이 뜯긴 것마냥 얼얼해진다.

       눈앞에 별이 가득해지고 머리가 뒤흔들리며 순간이지만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한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고 벨레드가 겨우 고개를 바로 하자.

       

         

       “더 강한 놈들이 있는데 올 수가 없다고.”

        “…?”

        “그러니까 이제 보스가 오는 게 아니라, 보스 잡으러 가야 한다고.”

       “???”

       “이러면 지금 온 중간 놈들은 뭐겠어.”

       

         

       빠르게 스킵이지. 데우스는 웃으면서 손바닥을 벌렸다. 그리곤 벨레드의 뺨을 다시 후려쳤다.

         

       

       ―쩌억!!

         

       

       “컥!”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벨레드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얼굴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그냥 다 아프다. 하지만 더더욱 아픈 건 지금 이 상황을 당최 받아들일 수가 없는 악마로서의 자존심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뺨 두 대. 단 두 대만 맞았을 뿐인데 분노보다 두려움이 먼저 인다.

       이것은 마치 노란 눈에게. 그 남자에게. 그리고 왕에게 당할 때와 똑같지 않나!

         

       

       “이, 이게 대체.”

       “더듬지 말고.”

         

       

       ―짜악!

         

       더듬지 말라며 친절하게 또 뺨을 때린다. 자기 딴에는 맞아서 더듬은 거니까 한 대 더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말을 제대로 할 거라 생각했기에.

       실제로 ‘영감탱이’ 에게 배울 때도 ‘맞다 보면 정신이 팍 든다.’ 라는 배움을 얻은 데우스이니 그럴 법도 했다.

         

       

       “으, 으어?”

       

       

         

       물론 맞는다고 제정신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되레 더 당황하고 말 뿐이지.

       계속해서 말을 더듬는 벨레드를 바라보며 데우스는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빨리 마무리하자.”

       

         

       그 둘한테 예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을 써서 내가 자존심이 좀 상했거든.

         

       

       *

         

       

       “아니! 잠깐만! 후배님들! 좀 멈춰요!”

       “괜찮아요 란사도르테 경. 우리를 믿어요.”

       “황녀 전하!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에텐달은 점점 멀어지는 악마를 바라보며. 그리곤 자신을 무슨 범죄자마냥 끌고 가고 있는 루시엘과 네페르티를 바라보며 당황하고 말았다.

         

       같이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요람의 영웅이라지만, 이건 좀 위험한데.

       좀 더 확실하게 악마를 제거하기 위해선 수적 우위를 점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이내 돌아온 대답은 그의 정신을 더욱 혼미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할 거 다 했어요. 이 이상 있으면 민폐요.”

       “그게 무슨….”

        “아니죠. 선배님. 민폐가 아니라 우리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하. 그러네요. 회장 말이 좀 더 현실적이네요. 거기 있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경까지 위험할 게 분명해요.”

         

       

       데우스 후배님이 진짜 좋은 남자인데. 참 사람 착한데. 전투에만 들어가면 이상해진다고.

       당장 자신들 굴릴 때부터 눈깔이 뒤집힐랑 말랑 하는 것부터 ‘아. 진짜 싸움 나면 이 악물고 도망치는 게 좋겠다.’ 라는 교훈을 얻었다는 게 그녀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혼자 남겨진 벨레드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고 있었다.

         

       

       ―짜악!

         

       

       “컥!”

         

       

       얼굴 가죽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고통을 참아내며 자신 또한 주먹을 휘두른다.

         

       

       ―퍼억!

         

       제법 커다란 충격이 전해졌다. 제 손이 이 정도일진대 상대라고 멀쩡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데우스는 ‘맵네.’ 하고 중얼거릴 뿐 딱히 물러서거나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저 제 목을 가볍게 이리저리 틀며 우드득! 하고 몇 번 풀어줄 뿐이었다.

         

       

       “혹시 나만 알고 있는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다.”

       

         

       ―짜악!

       

       

       “크악!!”

       

         

       ―쩌억!

       

         

       “컥!”

       “대답.”

       

         

       신묘한 묘리나 기겁하게 만드는 기술 따위, 일말도 보여주지 않는다.

       벨레드가 공격을 하면 그냥 맞아준다. 다 허용하면서 오직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것만으로 이 거대한 악마를 계속해서 뒤로 몰고 또 몬다.

         

       

       “어으억!”

       

         

       허우적거리면서도 벨레드는 어떻게든 반격을 가하려고 애를 썼다.

       지옥의 악마들 중 상위권에 머무는 자로서 마땅히 그 힘을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한 번 별이 번쩍일 때마다 그런 생각들이 뭉텅이로 잘려나간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아. 맞고 있구나. 그러면 왜 맞고 있지? 그러게. 나 얼마 전만 해도 지옥에서 잘만 지냈는데. 왜 하등생물에게 뺨을 맞고 있는 걸까?

          

       

       ―짜악!

       ―짝!

         

       

       “억.”

       “어윽. 억!”

       

         

       하도 맞으니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나, 악마 아닌가? 쟤가 악마인가?

       꿈이라도 꾸고 있나? 혹시 알현 중에 졸아서 왕에게서 혼나고 있는 건 아닐까?

         

       

       “대답.”

         

       

       또 다시 고개가 홱! 돌아가자 저 안에 있던 생존본능이 점차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건 안 된다. 이길 수가 없다. 아니, 승패를 떠나서 그냥 저항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파리라든가, 그 남자라든가. 그 정도는 되어야 어떻게 비벼볼 수라도 있을 거 같은데?

       심지어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한다면 그들조차 힘들 거 같다. 왕. 그래, 왕 정도는 되어야 이 괴물이랑 해볼 만할 것 같다.

         

       

       “이게, 이게 말이 안 된다. 대체 왜, 왜…!”

         

       

       억울했다. 지난 시간 동안, 자신들이 기른 짐승들을 보내서 이 세상에 대한 걸 전부 파악하고 또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측을 끝냈다.

       그래도 혹 일이 꼬일 수 있어서 짐승만으로 에너지를 모았고 성장 추세가 정체되는 듯하자 바로 선봉을 보내서 더 많은 에너지를 모으려고 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모든 악마들이 동의했고 문제가 없으리라 확신했다.

       이런 규격 외의 짐승이. 악마보다 더 한 악마가 나올 거라곤 예상조차 못 했다.

         

       

       “모르지. 혹시 알아?”

       

         

       이거 다 너희들 때문일 수도 있어. 데우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벨레드의 머리통을 몇 번 두드렸다.

       

       세상의 균형이라는 게 있다. 몬스터만 보낼 때는 공평했는데 악마가 오면서 그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하여 균형은 다시금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 어떤 장치를 끼워 넣기로 했다.

         

       다만 그게 하필이면 데우스, 이 인간이었을 뿐이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번엔 우리가 갈게.”

       

         

       이미 데우스는 이 다음도 다 생각해두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악마 등장 이벤트가 이상하게 꼬였다. 더는 올라올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아, 끝이구나!’ 하고 마냐고? 설마. 저들이 올 수 없으면 이쪽이 가줘야지. 그래야 이야기라는 것이 더 진행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침 딱 정해둔 인선도 있고, 마침 딱 걸맞는 이름도 알고 있다.

       

         

       ‘돌아가면요, 회장님. 우리 새로운 동아리 하나 만듭시다. 동아리 소개 문구는 이렇게 하고요.’

       

         

       악마들의 거처. 지옥. 그곳으로 간다면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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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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