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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마법사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내뱉을까.

       

       정말로 고생했다며 노력을 인정해 주는 말을 건넬까? 강의실에서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하면, 마법사는 다분히 실전주의적인 인간이었다. 그런 말에 시간을 쓰기보다도, 용건을 먼저 밝힐지도.

       

       그러니 위로의 말도 예상에서는 배제되었다. 그 마법사에게 어울리는 말이라면,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는 확보했느냐고 묻든가, 아니면 다음 일이 바쁘니 꾸물대고 있지 말라든가. 그런 재촉의 말이 아닐까 했다.

       

       그것도 아니면⋯⋯. 

       

       아주 악독한 사람일 경우에. 질책의 말까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6일이나 시간을 주었음에도 마땅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거냐면서, 실망했노라고 쏘아붙이는 것이다. 오만한 마법사들은 보통 그랬으니까.

       

       그러나 방 안으로 들어온 마법사가 처음 내뱉은 말은,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음에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어, 음⋯⋯ 깨어나셨군요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일반적인 감상과는 한참이나 엇나가 있는 질문이었다.

       

       ===============================================================

       

       마법사는 유난히 창백한 낯빛을 띠고 있었으며, 소극적으로 손가락을 꼼지락대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내보인 태도와는 딴판인 모습이었다. 베네트와 니오레는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던 마법사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징조였으니까.

       

       그러나 타라는 마법사가 내뱉은 말에 분노하고 있었으므로, 마법사의 변모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타라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상황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언동이었기 때문에, 당혹을 억누르기 위한 의식적인 깜빡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해서, 되묻기까지 했다.

       

       “⋯⋯즐, 거웠냐고요?”

       

       “아, 네. 응⋯⋯?”

       

       마법사는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느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언뜻 들으면 진심으로 궁금한 줄 알았을 거다. 그 뻔뻔스러운 태도에 타라는 열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니오레의 눈동자는 순진무구한 정의감 대신에, 거무칙칙한 비관이 느릿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며. 베네트 역시 괜찮은 척을 하지만 멀쩡한 얼굴은 아니었다. 

       

       자신도 아브라함이 죽고 신성력까지 잃어버리고 있으니, 멀쩡한 꼴은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주변을 휘감고 있는 무거운 분위기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패잔병의 막사에 들어와서, 패전은 즐거웠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일이다. 차라리 무능에 대한 질책이었더라면 수긍했겠으나, 이토록 지독하게 비꼬는 말은 참을 수 없었다.

       

       타라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즐거웠을 리가 없잖아-!!”

       

       이에, 마법사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붙였다. 짧게 쉿 소리를 내고. 말을 더듬어가던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감 있게 대사를 입에 담았다.

       

       “타라⋯⋯ 성녀님. 이건 그저 환상 마법입니다.”

       

       “⋯⋯뭐?!”

       

       타라는 주먹을 꽉 쥐면서 파르르 떨었다. 여태까지의 경험을 단번에 헛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말도 안 되는 그 말에, 진심으로 화가 났던 것이다. 뒤에서 마법사의 변화를 관찰하던 베네트와 니오레도, 그 말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의도가 뻔히 보이는 모욕이었다. 지난 6일간, 죽은 사람은 또 얼마였던가. 그것을 덧없는 환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마법사는 대놓고 세 사람의 여정을 깎아내리는 셈이었다.

       

       마법사는 이 정도로 격정적인 반응을 예상하지는 못했던 듯, 당황한 눈치였다.

       

       “어, 어? 호, 혹시 얘 말 안했⋯⋯?!”

       

       “차라리 욕을 하고, 차라리 비웃어!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장난질이야?! 그렇게 배배 꼬아서 엿을 먹여야만 속이 시원하겠어?!”

       

       “환상이라고 말도 안 한 거야⋯⋯?!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이 자식이 진짜──!!”

       

       타라는 마법사의 멱살을 틀어쥐고 벽으로 몰아붙였다. 마법사는 당황하는 척을 하다가, 순식간에 못에 박힌 듯한 가식적인 웃는 표정을 짓고는.

       

       “우,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하하하!”

       

       라며, 끝까지 그녀를 조롱하던 것이다.

       

       한편.

       

       미친 마법사 아바타를 뒤집어쓰고 실시간으로 대역을 뛰고 있는, 자색 마탑의 마탑주 유나 유렌스토 바이올렛아이리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수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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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미친놈아 사전 공지도 안 때리면 어떡해.

       

       유나가 마음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이곳엔 들을 놈이 없었다. 이 원망은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었다가 유나데스빔으로 갚아줄 수밖에. 미래의 유나데스빔 출력이 한 단계 올랐다.

       

       애제자의 머리를 일부나마 치료하기 위해 작전을 짠 것까지는 좋았다. 작전은 착착 진행되고 있으며, 미친 마법사는 시뮬레이션 세계 안에서 반쯤 잠들어 있었다.

       

       이제 세션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사악한 외신을 무찌르게 하면 되는데⋯⋯.

       

       “나를 모욕하는 건 그럴 수 있어도, 아브라함의 죽음을 모욕하게 두지는 않아-!!”

       

       짤짤짤.

       

       성녀에게 멱살이 잡혀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상황은 상정 외였다.

       

       그는 언제나 괴상한 말주변으로 상황을 어물쩍 넘어가지 않았던가. 황자한테 시비를 털고도 살아남았고, 황녀한테도 털었는데 살아남았다. 하물며 이번 세션의 피해자는 아카데미에 다니는 파릇파릇한 새싹들.

       

       그러니까 그가 평소에 말하던 것처럼, 그의 대사를 빌려서 대충 툭툭 말하면 알아서 착각하고 넘어가 주지 않으려나 했는데⋯⋯!

       

       분노로 눈깔이 거의 뒤집어지기 직전인 성녀의 모습을 보면, 세션이고 나발이고 대가리를 깨려고 들 것 같았다.

       

       심지어, 이번에 그는 이게 전부 환상마법이라는 밑밥 아닌 밑밥을 깔아 두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환상이 아니라 차원마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터.

       

       그렇다면, 안전한 환상 마법 투어를 하는 김에 나 좀 도와주지 않겠니? 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외신이 살고 있는 차원으로 사람 살리러 가주지 않겠느냐고 설득해야 하는 셈이다. 난이도가 족히 수십 배는 뛰었다.

       

       하지만, 하지만 방금 모욕이라고 말했지. 성녀가.

       

       어쩌면 다음 대사까지 치면 해결될지도 모른다. 유나는 마법사 아바타의 표정을 한숨으로 전환하며 대사를 따라했다.

       

       “화, 환상 마법이라는 걸 부정하셔서, 대체 무엇,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 아, 아닙니다. 죄송해요!”

       

       맙소사 어쩌구까지 대사를 쳤다가는 성녀한테 살해당할 것 같아서 멈췄다.

       

       어쩌지. 진짜 어쩌지.

       

       유나의 작전에는 플레이어들의 참여가 필수였다. 따로 사람을 구하기에도 시간이 여의치 않고, 세 사람은 능력도 출중하니까. 어떻게든 세션을 계속하게 잡아 둬야 하는데.

       

       생각하자. 생각하자 유나⋯⋯!

       

       그 순간, 어린 대마법사의 머릿속에 한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와 함께 현대 문명을 놀러다녔을 때, 만화 카페에서 뒹굴거리며 읽었던 만화의 내용이.

       

       지금부터 공손하게 ‘세계를 구해주세요 용사님’이라고 하기에는 늦었다. 삼인방의 저 눈을 보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아예 컨셉질을 삐뚜름하게 잡아야 했다.

       

       나는⋯⋯ 나는 세계를 구하는 미친 대마법사다!

       

       ===============================================================

       

       파사삭.

       

       “뭐⋯⋯ 뭐야?!”

       

       타라의 손아귀에서 갈대같이 흔들리던 마법사는, 어느 순간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방의 한구석에서 재조립되듯이 나타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광대 분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과장된 미소였다.

       

       “어떻게⋯⋯ 화는 좀 풀리셨습니까?”

       

       “⋯⋯⋯⋯.”

       

       “감정을 토해낼 곳이 필요한 것 같아 보였거든요.”

       

       “⋯⋯일부러 그랬다는 소리야?”

       

       타라의 질문에 마법사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반은요. 사실, 환상 마법이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라, 마법사.”

       

       “그러죠, 베네트. 음. 여러분이 세계를 구해내지 못하면⋯⋯ 그 세계는 덧없는 환상처럼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외신에게 덥썩 삼켜져서.”

       

       마법사는 푸른 행성의 이미지를 허공에 띄워 올렸다. 그리고 무한히 부글거리는 커다란 거품 덩어리도. 거품이 행성을 스쳐 지나가고 나면, 그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노인 아브라함은 죽었습니다. 세상을 이롭게 만들고 싶었던 그의 연구만이 남았죠. 이제 그것은, 곧 세계를 멸망시키는 데에 쓰일 겁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말입니다.”

       

       [저희에게⋯⋯ 이세계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고 계신 건가요?]

       

       “당신이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당연히-!”

       

       “잠깐, 타라, 니오레.”

       

       베네트는 두 사람의 말을 제지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표정의 너머를 간파해 내려는 듯, 마법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어째서 우리냐. 그리고⋯⋯ 왜?”

       

       “마검을 추적해 왔으니까요. 사람을⋯⋯ 구하고 싶으셨던 게 아닙니까? 마검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왜, 가 빠졌다. 마법사.”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니오레가 베네트의 옷깃을 잡아 왔다. 타라도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베네트가 일행에서 빠지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베네트는 뒤를 돌아보며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그 역시도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저 마법사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캐낼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는 듯, 니오레의 손등을 두드리고.

       

       다시 마법사를 바라보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어째서 다른 세계를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느냐고 묻는 거다.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라는 물건이 그렇게나 필요한 건가?”

       

       “아뇨, 그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군. 우리 세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른 세계다. 소멸하더라도, 생지옥이 되더라도 상관은 없을 텐데.”

       

       “그건, 다른 세계라도 인명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웃기지 마라 마법사. 그렇게 인명을 중시했다면, 아카데미에 몽마를 풀거나 강의실을 던전으로 만들지 않았겠지.”

       

       “⋯⋯더, 던? 크흠. 그러니까, 그게⋯⋯.”

       

       마법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정말 다른 세계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그, 그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정말 이 모든 게, 다른 세계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은. 어쩌면, 우리 세계로 넘어올 수도 있다는⋯⋯ 뜻인가?”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쉽사리 믿기는 어렵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여러 의문점이 남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리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만큼은 가감 없는 진실이니⋯⋯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그럼.”

       

       “잠⋯⋯!”

       

       마법사는 지워지듯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방에 남은 세 사람 가운데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믿기 어렵고, 무거운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니오레는 조심스럽게 적었다.

       

       [⋯⋯진짜일까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긴 해. 2황자가 마법사를 아카데미에 파견한 것도, 뒷배가 되어주는 것도⋯⋯ 그런 이유라면.”

       

       [그렇다면, 저희는⋯⋯ 베네트?]

       

       “⋯⋯⋯⋯.”

       

       베네트는 생각에 걸리는 것이 있다는 듯,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마법사의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확인해 볼 것이 생겼다. 나중에 보지.”

       

       “잠깐만. 뭔데, 베네트!”

       

       베네트는 그 말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뛰쳐나갔다. 

       

       ===============================================================

       

       베네트 힐튼은,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흑마법사들의 사악한 계획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해 모아서 시전되는── 『악몽 소환』.

       

       무엇이 소환되는지는 모른다. 그저,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무언가라는 사실만이 전해질 뿐. 

       

       만약, 마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흑마법사들이 소환해 낼 악몽이란── 이세계의 악신일지도 모른다.

       

       미친 마법사가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강의 첫날부터 흑마법사들을 대거 걸러낸 것도 앞뒤가 맞았다. 마검을 숨겨 소동을 일으킨 건, 이세계에 뛰어들 인재를 찾기 위해서. 마법사의 모든 행동에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베네트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확인하러 가고 있었다.

       

       그는 달렸다. 아카데미의 폐건물 지하가 목적지였다. 그곳에는 소환 계획의 핵심. 감정을 증폭하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미친 마법사가 『악몽 소환』에 대한 정보를 어떤 방법으로든 입수했다면, 핵심이 되는 이곳에도 조치를 취해뒀을 터.

       

       카펫을 걷어냈다. 지하로 이어지는 문이 보였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베네트는 박살 난 골렘의 잔해와, 개조되어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마법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엄 청 지 각
    옙⋯⋯ 바텐더에게 연참을 킵해두고 있겠습니다.
    언젠가, 지각비⋯⋯ 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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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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