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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그 악몽인지 뭔지 애매한 요상한 꿈 탓인가, 루크가 일어난 시간은 새벽이었다.

    덕분에 루크는 지금 예르나가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알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났다면 보통은 자다가 깼다고 생각하지, ‘잘 잤느냐’고 말할리 없으니까.

    “아팠지……. 미안해. 계속……. 이 말을 하고싶었어.”

    그녀는 루크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방이 고요했기에 그녀의 말은 루크에게 아주 똑똑히 들려왔다.

    “예르나……. 겨우 그런걸로 그런건가. 이제 전혀 아프지 않네만.”

    이런, 부끄럽더라도 직접 보여줘야 했던걸까.

    루크는 정말 큰일이구나, 싶어서 그녀에게 직접 이불을 덮어주고는 눈을 감기고 머리를 꾹꾹 눌러준다.

    루크 나름대로 사과를 받아들겠다는 의미였다.

    지금 자신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거라고는, 이런 소소한것 밖에는 없으니.

    하지만 그 행동이 소소하다고해서 결코 효과도 소소한것은 아니다.

    단순히 주무를 뿐이 아니라, 마력시로 직접 체내마나를 파악해 자신의 서클을 운용하여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피로물질자체를 태워버리는 고난이도의 마나 운용법었으니까.

    하필 영약의 재료가 없으니 임시로 행하는 시술이다.

    “어때, 이러면 피로는 좀 풀리는가.”

    하지만 당하는 예르나의 입장에선 그저 기분좋은 안마였다.

    조그맣고 부드러운 손길이지만, 그 속에 담긴 압박은 때마침 먹먹하게 아려오는 부분을 정확하게 노려 풀어주는 느낌이 아주 훌륭한 것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래,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안마를 정말 잘하는구나…….”

    루크의 안마가 계속됨에 따라 점차 나른해지고 맑아지면서 편안해지는 머릿속.

    그녀는 조금씩 졸음이 돌아오는것이 느껴졌다.

    루크가 그런 예르나의 머리를 주무르며 걱정스런 어투로 묻는다.

    “정말, 그대가 매번 이러니 나도 걱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잖은가.”

    “……미안, 걱정을 끼쳐서.”

    뭐가 그리 미안할 일이 많은지, 루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우……. 아직 출근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다. 조금이라도 수면을 취하는게 어떤가?”

    “아냐, 괜찮아. 덕분에 그리 피곤하진 않은걸. 그리고, 오늘은 출근 안하니까…….”

    “그건 다행이다만…….”

    출근을 안한다는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상태로 숲에 가봤자, 결코 좋은꼴은 못볼 테니까.

    대답하는 예르나의 표정과 목소리에 담긴 피로감은 확실히 줄었으나……. 

    그 속에 담긴 무게감은 여전했다.

    “예르나…….”

    그것은 분명 가슴이 답답한것이다.

    무언가 하고싶은말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요즘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라 잠을 못 자고 있는겐가.”

    “…….”

    “대체 뭐가 그대를 그리 힘들게 하는건가.”

    루크는 머리를 주무르던 손길을 잠깐 멈추고 말했다.

    “혹, 그대가 잠을 못 자는것이 내 탓인가?”

    “그건…….”

    결코 아니라고할수는 없었다.

    그 짧은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루크가 모를리 없다.

    무언의 긍정.

    그녀의 성격상, 아니라면 곧바로 아니라며 대답을 했을 유형의 질문이었으니까.

    루크는 드디어 미뤄두었던 대답을 들을때가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그대는 어째서 내게 이토록 잘 해주는 것이지?”

    대가없는 선행.

    단언컨대, 그런건 세상에 없다.

    아무리 아이의 몸이라도, 건네어지는 선행에는 상한선이 있게마련.

    예르나가 루크에게 해주는것은 단순한 ‘선행’의 범주가 아니었다.

    부모의 사랑이라도 없고서야, 결코 건네어지지 않을 수준의 선행이다.

    그렇다면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일이다.

    헌데 어째서 선행을 베푸는 쪽이 이토록 전전긍긍한단 말인가?

    오히려 불편해야 할 쪽은 자신이 아닌가?

    단지 그녀가 ‘선인’이라서?

    글쎄……. 

    아무리 선인이라고해도, 그녀처럼 제 건강을 해쳐가며 생판 남인 아이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임시보호자가 된 경위도 의문스러웠다.

    아무리 보호자가 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해도 그렇지, ‘결혼’이라는 것까지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만큼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라.

    결혼이라면 보통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을 그저 수단으로 격하시킬 정도로 자신같은 고아의 보호자가 되어야했던 이유?

    딱히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발상은 아니다.

    마침내 루크는 그것을 예르나에게 묻는다.

    “말해주게. 대체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겐가?”

    “그건, 네가 신경쓸거 없는 일이야.”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내게 집착하는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루크가 예르나의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불 속에서 손을 꺼내 잡고 있었다.

    손등을 쓸어주는 그 부드러운 손길에 예르나는 가슴이 술렁거리는게 느껴졌다.

    “부탁이니 말해주게. 이렇게 서로 속앓이만 하는것은 내게도 그대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니.”

    예르나는 루크의 목소리에 담긴 단호함에, 더이상 진실을 뒤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그래, 말해줄게.”

    묻어둔 옛날의 일이지만, 이제는 밝힐 때가 된 거겠지.

    ———

    국가의 87%가 숲인 엘프의 나라 베리튼.

    유일한 ‘진짜’ 세계수가 존재하는 그곳은 세계의 엘프인구 80퍼센트가 모여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엘프사회였다.

    타악, 정확히 나무에 붙여둔 과녘의 중앙을 노리고 박혀들어가는 작은 돌멩이.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사격이었다.

    근원지를 따라가보면, 12살정도 되어보이는 금발의 말총머리의 엘프가 자색의 눈동자를 한쪽만 치켜뜬채 과녘의 중앙을 노려보며 새총을 쭈욱 당기고 있었다.

    툭, 손을 놓자 날아간 돌멩이는 다시 과녘의 중앙을 때렸다.

    과녘에 맞춘것을 확인한 소녀는 다시 새총에 탄을 장전하며 조준을 마친다.

    툭,

    퍽!

    몇발을 쏘아도 정확히 중앙에 날아드는 돌멩이.

    “또 명중이야!”

    감탄섞인 함성이었다.

    소녀는 그런 함성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봤어? 다 맞췄다?”

    소녀는 들뜬 목소리로 과녘을 가리키며 미소짓는다.

    과녘은 단 하나의 구멍만을 낸 채다.

    정중앙.

    그야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엄, 봤지! 10발이 다 중앙에 맞다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진기를 들어올렸다.

    찰칵.

    “잘 찍었어?”

    “당연하지! 이제 돌아가서 밥먹을까?”

    “응!”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돌을 줍느라 흙이 더럽게 묻어있었지만, 그것이 더럽다며 내색하지는 않는다.

    단지, 집에 돌아가면 손부터 씻겨야 겠다는 생각 정도를 할 뿐.

    “우리 카리나는 새총을 참 잘 쏘네.”

    새총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투사체를 잘 쏘지만 말이다.

    그것은 소녀가 엘프라서 그런게 아니라, 소녀의 재능이었다.

    “나중에 커서 궁수가 될거니?”

    “아니! 나는 나중에 숲지기가 될거야!”

    “숲지기? 왜?”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그녀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소녀는 조금의 고민 없이 대답했다.

    “아빠처럼 멋있는 숲지기가 되고싶으니까.”

    “그러니……?”

    소녀의 힘찬 대답에 소녀의 어머니는 조금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철컥, 철컥.

    각자 일사불란하게 장구류를 정비하는 소리다.

    이 소리는 언제나 자신을 일깨우고 작전을 실감하게한다.

    그는 그래서 소리가 퍽 좋았다.

    하지만, 그 소리가 오늘따라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저쪽에서 장갑을 낀 손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있는 한명의 대원 탓이다.

    작전의 대장인 그는 그 대원의 명찰을 확인한다.

    카리나 리스핀드.

    들어온지 얼마 안된 신참이었던가.

    ‘이번분기 최연소로 특공대에 들어온 재능있는 신입이었지.’

    이미 사전에 인적사항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27세, 인간으로쳐도 꽤 젊은 편인데 엘프치고는 아주 새파랗게 어린 나이다.

    그야 긴장되겠지.

    그는 신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이봐, 신참.”

    “네, 넵!”

    “첫 임무라 긴장되는거 아는데, 너무 넋을 놓지는 마. 얼른 장비 점검해. 현장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시, 시정하겠습니다!”

    찰칵, 찰칵.

    놀랍게도, 철의 지팡이를 조작하는 그녀의 손길은 방금전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했다.

    ‘이번엔 아주 괜찮은 신입이 들어왔군.’

    내심 이번 작전이 순조로울것이라는 예감이 왔다.

    긴장만 좀 덜어내면 문제따윈 생기지 않으리라.

    “진입, 소탕, 확보. 이것만 기억하면 별 문제 없을거야.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적당하게 긴장해.”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 선배에게 가볍게 목례하고는 자세를 다잡았다.

    ‘첫 임무…….’

    흥분으로 고양된 마음을 진정시키려 주먹을 꽉 쥐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후우…….”

    ‘실수따윈 안해.’

    끼익-!

    차의 움직임이 멈춤과 동시에, 대원들은 곧바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

    “크윽…….”

    폐허가 된 시설.

    반항을 하다가 사살된 몇 시체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포박해서 한데 모아두고 경계한다.

    불법 시설 자금의 유통을 맡던 자들이니 뒤를 캐면 분명 뭐라도 나올터다.

    그러니 섣불리 죽여선 안되리라.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대장님! 보고드릴게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장부 찾았나?”

    “아뇨, 장부는 아닙니다.”

    “그럼 뭔데?”

    “그것이……. 아이들입니다. 인신매매도 했던 모양입니다.”

    “허.”

    인신매매까지 손을 댔다니, 엄청난 빽이 있는 모양이지.

    그는 몇 대원에게 경계를 지시하고 보고한 대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갔다.

    박살난 철창.

    거기서 금방 나왔는지 결코 좋지 않은 안색의 어린이 두명.

    둘다 비슷한 생김새의 여자아이인것으로 보아, 둘은 자매인것 같았다.

    꼴은 처참했다.

    누더기를 걸치고 여기저기 타박상에 꾀죄죄한 모습.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팔다리는 가늘었다. 산발이 된 검은 머리 사이로 공허한 눈빛.

    게다가 울음을 그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도 흐끅, 흐끅 숨을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들을 한 여성대원이 고운 목소리로 안심시키고 있었다.

    “걱정할 거 없어, 얘들아.”

    ‘카리나인가.’

    첫 임무인데도 아주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다.

    그런 재능이라면 적어도 쉽게 죽지는 않겠지.

    그렇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으니, 옆에 선 대원이 귓속말로 보고한다.

    “성폭행 흔적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행운이었다.

    뭐, 보나마나 더 비싼 값을 받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일은 하나라도 없는게 좋으니까.

    “카리나, 수고했다. 괜찮다면 네가 아이들을 좀 돌보고 있어라. 여기 너만한 여성대원이 없어서…….”

    아이들도 예쁘고 추한건 안다.

    다른 대원에겐 미안하지만, 그 얼굴을 들이대면 도로 무서워하지 않을까 싶다.

    인신매매는 예상한 사안이 아니라 미흡했다.

    아동심리상담가를 준비하지 못한것이다.

    사정을 알고있는 카리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의 붙잡은 손을 부드럽게 어루어만지며 내려다본다.

    “이름이 뭐니?”

    “카렌…..이요.”

    “카렌이구나. 동생은?”

    “아이렌…..”

    “카렌, 아이렌. 둘다 예쁜 이름이네.”

    손을 주물러주고 있으니 어째선지 약지부분에 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은 다른 손이었지만, 똑같이 약지에 점이 나있다.

    어라, 마치 반지같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의 과거떡밥에 이어 예르나의 과거썰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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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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