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9

       토너먼트 전날.

         

       토너먼트가 치러질 거대한 대련장엔 임시 가벽과 시설이 세워졌다.

         

       “어우, 드디어 끝났다.”

         

       남은 목재를 치운 더스틴은 소매로 얼굴의 땀을 훔쳤다. 가을바람이 달아오른 피부를 식혀줬다.

         

       마공학부의 고학년생이 망치로 좌석을 두들겨 튼튼함을 살피며 다가왔다.

         

       고학년생의 손가락이 대련장을 둘러싼 투명한 벽을 가리켰다. 벽엔 마석 가루가 연한 마법진을 그리며 은은히 빛났다.

         

       전투가 관람석까지 미치지 않게 하는 용도였다. 성곽 축조 기술의 일종이라 대련장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게 번거로워지긴 하지만 튼튼하고 안전했다.

         

       “내일 아침에 재확인하긴 해야겠지만 이상은 없을 거야. 우린 이만 가볼 테니까 혹시 문제라도 있으면 바로 알려줘.”

       “예.”

         

       고학년들이 떠난 뒤 더스틴은 학생회로서 시설을 더 살펴보다가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대련장을 나왔다. 보고서의 뒷면에 살핀 내용을 대략 적고 품에 접어 넣었다.

         

       “파스텔은 학생회실에 있으려나.”

         

       더스틴은 요즘 굉장히 떨떠름했다. 파스텔과 관련된 괜한 소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그렇다.

         

       ―야, 더스틴!

         

       복도를 걸으니 자칭 타칭 파스텔의 친구친구가 말해왔다. 참고로 파스텔의 친구친구라 해서 더스틴의 친구라는 의미는 아니다.

         

       ―너 그거 알고 있냐? 내가 어제 파스텔을 도와줬는데 또 다른 면모를 봤다니까!

         

       서두부터가 별로다. 파스텔을 도와주긴 뭘 도와줬다는 건가. 레너드를 뒤 따라다니는 거에 불과하면서 말이다.

         

       정말 파스텔을 도와주는 건 학생회 일원은 돼야 가능할 것이다. 더스틴 자신처럼.

         

       ―파스텔이 혼자 마족의 비공정을 습격했다길래 기사단에 아는 친척이 있어서 그때 상황을 물어봤는데 글쎄 그게 크으!

         

       친구친구가 감탄사를 흘렸다.

         

       ―발언 실수를 잠깐 했는지 이런 말을 했다더라. 역할을 끝낸 도구는 용도 폐기야. 크으! 평소답지 않게 시크해! 내가 이 짜릿한 반전 매력에 크래프트 각하를 좋아한다니까! 크래프트 후작이면 역시 이러셔야지!

       ―그래서 뭐.

       ―뭐긴 뭐야 그냥 그렇다고! 너 오늘도 선배들과 육체 노동하러 가냐? 땀 냄새가 나는 노동의 현장!

         

       친구친구가 어깨동무를 했다.

         

       ―너 그건 알고 있냐? 파스텔은 인간도 아닌지 땀 냄새도 안 나더라! 난 못 맡아 봤지만 레너드가 하여튼 그렇대! 하하하! 선배들과 육체노동 열심히 해라!

         

       한참 비웃던 친구친구가 등을 때리고 떠났다.

         

       “떠올리기만 해도 열이 받네.”

         

       더스틴은 길가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그리곤 얼굴의 땀을 괜히 훔쳤다.

         

       과장된 소문이 아카데미에 나돌고 있다.

         

       파스텔이 하수도의 마족들을 독가스로 제압했다느니.

         

       아카데미 쿠데타는 계획된 일이었다느니.

         

       마족의 테러조차 파스텔이 구상한 대계의 일부였다느니.

         

       남자애 중에선 파스텔과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더스틴이 볼 땐 전혀 맞지 않은 소문들이었다.

         

       그 순진한 파스텔이 독가스 같은 걸 들고 다닐 리 없지 않은가. 마족들이 마비된 상태로 체포된 건 마족의 마비독을 우연히 빼앗아 사용했던 거겠지.

         

       그리고 아카데미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쿠데타 직후 현장에서 파스텔을 도운 더스틴은 파스텔이 울상으로 해명한 얘기를 똑똑히 들었다.

         

       ―난 그냥 친구들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야! 그런데 가만히 있었더니 사태가 이렇게나! 너희는 날 믿어줄 거지이?!

         

       억울해서 글썽글썽한 분홍 눈동자를 마주한 더스틴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물론이지! 나만 믿어!

         

       옆에서 같이 듣던 엘리가 어째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봤지만 착각일 것이다. 엘리는 언제나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니까.

         

       그리고 마족의 테러를 파스텔이 조장했다는 소문은 얘기할 값어치도 없다. 아무리 기사단에서 나온 소문이라고 해도 진실과 너무 거리가 먼 것 아닌가.

         

       그 예쁘고 귀여운 파스텔이 테러를 조장할 리 없잖아.

         

       사실 더스틴은 왜 이런 소문이 친구도 없는 자신에게까지 들리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학생회에 유일하게 가입된 동급생.

         

       누구보다 파스텔과 가까운 남학생.

         

       시기와 질투에 휩싸인 놈들이 말도 안 되는 소문을 구상해서 자신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친구가 없다는 약점을 찔러서 말이다.

         

       고약한 놈들.

         

       더스틴은 길가 화단의 분홍 꽃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다가가 시를 읊었다.

         

       “바람 잘 날 없는 그대여, 그럼에도 오늘의 향기는 부드럽구나.”

         

       고풍스럽게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슬쩍 향을 맡아 보자 별 향기는 안 났다.

         

       이게 무슨 꽃이야.

         

       더스틴은 괜히 뻘쭘해져서 꽃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다 소녀 실루엣을 발견했다.

         

       검은 머리의 마족 소녀, 엘리였다.

         

       토너먼트 선전지를 끌어안은 엘리가 기상천외한 메스꺼운 광경을 목격했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정적이 흘렀다.

         

       마족 소녀는 한심한 무언가를 보는 눈빛으로 변했다.

         

       더스틴은 얼굴에 스팀이 올라왔다.

         

       “아니, 이게, 아니.”

         

       꽃을 가리켰다가 엘리를 보는 등 멈칫멈칫거렸다.

         

       “하아.”

         

       엘리가 귓바퀴를 쓸었다. 머리카락이 살랑였다.

         

       “남자애들이란.”

         

       다가오더니 토너먼트 선전지를 절반 건넸다.

         

       “이거 고쳐야 하니까 따라와.”

       “어? 어? 뭘 고쳐?”

         

       더스틴은 얼결에 받아 들었다.

         

       소녀의 가는 손가락이 받아 든 선전지 한쪽을 가리켰다.

         

       “인쇄 내용이 잘못돼서 한 장씩 모두 고쳐줘야 해. 다시 인쇄 맡길 스케줄은 안 되니까 우리 손으로 일일이.”

         

       설명을 마친 엘리가 냉랭하게 몸을 돌려 앞서 걸었다.

         

       “야, 잠시만!”

         

       더스틴은 서둘러 뒤쫓았다. 걸음걸이가 맞춰지자 옆에서 같이 걸었다.

         

       “어디서 고치려고?”

       “학생회실. 네가 딴 길로 샐까 봐 찾으러 온 거야.”

       “어차피 학생회실로 가려 했는데?”

       “그럼 내가 찾기 전에 오던-”

         

       정면에서 오던 동급생 무리가 엘리와 부딪혔다. 엘리가 휘청이고 선전지가 쏟아졌다. 선전지가 길바닥을 물들였다.

         

       “엘리?”

         

       더스틴은 엎어지려는 엘리를 잡아챘다. 가벼운 무게감이었다.

         

       학생 무리가 그대로 지나치며 웃음을 흘렸다.

         

       ―마족이 무슨 얼굴로 있는지 모르겠어. 양심이 있다면 자퇴해야 하는 거 아니야?

         

       더스틴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쟤네.”

         

       엘리가 잡은 손을 풀고 몸을 세웠다. 지면에 쏟아진 선전지를 보더니 줍기 시작했다.

         

       더스틴은 따라 줍다가 신발 자국이 남은 선전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몸을 일으켜 멀리까지 떠난 애들을 향해 외쳤다.

         

       “야 너네들!”

       “됐어.”

         

       엘리가 더스틴의 팔을 붙잡아왔다.

         

       “괜한 짓 하지 마. 어차피 너 친구도 없잖아.”

         

       갑자기 현실을 인식 당한 더스틴은 벙쪘다.

         

       신경 써줘도 싫어하네.

         

       선전지를 주운 뒤 별일 없이 학생회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각자 자리에 앉아 토너먼트 선전지를 고치기 시작했다.

         

       틀린 문장에 줄을 긋고 그 아래에 새 문장을 적어주는 작업이라 시간이 걸릴 뿐 딱히 어렵진 않았다.

         

       미세하게 사각이는 깃펜 소리가 학생회실에 울렸다.

         

       그리고 화이트노이즈를 깨트리듯이 문이 벌컥 열렸다. 분홍색 소녀가 울상인 얼굴로 들이닥쳤다.

         

       “친구들아아!”

         

       양팔이 파닥였다.

         

       “애들이 나랑 안 놀아줘! 왜 이러는 걸까?! 왜 이러는 걸까?!”

         

       아이돌 등장에 더스틴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어떻길래?”

       “내가 막 인사를 하는데! 하는데!”

         

       파스텔이 과장되게 휘청이며 더스틴의 테이블에 기댔다.

         

       “못 들은 척하고 도망치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졌다니까! 어엄청!”

         

       이만큼! 이만큼!

         

       파스텔이 양팔을 휘저으며 표현했다.

         

       “무려 세 명이나 날 피했어!”

         

       공감해 주려던 더스틴은 멈칫했다.

         

       그것밖에 안 돼?

         

       너 애초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걸잖아.

         

       그런데 세 명밖에 안 피했어?

         

       파스텔에게 멋대로 대련 신청하고 털렸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당하고, 그래 놓고 학생회 가입해서 파스텔이랑 가까이 지낸다고 욕먹으며 여태까지 친구 한 명 없는 더스틴에겐 이 뻔뻔한 고민이란 상상 밖이었다.

         

       “그럴만하지.”

         

       엘리가 깃펜을 내려놓았다.

         

       “엘리이!”

         

       파스텔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더니 이번엔 엘리의 테이블에 늘어졌다.

         

       “엘리 들어봐! 들어봐! 내가 말이야! 애들한테 인사를 했는데에!”

         

       엘리가 무시하더니 테이블의 서랍을 열어 웬 조잡한 신문 뭉치를 꺼냈다. 신문 뭉치가 파스텔의 손에 쥐어졌다.

         

       “무려 세 명이나! 오잉.”

         

       파스텔이 신문을 읽었다.

         

       “오이잉?!”

         

       분홍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뭐길래 그래?”

         

       더스틴은 자리를 옮겨 신문을 들여다봤다. 신문부에서 저렴하게 뿌렸는지 값싼 황색 종이로 된 신문이었다.

         

       자극적인 1면 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문부 자백, “우리는 그분의 검은돈을 받고 앞잡이 짓을 했다.”]

         

       그분이 누군진 안 적혀 있었지만 아무도 헷갈리지 않을 내용이었다. 그동안 쓰지 못한 내용을 자백한다며 그분의 속내에 관해 설명해 놨기 때문이다.

         

       무려 쿠데타를 위한 테러 조장 혐의다. 그분이 하수도에서 마족을 제압할 때 쓴 독가스가 수질원 테러에 사용됐을 독가스와 성분이 똑같았다는 분석 내용까지 있었다.

         

       “뭐 이런 날조가 다 있어?!”

         

       더스틴은 기사를 삿대질했다.

         

       더 읽지 않아도 날조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야 그럴 게 그 파스텔이 독가스 같은 걸 쓸 리 없잖는가. 우연히 마족들의 마비독을 주워서 제압한 건데 말이다.

         

       그런데 정작 엘리는 감상이 다른지 미묘한 눈빛으로 파스텔을 주시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파스텔이 기겁했다.

         

       “난 안 했어! 착한 내가 수질원 테러 같은 나쁜 짓을 조장할 리 없잖아!”

         

       소녀의 품에서 유리병이 꺼내졌다. 완전 수상쩍은 노란 액체가 찰랑였다. 액체는 조금씩 기화하며 더욱 수상한 노란 기체로 변했다.

         

       “이건 그냥 마비독이야……!”

         

       파스텔은 안전!

         

       안전한 친구!

         

       더스틴은 멈칫했다.

         

       그게 왜 품에서 나와.

         

       전투 상황도 아닌데 미심쩍은 유리병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애가 독극물을 제조하지 않을 확률은?

         

       엘리가 더 강렬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우아악! 왜 그래?! 난 정말 안 했어!”

         

       파스텔은 억울함 속에서 허둥댔다.

         

       그러다 손을 삐끗했다.

         

       어라.

         

       놓친 유리병이 슝 추락했다. 지면과 부딪히고 노란 마비 가스가 폭발했다.

         

       더스틴과 엘리가 비명을 지르며 휩쓸렸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얘들아아!”

         

       친구들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털썩 털썩.

         

       선량한 파스텔은 놀라서 기겁할 광경.

         

       “으아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파스텔은 볼을 누르며 경악했다.

         

       친구들이 쓰러졌어!

         

       나쁜 신문부의 나쁜 기사 때문에!

         

       으아아!

         

       “용서할 수 없어! 내가 복수해 줄게!”

         

       파스텔은 친구를 위해 학생회실을 박차고 도망쳤다.

         

       나쁜 신문부를 착한 신문부로 바로잡겠어!

         

       크래프트 가문의 명예를 걸고……!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