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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엘라는 평소보다 기합이 더 들어가 있었다.

       그녀의 옷차림에서부터 티가 났다.

         

       옷깃과 소매는 물론 치마 접히는 부분까지 날카롭게 각을 세웠으며, 구두와 견장은 사람 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을 냈고, 모자의 깃털 장식은 보라색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아예 새 걸로 바꾼 듯했다.

         

       심지어 그녀가 기르는 동물들도 꽃단장을 했다.

       비둘기 구돌이의 목에는 검은색 나비넥타이가, 생쥐 찍순이의 꼬리 끝에는 분홍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둘 다 머리 위에는 엘라가 쓴 것과 똑같이 생긴 작은 모자를 썼다.

         

       저런 소품은 또 어디서 구한 것일까.

         

       내 질문에 엘라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거? 모직점에서 재료 사 와서 직접 재단한 거야.”

         

       그녀는 비둘기와 생쥐가 쓴 모자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둘은 이것저것 몸에 매달았는데도 엘라가 거슬리지 않게 잘 처리했는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엘라 양의 다재다능함은 끝이 없군요, 후후.”

       “뭐, 뭐라는 거야 갑자기…….”

         

       엘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림 실력은 왜 그런 걸까요?”

       “윽.”

         

       그림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가만히 있던 유라크네와 스벤의 입에서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들 그저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우후후, 그거 말이죠? 정말 대단했었죠.”

       “핫핫, 무엇을 그린 건지 몰라도 우리 서커스단의 단원으로 들이기에 적절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어.”

         

       스벤의 말에 유라크네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거 단장님이었어요.”

       “아, 이런! 나는 또 금색 털을 가진 굶주린 원숭이 변종인 줄 알았는데…….”

       “시, 시끄러워!”

         

       엘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내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괘, 괜한 얘기를 꺼내서는…….”

       “저는 아쉬운데요. 도대체 어떻게 그렸길래 다들 반응이 이런지…….”

       “몰라! 나도 기억 안 나! 태워버렸으니까 신경 쓰지 마!”

         

       엘라는 눈을 가릴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며 자리에 거칠게 주저앉았다.

         

       “마야가 잘 수습하겠지. 걔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하니까. 나도 배웠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엘라는 그저께 단원들을 모아두고 간판을 그릴 것을 제안했다.

       개막식에서 브왈레가 암시한 내용과 카바레 직원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이 도시주민들의 호감을 얻는 게 아무래도 시험에서 큰 역할을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호텔 앞에 간판이라도 크게 걸어두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 했다.

         

       간판은 공연에서 있어서 중요한 홍보수단 중 하나였다.

       우리에게는 예전에 악스빌 상인회에서 그려준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변통으로 만든 거라 다른 서커스단이 내거는 것에 비하면 매우 조악했다.

       그래서 간판을 새로 그리기로 한 것이다.

         

       환상 마법사가 활약하는 시대지만 이런 일에는 역시 화가를 쓰는 게 나았다.

       간판은 몇 날 몇 주고 밖에 걸어둬야 하는데 수십 명의 마법사를 갈아 넣지 않는 이상 그런 환상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천재라는 마야조차 간판으로 쓸 크기의 환상을 유지하는 것은 1시간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게 엘라는 자신만만하게 붓을 들고 간판에 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워낙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그녀라 이번에도 잘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결과물은 처참했다.

       단원들이 반으로 부러뜨려버린 악스빌 상인회에서 마련해준 간판을 다시 붙여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내가 그릴게.”

         

       보다 못한 마야가 붓과 팔레트를 들고 나섰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

       환상을 조형하던 실력을 보면 서커스 입구에 걸 간판을 그리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 번 작업에 착수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예선전 과제 발표회에 참여하는 것도 일해야 한다고 거절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유라크네의 설득에도 고개를 저었다.

         

       오늘 행사는 축하 공연도 명사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없었다.

       그저 간식을 곁들인 간단한 식사와 시험 과제 발표, 제비뽑기 몇 번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나올 것이다.

         

       유라크네와 스벤이 따라오겠다고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단원들은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오늘은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서 그나마 가장 낯을 덜 가리는 둘이 함께할 수 있었다.

         

       행사가 열리는 곳은 개막식이 있었던 장소와 같았다.

       장미 풍차 카바레의 1번 홀.

       나는 이번이 3번째 방문이었다.

         

       전등이 떨어졌던 천장을 괜히 한 번 올려다보고, 피고인으로 섰던 무대에도 괜히 눈길이 갔다.

       이곳은 올 때마다 내게 좋지 않은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오늘만은 별일 없기를 바랐다.

         

       “어이, 자네 왔군.”

         

       건너편 테이블에서 닭 볏처럼 좌우로 흔들거리는 붉은색 모히칸과 붉은색 수염을 단 사내가 나에게 다가왔다.

         

       수탉 미노바.

       샛별 서커스단의 단장.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재판에서 그가 내 편을 든 이후로 나름 호의를 갖게 됐다.

         

       “하하, 안녕하신가! 이쪽이 부단장? 반갑네! 소문대로 빈틈없어 보이는군. 오오, 이쪽은 아름다운 미인이시구려! 흠, 당신은 얼굴을 가리고 있군. 뭐 어때, 하하!‘

         

       그의 유쾌한 인사에 나도 안부를 물으며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사람이 이렇게나 변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쾌남이 불과 2년 만에 그렇게 악의에 찬 사람으로 비틀린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미노바는 가수 겸 차력사를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덩치도 컸고 근육도 잘 발달해 있었다.

       그는 하체와 비교해 상체가 상대적으로 비대했는데, 특히 쩍 벌어진 어깨가 인상적이었다.

       어림짐작으로 양쪽 어깨가 각각 30cm는 넘는 것 같았다.

         

       그걸 강조하고 싶었는지 한쪽 어깨에는 큰 인형까지 얹어두었다.

       수탉이라는 그의 별명과 어울리게 병아리 모습을 한 인형이었다.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병아리 인형이 갑자기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흠칫 놀랐으나 웃는 남자 덕분에 원래부터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 아래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5살 채 되지 않은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노란색의 보송보송한 털이 달린 일체형의 동물 잠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인형으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녀였다.

         

       미노바는 마치 누군가 발견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씩 미소를 지었다.

       

       “소개하지! 우리 서커스단의 귀염둥이 부단장인 루엘로 양이라네!”

         

       그가 어깨의 소녀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의 손에 들린 아이는 얼굴을 붉히며 노란색 날개 장식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아빠 딸이에요…….”

         

       루엘로가 아빠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 행동이 정말 날갯짓하는 병아리처럼 보였다.

         

       내 입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그려졌고, 엘라를 비롯한 단원들도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만큼 당황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소란스러움 때문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뭐야? 누구야?

       -앗, 저 사람 설마 그 원더스타인 아냐?

       -뉴스에 실린?

       -와, 잘생겼다. 눈 호강 100배!

       -맞은 편의 남자는 누구래?

       -몰라.

       -그 샛별 서커스단 단장 같은데.

       -아우, 시끄러워. 목소리 한 번 더럽게 크네.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나를 향한 것이었다.

       개막식에서 일어난 재판 건 때문이다.

         

       그러나 루엘로는 아빠의 요란 때문에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는지 날개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퓨퓨 내쉬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미노바에게 말했다.

         

       “딸이 있었습니까?”

       “물론이지! 내 나이가 이제 40이 넘는데 결혼을 안 했을까.”

         

       그 말에 나는 뭔가 단단한 것이 머리를 내려치는 느낌을 받았다.

       TT1에서 그는 실종된 단원들 걱정은 좀 했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프로필이나 뒷사정에서도 딸에 대한 말은 없었다.

         

       그가 2년 뒤에 사람이 뒤틀려버린 이유.

       유난히 나에게 친한 척을 하는 이유.

       두 가지는 한 가지로 연결됐다.

         

       나는 개막식에서 그가 갑자기 나를 큰 소리로 응원하는 퍼포먼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아나이스의 병을 치료해준 사실이 밝혀졌을 때부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향해 속삭였다.

         

       “병이 있습니까?”

         

       미노바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와아악! 귀여워! 귀여워!”

         

       엘라가 미노바의 손에서 루엘로를 떼어내 품에 안았다.

       그녀는 동물과 귀여운 것을 좋아했다.

       병아리 잠옷을 입고 있는 루엘로의 모습은 그녀가 날뛸 만한 것이었다.

         

       미노바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잠시 가라앉은 표정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알았나?”

       “……그냥 느껴지더군요.”

       “역시……! 베르그송 자작의 병을 치료했다는 건 사실이었나 보군.”

         

       그는 그러고는 입을 꽉 다물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데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바보라도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섣부른 대답을 하기 전에 진화연구소의 진단 기능으로 그녀의 병부터 살폈다.

         

       다행히 치료 가능한 병이었다.

       연구소는 바로 견적을 불러주었다.

         

       “고칠 수 있습니다.”

         

       질문은 없었지만 나는 대답했다.

       미노바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표정을 굳혔다.

         

       “미안하네. 내가 먼저 부탁했어야 하는 건데.”

       “후후, 신경 쓰지 마시죠.”

         

       그때, 병아리 잠옷을 입은 아이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아빠, 이것 좀 봐!”

         

       거기에는 엘라가 부리는 쥐와 비둘기가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재주를 넘고 있었다.

       찍순이가 두 다리로 번쩍 서더니 백 텀블링을 연속으로 했고, 구돌이가 날개를 접은 채 공중에서 아슬아슬한 선회 기동을 보여주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노바는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딸을 보며 바로 마주 웃어주었다.

       루엘로는 자기가 동물을 부리기라도 한 것처럼 우쭐거리며, 엘라에게 다른 걸 또 보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미노바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기한 일이야. 자식이 생긴다는 건.”

       “그렇……습니까?”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 보여도 난 젊었을 때 상당한 개망나니였네. 유랑 곡예사였지만, 사실 강도나 도둑질도 겸했지. 돈만 받으면 무슨 일이든 했어. 사람을 때리고, 돈을 뺏고, 불을 지르고……. 남의 고통 따위 신경 쓰지도 않았네. 그렇게 번 돈을 술이나 여자에 허비하면서 입에서는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만 쏟아냈어. 나보다 열심히 살고 잘난 인간들은 모두 욕하고 질투했지.”

         

       그는 주먹을 굽혔다 펴며 말했다.

       

       그는 과거를 말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미래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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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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