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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요나넴! 구해주러 온 검까?!”

       “역시 요나넴임다!”

       

       “아니, 나도 붙잡혔어.”

       

       “???”

       “???”

       

       혼란스러워하는 둘.

       

       뭐랄까. 그렇게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기대를 배신하고 싶어지잖아? 방금 건 그런 본능이 시킨 말이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둘을 향해 낄낄 웃어주며 유니콘 단검으로 밧줄을 풀어주었다.

       

       “농담이야. 근데 너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는 건 사실이야.”

       

       “아, 고맙슴다. 근데 저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니….”

       “그럼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 검까? 이브 두목이 부탁해서 온 게 아니었슴까?”

       

       “이브 씨가 너네가 잡힌 걸 어떻게 알고 도와달라고 하겠냐….”

       

       “아.”

       “앗.”

       

       어휴 이 빡대가리들.

       

       그래도 우리 집 빡대가리지.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레몬과 애플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작대며 말했다.

       

       “저놈들. 황혼을 삼키는 자거든? 이단은 발견 족족 때려잡는 게 국룰이기도 하지만…그보다 내가 찜해둔 거에 눈독을 들이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처죽여야지.”

       

       “히익!”

       “뒷골목의 지배자…!”

       

       아니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황혼을 삼키는 자가 동네 양아치들도 아니고.

       

       어쨌든 다친 곳은 없는 듯하니 굳이 성수를 부어줄 필요는 없겠다. 

       

       “자, 알겠으면 일단 레몬은 저리 떨어져.”

       

       “설마 요나넴도 싸우시려는 검까?”

       “요나넴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저기서는 방해일 검다.”

       

       “누가 싸우러 간데? 레몬 너한테서 지린내가 나니까 떨어지라고 한 건데. 아, 애플은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

       

       “너, 너무함다!”

       “역시 요나넴. 뛰어난 판단임다. 냄새나는 레몬은 어서 멀어지는 검다.”

       

       입으로 쉿쉿 소리를 내며 내게 달라붙는 애플. 반면 레몬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꾸물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묘하게 어기적대는 것이 자기도 신경 쓰이긴 했나 보다.

       

       그렇게 자세를 낮춘 채, 애플과 어깨를 맞댄 채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잡다한 놈들은 리디아와 카렌의 손에 얼추 정리된 상황. 남은 것은 엘리와 작은 체구 둘 뿐.

       

       하지만 그 둘의 싸움이 상상 이상으로 격렬했다.

       

       퍼엉!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 엘리의 주먹이 만들어 낸 풍압이 잡초를 갈고 지면을 뒤엎는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폭력이 작은 체구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없으니까 이렇게 풍압이 애꿎은 땅바닥이나 부수고 있는 것이지.

       

       부분적으로 느려지는 시간, 지치지 않고 전의를 불태우는 반투명한 전사, 천벌이라도 내리듯이 마른하늘에 쏟아지는 번개, 그리고 이미 죽은 이단자들의 시체마저 꾸물거리며 엘리에게 들러붙는다.

       

       물론 대부분은 엘리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진 못하고 있다.

       

       시간 역장을 힘으로 깨부수고, 반투명한 전사는 벌써 수십 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번개는 엘리의 수도에 역으로 쪼개졌으며, 고기 반죽이 되어 들러붙는 시체는 엘리의 발길질 한 번에 터져나간다.

       

       작은 체구는 사랑의 여신에게서 받아낸 신성력으로 온갖 죽은 신들의 권능을 흉내 내고 있었다.

       

       물론 진짜 신의 기적과 비교하면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천재지변과 다름없는 끔찍한 위력.

       

       그렇다면 아무렇지 않게 그 천재지변을 걷어내는 엘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엘리 강하네….”

       

       “괴물임다.” 

       “사람 아닌 검다.”

       

       “어허! 엘리는 평범한 사람이야! 저 나이 먹고, 저런 힘과 그에 걸맞은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솔 아다라 매일매일 번뇌에 시달리는 평범한 여자아이…아니, 아이는 아닌가. 아무튼 그런 사람이야!”

       

       “갑자기 친근감이 솟아남다.”

       “동료였던 검까….”

       

       갑자기 편해진 레몬과 애플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다.

       

       한쪽 팔이 없음에도 엘리는 강했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엘리는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투박하게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차근차근 상대의 투로를 끊어내고 있었으니까.

       

       사제는 그 특성상 궁지에 몰릴수록 더 간절해지고, 더 강한 기적을 부릴 수 있지만…그럼에도 계속해서 작은 체구가 불리해지는 것은 엘리의 치밀한 전투 방법 때문이리라.

       

       잔재주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힘을 무기로 삼아, 상대보다도 교활하게 싸운다.

       

       이건 사냥이었다. 엘리가 늑대, 작은 체구가 양 역할을 맡은…결말이 정해진 연극.

       

       작은 체구는 자신이 사냥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은 엘리의 노련함에 막혔고, 도움을 줄 외부의 인원은 리디아와 카렌의 손에 전부 죽었다.

       

       괜히 리디아와 카렌이 잡다한 놈들을 전부 정리하고도 엘리에게 가세하는 대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더하거나, 뺄 필요 없이. 지금이 딱 좋기 때문이지.

       

       이대로만 가면 결국 모든 수를 봉쇄당한 작은 체구가 엘리에게 정타를 허용하고 그대로 머리가 날아가리라.

       

       아무리 황혼을 삼키는 자라도 죽음에서 부활하는 방법은 없…아니, 있나?

       

       죽음의 신의 권능을 이용해 언데드화 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잘 쳐줘야 생전과 동일, 대부분은 더 약해진다.

       

       언데드의 몸은 몇 가지 이점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약점이 많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슬슬 엘리의 공격이 닿기 시작한 건지 작은 체구가 푹 눌러 쓴 로브가 당장이라도 벗겨질 것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흐읍!”

       

       쿠웅!

       

       진각을 밟으며 한계치까지 당긴 주먹을 내지르는 엘리. 그 일격이 온갖 권능을 뚫고, 마침내 갑옷처럼 작은 체구를 지키던 신성 결계를 깨뜨린다.

       

       채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자색 신성력.

       

       아쉽게도 결계를 뚫느라 엘리의 주먹은 그 힘을 대부분 잃었지만…로브를 벗겨낼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다.

       

       후웅!

       

       작은 체구의 코끝에서 멈춰 선 엘리의 주먹. 그리고 뒤늦게 불어온 풍압이 녀석의 로브를 뒤로 젖힌다.

       

       “…어?”

       

       그리고 엘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얼빠진 목소리.

       

       그녀의 얼굴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경악으로 일그러졌고, 노란 짐승의 눈을 가득 채우던 투기는 죄책감으로 변화한다.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똑같은 분홍색 머리카락과 분홍색 눈동자. 하지만 인간의 것이 아닌 길쭉한 귀. 하나같이 미형인 엘프 중에서도 눈에 띄는, 같은 남자가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인상이지만, 그렇기에 피폐한 매력을 뿜어내는 미소년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래서야 남자 새끼의 잘생김에 놀란 것 같지 않은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상상하고 설정한 얼굴이 고스란히 구현되어있는 것에 놀란 것이다.

       

       그래. 지금껏 엘리와 싸우고 있던 작은 체구. 녀석은 놀랍게도 내 주인공이 되었어야 할 녀석이다.

       

       …엘리가 놀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랑 같은 핑발이라 그런가?

       

       하지만 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이상했다.

       

       남녀역전 소설의 재미는 상식의 괴리에서 온다. 빙의 혹은 환생을 기본 틀로 가져가는 것은 그래서고. 

       

       내 주인공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녀석은 지구에서의 기억을 가진 채, 고아의 몸에 빙의됐다는 설정이니까.

       

       그렇기에 도저히 이해되질 않았다.

       

       어째서 주인공이 황혼을 삼키는 자의 편에 선 거지?

       

       단순히 악역 조직에 들어가서 놀란 것이 아니다. 지구 태생인 만큼 신앙심이 희미한 녀석이다. 결코 광신도가 될 수 없단 말이지.

       

       거기에 주인공답게 기본적인 성향은 선하다.

       

       절대 ‘몬스터 다음은 사람을 제물로 바쳐볼까?’ 같은 생각을 하는 녀석이 아니란 말이다.

       

       대체 어쩌다….

       

       “너…대체 어쩌다….”

       

       내가 하려는 말을 대신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엘리.

       

       그 말에 잠시 멈칫한 주인공이 엘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동조차 않는 입가. 하지만 녀석의 반쯤 죽은 눈에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격정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누나.”

       

       “다, 당연하지! 하지만 왜…아니, 아니지. 지금이라면 보는 놈들도 없으니 괜찮을 거야.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어. 여기서 죽은 척하고, 나를 따라와. 이번에야말로….”

       

       “헤에. 나한테 찔린 탓에 한쪽 팔을 잃고도 그런 소리를 할 줄이야.”

       

       뭐?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은 내용은 그렇다 치고 주인공 때문에 엘리가 한쪽 팔을 잃었다고?

       

       그런 설정은 없…아니, 그럴 수도 있나. 내가 명시한 설정은 잘 지켜지지만, 그 외의 것은 내 추측을 벗어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 경우에는 엘리가 주인공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품고, 절대 배신하지 않는 조력자가 된다는 설정에 추가된 뒷 설정이라고 봐야겠지.

       

       주인공 본래의 몸과 엘리는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으나, 주인공이 그 몸에 빙의하며 엘리만 주인공을 기억하는 그런 상황.

       

       만약 그러하다면 엘리가 주인공에게 조력하는 이유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주인공은 엘리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즉, 저 육신에 들어있는 것은 본래의 주인.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의 몸에 지구인의 영혼이 빙의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아직 빙의할 때가 아닌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무언가 틀어져서 앞으로도 쭈욱 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저 녀석은 내가 아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엘리가 무언가 빚을 졌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주먹을 내린 엘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건…이젠 이해해. 너한테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을 테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겠지. 하지만 이젠 아냐. 너랑 비슷한 처지의 아이도 있어. 분명 이번에야말로 진짜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

       

       “…누나는 변하지 않았구나.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기계적으로 입가를 끌어올린 주인공이 품에서 피 묻은 단검을 꺼냈다. 척 봐도 심상찮은 신성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성물은 확실하다.

       

       다만 느껴지는 신성력이 사랑의 여신의 것이 아니다. 보다 이질적인…왜곡되었다던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아마 이미 죽은 다른 신의 성물인 거겠지.

       

       단검을 본 엘리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강인했던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연약한 모습.

       

       밀랍 인형 같은 무감각한 주인공의 표정. 하지만 여전히 눈동자만큼은 기이한 열기를 품고 있는 녀석이 엘리를 향해 단검을 흔들었다.

       

       “누나는 우리를 구해줄 수 없어. 만약 그러고 싶다면…내 손에 죽어줘 부탁이야.”

       

       “…….”

       

       창백해진 엘리의 안색.

       

       아니, 저 씹새끼가?

       

       리디아와 카렌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방관하던 태도를 바꿔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한발 빨랐다.

       

       소리를 먹는 발걸음, 투명 망토, 헤이스트 부츠.

       

       이 모든 것이 동시에 활성화되며 내 존재가 세상에서 잠시 격리된다.

       

       나 자신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속도로 달려 도착한 주인공의 등 뒤.

       

       유니콘 단검으로 뒤에서부터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푸욱.

       

       크게 뜨인 눈. 덜덜 떨리는 목을 간신히 꺾어 나를 돌아보는 주인공의 귓가에 속삭였다.

       

       “남의 여자한테 꼬리치면 안 되지.”

       

       그리고는 단검을 옆으로 회전시켜 심장을 완전히 으깨놓았다.

       

       “잘 가. 시나.”

       

       “……!”

       

       입만 뻐끔거리다 그대로 축 늘어져 눈을 감는 녀석.

       

       주인공을 죽였다.

       

       아니, 정확히는 주인공이 될 녀석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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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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