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됐지만 일어난 일이니 안 믿을 수도 없다.
처음에는 이곳의 신을 받은 줄 알았다.
그런데 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몸주신이 직접 점지해서 태어난 루나를 보면 더 이상 생각해 볼 여지도 없었다.
“허…물병 안에 바다를 담는 꼴이네.”
아무리 신가물로서의 그릇이 크다고 하더라도 감당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다.
그러니 아직도 ‘나는 어디의 어떤 신령이다.’하고 공수가 내려오지 않는 것이겠지.
새근 –
새근 –
루나의 작은 숨소리가 마차 안을 채웠다.
지금 우리는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마차의 밖에서는 말을 탄 성기사들이 우리를 호위하는 중이었고.
“신기하네.”
마차에 얼마나 돈을 들이 부은 건지 곳곳에 마나의 흔적이 가득했다.
열심히 달려도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차.
교황이 직접 움직이니 이 정도는 돼야 구색이 맞춰지려나?
워낙에 소탈한 사람이라 자꾸 교황이라는 걸 까먹는다.
“…”
“….”
“….”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안 까먹을 수가 있겠냔 말이다.
행여나 루나가 깰까 봐 숨도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
심지어는 눈동자도 조용히 굴리는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될 텐데…”
교황아저씨와 클라인 영감.
나와 세레나.
잠들어 있는 루나까지,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은 총 다섯이었다.
그리고 나를 빼고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영감님.”
클라인 영감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님은 교단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만 말이냐?”
“네.”
다시 말하지만 이 영감은 돌아다니면 돌아다닐 수록 인생이 피곤해지는 사람이다.
오래된 성벽처럼 한 자리에 머무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영감에겐 나쁜 팔자도 아니었고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는 거다.
“기억하시나요? 성벽이라고 했던 말.”
“물론 기억은 하고 있다.”
“영감님 팔자는 혼자만의 팔자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엉켜있어요.”
“그럴 수도 있는 것이냐?”
“네. 영감님의 삶이 특이하기도하고…”
오래된 성직자라 그럴 수도 있다.
거의 교단과 동일시 되는 삶이었으니까.
“있어야 할 자리에 성벽이 없으면 문제가 생길거에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소리지만 그럴 수록 잊기 쉬운 법.
“자리를 찾아가야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그것 또한 신탁이냐?”
“비슷해요.”
일단은 공수가 그렇게 내려왔었다.
가만히 있어야 할 사람이 돌아다니니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영감이 교단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교황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클라인경이 신전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 하오.”
“하오나…”
“믿음직한 성기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영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저런 성정을 가졌으니, 지금까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겠지.
“나 또한 약하지는 않소.”
아저씨의 말에 영감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루나를 힐끔거리는 것이 여전히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교황이 버티고 있는데 더 나서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그쪽의 상황은 들은 게 있나요?”
“지원군이 무사히 합류했다고 하더군. 여러 가지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조사요…?”
“산으로 오르지 말라 했다지? 이유를 알 수 있겠느냐?”
이유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
“거기는 지옥이에요.”
“…음?”
“그것도 불지옥.”
분명히 산에 올랐을 때 땀이 비 오듯 쏟아 졌었다.
그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왔던 점괘도 심상치 않았고 말이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산이랑 얽히면 운수가 급격히 안 좋아 지기도 했다.
“음…그것도 해결해야겠네.”
그 이후로 그곳의 점을 보지 않았으니, 또 바뀐게 있을 수도 있었다.
지원군도 합류했고, 우리도 그곳으로 가는 중이니까.
이 정도의 병력에 심지어 전원이 신관이 아닌가.
“잠시만요.”
루나를 안은 채로 방울을 꺼내 올렸다.
딸랑 –
“…이거 왜 이래?”
“문제라도 있소?”
“아니요.. 문제는 아니고…”
영기가 너무 수월하게 움직였다.
경지가 상승한 느낌.
기절하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기분이다.
딸랑 –
희끗한 장면들이 머리를 지나다녔다.
여전히 어둑어둑한 산의 정상.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뜨거움.
딸랑 –
“온 산이 불구덩이네.”
정말 큰불이었다.
꿈에서 봤다면 당장 복권을 사라고 했을 정도.
“뜨겁네 뜨거워…”
여전히 산 정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무언가 부정한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지만.
“마족의 소환을 의심중이라더군.”
“마족이라…”
딸랑 –
지금 머리를 지나다니는 냄새 나는 것들이 마족의 기운일까?
“이것도 가서 봐야 알겠네…”
확실한 건 아직 산으로 올라가서는 안 됐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세레나와 눈이 마주쳤다.
“음…? 아, 그러네.”
엘프들에게는 정령이 있지 않은가.
불이 나면 물로 끄면 그만이다.
거기다 산에서 엘프보다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종족은 없다.
“세레나.”
“네, 말씀하세요.”
“로메넬한테 연락 좀 해 줄래?”
우리의 대화를 듣던 영감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가지고 가거라. 통신용 수정구다.”
“예…?”
“사용법은 간단 할 것이다. 거기다 내 것은 파라몬 그 친구와도 연락이 가능하니.”
저걸 나한테 왜 준단 말인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생각보다 너는 더 중요한 인물이다.”
“아니, 그게….”
나라고 가지기 싫어서 안 가진 게 아니다.
딱히 연락할 일은 없지만 있으면 좋을 테니까.
영감님들께 달라고 하면 여분으로 몇 개는 더 챙겨 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저걸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전 마나를 쓸 줄 모르는데요…?”
“….”
“….허.”
교황아저씨와 영감의 황당한 시선이 내 얼굴로 쏘아졌다.
“신성력도 없는데…”
“…도대체 내가 뭐에 휘말린 건지 모르겠군. 어떻게 마나도 없는 일반인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새삼스럽지 않나…?
세레나가 옆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나가 필요한 일은 제가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세레나가 최고다.
밥을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무려 나와 함께 굿을 할 수 있는 동료.
내 앞에 앉은 아저씨와 영감의 시선이 더 이상해졌다.
“그대는 알기가 힘든 사람이오. 과연…계시에 나온 인물은 다르구려.”
“저 또한 성하와 같은 생각입니다.”
이러다가 이 양반들도 우리 영감님들 처럼 나한테 달라붙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 인원이 좀 많아질텐데….
“초를 더 피워야 하려나…”
일단은 루나 것부터 하나 더 피워야 할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루나는 몸주신이 직접 점지 해준 나의….
“크리스, 연락 됐어요.”
***
스으으 –
어두운 마나가 바닥을 타고 잔잔히 흘렀다.
그것이 닿은 곳은 시체들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콰드득 –
콰득 –
마나가 닿은 시체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이윽고 몸을 빠져나온 마나가 어딘가로 흘러 갔다.
“영혼이 있는 곳으로 마나를 인도하거라.”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제물로 쓸 영혼마저 다듬어야 하다니.
“이번 공격은 어찌 되었느냐.”
퀭한 눈을 한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계획대로 언데드들은 소모시켰으나, 저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해괴한 일을 다 보겠군.”
네크로맨서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 제국 놈들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티를 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되지 않았다.
“그 두 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로군.”
성을 지키고 있는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
일찍이 대륙전쟁에서조차 그 이름을 날린 제국의 개.
사사건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을 보고하자마자 그분들이 출발했으니, 어쩌면 잘되었을지도 몰랐다.
“영혼의 타락은 어찌 되었느냐.”
“육신과 연결된 영혼들이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리던 네크로맨서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드가 완성되는대로 공격을 보내도록.”
자신의 몸이 언데드가 되어 사람을 죽이는 걸 본 영혼들이다.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념들이 상당했다.
진작에 이렇게 움직였다면 계획이 훨씬 더 빨라졌을 것을.
성으로 보낸 언데드들이 망가질 때마다 그 타락의 속도가 빨라졌다.
“열심히도 싸워주는구나…”
첫 전투때는 많은 수의 언데드가 살아 돌아왔지만, 그 뒤로는 보내는 족족 소멸하고 있었다.
그 덕에 계획이 한층 더 빨라지리라.
걸음을 옮긴 네크로맨서가 도착한 곳은 영혼들을 가두어 놓은 마법진의 앞이었다.
“…”
마법진의 안에서 요동치는 검은색의 마나들.
그 안에서 영혼들이 뒤엉켜 제물로 거듭나고 있었다.
“영혼을 보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잡아서 연구를 해 보아야겠군.”
분명 네크로맨서의 마법에 새로운 혁신이 될 것이다.
영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실체를 가지지도 못한 영혼을 어찌 본다는 말인가…무슨 마법인지 궁금해 미치겠군.”
그가 손짓하자 뭉쳐 있던 마나가 검은색의 돌 속으로 흡수되었다.
“제물로 쓸 것이니, 가져가거라.”
“예!”
네크로맨서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곧, 그분들이 오실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다시 한번 확인하라 지시하겠습니다.”
“성안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제물로 쓸 수 있다면…”
상상 이상의 결과가 탄생할 것이다.
도착했다는 지원군마저 모두 제물로 보일지경이었다.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에 네크로맨서가 몸을 떨었다.
“언데드의 규모를 늘리거라. 최대한 저들의 힘을 빼놓아야 한다.”
이곳으로 유인해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치게 만들어 놓아야 했다.
“부디, 그분들께서 마음에 들어하셨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