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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하얀 머리카락.

       빨간 눈.

       하얀 분가루를 펴 바른 듯 새하얀 피부.

         

       전형적인 알비노의 외모였다.

       하지만 진성이 ‘토끼’에게서 익숙함을 느끼는 것은, 그녀가 전형적인 알비노의 외모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잘 아는 사람과 아주 흡사한. 정말로 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나스타시아 알렉산드로브나 베스나(Анастасия Александровна весна).’

         

       그의 회귀 전 동료이자, ‘담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사람과 너무나도 닮았다.

         

       진성은 자신의 옛 동료의 어릴 적 모습에 향수를 느꼈다.

         

       ‘확실히 용병 때보다 훨씬 어려 보이지만 외모는 똑 닮았군.’

         

       외모가 훨씬 어려 보이는 것과, 가슴의 크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옛 동료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진성은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동료를 보며 용병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확실히 러시아 사람이었으니 러시아에 있는 것은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연이라는 게 참으로 기묘하여, 시간을 거슬러 왔는데도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그는 반가움을 느끼며 앞으로 나서서 악수를 청하며 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동생이 자신의 친한 친구라며 잔뜩 자랑하던데. 과연 듣던 것만큼 예쁜 분이로군요.”

         

       평소의 애늙은이 같은 말투가 아닌 상냥하고 예의 바른 말투였다.

       이세린과 이아린은 갑자기 확 변해버린 말투에 깜짝 놀라며 진성을 쳐다보았으나, 진성은 동생들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그대로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얼떨떨해하며 진성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다가 슬쩍 손을 뻗어 악수를 받아주었다.

       진성은 굳은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보드라운 손의 감촉을 느끼며 환하게 웃었다.

         

       “아, 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네요.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박진성이라고 하고, 저기 이아린과 이세린의 오빠입니다.”

       “네? 네에…. 그. 프라우 리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주술사 오빠가 있다고…. 아, 아니. 이게 아니지. 저기.”

         

       그녀는 예의 바른 태도로 자기소개를 하는 진성의 모습에 허둥대다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엘라 B 빈터(Ella B Winter)라고 합니다.”

         

       엘라 B 빈터?

         

       진성은 자신의 기억과 너무나도 다른 이름에 의아함을 느꼈다.

         

       “이름도 예쁘시군요.”

       “아, 네에…. 감사해요. 아 참, 추우실 텐데 안으로 들어오세요. 손님이 온다고 해서 난로를 켜놨답니다.”

         

       게다가 말투 역시 달랐다.

       엘라의 말투는 고상한 말투. 엘리트 계층이나 귀족 계층이나 쓸법한 어투에다가, 예절 교육을 제대로 받은 모양인지 몸짓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였던 아나스타시아는 일상생활에서의 예절은커녕, 식사예절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야생 동물이나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식기를 쓰는 게 귀찮다고 전투식량에다가 물을 붓고 입에다가 때려 넣는 것은 기본이요, 빵은 악력으로 뭉친 다음 주먹밥처럼 들고 다니며 베어먹었고, 어떤 때에는 음료수와 부식을 수통에다가 쑤셔 박은 뒤 갈아서 혼합 주스처럼 먹기도 했다.

         

       게다가 음식을 가리는 것도 없었다.

       벌레나 징그러운 동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 것은 기본이었고, 목마르다고 야생 동물의 배를 갈라서 생으로 내장을 파먹기도 하는 등의 짐승 같은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엘라에게는 그런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단 이것 좀 드세요. 따뜻한 일본에서 오셨다고 해서, 추울까 봐 준비한 음료에요. 글뤼바인(Gluhwein)이라고 하는 건데,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거에요.”

       “토끼야! 이거 도수 어느 정도 되는 거야?”

       “만드는 과정에서 알코올은 거의 다 날아간답니다.”

         

       진성은 엘라가 주는 잔을 받아들며 그녀를 살펴보았다.

         

       ‘교육을 받았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명백히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에게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어.’

         

       게다가 집안의 풍경을 살펴보니, 마녀들이 사용할법한 물건들이 잔뜩 보였다.

       난로에는 마녀들이 약물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무쇠로 만든 커다란 솥단지가 있었고, 창가 쪽에는 각종 허브가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수납장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향의 냄새가 풍겼는데, 이는 서양에서 의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드는 서양식 향, 인센스가 잔뜩 들어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난로의 잿더미 속에서는 타다 남은 말린 개구리의 잔해가 보였고, 슬쩍 열려있는 작업실의 안쪽에는 양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마녀의 거주지였다.

         

       ‘게다가 이 여자의 몸에서 마녀 특유의 냄새가 나.’

         

       이런 말이 있다.

         

       마법사는 골방 냄새가 나고, 무인은 땀 냄새가 나며, 마녀들은 약초 냄새가 난다고.

         

       엘라의 몸에서도 마녀 특유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나이 먹은 마녀와는 다르게 향수에 가까운 허브의 향기를 풍기기는 했지만, 그녀의 몸에서는 분명히 마녀 특유의 약초 냄새가 나고 있었다.

       게다가 엘라의 피부의 진피(眞皮, dermis)에서 마녀들이 사용하는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를 사용하기 위한 에너지가 순환하는 것 역시 느껴졌다.

         

       ‘아나스타시아는 마법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저 여자는 순수한 마녀로군.’

         

       진성은 엘라가 자신이 아는 아나스타시아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음료가 맛있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이아린의 옆에서 곤란해하고 있는 엘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프라우 빈터? 러시아에는 유학을 오신 건가요?”

       “네. 프라우 리 같은 경우랍니다. 베를린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국제 교류를 한다고 해서 신청을 했어요.”

       “베를린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라면…. 마녀와 무인이 유명한 학교로군요. 듣기로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마녀들은 다 그 학교 출신이고, 검술 쪽에서는 중국과 1위를 다툰다고 들었습니다.”

       “어머. 들어보셨나요?”

       “물론이죠. 제가 주술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유명하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마녀분들은 재료 때문에 주술사와 교류를 많이 하는 직업이기도 하니, 자연스레 제 귀에 들어올 수밖에요.”

         

       진성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연스레 자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엘라의 모습을 보았다. 진성 역시 엘라처럼 슬쩍 맞은편에 있는 엘라를 향해 몸을 기울였고, 거기에 더해서 슬쩍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엘라와 시선을 마주쳤다.

         

       “유학이라는 것은 참 좋은 기회죠. 견문을 넓히고, 다른 문화를 겪고. 게다가 각 나라의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마다 유명한 것이 다르니, 배울 것 역시 넘쳐날 테니까요. 하지만 유학이라면 혼자 오셨을 텐데, 때로는 외로움이 느껴지셨겠군요.”

       “네? 외로움이요?”

         

       진성은 엘라와 비슷한 속도로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마주쳤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말을 이어갔다.

         

       “낯선 곳에 갈 때는 항상 각오가 필요한 법이죠. 두고 온 가족, 친구가 생각나곤 할 테니까요. 특히 바쁠 때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일이 바쁠 때는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본궤도에 들어서니 여기 이아린과 이세린이 생각이 나더군요.”

       “네, 그렇긴…. 하죠.”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이아린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와, 오래비 귀신이네~ 안 그래도 토끼가 외롭다고…. 읍!”

         

       이아린이 끼어들자 엘라는 당황했는지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한 행동인지 입을 틀어막자마자 당황한 듯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버렸고, 이아린은 엘라를 보며 실실 웃었다.

         

       “하하하. 창피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니까요. 아마 제가 여동생을 그리워했듯이, 프라우 빈터의 자매분도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겠지요.”

       “네? 자매요? 저는 외동…인데요.”

       “아, 제 독일어가 미숙해서 단어 사용을 잘못했나 보군요. 동창(同窓)을 독일어로 말하려다가 실수를 했습니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엘라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외로울 때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게 좋다는 이야기, 산양을 기르고 있다는 이야기, 이아린이 수시로 쳐들어와서 심심할 틈이 없다는 이야기 등. 가볍게 나눌만한 이야기들이었다. 거기에 이아린이 끼어들어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고, 중간중간에 이세린이 껴서 기름칠을 해주니 자연스레 엘라는 진성에게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증거로, 엘라의 태도가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떠들었을까.

         

       “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워서 까먹을 뻔했군요. 염소와 기니피그를 보러 왔는데, 잊고 돌아갈 뻔했습니다.”

       “아, 그렇지 참. 토끼야, 우리 염소랑 기니피그 좀 보여줄래?”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진성과 엘라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말하는 이아린의 말에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안내해주겠다고 예의 바르게 말한 뒤 축사로 안내했다.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는 자그마한 축사로 들어가자 커다란 산양 한 마리와 새끼 산양 두 마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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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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