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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잠시간의 묵념을 끝마친 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미약한 현기증이 일었다.

         

       “쿨럭!”

         

       검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자꾸만 퍼져나가려 하는 독기를 애써 누르며 어두컴컴한 동굴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절정의 고수마저도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가공할 한기가 몰아쳤다.

         

       “얼어 죽겠네….”

         

       몸 상태도 안 좋은 마당에 한기까지 몰아치니 죽을 지경이다.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가자 멀지 않은 곳에 구왕수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어휴, 우리 광수.”

         

       녀석이 찌른 어깻죽지가 욱신거린다.

         

       “어쩌겠냐. 내 탓인데.”

         

       그가 그렇게 된 것은 모두 자신의 탓이었으니, 이번 만큼은 퉁 치기로 했다.

         

       “잠시 있어라.”

         

       기절한 그를 내버려둔 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보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참기 힘든 한기가 옷 안으로 스며들었다.

         

       딱딱딱!

         

       이빨까지 부딪쳐가며 도달한 끝자락.

         

       그곳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무척이나 작은 크기의 백호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귀, 귀엽다!”

         

       작다고 하더니 정말로 작다. 생김새며 크기가 조금 자란 새끼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녀석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러자 품에서 온기를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더니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 이래서 반려동물, 반려동물 하는구나.”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데 동물은 얼어죽을 동물이냐며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후려패고 싶어졌다.

         

       백우진은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따스한 시선으로 제 품에 안긴 백호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나…는 아니고, 광수가 굶는 한이 있어도 너 만큼은 먹고 싶은 것들 전부 먹고 살게 해주마.”

         

       졸지에 구왕수는 굶주림 일 순위가 되어버렸다.

         

       기쁜 나머지 잊고 있었던 한기가 재차 옷 속을 습격했다. 몸을 부르르 떤 백우진은 동굴 밖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중에 구왕수를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쓰읍, 이거 좀 위험한데.”

         

       한기까지 뒤집어쓰고 나온 몸의 상태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대로 백호와 구왕수를 데리고 마을까지 돌아갈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내 팔자야….”

         

       쿨럭!

         

       검은 피가 또 한움큼 쏟아졌다.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모든 내기를 독기를 억누르는 데에 사용하고 있어 신법을 운용할 수도 없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어디가 어디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없는 상태로 온전히 발이 나아가는 감각을 이정표 삼아 느릿하지만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겨나갔다.

         

       “으음…!”

         

       그때 왼쪽 어깨에 매달아둔 구왕수의 몸이 꿈틀거렸다.

         

       “어, 어어…!”

         

       낯선 곳에서 눈을 뜬 구왕수가 몸부림치자 이를 버티지 못한 백우진이 그를 내동댕이치고 자신 또한 바닥을 나뒹굴었다.

         

       “억!”

         

       흙이 완충재가 되어 충격은 생각보다 덜했다. 구왕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권법 기수식을 취했다.

         

       “누, 누구냐!”

       “나다, 인마.”

         

       익숙한 목소리. 그제야 근처를 나뒹군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백우진…?”

         

       한눈에 봐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깻죽지에선 피가 줄줄 새고 있었고, 입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각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대, 대체 이게….”

         

       힘겹게 들어올린 팔로 그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쭈뼛거리며 걸어온 구왕수.

         

       “광수야.”

       “으, 응.”

       “지금부터 네가 내 명줄 쥐고 있다. 마을까지 빨리 도착하면 날 살리는 거고, 아니면….”

         

       털썩!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백우진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우, 우진아!”

         

       당황한 구왕수는 일단 백우진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명줄이 나한테…!’

         

       백우진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다.

         

       ‘이대로 죽게 놔둘 순 없어!’

         

       우중충한 하늘에 한 줄기 내리는 광명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일념 하나로 구왕수는 초인적인 속도로 산을 내달렸다.

         

       “허억, 허억…!”

         

       내공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마을, 마을이 어디에…!”

         

       그러다 문득 마을이 진법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빌어먹을!”

         

       환자 역할을 맡은 탓에 마을 근처 지리를 하나도 익혀두지 않은 그였다.

         

       “젠장, 젠장!”

         

       젠자앙!

         

       그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멈춰 있던 구왕수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단 생각에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찾고 또 찾아볼 요령이었다.

         

       “후욱, 후욱…!”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 내뱉어가며 달리고 또 달릴 즈음이었다.

         

       “구왕수!”

         

       땀이 들어가 흐릿해진 시야에 익숙한 여인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멈춰서 소매로 눈에 들어간 땀을 닦아냈다.

         

       달려오고 있는 이는 신예화였다.

         

       “시, 신 소저!”

       “너 어떻게 된…!”

         

       구왕수를 타박하려던 그녀는 그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백우진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빠, 빨리 마을로 안내해줘. 백우진이 죽어가고 있어! 명줄이 나한테 달려 있다고 했단 말이야!”

       “아, 아, 그, 그래.”

         

       그가 울부짖는 소리에 영영 나가버릴 뻔한 정신을 애써 붙잡고서 그를 마을로 이끌었다.

         

       진법 안으로 통과하자 근처를 서성이고 있던 제갈연지와 당선영의 모습이 보였다.

         

       “당 소저! 제갈 소저어!”

         

       여기서 의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저 둘뿐이다. 그들이라면 백우진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를 시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진, 우진이를 좀 봐주시오! 으허허헝!”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제 등에 업고 있던 백우진을 보여주었다.

         

       “이, 이게….”

       “배, 백 공자…!”

         

       두 사람다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구왕수가 그들을 꾸짖었다.

         

       “놀랄 때가 아니오! 어서…, 어서 상태를 좀 살펴달란 말이오!”

         

       간절한 외침이 두 사람을 일깨웠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당선영이었다.

         

       “일단 빨리 집으로 가서 눕히도록 해.”

       “아, 아, 알겠소.”

         

       구왕수가 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슥슥 닦아낸 뒤 앞장서 달려갔다. 당선영은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제갈연지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정신 차리고 빨리 따라붙어.”

       “아, 알겠어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제갈연지와 함께 앞서간 구왕수가 들어간 집으로 향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꺼이꺼이 눈물을 흘려내는 그의 앞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백우진이 누워 있었다.

         

       “일단 정확한 상태부터 파악하자.”

       “네…!”

         

       제갈연지가 백우진의 맥을 짚는 사이, 당선영은 그의 몸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옷 속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이상하여 만져보니 물컹거리는 감촉이 전해졌다.

         

       ‘뭐지?’

         

       옷을 살짝 풀어 헤쳐 확인해보니 조금 전에 보았던 거대한 백호를 작게 만들어 놓은 듯한 녀석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새끼… 겠지.”

         

       그 커다란 호랑이가 이토록 작아졌을 리는 없으니, 그것의 새끼일 터였다.

         

       “구 소협. 이거, 잠시 보살펴줘요.”

       “아, 예, 옙.”

         

       자꾸 울음소리를 내서 시끄럽게 만드는 구왕수에게 작은 호랑이를 던져주어 치료에 방해되는 둘을 한꺼번에 치워버렸다.

         

       그녀는 한층 차분해진 시선으로 백우진의 신체를 살폈다.

         

       ‘입가에 묻은 검은 피…, 설마.’

         

       입가에 말라붙은 피를 떼어내 입에 집어넣자 비릿한 혈향과 동시에 알싸한 독기가 입을 타고 퍼져갔다.

         

       “이 바보가…!”

         

       그렇게나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기어코 금선사의 독을 퍼마신 게 분명했다.

         

       당선영은 안주머니를 뒤져 해독제를 꺼내 백우진의 입에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지금 먹인 해독제는 금선사의 독에 대응하는 해독제가 아니었다. 그저 일정 수준 이하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 만든 보편적인 약에 불과했다.

         

       “제갈 소저, 상태는?”

       “아, 안 좋아요. 기혈이 죄다 뒤틀렸고, 내상도 심해요…. 더군다나 외상도 심각한 수준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그녀가 재차 공황 상태에 빠지려 하자 당선영은 지체 없이 그녀의 따귀를 때렸다.

         

       짜악!

         

       “한 번만 더 그딴 모습 보이면 나중에 백우진에게 다 말해버릴 거야.”

         

       너, 참모로서 자격 없다고.

         

       서슬퍼런 그 말에 제갈연지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이야…!’

         

       매번 그랬다. 자그마한 일에도 손을 벌벌 떨고, 말을 더듬는다.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내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어찌할 바를 몰라 말이나 더듬고 있는 제 모습이 등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백 공자를 죽일 거야?’

         

       싫다. 그를 잃고 싶지 않다.

         

       오로지 그 일념이 널뛰는 심장을 잠재웠다. 동시에 손의 떨림 또한 멎었다.

         

       “내상부터 치료해야 해요.”

         

       그녀가 또박또박하게 말하자 당선영이 희미하게 웃으며 시선을 거두었다.

         

       “해독부터 해야 해. 금선사의 독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내상 치료는 꿈도 못 꿔.”

       “금선사의 독 같은 걸 백 공자가 왜…!”

       “내가 줬어.”

         

       제갈연지가 흉흉한 시선으로 당선영을 노려봤다. 그러나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그녀가 원해서 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에.

         

       “해독제, 만들 수 있나요?”

       “어려워.”

       “그럼….”

       “백우진 체내에 있는 독기를 직접 빼낼 거야.”

         

       말을 마친 당선영이 누워 있는 백우진의 상체를 억지로 일으켰다.

         

       “잠시 잡아줘.”

       “알겠어요.”

         

       제갈연지가 그의 상체를 붙들고 있는 사이, 당선영은 그의 명문혈에 손을 가져가 기운을 일으켰다.

         

       백우진의 체내로 침투한 그녀의 기운이 한쪽에 몰려 있는 독기를 발견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이곳에서 독기를 억누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흔적 또한 느껴졌다.

         

       ‘엄청 고통스러웠을 거야.’

         

       독공을 익히지 않은 이는 독기를 체내에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센 고통을 느낀다.

         

       하물며 그것이 맹독 중의 맹독인 금선사의 독인 바에야, 그 고통은 단장의 고통과도 비견될 만했을 터.

         

       ‘다행이야.’

         

       백우진의 체내는 그녀가 상정하고 있던 최악까지는 치닫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진 몰라도 한쪽에 몰려 있는 독기는 그녀가 주었던 양에 반도 미치지 않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그녀는 뭉쳐져 있던 독기를 제 기운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단숨에 그것을 백우진의 명문혈을 통해 빼내어 제 몸속에 집어넣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독공을 익힌 자는 자연스럽게 독성에 대한 면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허나, 그것이 모든 독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독이면 모를까, 금선사의 독쯤 되는 것은 웬만한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제 몸에 품을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

         

       “크흑!”

         

       단전 부근을 불로 지지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체내에 들어온 금선사의 독이 마구잡이로 주변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일 줄은…!’

         

       양이 적어 이 정도면 흡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독기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거셌다.

         

       당선영은 이를 악물었다. 평생토록 수련해온 독공이 얼마 되지도 않는 금선사의 독에 밀린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내 말을 들어!’

         

       단전에서 일시에 풀려난 기운들이 독기를 꽁꽁 에워쌌다.

         

       압도적인 밀도에 파묻힌 독기는 잠시간 발악하는 듯하더니 이내 잠잠해진 채 서서히 그녀의 기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됐어!’

         

       결국 금선사의 독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한 그녀가 한층 깊어진 안광을 빛내며 눈을 떴다.

         

       “이제 내상 치료 차례야.”

       “네…!”

         

       큰 고비를 넘긴 백우진의 치료가 하나둘씩 차례대로 진행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정 전후로 한 편 더 올리도록 하겠읍니다.

    연참 가주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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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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