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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네에에에에?”

       

       결혼이라는 말에 이번에는 실비아 씨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쀼욱?!”

       

       툭.

       

       정신없이 치킨을 먹고 있던 아르도 내 입에서 결혼이란 단어가 나올 줄 몰랐는지 먹던 닭다리 조각을 놓쳐 접시에 떨어뜨렸다. 

       

       “음, 아니. 저도 농담 한 번 해 본 건데…. 실비아 씨가 그렇게 반응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생각보다 엄청난 효과에 당황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하하! 그, 그렇죠? 크흠. 어쨌든 식기 전에 어서 다리 드세요. 레온 씨.”

       

       실비아는 빨개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더니 얼른 포크로 닭가슴살을 찍어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케켁.”

       “천천히 드세요. 여기 물이요.”

       

       목구멍에 튀김 조각이 걸려 사레가 들린 실비아에게 물을 내밀며, 나는 조용히 피식 웃었다. 

       

       ‘이 사람, 평소에는 능글맞게 결혼이 어쩌니 침대에서 좀 더 붙으라니 아무렇지 않게 말하더니….’

       

       막상 내가 결혼 얘기를 꺼내니까 반응이 아주 볼 만하구만. 

       

       이 기회에 조금만 더 놀려 볼까. 

       나만 당하고 살 순 없지.

       

       “근데 실비아 씨는 그때 농담 아니었다고 하더니, 제가 ‘저도’ 농담이었다고 하니까 왜 ‘그렇죠?’라고 대답해요? 역시 다 거짓말이었던 거군요. 저는 실비아 씨를 믿었는데….”

       “그, 그건…. 그러니까….”

       

       실비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는 걸 본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괜찮아요. 어차피 백 퍼센트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으니까요.”

       “…진심이 아닌 건 아닌데.”

       “일단 닭다리 양보해 주신 거 보면 그런 거 같긴 해요. 여튼 아침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치킨 찾아서 사 와 줘서 고마워요. 감사히 먹을게요.”

       

       나는 곧 닭다리를 들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고.

       

       ‘와….’

       

       방금전의 아르와 거의 흡사한 표정으로 말없이 닭다리를 흡입했다.

       

       튀김옷의 바삭함, 밑간, 고기의 부드러움까지.

       내가 그리고 그리던 치킨 그대로의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이게 행복이지.’

       

       따뜻한 대륙 서부에서, 평화로운 햇살이 비치는 아침에, 귀여운 아르, 그리고 훌륭한 조력자와 함께 치킨을 뜯는 것.

       

       이 순간만큼은 이 대륙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닭다리를 말끔하게 먹어 치웠다. 

       

       “…맛있어요?”

       “엄청요.”

       “그럼 됐어요.”

       

       내 놀림에 살짝 삐쳐 있던 실비아는 내 대답에 조금 풀렸는지 자신의 닭가슴살을 마저 먹었다.

       

       “아르야, 그 정도 먹었으면 이제 다른 조각 먹어도 돼.”

       

       나도 꽤 말끔하게 치킨을 먹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닭다리 하나를 해치우고 고개를 돌려 보니 아르는 깔끔한 걸 넘어서서 아예 뼈를 짧은 혀로 낼름낼름 핥고 있었다. 

       

       ‘후후, 아르 녀석. 어지간히 맛있었나 보네.’

       

       나중에는 도도로 튀긴 치킨도 한번 구해서 먹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도로 만든 치킨이라. 그건 나도 먹어 보고 싶은데…?’

       

       도도 고기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맛은 가히 닭의 상위호환이라고 할 만하다. 

       

       전에 산기슭에서 아르와 잡아서 대충 불에 구워 먹었을 때도 그렇게 맛있었는데, 제대로 잡아서 튀기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입에 또 침이 고였다.

       

       ‘바라크만이나 메네시스 정도 되는 대도시쯤 가면 있긴 할 텐데.’

       

       「레키온 사가」를 하면서 음식 아이템은 그냥 그때 그때 회복량이랑 옵션만 보고 먹는 편이었어서 하나 하나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도시 지역의 음식 상점에서 옵션에 비해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던 음식 몇 가지는 하도 인상이 깊어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도도 치킨, 레피쉬 구이, 미니 보어 육사시미 같은 것들….’

       

       물론 아이템 설명에 보면 구하기 어려운 고급 고기라느니, 담백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느니, 부드럽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 수준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주욱 써 있었지만.

       

       ‘그러면 뭐 하냐고. 내가 직접 그 맛을 느끼질 못하는데.’

       

       빙의하기 전, 모니터 밖에서 게임을 즐기던 내 입장에서 저런 음식을 사는 건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였다. 

       

       ‘지금 생각하면 저렴하고 효과는 쓸 만한 가성비 음식들만 먹였던 내 캐릭터들한테 좀 미안하긴 한데.’

       

       누가 뭐,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래도 나름 캐릭터 키울 때 하나 하나 애정을 담아 육성하는 편이었다고.

       

       ‘여튼. 이제는 음식 설명에 맛있다고 써 있던, 지구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것들까지도 돈만 있으면 먹을 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 돈이 상당히 많다. 

       

       카르사유의 레어에서 캐 온 발광석을 판 돈도 아직 멀쩡히 남아 있을뿐더러, 마이어 씨 호위 의뢰를 하면서 의뢰비는 물론 산적들을 잡아 경비대에 넘기고 현상금까지 챙겼으니까. 

       

       ‘그리고 히파르에서는 온천도 완전 무료로 이용했고.’

       

       …지금 보니 상상 이상으로 꿀을 빨긴 했네.

       

       ‘즉,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이 정도로 주머니가 빵빵하면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단 말씀.’

       

       수중에 있는 금화만 해도 24골드. 이리저리 챙기거나 미리 바꿔 놓은 은화, 동화까지 하면 아마 26골드가 넘을 거다.

       

       ‘어차피 돈을 악착같이 모아 봐야 당장 집 같은 걸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들으면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욜로족 청년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담백한 사실일 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하무트교에게 쫓기고 있는 입장이니까 말이지.’

       

       나중에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정말 평화롭게 정착해서 살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아마 내가 주인공과 함께 마왕과 마신을 전부 물리친 다음일 텐데, 마왕과 마신을 물리칠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집 하나 못 살 정도로 빈곤할 리가 없다. 

       

       ‘집이 뭐야. 마신을 물리친 공로로 제국에서 성 하나를 통째로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

       

       그러니까 결국 내가 지금 가진 돈은 걱정 없이 내 사리사욕 채우기 및 아르를 키우는 데에 써도 된다는 소리.

       

       ‘절대 흥청망청 돈을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님. 진짜 아님.’

       

       카르사유도 그랬지 않은가. 

       아르와 좋은 시간을 보내 달라고.

       

       함께 맛있는 걸 먹는 거야말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거지.

       

       “자, 아르야. 아~ 해 봐.”

       “쀼우!”

       

       내가 포크로 새 치킨 조각을 찍어서 아르의 입 앞에 가져다 주자, 아르는 행복한 표정으로 치킨을 베어 물었다. 

       

       이제 치킨이 웬만큼 식어서 손으로 잡아도 된다고 판단했는지, 아르는 내가 내민 치킨 조각을 양손으로 꼬옥 잡고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뀨움.”

       

       아르는 특히 치킨 겉의 튀김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튀김옷을 먼저 쭈욱 물어당겨 챱챱 씹어 먹었다. 

       

       물론 고기도 맛있게 먹었고.

       

       처음 먹은 부드러운 닭다리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치킨 자체가 맛있었기에, 아르는 쉴 새 없이 치킨을 먹어치웠다. 

       

       “쀼웃.”

       

       심지어 우리 셋이 치킨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아르는 테이블에 놓인 치킨 봉투에서 튀김옷 부스러기를 집어 먹었다. 

       

       ‘사실 튀김옷은 저렇게 싹싹 먹지 않는 편이 좋긴 한데….’

       

       튀김은 몸에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하려다가도, 나는 드래곤의 엄청난 소화 능력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건 진짜 부럽다니까.’

       

       치킨 튀김옷 부스러기도, 구운 고기나 빵의 맛있게 탄 부분도, 설탕이 잔뜩 들어간 간식들도, 짜고 매운…아, 매운 건 잘 못 먹는구나. 아무튼.

       

       먹고 싶은 대로 맘껏 먹어도 건강 문제를 일으키기는커녕 스탯이 추가로 오르다니. 

       

       저게 축복 받은 육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뀨우.”

       

       그래, 아르는 귀여우니까 축복 받아야지.

       

       나는 아르가 손바닥 젤리에 묻은 가루를 핥아 먹는 귀여운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럼 이제 퇴실 시간도 다 됐고…. 수련하러 가 볼까요.”

       “준비 되셨어요?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힘드실 거예요.”

       “각오는 돼 있습니다.”

       “쀼우!”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르를 지켜 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추려면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빡세게 해야 돼.’

       

       그리고 이번에는 실비아의 단검술 강의를 흡수할 ‘셋팅’도 완벽하게 준비해 둔 상태고.

       

       “좋아요. 그럼 바로 가죠.”

       

       우리는 여관에서 나와 곧장 용병 길드로 향했다. 

       

       누가 용병 길드 아니랄까 봐, 길드 안에서는 대낮부터 술잔 깨지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흐음. 수련장에 들어갈 때마다 용병 아저씨들을 지나쳐 가야 하는 건 좀 귀찮긴 하겠네.’

       

       지난번에는 실비아가 B급 용병이라는 사실에 용병들이 다들 놀라 조용해졌었지만.

       

       ‘그때 조용해졌었던 건 당시에 용병 길드 안에 B급 이상 되는 용병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아마 어제 이후로 용병 길드 내에는 캐머해릴에 새로 온 여자 용병이 B급이라더라 하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터. 

       

       ‘그 소식을 들은 캐머해릴 내의 B급 용병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자기네 파티에 실비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든, 아니면 B급끼리의 서열 정리를 위해서든 나와 실비아에게 접근해 귀찮은 일을 벌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사실 B급 용병과 파티를 하고 다니는 F급 용병인 내가 시비 털릴 가능성이 제일 높고.’

       

        달칵.

       

       ‘거 봐. 벌써부터 B급 용병 하나 보이네.’

       

       나는 용병 길드로 들어가자마자 이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 B급 용병패를 허리춤에 달고 있는 험상궂고 덩치 큰 용병을 발견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저기도, 저기도. B급 용병이 무려 셋이나 대기를 타고 있다니. 쉽지 않겠는데.’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오셨습니까!!! 누님!!!”

       “어서 오십시오!!”

       “강녕하셨습니까!!!”

       

       …?

       

       B급 용병 셋과 함께, 주변 용병 일동이 전부 일어나 실비아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본 나는 멍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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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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