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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

       프란체의 질문에 카자르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네? 살아있는 사람을, 뭐요?”

         

       카자르는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 자체를 자신에게 귀속? 생각만 해도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꺼낸다니, 진이 말했던 것처럼 현재 공녀님은 확실하게 이상하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 존재를 내게 귀속시키는 마법이 있냐는 소리야.”

         

       등줄기에 오한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떠는 카자르.

         

       “그, 흑마법이 영혼과 관련된 게 하도 많아서 찾아보면 있긴 한데요.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닐까요…?”

         

       심상치 않은 프란체의 분위기에 카자르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세웠다.

         

       “흐응, 있긴 있는 거구나.”

         

       프란체는 그 의견을 가볍게 무시했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근데 그런 소름 돋는 마법은 무슨 일에 쓰시려고요…?”

         

       카자르의 질문. 프란체는 고개를 슬쩍 꺾으며 말했다.

         

       “그건 알 필요 없단다.”

         

       눈에 생기가 사라지고 초점은 풀려있다.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언뜻 보기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표정에 가깝다.

         

       카자르는 그 얼굴을 보며 전신에 서늘함이 깃들었다.

         

       “아, 아하하. 그, 그러시구나…?”

         

       프란체가 저 마법을 누구에게 사용할 예정인지는 카자르도 알고 있었다. 진 말고 누가 있겠나?

         

       “아무튼. 그 마법을 배울 수 있니?”

       “어, 힘들 거 같아요…….”

       “왜?”

       “그게, 금기시되는 마법과 같아서…….”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나 존재를 건드리는 흑마법은 금기시되어있다.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니까.

         

       카자르도 이를 알고 있기에 말을 돌린 것이다.

         

       “흠. 금기시되는 마법이라, 그럼 배울 방법은 없는 거니?”

       “힘들 거예요. 그런 흑마법은 주술사들을 찾아가야 하는데, 요즘 시대에 찾기 어렵거든요.”

         

       주술사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비인도적인 실험을 하거나, 영혼이나 존재를 건드리는 등. 잔인한 실험을 많이 해왔다.

         

       그 탓에 주술사로 취급받는 인간은 최소 사형이다. 3대가 멸하지 않으면 기적인 수준.

         

       카자르는 혹시나 싶어 프란체를 만류했다.

         

       “공녀님.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마법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좋아요. 대부분 결말이 좋지 않았거든요.”

         

       이는 경험에서 우러러나오는 말이다. 과거. 카자르의 친구 중에 흑마법이 특기인 녀석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비인도적인 흑마법을 이행하다가 제국에서 사형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가문 전체가 멸했다.

         

       “그러니? 그래서, 그걸 어디서 배우는데?”

         

       카자르는 ‘이 공녀님이 지금 내가 한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미쳤군.’이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이성을 되찾았다.

         

       “주술사를 찾거나, 고대 흑마법서를 찾아야 해요. 그런데 쉽진 않을 거예요. 각 나라에서 전부 불태우거나, 주술사들을 멸했거든요.”

         

       입술을 머금고 프란체를 응시하는 카자르. 이제는 좀 포기해라. 너에게도, 진에게도, 가문에도 안 좋은 일이니까.

         

       “흐응…….”

         

       톡. 톡. 프란체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뚝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후, 공녀님께서 그 흑마법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신 거 같으니 제가 주술의 역사를 알려드릴게요.”

         

       카자르는 열변을 토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주술사들이 무엇을 했고, 이 사회에서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죄에 대한 크기는 어떠한지.

         

       그리고 그 주술이 얼마나 끔찍한 마법인지까지.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직접적으로 ‘그거 미친 짓이니까 때려쳐!’라는 말은 할 수 없기에 최대한 말을 돌려서 했다.

         

       “그렇구나. 흑마법이랑 주술이 나뉘는 이유가 그런 거였네.”

         

       다행히 카자르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카자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마법에는 절대 관심 갖지도 마시고, 찾아볼 생각도 하지 마세요. 정말 공녀님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프란체는 턱을 괸 채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있잖아, 카자르.”

       “네?”

       “진과 무슨 관계야?”

         

       …뭐지? 기운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이 공녀님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카자르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관계랄 것도 없죠? 그냥 일만 같이하는 동료 사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마력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읽는 카자르였기에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지만, 밖으로 티 내진 않았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제야 시들시들했던 얼굴을 없애고 싱긋 웃는 프란체. 서늘했던 기운도 사라졌다. 설마 암전을 사용했던 건가.

         

       ‘알려준 적도 없고, 보여주기만 했는데? 이게 재능인가?’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카자르는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그런데 그건 왜요?”

       

       프란체가 느릿하게 웃었다.

       

       “요즘 진에게 날파리가 꼬이는 거 같아서.”

        

       그런 미친 짓은 그만 두라고 했다는 이유로 나도 날파리처럼 보고 있었다는 건가? 카자르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금방 떨쳐냈다.

         

       왠지 지금은 이 공녀님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재빨리 말을 돌렸다.

         

       “크흠, 공녀님. 이 얘기는 그만하고 오늘 할 수업이나 바로 시작할까요?”

         

       프란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꾸나. 마법 능력을 더 올려야 하니까.”

         

       카자르는 묘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며 프란체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 * *

         

         

       프란체가 하사한 휴가 마지막 날.

         

       이미 히든 피스인 고대 마법서는 구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하기 위해 남은 용돈으로 맛집 탐방 중이다.

         

       “크, 기가 막히네.”

         

       이 세계에도 닭은 특이했다. 크기나 형태. 색깔까지 전부 달랐다. 다만 맛은 기가 막혔다.

         

       ‘음, 이거로 치킨 만들면 될 거 같은데.’

         

       크기도 크기일뿐더러, 고기의 밀도가 다르다. 좀 더 담백하고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퍽퍽살도 적당하고, 다릿살이 푸짐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요식업을 해야 할 거 같단 말이지.’

         

       내가 요리는 잘하는 편이 아니다만, 치킨집 알바를 해본 적은 있다. 그때 배운 걸 토대로 치킨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좋아. 나중에 도망치고 치킨집을 차리는 거야.’

         

       진로를 확실하게 잡고 미래를 착실하게 대비해야지.

         

       집값이나 가게를 차리는 비용은 프란체에게 받은 용돈과 암흑 길드 턴 거로 마련하자.

         

       “음. 이것도 맛있네.”

         

       보어 토마호크. 전에도 프란체가 데려가 준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적 있는 음식.

         

       이게 흑맥주와의 조합이 기가 막힌다.

         

       “크으.”

         

       쌉싸름하면서도 끝맛이 깔끔한 흑맥주. 만약 여기에 치킨이 곁들여진다면 어떨까.

         

       ‘역시 나중에는 요식업을 차리는 게 맞아.’

         

       식도락 여행을 하면서 결정했다.

         

       나는 술집을 차릴 거다. 대박은 확실하다.

         

       “주인장! 여기 안주 추가!”

         

       이후에도 실컷 안주를 시키고, 술을 들이붓듯이 먹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폭식을 하고.

         

       “주인장! 계산!”

         

       푸짐한 몸에 꽤 날카로워 보이는 아저씨가 계산하러 나왔다.

         

       “가격은…….”

       “아잇, 거스름돈은 필요 없소. 다 받아둬.”

         

       취한 탓에 기분이 좋다. 후하게 팁까지. 그만큼 이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또 오십시오!”

         

       팁을 후하게 챙겨줘서 그런 걸까? 날카로운 인상이 한껏 푸근하게 바뀌었다. 역시 금융치료가 최고란 말이지.

         

       “슬슬 돌아가 볼까.”

         

       카자르에게 마법서도 전해줘야 하고, 프란체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

         

       게다가 이 마법서만 있다면 내 근본적인 문제와 혹시 모를 프란체의 폭주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구한 이 히든 피스 마법서에는 없는 게 없으니.

         

       “가자.”

         

       나는 즉시 말에 탑승해 이동했다.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식도락 여행도 공작령으로 오는 길에 했던 거니까.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별똥별이 떠오르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공작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저 이 마법서부터 전해야지.’

         

       나는 공작저로 돌아가기 전에 카자르의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바로 열렸다.

         

       “아, 오셨어요?”

       “그래. 근데 왜 그래?”

       “뭐가요?”

       “인상이 퀭한데.”

         

       카자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눈 밑은 시커멓고 머리는 푸석하며 피곤으로 가득 절어있다.

         

       “아, 많은 일이 있었죠…….”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자세한 건 안에서 말씀드릴게요.”

         

       얼떨떨하게 카자르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프란체가 여기에 거주해서 그런지 전과는 달리 깔끔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차를 내오는 카자르. 나는 그걸 받아들고 느긋하게 향을 음미했다. 숙취로 이것도 좋군.

         

       “진 씨.”

       “왜?”

       “이거 말하자면 좀 길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차근차근 얘기해 봐.”

         

       카자르는 그동안 프란체와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주술사들이나 부리는 흑마법에 관심을 가졌다고.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마법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 대상을 알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목덜미가 서려오며 그 오한이 등줄기까지 이어졌다.

         

       “진 씨가 말한 게 조금 과장됐다고 생각했는데, 상태가 많이 심각해요.”

         

       글쎄. 상태가 많이 심각한 건 지금 너의 표정 같은데.

         

       “그 정도야?”

       “네. 남들보다 감정이 강해요.”

       “해결 방법은?”

       “흑마법에 익숙해지고,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해요.”

       “시간이 약이라는 건가.”

         

       프란체의 문제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게 좋겠군. 나는 일단 구해온 고대 마법서를 꺼냈다.

         

       “이거, 바렌베르크의 고대 마법서야.”

       “이걸 진짜 구해오셨네요?”

       “원래부터 어디에 있었는지 알았으니까.”

         

       카자르는 고대 마법서를 건네받자마자 책을 펼치고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독.

         

       “어…… 음…….”

         

       근데 반응이 묘하다. 설마 이상한 내용이 적혀있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내용은 나도 읽어봤지만, 수학식을 제외하면 알아 볼 수 없었다. 무슨 언어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이거, 룬어에요.”

       “룬어?”

       “네. 단순한 고대 언어가 아니란 말이죠.”

         

       카자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잔뜩 기대했는데 바로 읽을 수 없다는 게 크네요.”

         

       하아, 카자르는 한숨을 내뱉으며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였다. 저건 진짜로 실망한 기색이다.

         

       “그래도 시간만 들이면 해석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해요. 다만, 양이 많아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릴 뿐이지.”

         

       그럼 다행이고.

         

       “아, 그리고 전에 부탁드렸던 마석에 대한 건은 어떻게 됐어요?”

         

       그 얘기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감춰왔던 소식을 들려주었다.

         

       “마석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잘 들어.”

         

       지금까지 두루뭉실하게만 얘기했던 계획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우리는 마탑이라는 걸 건설할 것이며,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마법사들을 한 곳으로 모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정상에는 프란체와 카자르가 있을 거라는 것까지.

         

        “그럼 마석 관련도 해결이군요.”

       “그런 거야.”

       “근데 그게 진짜로 가능해요?”

       “가능하지.”

         

       게임에서도 후반부에 들어가면 마탑이 건설됐다. 나는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뿐.

         

       “그렇게 되면 마법사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겠고, 사회 자체가 변하겠네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법사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군.

         

       “와, 상상만 하고 있었던 게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처음부터 계획한 거예요?”

         

       이번에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맛이지. 내 유능함을 뽐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왕족이셔서 그런지 남다르네요. 만약 진 씨가 바렌베르크의 왕위를 이어받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네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빙의하기 전, 진 바렌베르크의 모습은 화가 잔뜩 나서 모두를 휩쓸어버리는 모습밖에 못 봤으니까.

         

       “뭐, 아무튼. 그 마법서에서 내 증상에 대해 알아봐. 거기에는 대마법부터 시작해 초위, 초월 마법까지 적혀있으니까.”

         

       내 말에 카자르가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룬어를 읽을 줄 아세요?”

         

       아차.

         

       “바렌베르크에 있던 마법서인데 얘기 한 번 못 들어 봤겠냐? 그냥 들은 것뿐이야.”

         

       왕족 치트키는 만능이다.

         

       “…그렇군요. 바렌베르크에도 전문가들은 있었을 테니까요.”

         

       눈을 얕게 뜨고 나를 응시하는 카자르.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을 열었다.

         

       “일은 잘 부탁하고. 공녀님의 안정은 내가 최대한 잘 관리할 테니 연구에 집중해.”

         

       카자르는 “네, 최선을 다 해보죠.”라고 대답한 뒤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렇게 보니 그때 엘다스 후작령에서 열렸던 파티가 생각나는구만.

         

       “후아아.”

         

       밤공기가 차가워서 그런지 입김이 나왔다.

         

       ‘부디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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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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