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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0

        

       남자는 검을 든다.

       굴레처럼 따라붙은 원한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얌전히 때를 기다리며 수많은 원한을 하나둘씩 끊었던 주술사와의 좋지 못했던 인연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하지만.

         

       “허허허. 그리 반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과 과거와의 악연도, 인연도 없는 몸이니 말이지요.”

         

       남자가 검을 들고 주술사에게 대항하려는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과 같은 긴장감을 탁하고 끊어버리듯 박진성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너와 원한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 말이다.

         

       저벅.

         

       한 걸음.

       불꽃을 사뿐히 걸으며 박진성이 움직인다.

       불꽃처럼 넘실넘실하는 꽃잎을 밟을 때마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하나.

       흙먼지가 쓸려나가고 돌바닥에 신발 밑창이 부닥치며 나는 듯한 소리.

       이런 곳에서 나기에는 어려운 소리가 박진성의 걸음걸음마다 들려온다.

         

       저벅.

         

       어긋난다.

       실체와 소리가 어긋난다.

         

       발이 닿은 후에 나는 소리.

       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발이 닿기도 전에 나기도 하고, 발이 닿은 후 늦게나마 울려 퍼지기도 한다.

         

       마치 발걸음을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실체 없는 것이 걷는 시늉을 하면서 자신은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속이기라도 하려는 듯, 제 동작에 맞춰서 소리를 내려는 듯 발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몸뚱이는 규칙적임에도 불규칙적으로 나는 소리라니.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기이함이야말로 주술사가 자주 보이는 면모이니.

         

       남자는 그렇기에 오감으로 주술사를 판단하는 것을 관두었다.

       청각과 시각 대신에 육감과 기감을 사용하였고, 환골탈태 이후 새롭게 인지할 수 있는 공간감을 퍼뜨렸다.

         

       박진성은 그러한 무인의 모습에 방긋 웃었다.

         

       “허허. 주술사를 상대하기 위한 방법을 참으로 잘 알고 있구나.”

         

       저것은 주술사를 상대하기 위한 무인의 방법.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직접 경험해봤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정석적인 방법이라면 그냥 기감만 퍼뜨리고 말았을 터.

       하지만 그러한 ‘정석적인’ 방법을 주술사들이 모를 리가 없다.

       기감을 교란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으니, 그중 몇 개를 섞기만 하더라도 그러한 대처법은 소용이 없어질 터.

         

       하지만 저 무인은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는 듯 당연하게 육감과 공간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기감은 적극적으로 활용은 하되 보조용으로, 언제든지 꺼뜨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기까지 하였고.

         

       “탐욕과 분노는 가깝고도 가까우니, 지척에 있음이라. 좋지 않은 곳은 쉬이 따라붙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혐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키나니, 그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어디에서 이러한 의문이 풀릴 수가 있는가?”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미래에서 보았던 무인보다는 성취가 낮은 것이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세상을 활보하며 폭발적으로 경험을 쌓았던 그때보다는 확연히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박진성은 거리낌 없이 움직인다.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지에서 뿌리가 내려와 땅에 닿아 나무로 성장하나니. 모든 것은 자신에게 비롯되는 것이라. 탐욕도, 분노도, 혐오도, 공포도. 애착조차도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저벅.

         

       “넝쿨이 숲속에 매달리는 것을 보라. 인연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니, 가지에서 뿌리가 돋아나 자라는 것처럼. 덩굴이 칭칭 감겨있는 나무가 그러하듯이. 숲속에 넝쿨이 가득 메이고, 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숙주로 삼아 무성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연 역시 참으로 그러한 것이니라.”

         

       그리고 이러한 박진성의 말에 무인이 회답하기를.

         

       “…숫따니빠따.”

         

       박진성이 하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말하였다.

         

       “옛 경전에서 말하기를 슬픔, 갈망, 근심을 뽑으라.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박힌 독화살을 뽑아내 버려야 하는 것이니. 다만 피할 수는 없으니, 그것을 감내하고 고통을 능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

         

       그는 걸어간다.

       옛 경전을 읊으며.

         

       인연과 죽음을 말하며.

         

       그리고 마침내 무인과 마주하였고,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이리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소. 무인 이반(Иван).”

         

       아니.

         

       “‘우주에게 홀린 이반’이여.”

         

         

         

        * * *

         

         

         

       옛날 붉은색이 세상을 휩쓸었던 적이 있었다.

       낫과 망치를 든 이들은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개하였고, 노동자가 싸구려 부품처럼 쓰이다가 버려지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들은 자신을 수탈하는 이들에게 대항하였고, 구시대부터 이어져 왔던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에 분노하며 일어났더란다.

         

       그리고 마침내 얼어붙은 땅에 그들의 나라가 세워졌으니.

       그 이름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소비에트, 혹은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맹위를 떨친 나라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붉은 나라에 한 사람이 태어났으니.

         

       그 이름은 흔하디흔한 이반.

       밭에서 작물이 수확되는 것처럼 흔하디흔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이반, 이반, 이반.

         

       흔하디흔한.

       그래서 어쩌면 나무나 식물보다도 더 흔해빠진 이름일 그 이름.

       사람의 가치가 평등하다고 믿었던,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평등함 때문에 가치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던 한 명의 어린아이의 이름이다.

         

       어쩌면 그 흔해빠진 이름은 부모의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광기가 너무나 만연했기에.

       과학과 사상으로 세상이 더 낫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세상이 본질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어 있고, 현재는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이름을 붙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연약한 어린아이는 이러한 광기가 넘치는 세상에서 제대로 버틸 수가 없는 것을 알기에.

       춥디추운 얼어붙은 땅덩이와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어린아이가 보호받으며 자라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러한 평범한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것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을 보물처럼 여기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아이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받고,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났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사악함에 대하여 주입받고.

       가난하기 짝이 없던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위대한 영도자를 찬양하고, 공산주의라는 최고의 사상으로 세상을 뒤엎을 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이반이라는 아이는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생에서 피어나는 꽃이 피어나는 데에는 수많은 험난함이 있듯, 이 꼬마 이반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시련들이 존재했다.

         

       무능력하면서도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반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한 어머니.

       제 손자임에도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학대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찾아갈 때마다 그렇게 문전박대를 하였던 친척들.

         

       그렇기에 그의 삶은 검은색이었다.

       하얀 눈이 그렇게 쌓이고 있음에도 그는 항상 검은색이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속에서도 그는 항상 거무튀튀하였고, 진흙이 잔뜩 묻어 더럽혀진 채 바닥에 뒹구는 눈더미처럼 그의 인생 역시 그러하였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며 중얼거리던 아버지는 매일매일을 술에 절어 살았고, 술에 취해서 제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온갖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면서도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약간의 미안함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도 ‘…일하자.’라는 짤막한 말만을 남길 뿐 미안하다는 사과를 입에 담지 아니하였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싸늘하게 차 있는 냉기는 그에게 어머니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소련의 사람들끼리는 ‘같은 인민’이라는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기에 차별은 없었다지만, 그런데도 이반은 두루두루 친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가 없었다.

       모두가 평등함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평등한 존재는 분명히 있었으니까.

       흔해빠진 이름을 받고, 언제 어떻게 쓰이다가 죽어 나갈지 모르는 흔해빠진 부품들과…’평등한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반은 그렇게 별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설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새까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검은색이 희석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진흙이 묻고 질척해진 눈덩이가 아니라, 저 드넓은 밤바다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으니까.

         

       새까만 밤바다에는 별들이 떠 있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하나하나가 지구와 같은 존재일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이반은 생각하였더란다.

       저 밤바다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거무튀튀한 자신의 인생에도 저리 찬란한 빛이 있으리라고.

       자신 역시 저 밤바다의 일부라면, 자신에게도 분명히 반짝이는 별이 내재하여 있으리라고.

       그는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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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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