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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1

        

       밤하늘을 담아내며 그는 자라났다.

       제정신일 때보다 술에 취할 때가 더 많았던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하나둘 죽거나 다쳐서, 혹은 알지 못할 이유로 사라져가는 친구를 뒤로한 채.

       그렇게 그는 자라나고, 또 자라났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그는 무공에 재능이 있었고, 덕분에 ‘좀 더 평등한 사람’이 되어 조금 더 귀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검을 휘두르며 살아온 것일까.

       거무튀튀했던 그의 인생에 핏물이 튀고, 그 핏물이 말라붙어 검붉은색으로 변하고, 마침내 검게 썩어 그의 인생의 색과 섞여 들어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때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다가왔다.

         

       『 우주에 가지 않겠나? 』

         

       우주.

       드넓은 밤바다.

       그곳을 항해하고 싶지 않겠냐는 간단한 물음.

         

       그 물음에 이반은 답하였다.

         

       가겠노라고.

         

       그때 그에게 제안을 넣었던 ‘매우 평등한 사람’은 너는 소비에트의 귀감이라느니,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느니 하면서 그에게 칭찬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명예가 가득할 것임을,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는 것임을 말하며 그에게 온갖 부귀와 명예를 속삭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귀와 명예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이반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밤하늘을 마음에 담았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이 환하게 비추는 호수의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밤하늘이 담기지도, 담을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반은 마음속에 밤하늘을 담은 채 살아왔다.

         

       하늘을 보면서.

       별을 보면서.

       별과 별 사이의 밤바다를 보면서.

         

       그렇게 이반은 평등하면서도 괴로운 세상을 그렇게 감내하며 살아왔다.

       아버지가 결국 경련과 함께 숨을 제대로 못 쉬며 죽어 나갈 그때까지, 그리고 세상에 붉은 사상을 퍼뜨려야 된다며 자신에게 혹독하게 무공을 가르쳤던 교관들의 훈련을 감내하며.

       그렇게 살아왔더란다.

         

       그러한 삶에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담아두었던 그 밤바다에 갈 기회가.

       그 기회에 온갖 부귀와 명예가 붙어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주에 갔다 오는 것은 과정이 아닌 목표인 것을.

       부귀와 명예를 얻기 위하여 우주에 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갔다 왔더니 부귀와 명예가 따라붙는 것에 가까운 것을….

         

       그렇게 이반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혹독한 훈련을 하였다.

       그가 그동안 하였던 훈련과는 다른 방향으로 혹독했던 훈련을.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나갔고.

         

       “….”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그러한 감동을 받았다.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의 새까만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릴 강렬한 감동을!

         

       그 순간부터 이반은 우주에 홀려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그는 우주에 매혹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 새까만.

       찬란한 별빛이 가득한 이 거대한 바다에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바다와 사랑에 빠져 마침내 바다의 안으로 몸을 던지는 선원처럼, 우주에 투신하게 되었다.

         

       우주에….

         

         

         

        * * *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버리고 만 선원들이 그러하듯 무언가에 홀려버린 이들의 말로는 좋지 않으니. 그렇기에 수많은 경전이, 사람들이 속삭이느니라. 매혹되지 말 것을, 마음을 평온히 유지할 것을, 바람 한 점 없는 날의 호수처럼 맑고 잔잔한 마음을 유지할 것을. 마음은 뜨겁게 할지언정 머리는 차갑게 하여 언제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최악의 경우까지 가지 않게 하기를 그토록 경고하고 또 경고하고 있음이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찌 제 뜻대로 되겠는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제 뜻대로 되지 아니하는데, 어찌 감정이라도 제 뜻대로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니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으면 그것 역시 사람이 아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돌덩이를 깎아 사람의 형태로 만든 것과 무엇이 차이가 있겠는가? 더운 날에 보는 신기루와 대관절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말한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무감(無感)에서 비롯되지도 아니하고, 쇳덩이에도 부서지지 아니하는 다이아몬드와 같지도 않다. 그것은 갈대와 같음이니, 그 어떤 모진 비바람이 불어쳐도 꺾이지 아니하고, 폭풍이 지나가면 슬그머니 다시 일어서는 그 모습이야말로 본받을 만한 것인즉. 그리하여 말하기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오래 담아두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과 참으로 같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나에 단단하게 홀린 이들의 마음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홀려있기에 다른 것을 담아둘 수 없으며,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다른 것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단단하게 성채를 세우고, 모진 풍파에도 형태를 일그러뜨리지 않으며 하나를. 꿋꿋하게 하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하나의 광기로 형상화되기에 이르니.

       그것이 바로 무인 이반이다.

       소련에서, 미국에서 ‘우주에게 홀린 이반’이라고 이름 붙인 무인이다.

         

       그리고 회귀 전의 미래.

       회귀 후의 시간으로는- 이 시점보다도 훗날, ‘킹 슬레이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며, 손에 묻히는 핏물과 바닥에 떨구는 머리가 늘어날수록 강력한 악명을 떨치게 되는.

       그리고 마침내 ‘재앙’으로까지 불리게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재앙.’

         

       광기로 멸망해가는 세상.

       수많은 나라가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흩어지고.

       찬란했던 문명을 누리던 이들은 이제는 생존을 걱정하며 살아가던 그 시절.

       긴밀했던 전 세계의 연결은 끊기고 폭력과 쇄국이 가득했던 세상.

       세계 3차 대전의 광기가 휩쓴 그 세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재앙이라 불리는 존재들을 두려워하였고, 그들을 쉬이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 재앙의 새싹이 바로 무인 이반이다.

       프랑스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의 위에 서는 존재를 썰고 다녔던.

       대통령, 주석, 총리, 왕, 장군.

       수많은 이들의 목에 선을 만들고, 모가지를 썰어 바닥에 굴러가게 했던 자.

         

       우주에게 홀려 그곳에서 살아가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여행자.

       우주에 집을 둔 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간을 자르던 무인.

       천하제일인을 논할 때 반드시 이름이 나오던.

         

       미치광이 초인.

         

       “무인이여, 무인이여. 바다의 여신의 눈길은 어떠하였는가. 드넓은 바다의 딸의 그 시선은 강렬하였는가? 친숙하였는가?”

         

       그 초인을 앞에 둔 채 박진성은 말을 한다.

         

       “리코리스, 리코리스. 갈라지는 꽃이 그러하듯. 갈라진 꽃이 바람에 흩날릴 때 파도를 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파도가 모여 만들어진 눈의 아름다움처럼, 그 시선 역시 아름다웠는가? 그대를 자극할 만큼 그것은 찬란하였는가?”

         

       그리고 이반은 그의 물음에 답한다.

         

       “아니.”

         

       아니라고.

       새빨간 불꽃은 별의 반짝임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였고.

       흔들리는 파도는 우주의 고요함에 비할 바가 되지 아니하였으며.

       바다의 여신의 시선은 감미롭지 아니하였노라고.

         

       이반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박진성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반이여. 그대는 어머니를 찾았는가?”

         

       “아니.”

         

       “이반이여. 그대는 여신을 찾았는가?”

         

       “아니.”

         

       “그렇다면 우주란 무엇이냐?”

         

       이반은 그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검을 들었다.

         

       제대로 날이 서 있지도 않은 검.

       하지만 대기권으로 진입하였음에도 멀쩡한 검.

       이반이 우주로 진출하기 전에 당의 지원을 받아 주문하였던.

       그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라는 당의 명령을 거부하고, 우주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사람들을 베는 데에 쓰였던 검.

         

       이제는 한 몸처럼 느껴지는 그 검을 들고 이반은 움직인다.

         

       손이 움직인다.

       가볍게, 가로를 그리며.

         

       그리고 박진성의 몸이 토막이 난다.

         

       서걱.

         

       소리조차도 뒤늦게 쫓아오는 일격.

       공간이 잘리고 뒤늦게 수복되는 듯한 강렬한 일격.

       공간을 자유자재로 잘랐던 미래의 재앙의 새싹.

         

       그렇게 박진성의 몸은 하나, 둘.

         

       일격에 당했음에도 선이 여럿 그어지며 토막 나 바닥에 주르륵 흘러내린다.

         

       철퍼덕.

         

       고깃덩어리가 바닥에 쏟아졌을 때 그러하듯, 단면이 후두둑 쏟아진다.

         

       하지만.

         

       “우주가 어머니라면 그 안에 있는 이는 아기일 것이다. 우주가 여신이라면 그 안에 있는 것은 신도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니고 여신도 아니라면 무엇이냐? 우주는 무엇이고 대관절 그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박진성의 입은 멈추지를 않는다.

         

       몸이 토막 나 있음에도, 상체가 잘려서 바닥에 철썩 달라붙어 있음에도 그의 입은 쉬지를 않는다.

         

       “바다 위에 표류하는 자들은 표류자요, 그곳을 거니는 자는 항해자요, 별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이들은 순례자라. 그렇다면 목적도 없이 망망대해를 거닐고, 표류하지도 항해하지도 아니하며, 순례하지도 아니하면서 그 자체로 만족하는 이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사각사각.

         

       토막 난 몸이 꿈틀거린다.

       흐르는 핏물은 슬라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꿈틀대고, 고기 조각은 모래알처럼 부서진다.

       그리고 그 모래알은 다리가 솟아나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하여, 제 몸뚱이를 알아서 합쳐가고는 다시 몸으로 돌아간다.

         

       벌레.

         

       벌레로 이루어진 몸이 수복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토막이 난 이가 다시 형상을 이루었으니.

       그것은 마치 모래를 그러모아 조각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광경이라.

         

       “이반, 이반. 우주를 사랑하는 이반아.”

         

       그리하여 벌레로 이루어진 주술사는 말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망치려는 자들 때문에 번뇌에 휩싸이고 있는 이반아.”

         

       뱀도 아니고 세이렌도 아니건만 어찌 그리도 매혹적인 말인지.

         

       “미국으로 가라.”

         

       벌레의 뱀은 속삭인다.

         

       “캘리포니아의 부엉이를 자르라.”

         

       속삭인다.

         

       “그대의 평온을 위하여 내가 도움을 주겠느니라.”

         

       악령이 그러하듯.

       달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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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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