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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2

        

         

       박진성의 속삭임은 사악한 존재가 행하는 유혹만큼이나 달콤한 것이었다.

       특히나 주술사라는 존재가 발하는 그 제안의 무게는 일반적인 이들이 하는 그것과는 명확한 차이가 있어서, 그래서 이반으로서는 그것을 쉬이 무시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옛적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악한 존재에 대하여 ‘그들은 신의 묵인하에 요소들을 뒤흔들고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사악한 존재들이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한 빈틈이나 취약한 부분을 흔들어 미혹하고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것을 말함이니, 박진성의 말은 참으로 그것과 닮았다 할 수 있겠다.

         

       그는 지금 이반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말은 번지르르하군. 여타 주술사가 그렇듯이.”

         

       하지만 죄악은 의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하였던가.

       오랜 세월 무(武)를 갈고닦아온 무인의 정신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험하기로는 손에 꼽을 수 있을 환경에서 오랫동안 지내왔던 이반의 정신은 어지간한 수행자나 다름이 없었고, 뒤틀렸을지언정 그것이 쉬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져 있었다.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에서의 수련.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고행과 그로 인해 단련된 정신.

       이반의 정신은 고열과 고압에서 탄생한 다이아몬드와 같다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의 모양이 어떻든 간에, 그 본질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외부요인에 의하여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삭풍이 불어도, 불길이 지나간다고 할지라도 변형이 쉽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설령 변형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제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회귀 전에도 이 무인은 박진성에게 있어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축에 속하였다.

       이 무인은 환골탈태로 얻은 특성도 그렇고, 공간에 대한 깨달음도 그렇고, 정신력 그 자체도 그렇고…순수하게 강인하여 약점을 찾기 어려운 타입에 가까웠으니까.

         

       “그래….”

         

       이반은 푸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다시 검을 휘둘렀다.

         

       파삭.

         

       검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공간과 공간 사이의 틈을 타면서.

       곡선을 그리되 최단 시간으로 목표지점에 향할 수 있도록 검이 궤적을 그린다.

       곡선임에도 직선보다 빠른 곡선이라.

       기이하게 짝이 없는 검결.

         

       그렇게 나아간 검은 다시 박진성을 난자한다.

       다시 붙은 박진성의 몸이 꼴 보기 싫다는 듯 그를 다시 토막을 내고 바닥에 쏟아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토록 정교한 살인검임에도 그것은 소용이 없다.

         

       박진성의 신체는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불꽃처럼 흩날리고, 모래처럼 부서지고, 많은 다리가 달린 벌레가 되어 다시 합쳐지기 시작하였으니까.

         

       그의 검법이 공간을 뛰어넘는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합쳐지는 물처럼, 부서져도 다시 합치면 그만인 모래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주술사는 실제 몸이 아니기 때문에.

       벌레로 이루어진 분신과도 같은 것이기에.

       환상을 아무리 잘라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그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화풀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않는 것이다.

         

       “…주술사. 소련 시절의 복수가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목적이냐?”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모습이 이반에게는 묘한 신뢰를 주었다.

         

       복수의 목적이 아님에도 이토록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자격이 아니다.

       시간.

       ‘시간을 할애할만한 존재’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주에서의 유영이나 수련을 제쳐두고 이야기할만한 존재.

       우선순위에 있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서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나눌만한 가치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스윽.

         

       박진성은 그러한 이반의 물음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벌레로 조각난 몸을 끌어모아 복구를 시키면서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뱃사람은 바다가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아니하며, 호수를 사랑하는 이들은 호수가 오염되는 것을 참지 아니하며, 산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 산이 휑하게 변하는 것을 참지 아니하는 법. 그렇다면 이반, 우주를 사랑하는 이반이여. 그대는 우주의 오염에 어느 정도로 참을 수 있는가?”

         

       과거, 우주는 청정지역이었다.

       인류의 손에 타지 않은 처녀지.

       인류가 감히 정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던 미개척지.

       위대한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우주가 국가 간 패권에 도움이 될 것이라 결론을 짓고.

       그렇게 우주로 손을 뻗으려 하는 인간에 의하여 우주는 어찌 되었는가?

         

       순결은 온데간데없이 사람의 손이 타고, 별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늘에는 사람이 직접 빚어내 만든 가짜 별이 떠올라 지구를 돌게 되었다. 달에는 사람의 발자국과 깃발이 존재하고, 로봇과 골렘이 빨빨 돌아다니며 달에 있는 광물을 채집하는가 하면 안에 파고들며 지질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몇몇 나라에서는 힘을 합쳐서 우주에서의 환경이 작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달에 온실을 건설하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테라포밍의 연습을 할 요양인지 막대한 예산을 모으고 있기까지 하다.

       하나둘 쏘아 올렸던 인공위성은 이제는 너무 늘어난 나머지 저들끼리 부딪쳐 터져나가는 사고가 일어날 정도고, 부서지거나 회수하지 못한 인공위성들은 우주 쓰레기가 되어 지구 주위를 둥둥 떠다니며 우주 진출의 방해물이 되어버렸다.

         

       “찬란했던 푸른 별은 이제는 토성처럼 고리를 가지게 될런가. 토성이 부서진 돌을 고리로 삼아 제 주위를 빙빙 돌리며 장신구처럼 두른 것처럼, 지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쇳덩이를 고리로 삼아 빙빙 돌리며 반지를 낄런가.”

         

       우주는 계속해서 더럽혀진다.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우주는 더럽혀진다.

       차라리 평화가 지속되고 우주에 진출할 생각을 하였다면 나으련만.

       세상이 혼미해지고 우주에 나설 생각이 저 멀리 날아가게 되었을 때는, 우주는 그저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적당한 공간으로 그 가치가 한없이 격하되어버린다.

         

       전쟁 중에 탄생한 수많은 오염 물질.

       생체실험으로 만들었지만 활용하기도, 폐기하기도 힘든 생물병기들.

       위험한 물건들, 재활용하기 힘든 물건들, 유독성 물질들, 마법 폐기물….

         

       세계 3차 대전 중의 인류는 우주를 이 ‘처치 곤란한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마음먹기에 이른다.

         

       우주 진출보다도, 인간의 권역을 넓히는 것보다도, 요람인 지구에서 벗어나 유년기의 끝을 선언하는 대신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광기의 전쟁 속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쓰레기를 없애기 위한 적당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매우 효율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평화가 이어지던 시기에도 막대한 금액 때문에 하기가 힘들었던 것이 우주 관련 연구다.

       그런데 광기가 넘실거리는 전쟁의 와중에 우주에 신경을 쓴다고?

       그것도 막대한 돈과, 유능한 연구원들을 놀리면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

       당장 옆에, 저 멀리에 있는 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병기를 뽑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주라는 것은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 합리적인 선택의 뒤에 숨겨져 있는 리스크는 모른 채로.

         

       그렇게 무인 한 명이 지구로 내려왔다.

         

       그 무인이 우주에 쓰레기를 버리는 프로젝트에 분노해 내려왔는지는 모른다.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저 아주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 프로젝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그냥 지구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짜증이 나서 내려온 것일 수도, 혹은 주화입마 같은 것에 빠져서 마성(魔性)에 잠식이 되어 살귀(殺鬼)가 되어버렸을 수도, 아니면 오랜 우주 생활에 미쳐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

         

       진정한 이유는 모른다.

       그 누구도 그 무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설령 이유를 물어보았다 하더라도 그 대답을 듣고 살아있는 이들이 없으니까.

         

       그저 추측일 뿐이다.

       아주 간단한 추측….

         

       그렇게 지구에 강림한 그 무인은 자신의 사상을 칼로 전파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도자의 목을 썰고.

       선동자의 목을 썰고.

       독재자의 목을 썰고.

         

       그렇게 재앙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박진성이 행하는 것 역시 추측에 기반한 것.

         

       “우주를 더럽히려는 자들이 있다면 과연 그것을 내버려 둘 것이냐? 그들의 목을 떨구고 숨이 끊어지게 하여 프로젝트를 좌초시킬 수 있다면 과연 그 힘을 기꺼이 사용할 것이냐?”

         

       “프로젝트?”

         

       “스타오션 프로젝트(Star ocean project). 지구 전체에 특수 목적용 인공위성과 다목적용 위성, 군사용 위성을 깔아놓기 위한 계획이다.”

         

       그래.

       추측이다.

         

       이 무인이 우주가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추측은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기도 하였고.

         

       “…이야기는 들어보겠다.”

         

       박진성은 훌륭하게 그 높은 확률에 당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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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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