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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4

        

       너덜너덜한 우주비행사의 옷을 입은 무인은 검을 든다.

       은빛의 텅스텐 검에는 지구를 닮은 푸른색의 검기가 솟아오르고, 구름의 이동에 따라 색이 변하는 아름다운 푸른 별이 그러하듯 시시각각 색을 바꾸어가며 찬란한 아름다움을 사방에 흩뿌린다. 그러고는 주위에 동화되기라도 하려는 듯 갈색으로 변화하고, 나무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기다린다.

         

       이곳에 방문할 운 없는 희생자가 당도하기를.

         

       하지만 모임이 이루어지는 날 외에는 그저 휴양지에 지나지 않는 이곳에 방문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는 날에 휴양지로 쓸 수 있다고 한들, 동반 1인만이 허용되는 이곳을 굳이 휴양지로 사용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특히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되는 것을 특권처럼 여기는 이가- 이 특별한 공간을 휴양지로 격하시키면서까지 이용하려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인기척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저 멀리에서 숲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기척을 제외하고는, 전무할 정도.

         

       하지만 무인은 검을 내리지 않는다.

       검에 맺힌 검기를 확산을 시킬 뿐.

         

       어둠의 바다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고요의 파도 속에서 자신은 그저 먼지 한 점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으로.

       타오르는 별들의 가운데 자신은 그저 불씨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며.

       그 불씨의, 먼지 속에서 그는 다른 먼지들과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안다.

         

       그렇기에 그는 깨달음으로 이곳에 녹아들 수 있었으니.

       검기가 퍼져나가며 남자의 기척을 없앤다.

       빛을 굴절시키며 남자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기기묘묘한 깨달음과 움직임으로 자연과 동화되어 누구도 그의 기척을 쉽게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그는 이 세계에 동화된다.

       은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무인 못지않은 솜씨로,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도 더더욱 깊은 깨달음에서 비롯된 은형술을 행하여 이 숲에 녹아든 것이다.

         

       그 고절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어지간한 이들은 짐작조차 못 할 수준이었는지라.

       그래서 이 숲을 관리하는 이들 따위로는 그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였더란다.

         

       그래서 이제 이 숲은 온전히 무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한 명이 들어왔군.’

         

       이제 이곳은 거미의 집이요 개미지옥이 파놓은 함정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음이니.

       들어오는 이들은 족족 죽어 나가고, 그나마도 부족해지면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하는 미치광이의 거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더욱 끔찍한 것은 그것은 곤충도 괴물도 아닌 무인이니.

       그는 철저하게 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이들을 죽이고 다니리라는 것이다.

         

       박진성과 그가 거슬려 하는 계획을 시도하는 이들이 최우선으로 죽어 나갈 것이라는 이야기.

         

       ‘힘이 남아돌기에 쓸데없는 것을 생각한다…라. 분명 주술사인데 무인이나 다름없는 말이로군.’

         

       하지만 이반에게도 박진성에게도 자비는 그리 없어서.

       그래서 그 칼은 딱히 다른 권력자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굳이 살려 보낼 필요도 없을뿐더러.

       다 죽이면 그들을 거스르게 하였던 계획 역시 중단될 것이 분명할 테니까 말이다.

         

       거기에 그들이 보아왔던 권력의 속성이란 빈자리를 용납하지 않는 것.

       그 계획과 관계가 있건 없건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나고, 투쟁이 일어나고, 힘의 소모가 이루어지겠지.

         

       그렇게 된다면 그들을 거스르게 만든 계획이 얼마나 중요하건 간에 그것은 무기한 연장되게 되리라.

         

       권력에 홀린 자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힘을 쓰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제 한 몸을 바치려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설령 공공의 이익이 목적인 자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행하기 위하여 권력을 얻으려 애를 쓸 터이니까.

         

       그렇게 힘의 소모가 이루어지고, 계획이 연장되고.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로 말이다.

         

       스걱.

         

       검이 움직인다.

       자신은 나무라고 주장하듯 갈색으로 물들었던 검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갈색의 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그 선이 그어짐과 동시에 공간이 뒤틀리고 잘려 나가며 먼 곳의 공간에도 같은 선이 나타나고.

         

       서걱.

         

       휴가를 즐기러 왔을 권력자 하나의 몸뚱이에 겹친다.

         

       “어, 어…?”

         

       광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 대신 독립하여 IT 쪽에서 크게 성공하여 유니콘 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을 만들어낸 부자. 그 덕분에 능력을 인정받아 어린 시절 파티에서 만났던 기업가에게 추천받아 보헤미안 클럽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 남자.

       ‘진짜’ 보헤미안 클럽의 활동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그런데도 보헤미안 클럽에 추천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모임 전에 이곳에서 그 감동을 곱씹어보기 위해 캠핑을 왔던 불운한 이 남자는.

         

       철퍽.

         

       이제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버렸다.

         

       공간을 자르는 갈색의 선.

       텅스텐 검에 피어오른 검기의 색을 닮은 그 선이 그 남자의 몸을 반으로 잘라버린 까닭이다.

         

       하지만 운이 없을지언정 그는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반이 최우선으로 죽이려 하는 이들은 인공위성과 관련된 이들인데.

       이 남자 역시 그 사업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이 설치된 후의 지분을 대가로 그는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으며, NASA의 과학자들과 협업하여 우주물체 궤도분석과 관련하여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우주 개발을 가속했다.

         

       그러니 어쩌면 이는 응당 받아야 할 칼날을 조금 일찍 받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주 개발에 기여를 한 이상 이반의 칼은 언제고 그를 덮쳤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박진성이 개입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그가 맞은 최후는 운이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의 그는 고통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죽은 것이니까.

       보기에도 끔찍하고 비참한 최후를 안겨줄 수 있는 박진성과는 다르게, 단두대의 칼날처럼 신속하고 단호하며- 그렇기에 자비로울 수 있는 칼날이었으니까.

         

         

         

        * * *

         

         

         

       신호가 온다.

         

       ‘사회지도층 암살이라….’

         

       박진성은 국정원이 보내준 정보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보고서에는 사회지도층 몇몇이 행방불명되었고, 그중에는 미국에서 중요 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도 있어서 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일들도 뒷전으로 미루어둔 채 실종된 사람을 찾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고 하던가.

         

       하지만 그런데도 실종자에 대한 흔적은 찾을 수가 없어서, 국정원에서는 이것이 암살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것도 우발적이 아닌 계획적인, 그것도 연방수사국의 힘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을 가진 특정 단체가 행한 계획범죄일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상적인 추론이기는 하지.’

         

       하기야 누가 예측이나 할 수 있겠는가.

       구소련에서도 건드리기 힘들었던 미치광이 무인이 우주에 있었고.

       어떤 주술사가 그 무인과 접촉해서 그를 미국으로 잠입시키고.

       그 무인이 정지궤도에 있는 위성들을 파괴한 뒤 보헤미안 클럽 소유의 숲속에 거점을 만들고.

       숲에 들어오는 권력자는 물론이고,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것을 어떻게 예측이나 할 수가 있었겠냐는 말이다.

         

       시체?

       흔적?

         

       못 찾는 것이 당연하다.

         

       무공으로 아예 갈아 버리거나, 하늘 높이까지 허공답보로 올라간 뒤 시체를 우주로 사출해 버리거나, 바다 깊숙한 곳에 처박아 버리거나, 땅속의 공동에 공간을 뛰어넘어 투척해버리면 그것을 어떻게 찾을 수나 있겠는가?

         

       회귀 전 이반이 권력자들의 목을 떨구고 다녔던 것은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단죄.

       평범한 실종이나 기이한 현상이 아닌, 무인이 특정인을 노려서 출수하였음을 알리는 일종의 사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공간을 뛰어넘는 검의 특성상 목을 떨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음은 부정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허허허. 미국이 앞으로 혼란스러워지겠구나.’

         

       어쨌든 좋은 소식임이 분명하다.

       미국이 혼란스러워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가 보아하니 지금의 이반 역시 세계 최고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회귀 전보다는 덜 여물기는 하였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전성기의 미국이라 할지라도 쉽게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요, 설령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할 터. 그러니 이반은 오래오래 권력자들을 죽이는 몸속의 벌레요, 독이 되어 그들이 박진성에게 신경을 쓰기 어렵게 만들 터.

         

       그리고 박진성은 그 틈을 타서….

         

       ‘불로불사의 단서는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이라. 그래.’

         

       아슈토쉬 싱(Ashutosh Singh)이 준 힌트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모호하기 짝이 없는 힌트.

       하지만…대충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만 같은.

         

       말 그대로 실마리 그 자체인 그것을 찾아서 미국으로.

         

       미국으로 간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내일 4편 올리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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