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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5

        

       박진성은 미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아무리 혼란스럽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그 혼란이 완전히 무르익지는 않은 상태.

       그런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미국에 입국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지는 것처럼 무관계한 사건일지라도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는 법이라!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시하고 있는 중요 인물이 입국한다면 그 둘을 연관을 짓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적어도 의심이 넘쳐나는 정보 계통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의심하고 시나리오를 한 번 만들어볼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인과관계를 아주 교묘하게 짜 맞춰서 설득력이 있게 만들면서까지 말이다.

         

       박진성은 그러한 것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

         

       감수하라면 감수할 수 있지만….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훨씬 좋은 방법이 있는 것을.

         

       이미 곳곳에는 그가 만들어놓은 말이 존재한다.

         

       체스 말처럼 부릴 수 있는 존재.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기에 합당하게 부려도 되는 빚쟁이들.

         

       그리고 이번에 박진성이 쓰려는 말은 바로 그의 보금자리에 함부로 침입했던 이들이었다.

         

       귀신을 보기 위해, 심령현상을 체험하기 위해, 흉가를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남의 집에 흙발로 들어오고 떠들고 돌아다니는 무단침입자들. 최소한의 배려로 남긴 규칙조차 어겨버리는 무례한 작자들.

         

       박진성은 그들을 말로 사용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 규칙 하나.

         

       집에 혼자 있을 때 방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반응하지 마십시오.

         

       규칙 둘.

         

       밀폐된 방 안에 있을 때, 밖에서 들려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잘 판단하십시오.

       그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당신이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규칙 셋.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면 소리가 들려오는 위치를 잘 파악하십시오.

       그것이 일반적인 높이라면 사람일 가능성이 있겠지만, 이상하리만큼 낮거나 높다면 절대로 그 노크 소리에 반응하지 마십시오. 만약 노크를 되돌려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눈을 감고 기도하십시오.

         

       규칙 넷.

         

       노크 소리에 반응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육성으로 부르는 소리뿐입니다.

         

       규칙 다섯.

         

       네 번째 규칙은 비어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무언가가 있다면 해당 규칙의 반대로 행동하시기를 바랍니다.

         

       규칙 여섯.

         

       노크는 문에서 들립니다.

       하지만 그 ‘문’이라는 것이 꼭 실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규칙 일곱.

         

       거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셨다면 고개를 숙이십시오.

       만약 눈이 마주쳤거나 노크를 되돌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관람을 즐기십시오.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해당 규칙서는 ‘금기 위반자’들의 보금자리에 무작위로 생성됩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이 규칙서는 오직 나무를 재료로 하는 곳에서만 기록됩니다.

       나무를 재료로 하지 않는 곳에 적힌 규칙은 오염되었습니다.

         

       만약 오염된 규칙밖에 없다면 죄송합니다.

       즐기십시오. 』

         

         

       그들에게 붙은 것은 일종의 저주이자 축복.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영적 현상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었다.

       뭐,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박진성의 빌딩에 있는 그리 급이 높지 않은 것을 붙여 홀리게 만드는 것과 약간의 저주와 제약성 주술을 결합하기만 하면 되니까.

         

       산자에 대한 증오와는 별개로 온갖 규칙에 얽매여 있는 것이 바로 귀신.

       그들을 더더욱 억압함으로써 원한을 증폭시키고 영력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지키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저주의 성질을 응용해 특정 규칙들을 위반하면 그 귀신들이 그들을 장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주술을 약간 응용해서 비틀어 만든 강령술이라고 해도 되겠지.

         

       ‘일본에서 얻은 것들이 꽤 쓸만해.’

         

       일본에는 수많은 신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신사들 모두가 인간에게 이로운 신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두려운 것을 경외하고 모시기 위하여 신사를 차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진성이 얻은 주술 중에는 그러한 수신(祟り神)이나 역신(厄神)과 관련된 주술들도 꽤 있었고, 그 주술을 강령과 저주 계통의 주술과 결합하여 특정 효과를 발휘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뭐…. 파훼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성실하게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규칙을 어긴 자에게 페널티가 가해진다는 것은 거꾸로 말한다면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저 ‘과속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길을 가다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경범죄다.’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수고만 감내하면 될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주술 역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니 일정 기간만 참으면 되는 것이기도 했고.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박진성의 손에서 벗어난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담력을 시험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작자들이 이러한 특별한 심령현상을 마다할 리가 없기도 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규칙을 어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도 아니면 반쯤 노이로제 상태가 되어서 발광하듯 노크 소리가 들릴 때 문을 벌컥 열어버리는 일도 있었고.

         

       그렇게 박진성의 빌딩에 발을 들였던 불청객, 그중에서도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지키지 않았던 이들은 훌륭하게 그에게 활용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미국 여행….”

         

       “최저가 표….”

         

       “월 스트리트….”

         

       그들의 활용법은 박진성을 대신해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여권이나 신분을 위조해서 박진성이 직접 건너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가죽을 벗겨서 인피면구를 만들어 변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고.

         

       그저 아주 사소한 범법행위.

       외래종을 미국으로 밀수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그래.

       예를 들자면…. 벌레 같은 것 말이다.

         

         

         

         

        * * *

         

         

         

         

       한때는 다른 세상과도 같았던 넓디넓은 세상은 좁아졌다.

       한 달이 걸리던 거리는 하루도 되지 않아 갈 수 있게 되었고, 신들의 터전으로 여겨졌던 하늘에는 이제는 철로 만들어진 기계들이 사람을 태우고 날아간다. 바닷길에는 고래보다도 거대한 배들이 짐을 싣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땅이 이어져 있다면 기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좁아진 만큼 폐해도 있었으니.

         

       그 수많은 폐해 중 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외래종에 의한 피해였다.

         

       외래종.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을 생물.

       그저 하찮게만 보일 수 있을법한 것들.

         

       하지만 그것들이 가지고 오는 피해는 생각보다도 거대하다.

         

       먼 나라에서 온 흰개미는 멀쩡한 목조 건축물과 문화재를 죄다 갉아먹으며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천적이 없이 번식한 메뚜기떼들은 좁은 면적에서 호르몬이 변하며 이주성 메뚜기인 황충(locust)이 되어 나라를 기근에 신음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에 풀린 물고기들은 토종 물고기들을 죄다 잡아먹으며 생태계를 박살을 내버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물고기가 많았던 호수를 모기가 가득한 썩은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만들어 대륙 전체가 모기에 시달리게 만들기도 한다.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병을 퍼뜨리며 농작물을 망치거나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죽이기도 하고, 식물이 번성케 했던 기존의 벌들을 죄다 죽여버리며 황무지의 크기를 늘려나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외래종의 무서움이다.

         

       한 번 퍼지고 망가뜨리기 시작하면 사람이 대처하기조차 힘들게 만드는 자연의 힘.

         

       그렇기에 외국과 연결되는 항구나 공항에서는 이런 외래종의 침입을 철저하게 막으려 노력한다. 목재나 가구는 스캔을 통해 안에 흰개미 등의 해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식물 같은 것에도 위험한 곤충이나 동물이 없는지 확인을 거듭한다.

       심지어는 육류를 가공해서 만든 식품조차도 검역으로 막는다.

       그것이 질병원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

       어쩌면 현대는 이러한 검역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을 생물들이 섞이며 일어나는 혼란을 예방하며, 그것들이 화학반응으로 일으킬 폭발을 한껏 경계하면서 사람들은 지금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히 허점은 있다.

         

       기계는 물론이고 아티팩트까지 동원하는 검역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빈틈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 여행객? ]

         

       “Yes!”

         

       [ OK. Have a nice trip! ]

         

       사람이 통과한다.

       누가 보더라도 여행객처럼 보이는 동양인들.

       옷가지나 충전기, 보조배터리 등의 여행용 물품들만 채워 넣은 빵빵한 캐리어를 든 이들이 공항을 통과한다.

         

       어떤 사람은 꽃무늬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어떤 사람은 한국인 특유의 형광색이 섞인 등산복을 입고.

       어떤 사람은 어디 락 페스티벌에라도 가려는 건지 몸에 쫙 달라붙는 에나멜 바지를 입고.

         

       그렇게 여행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통과한다.

         

       그들이 가진 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마약 같은 위험한 물건은 물론, 검사에 걸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누가 보더라도 모범적인 여행객이라 할만하다.

       특히나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가기 위해서 최단 거리만을 고집하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전형적인 한국인 여행객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들을 쉬이 통과시켜준 공항 직원들은 모를 것이다.

         

       그 ‘모범적인 여행객’이 공항을 나서고 월 스트리트에 도착한 후, 어디로 이동하였는지.

       거기서 어떤 짓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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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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