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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6

        

       여행객들은 정말로 미국 관광을 즐기기라도 하려는 듯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서 찢어진다.

       어떤 그룹은 카페를 돌아다니고, 어떤 이들은 평범한 여행객들이 그렇듯 햄버거집을 돌아다니면서 맛을 비교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었다가 생각보다 짜고 느끼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월 스트리트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은 뒤 생각보다 볼 게 없다는 사실에 은근히 실망하기도 한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관광객.

       너무나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렇게 저들끼리 즐겼던 이들은 호텔 하나에 모인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것처럼 조금 넓은 방 하나를 빌려서.

         

       그리곤 시차가 적응되지 않았다는 듯, 혹은 실컷 여행을 즐기면서 체력을 다 써버렸다는 듯 그들은 대충 씻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기도 하고, 남미 쪽 여행객들을 위해 설치해놓은 해먹에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딸각.

       소등.

         

       호텔 방의 불이 꺼지고, 여행객들은 그대로 꿈나라로 빠져드는 듯했다.

         

       스으윽.

         

       하지만 불이 꺼졌을 때야말로 그들이 진정으로 움직일 시간이었으니.

         

       잠을 청하기 위해서라는 듯, 밖의 불빛과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두껍게 쳐진 커튼의 뒤편.

       불이 꺼져 깜깜해진 호텔 방 안에서 여행객들이 몸을 일으킨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해먹에 누워있던 이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으로 바닥으로 내려오고, 침대에 있던 이들은 구르듯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는 벌떡.

         

       중간 동작이 삭제라도 된 것처럼 바닥에 손을 짚고 있던 이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이게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주 은밀하고 조용하게 발을 움직인다.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누군가 본다면 그런 쪽 보법을 익힌 무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약간은 어색한, 뒤틀린 듯한 몸짓으로 움직이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는 저들의 모습을 본다면.

       글쎄.

         

       저들을 무인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무인이라기보다는…. 그래.

       무언가에 홀려있는 이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기괴하게 움직이며 각자 행동하기 시작한다.

         

       어떤 여행객은 화장실의 문을 벌컥 연다.

       어떤 여행객은 캐리어를 열어놓는다.

       어떤 여행객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위장에 무리를 주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비틀비틀 움직여 모두 방의 중앙으로 모이고.

       몸을 웅크리고 가슴을 쥐어뜯는 것처럼 짜내며 그들은 하나의 지점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우웨에엑.

         

       철퍽.

         

       그들이 입을 열기 무섭게 쏟아지는 것은 토사물.

       다만 그것은 위액과 녹아버린 음식물 대신, 다른 무언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철퍽거리는 소리를 내며 쏟아진 그것은 액체가 아니었다.

       기묘하게 반투명한 그것은 마치 슬라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엑토플라즘(Ectoplasm).

         

       영력(靈力)을 물질적 매개를 통해 구체화를 이룬 것.

       영력과 관련된 주술을 쓰는 주술사들의 비전이며,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기이한 일이기도 했다.

         

       악령에게 빙의가 된 존재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람 흉내를 내는 악귀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여행객들이 몸 안에 저러한 엑토플라즘을 품고 있을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귀신을 부리는 주술사들조차도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위험해서 다루지 못하는 물질일 텐데.

         

       거기에 더더욱 기이한 것은 그들이 쏟아낸 것이 엑토플라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엑토플라즘 근처에서 꿈틀거리는 것.

       그것은 바로 벌레였다.

         

       해충에 속하는 수많은 벌레.

         

       그 벌레들은 위장에서 토해졌음이 분명함에도 녹지 않고 형체를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살아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엑토플라즘에 적응이라도 한 것인지 엑토플라즘 위를 기어 다니거나 그 안에서 헤엄을 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다.

         

       누군가 본다면 사악한 존재가 나오는 공포영화가 지금 이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은 이 여행객들이 사실은 사교 집단이며 어디 지옥에 처박혀 있는데 악령이라도 소환하려는 광신도들이 아닌지 의심할 법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들의 행동 역시 광신도의 그것과 참으로 흡사하였으니.

         

       “오오오—이야아아—마아이아—”

         

       “베이이이로-하암—”

         

       복부와 목을 진동시키며 내는 소리.

       마치 싱잉볼을 문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길고 웅장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웅장하게.

       하지만 작게.

         

       기묘하지 않은가.

         

       소리가 저토록 웅장한데.

       저음이면서도 방 전체를 가득 채울 만큼 대단한데.

       그럼에도 저 소리는 작다.

       마치 무언가가 소리를 먹어 치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 소리는 작다.

         

       “후아아암—오오오–”

       

       웅장한 소리는 퍼진다.

       하지만 닫힌 공간에서 그러하듯 그것은 넓게 퍼지되 얕았고, 깊지 못하여 벽을 넘지 못한다.

       그리하여 방 안에 갇힌 채 그곳을 배회하며 가득 메우기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니, 그것은 웅장하되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소리다.

         

       마치 밀교의 그것처럼.

       숨어서 집회를 하고 의식을 행하던 밀교의 그것과도 같다.

         

       그리고 그러한 웅장하지만 작은 소리 속에서 그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선다.

       몸을 한껏 낮추어 절을 한다.

       몸을 일으키면서 중간에 멈추고, 위장을 쥐어짜서 토악질한다.

         

       철퍽.

         

       그럴수록 늘어나는 엑토플라즘.

       그리고 벌레들.

         

       다리가 달린 것에 그치지 않고 기생충으로 보이는 것들도 나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엑토플라즘을 요람 삼아서, 엑토플라즘을 콘크리트로 삼아서 그들은 점점 몸집을 키워나간다.

         

       절이 한 번.

       두 번.

         

       찬양하듯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한 번.

       두 번.

         

       동작이 반복되고, 엑토플라즘이 쏟아져 나온다.

       바다를 건너 엑토플라즘과 벌레라는 짐을 운반하기 위해 마련된 이들은 그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마침내 엑토플라즘과 벌레는 어떠한 형체를 이룬다.

         

       키는 대충 120cm 정도 될까.

       젖살조차 빠지지 않은 귀여운 아이 하나.

         

       새까만 머리카락에 갈색의 눈동자.

       동양인으로 보이는 어려 보이는 아이 하나가 탄생하였다.

         

       귀여워 보이지만 사람은 아닌.

       피와 살 대신에 엑토플라즘과 벌레로 만들어진 존재.

         

       저 멀리 한국에 있는 한 주술사와 이어진 단말.

       미국에서 활동하기 위해 원격에서 의식을 행해 만든 존재.

         

       박진성.

         

       박진성이 미국에 발을 디뎠다.

         

       기생술사라는 멸칭에 걸맞게 여행객들의 몸에 기생하여.

       자기 집에 침입했던 자들을 귀신에게 홀리게 만들고, 미국에 보내서.

       그리고 의심이 거두어질 때쯤 그들의 몸속에서 빠져나와 의식을 행하게 만든 뒤 짜 맞춰서.

         

       그렇게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그는 미국에 단말을 만들었다.

         

         

         

         

        * * *

         

         

         

         

       어린아이의 형태는 유용하다.

         

       어디에 가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술집이나 클럽 같은 곳에는 발을 디딜 수가 없으며, 돈을 쓰는 것조차도 제약이 존재하며, 심지어 혼자 돌아다니면 경찰이나 경비원이 와서 참견하기까지 한다.

       몰래 활동하기에 좋은 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어른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또래 아이들의 관심까지 끌 수 있다는 것 역시 문제다.

       아이들은 여러모로 변수 덩어리이며,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존재.

       외국인 어린아이와 친해지겠답시고 다가올 수도 있고, 외국인 어린아이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찾아올 수도 있다. 게다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거나 돈을 빼앗는 등의 행동을 하며 경찰과 얽히게 만들 수도 있기까지 하니….

       그래.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들을 덮을만한 어마어마한 장점이 하나 존재하니.

       그것은 바로 의심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냉혹하거나 의심이 많지 않은 이상에야 어린아이를 의심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총을 들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고, 총을 들고 은행강도를 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폭탄을 설치해서 건물 하나를 날려버릴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이능을 발휘해서 테러하거나 중요 시설을 돌파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지켜줘야 할 존재라는 편견이 그 가능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료가 덜 들어간다는 것도 장점이지.’

         

       그리고 가성비 측면으로도 꽤 괜찮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의식이라고 보기 힘든 간이 의식으로도 이렇게 훌륭히 몸을 하나 만들어냈지 않은가.

       일본에 있는 원영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고로 이러한 몸체를 만들었다는 것은 효율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공들여서 만든 일본의 또 다른 몸과는 다르게 엑토플라즘을 이용해 불안정하며, 몸을 구성하는 벌레들 역시 그리 숫자가 많지도 않고 탄탄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기는 했다. 게다가 박진성이 인과에 끼어있기는 하되 완벽하게 그가 주체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 문제이기도 했고, 엑토플라즘을 재료로 사용했기에 귀신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그리고 불안정하므로 발각이 될 확률도 좀 높았고.

         

       벌레로 이루어졌음에도 의심을 사지 않았던 원영신을 생각해본다면- 이 역시 큰 단점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뭐.

         

       귀하게 다루고 오래 쓸 것이 아닌 이상에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몇 번 쓰고 망가지면 버리면 되는 물품은 그렇게 막 쓰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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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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