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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7

        

       모든 물건에는 나름의 쓰임이 있는 법이니.

       모든 것을 귀히 다룰 필요도 없음이며,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아니 되는 법이라.

       수레바퀴는 언젠가는 닳거나 부서지기 마련이요, 수레 역시 삐걱거리다가 바꿔야 하는 순간이 오는 법.

       만물이 그러하듯 모든 것에는 수명이 있고 쓰임이 있으니 유용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박진성은 만들어진 몸을 용도에 맞게 쓰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된 의식의 끝에 결국 탈진해버리고 만 사람들의 사이를 걸어서, 커튼 너머의 창문을 살짝 열고.

         

       폴짝.

         

       높은 호텔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새까만 옷을 입고 있는 박진성의 몸체는 어둠에 쉬이 녹아들었으며, 그나마도 몸이 벌레로 분해가 되면서 아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만약 눈이 좋은 이가 박진성의 모습을 보았다고 할지라도 착각 또는 귀신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분해된 박진성은 호텔 밖으로 향하는 차량의 밑바닥에 그대로 달라붙는다.

       그러고는 도로로 이동하여 바쁘게 움직이는 구급차의 아래로 이동하여 달라붙고, 그렇게 너무나도 손쉽게 구급차에 매달려 병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구나.’

         

       운이 따르는 것일까.

       그가 매달린 구급차는 그가 향하려는 목적지와 똑같은 곳이었다.

         

       병원.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에서 만났던 어떤 인물이 있는 병원이다.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Lucas Metathronius Goldsmith).

         

       크리스털 팔을 가지고 있는 남자.

       미국에서 박진성과 일종의 계약을 맺었던 남자.

       그리고 이제는 혼수상태에 빠져 대학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버린 불운한 남자.

       사람들에게 추앙받지만, 사실은 수많은 악업을 쌓아온 돈에 미쳐있는 사람.

       금을 캐는 광부라도 되는 것처럼 금과 달러를 캐는 일생을 살아왔던 그가 그곳에 있다.

         

       박진성은 바로 그 루카스를 만나러 온 것이다.

         

       ‘흠. 영적 대책이 되어 있군.’

         

       하지만 그 만남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과연 의료보험이 있거나 돈이 많지 않으면 입원할 수 없는 곳이라 그럴까.

       외부의 침입자나 진상 환자를 제압하기 위한 시설들은 물론이고, 묵고 있는 부자 환자들을 위한 결계 같은 것도 꽤 철저하게 설치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고통받는 이들도 넘쳐나고 죽어 나가는 이도 많은 병원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생길 수 있는 귀신을 방지하기 위하여 영적 대책까지도 철저하게 되어 있기까지 했다.

         

       ‘일본과 연계를 한 모양인데….’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영적 대책이란 완벽하지 못한 것이었다.

         

       음양사의 도움을 받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저 결계와 영적 대책은…. 안타깝게도 박진성이 알고 있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아마 일본 밖에서는 비효율적인 음양술이라고 할지라도 자본의 힘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란 판단으로 저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생소한 저 방어 대책은 박진성에게는 훤히 뚫려있는 자동문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박진성은 너무나도 쉽게 저 둘을 통과했다.

       결계는 음양술을 응용해 결계와 관련된 이로 속였으며, 영적 대책은 상징을 왜곡하거나 오염시켜 틈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박진성은 아무런 저항 없이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1층이 아닌, 건물 외벽을 타고 중층에서부터.

         

       그렇게 중층으로 들어간 박진성은 몸을 분해해 환풍구로 녹아들었고, 루카스가 묵고 있을 병실로 향했다.

         

       삐-

       삐-

       삐-

         

       후욱.

       후욱.

         

       값비싼 1인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어마어마한 돈이 깨질 것만 같은 호화로운 공간.

       그곳에 루카스는 있었다.

         

       그는 전에 만났을 때보다 초췌해진 인상으로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 팔에는 이것저것을 매단 채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었다.

         

       ‘대단하군.’

         

       느껴진다.

       반드시 루카스를 살려놓겠다는.

       그의 재산이 허락되는 한 그의 명줄을 붙여놓겠다는 집착이 느껴진다.

         

       몸 곳곳에 붙어있는 검사 기구.

       강제로 전기신호를 흘려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의료기구.

       가슴께에 붙어있는 패치와 연동해 심장, 폐, 호흡 운동을 적절한 수준으로 행하게 만드는 아티팩트.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든 제세동기.

         

       ‘퍼플루오로데칼린(Perfluorodecalin) 주입 기구까지 있군.’

         

       정전되거나 기계가 고장이 났을 때를 대비한 것일까.

       호흡이 불안정해졌을 경우 폐에 연결된 관을 통해 퍼플루오로데칼린(Perfluorodecalin)을 넣어서 액체 호흡을 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초소형 기계도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몸 곳곳에 있는 수술의 흔적.

       잠깐 쨌다가 닫은 것으로 보이는 미미한 흔적들은 분명 칩을 삽입한 것일 터.

       약물을 주입하기 위한 칩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한 칩인지….

         

       이 정도면 감탄이 나올 수준이라 하겠다.

         

       그야말로 이 대학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신식 기술은 전부 적용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박진성은 그러한 루카스의 모습에 방긋 웃었다.

         

       ‘옛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죽음과 잠은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이 남자는 과연 죽은 것인가 잠에 빠져있는 것인가?’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잠.

       잠이란 한없이 죽음에 가깝기도, 삶에 가깝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그 생사의 경계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터.

         

       휴식.

       휴식이라.

         

       돈만을 바라며.

       자신의 안전에 집착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온 남자의 휴식이라.

         

       나쁜 일은 아니다.

         

       박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루카스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지는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말이다.

         

       ‘가까이 다가갔을 경우 어떠한 장치나 알람이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요, 몸속에 기생충을 넣거나 벌레를 넣으면 그것 역시 발각이 될 것이 분명할 터.’

         

       그가 루카스에게로 찾아온 것은 아슈토쉬 싱이 말한 ‘힌트’가 루카스와 관련이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의 직감이 속삭였으니까.

       그의 이성이, 경험이 말하였으니까.

       회귀 전과 다른 변수.

       회귀 전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던 ‘불로불사’라는 것에 대한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 힌트.

       그것과 어울리는 것은 루카스라고 여겼으니까.

         

       그렇기에 박진성은 루카스를 관찰했다.

         

       하지만….

         

       ‘애매하군.’

         

       안타깝게도 루카스에게는 딱히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루카스의 몸에 붙은 의료기구나, 그의 목숨을 붙여놓고 이는 최신 의료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돈을 말 그대로 퍼부으면서 개발한 것들이겠지.

       아마 저런 기술이라면 저승에서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이승으로 끌어오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저것이 불로불사와 관련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하겠다.

         

       저것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며, 목숨을 유지하는 것.

       박진성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겠다.

         

       ‘흐음.’

         

       혹여 의료 기술 중에 그가 원하는 것이 있는가, 단서와 관련된 것이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뭐,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주술 말고는 그리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 박진성인데, 이러한 의료 쪽 기술을 본다고 이해나 할 수 있겠는가? 과학과 관련된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마법이나 연금술 쪽과 관련된 것을 보아도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다.

         

       직감은 이 루카스라는 남자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루카스를 살피고 관찰해보아도 그 힌트라는 것이 전혀 보이지를 않으니.

         

       참 희한한 노릇이 아니던가.

         

       ‘허허허. 뭐 그리 쉽게 발견되었다면 다른 이들이 가져갔겠지.’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이 루카스라는 사람이 어디 평범한 사람이던가.

       수많은 적들 사이에서 돈 버는 재주 하나로 살아남고 있던 사람이다.

       기계 교단이 노리고, 정부에서 노리고.

       어마어마한 보물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분수에 넘치는 것을 지녔다는 혹평조차 듣지 않으며, 끊임없이 목숨을 부지해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진 것이 그냥 관찰한다고 알아챌 만한 것이었다면 진즉에 털리고도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 털렸다면 없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요, 털리지 않았다면 그만큼 은밀한 것이기에 볼 수 없는 것이라.

         

       그렇다면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인연이 닿는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요.

       인연이 없다면 회귀 전처럼 아예 존재조차 모른 채 없어져 버릴 것.

         

       ‘연이 닿지 않으면 나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이요, 허락되지 않은 것과 같음이니. 그것에 얽매이는 것은 곧 집착이요 괴로움이라.’

         

       기다린다.

       관찰한다.

       거미가 집을 짓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헤미안 클럽에서 권력자들을 죽이며 그와 발을 맞추고 있는 무인이 그러하듯이.

         

       급할 필요는 없다.

         

       회귀 전처럼 금방 죽을 목숨도 아니요.

       죽어야 할 몸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니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최후의 주술을 사용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도 않다.

       그렇다고 전쟁의 겁화가 한국에 침범한 것도 아니니.

         

       무어 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언제고 단서가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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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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