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98

        

       조급함은 모든 것을 망치는 법.

       적절한 인내야말로 미덕이라.

         

       주머니 속의 송곳이 언제고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물 역시 스스로 광채를 내며 사람을 현혹하기 위하여 애를 쓰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금속의 성질이며 특징이라.

       꾸준히 관찰하다 보면 그 빛이 새어 나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요, 그것을 단서로 삼아 나아가면 닿을 수 있겠지.

         

       물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그렇고, 기계 교단도 그렇고, 미국에서 나타날 수많은 미치광이와 단체들이 바로 그러하다.

         

       그리고 또한 그를 속였던 주술사.

       그가 모르는 어떠한 주술을 사용했을 그 주술사 역시 크나큰 변수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박진성은 기다린다.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였음이니.

       박진성은 그 주술사가 루카스를 목표로 움직이게 된다면 그 흔적을 놓치지 않을 것이니.

       그 주술사를 찾게 된다면 그 또한 이득이라.

       아니, 어쩌면 불로불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이득이라 할 수 있겠다.

         

       회귀 전에는 몰랐던 변수이자 보물덩어리.

       그가 모르는 주술을 가지고 있을 의문의 은둔자.

       그와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은 그깟 불로불사보다 더더욱 크나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그래.

       굳이 변수가 나타난다면 그 주술사와 관련된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하다면 참으로 좋겠지.

         

       박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 * *

         

         

         

       변수.

       간단하지만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나비 하나의 날갯짓이 폭풍으로 변하듯 인과란 참으로 신묘하기 그지없어 예측할 수가 없는 것. 그렇기에 예언이라는 것은 확정과 불확정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며, 불확실하여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

         

       “아. 아. 아.”

         

       하지만 그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변수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것은 일상이요, 동시에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예언이라는 것은 시간과 시간의 틈새를 건너뛰며 삶을 경험하는 것.

       선이 아닌 점과 곡선, 입체로 이루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일반인과는 다른 시간에서 존재하는 것.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이능.

         

       예언자.

       이능력 중에서도 이질적이며, 동시에 많은 이들이 탐내는 능력.

       그 능력을 가진 이 중 한 명이 시간을 건너뛰어 경험하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미래.

       확정되었기에 볼 수 있는 경험.

       하지만 동시에 확정이 되지 않은 시뮬레이션.

       조그마한 변수가 끼어들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꿈결과 같은 그것.

         

       하지만 동시에 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그들의 이능에서 작용한 ‘경험’이다.

         

       척.

       척.

       척.

         

       기다란 총검이 붙어있는 돌격소총.

         

       척.

       척.

       척.

         

       군화를 신은 군인들이 절도있게 움직인다.

       마치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은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며 행진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의 총검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

       머리에 쓰고 있는 붉은색의 베레모는 핏물을 머금기라도 한 것처럼 새빨갛고, 회색의 군복은 도시의 풍경에 녹아들며 그들이 이 도시의 풍경이 되었음을, 일상이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리고 저 멀리 건물 하나.

       정부 건물로 사용했던 곳의 3층에서 남자 한 명이 서 있다.

         

       행진하는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베레모를 쓰고 있는 늙은 남자.

       그는 근엄한 얼굴로 행진하는 이들을 바라본다.

       푸른 눈으로 깃발을 흔들고 있는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공포와 경외가 서린 눈으로 군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을 담는다.

         

       드드드드드.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강철의 군대.

       하늘색으로 칠한 전투기가 움직이며 구름으로 꼬리를 만들고.

       색색의 연기가 퍼져나가며 그들의 국기를 그린다.

       용맹한 군인들과 특수부대원들이 그들의 강력함을 대변하고.

         

       드드드드.

         

       그들의 뒤편에 따라오는 육상전함이 그들의 위엄을 대변한다.

         

       오오.

       땅에서 질주하는 거대한 강철의 산.

       바다를 점령한 그들의 전함 못지않은 거대함을 보여주는 전차.

       수천 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그들의 자랑!

         

       원자력을 에너지로 삼아 움직이고, 특수합금을 둘러 무적이나 다름이 없는 움직이는 성채가 도시에 들어온다. 거대한 요새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이 승전을 알리는 깃발을 흔들고, 요새에 붙어있는 주포가 퍼엉- 퍼엉- 거대한 소리를 내면서 축포를 쏘아 올린다.

       보란 듯이 붙어있는 핵미사일은 시민들로 하여금 굴종하게 만들고, 양옆에 거미의 다리처럼 뻗어있는 기계발은 언제든 그 땅에 뿌리를 내려서 단단하게 고정되어 그들을 감시할 수 있는 탑이요 그들을 관리할 총독부 시설이 될 수 있음을 알린다.

         

       보아라.

       이 위대한 기계를.

       과거의 패배를 설욕하고 복수에 성공한 그들의 힘을.

         

       하늘에는 푸르른 자유가.

       바다에는 하얀 평등이.

       대지에는 붉은 우애가.

         

       승리했다.

       승리하였다.

         

       우리는 마침내 승리하였다.

         

       “Vive la France!”

         

       “Vive la France!”

         

       프랑스 만세.

       위대한 프랑스 만세.

       유럽의 패권국.

       새로운 질서.

       유럽을 지도할 위대한 나라.

       프랑스 만세!

       프랑스 만만세!

         

       푸른색, 하얀색, 붉은색.

       세 가지 색이 섞인 국기가 펄럭거린다.

       과거 이 땅의 민족이 행하였던 것을 그대로 복수하듯이.

       이제는 프랑스의 일부가 되어버린 국가를 조롱하듯 그들이 깃발을 보란 듯이 펄럭인다.

         

       그리고 조롱하듯 외치기를.

         

       “Es lebe ein großes Volk!”

         

       “Es lebe ein großes Volk!”

         

       “Es lebe ein großes Volk!”

         

       위대한 민족 만세.

       위대한 민족 만세!

         

       과거 드골이 서독에서 독일어로 행했던 연설처럼.

       하지만 독일을 찬양하고 독일과 프랑스의 동맹을 찬양하는 문구는 삭제한 채.

         

       그들은 점령당한 이들을 조롱하듯 외친다.

         

       위대한 민족 만세.

         

       세계 2차 대전 때 이곳의 시민이 주장하였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며.

       외친다.

         

       위대한.

       프랑스.

       만세.

         

       하하하하하하하!

         

       “으. 으. 으으으….”

         

       그리고 그러한 행진을 보며 그는 저택에 있다.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는 그것을 똑똑히 바라본다.

         

       밀폐된 공간임에도.

       그가 그 행진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직 TV뿐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광경을 생생하게 느낀다. 반투명하게 변해버린, 뒤가 비쳐 보이는 몸을 지닌 채 그는 그것을. 그것을 바라본다.

         

       “으으으….”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몸은 신음한다.

       살이 빠져서 앙상하게까지 보이는 몸.

       홀쭉하게 푹 들어간 볼.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렇게 말랐음에도 이상하게 힘은 넘쳐나는 몸으로.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프랑스가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

         

       다만 그것은 몸이 아닌 영혼으로 보는 것인지라.

       그의 살아있는 몸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못한 채 신음만을 흘리고 있어서.

       그는 행진을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기묘하게도 커다란 실감은 느끼지 못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환호성과 엔진 소리, 대포 소리, 전투기의 소리도.

       우울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거나, 골목길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는 독일 시민의 모습도.

       독일을 침략하고 마침내 점령하는 데에 성공한 장군의 모습도.

       생생하지만 동시에 VR로 영상을 보는 것만 같은, 그러한 괴리감 속에서 그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소녀 한 명.

         

       [ 와아. 무섭다. 그렇지, 윌? ]

         

       소녀는 영혼 상태가 된 남자의 팔짱을 낀 채 해맑은 얼굴로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

       남자와 똑같이 반투명한 영체를 가진 그녀는 자신의 짝을 부른다.

         

       윌리엄.

         

       그녀의 남편.

       결혼식으로 영원을 맹세한 사람.

       긴 세월을 기다려 마침내 바라키엘 앞에서 하였던 언약을 지키게 된 기적의 반려.

         

       그녀는.

       비아트리스 메리 메리어트는 자신의 남편, 윌리엄 R. 아르투아를 바라보았다.

         

       [ 윌? 왜 그래? ]

         

       [ …그래. 무섭네. ]

         

       [ 걱정하지 마. 이런 무서운 일이 있어도, 그 어떠한 시련이 있어도 우리는 함께니까. ]

         

       영원히.

         

       한기(寒氣)가 한껏 서려 있는 입김.

       산 자를 흉내 내는 것처럼 내뱉는 숨.

       하지만 그것에는 살아있는 자들이 내뱉는 온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은 자 특유의 싸늘한 냉기.

       살아있는 것에 해를 가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만드는 음의 기운.

       하지만 주술사에게 축복받아 윌리엄에게는 해를 끼치지 못하는 그 싸늘한 기운이 비아트리스의 집착과 함께 윌리엄의 몸을 한 바퀴 감싸고는 사라진다.

         

       마치 뱀이 몸을 휘감고는 사라지는 것처럼.

       혹은 몸을 단단히 묶은 쇠사슬의 존재를 차가운 금속의 감촉으로 다시 자각이라도 하는 것처럼.

         

       윌리엄은 자신을 바라보는 비아트리스와 눈을 마주하였다.

         

       [ …그래. ]

         

       단단히 붙잡고 있는 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영력의 차이는 윌리엄이 그 팔짱을 푸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광경이 얼마나 미래일 것인가.

       가까운 미래인가, 먼 미래인가.

       거리도 알 수 없고 시간도 알 수 없지만….

         

       아아.

         

       윌리엄은 예언으로 경험하고 있는 뒤틀린 시간 속에서 생각한다.

         

       미래에도 그는 비아트리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신성술사가 말했던 것처럼 그 둘은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임을.

       바라키엘 앞에서 했던 언약처럼 그들은 영원히 부부로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을.

         

       윌리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하 웃는다.

         

       그리곤 눈을 감고.

         

       “…하. 하하하.”

         

       현실로 돌아온다.

         

       “하하하하.”

         

       현실?

       현실…?

         

       미래도 현실이고 지금도 현실이다.

       시간은, 시간은 의미가 있나?

       미래에도 그는 존재하고 이곳에도 존재한다면.

       시간은 과연 의미가 있나?

         

       현재는.

       미래는.

       시간은….

         

       [ 악몽을 꾼 거야? ]

         

       아. 한기가 느껴진다.

         

       아름다운 소녀.

       하늘거리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비아트리스가 그를 살포시 안는다.

         

       그리곤 귓가에 속삭인다.

         

       [ 여보. ]

         

       “하하하하.”

         

       그 포옹에, 한기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스킨쉽의 감각에.

       윌리엄은 웃었다.

         

       “하하….”

         

       웃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