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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99

        

         

       하지만 그러한 스킨쉽도 잠시.

       윌리엄은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앞서 발현되었던 능력은 그저 악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리 생각하면서.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

       …

       …

         

       『 뭐? 영결식? 저…아이랑? 』

         

       『 윌리엄.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거냐? 아니, 세상에…!』

         

       『 오 맙소사. 신이시여…!』

         

       눈을 감자 부유하듯 떠오르는 기억.

       어린 소녀 유령과 결혼 당한 채로 집에 돌아왔을 때 들렸던 수군거림.

         

       윌리엄은 기억한다.

         

       경악하면서 자신을 바라보았던 가문 사람들의 얼굴을.

       유령, 그것도 어린 소녀와 결혼을 한 채 돌아온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보았던 사람들을.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거부감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사라져버렸다.

         

       주술에 당한 윌리엄은 살아있는 인간 여성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오직 비아트리스 메리 메리어트, 그의 유령 신부와만 관계를 맺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귀접은 강렬한 쾌락만큼이나 그의 몸에 부담을 주었고, 양기가 많다 못해 넘칠 수준이었던 윌리엄은 축 늘어진 채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평소처럼 밖에 쏘다니면서 놀 수도 없었고, 수시로 갈아치웠던 애인들과도 만날 수가 없었다.

         

       『 흐음. 윌리엄이 잠잠한데? 』

         

       『 평소처럼 시비를 걸지도 않았어요. 』

         

       『 가문의 사업장에 쏘다니면서 행패도 부리질 않는군. 』

         

       『 허허. 파파라치들이 이렇게 잠잠한 것도 참 간만이야. 저놈 하나 조용하니 이렇게 평화로워질 줄은 몰랐어. 』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만 유지되었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

         

       『 내 저놈이 영혼결혼식을 하고 왔던 것을 보고 기함을 했는데, 이거 오히려 그 아이한테 감사 인사를 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어. 흠. 』

         

       그 때문일까?

       처음에는 경악하면서 거부감을 표출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이다.

         

       윌리엄의 행패에 가장 먼저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용인들, 그가 허구한 날 놀러 다니면서 갑(甲)의 위치로 온갖 행패를 부렸던 가문의 사업장, 괜히 시비가 걸리거나 피해를 보아왔던 시민들, 윌리엄이라는 이름만 들리면 한숨부터 쉬면서 출동했던 경찰들, 윌리엄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가문의 사람들….

       그 모두가 ‘사고를 치지 않는 윌리엄’을 격하게 환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윌리엄이 사고를 치지 않게 만든 소녀 유령, 비아트리스 메리 메리어트에게 호의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리고 결국에는….

         

       『 쯧쯧. 내 언젠가는 저럴 줄 알았지. 카르마를 그대로 돌려받은 게 분명해. 』

         

       『 뭐라고? 내 아들이 저렇게 됐는데…!』

         

       『 화를 낼 필요가 뭐 있어? 오히려 잘 된 거 아냐? 온 세상에 씨를 뿌려놔서 후계 걱정도 없겠다, 유령이기는 하지만 첫사랑이랑 결혼도 해서 가정도 만들었겠다, 그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치고 다니던 사고도 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고. 』

         

       『 하지만….』

         

       『 솔직히 말해서 저놈이 가정을 이루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기나 했어? 웬 마녀 한 명 졸졸 쫓아다니기는 했지만, 제정신이라면 저놈이랑 결혼할 리도 없었을 테고. 분명히 사고 치고 다니면서 가정도 안 만들고 사생아는 잔뜩 싸질러놓은 채로 살다가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가문에서도 커버 안 될 정도로 큰 사고 쳐서 감옥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보는 눈도 없이 건드리면 안 될 사람한테 원한 샀다가 큰일 당하거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 』

         

       『 아니. 』

         

       『 솔직히 말해서 저놈 망나니 아니었냐고 망나니. 근대만 되었어도 저놈은 어디 탑이나 섬 같은 곳에 유폐된 채 살아갔을 놈이야. 그런 놈이 사고 안 치게 되고, 가정도 이루게 되었으니 오히려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게다가 뭐 아내가 어린 시절 첫사랑이라며. 이 정도면 우리 가문이 은혜를 입은 거야, 은혜를. 』

         

       『 …후우. 은혜라니. 그 무슨. 』

         

       『 아 뭐 말이 그렇다는 소리지, 진짜 은혜는 아니고. 하지만 솔직히 긍정적인 것은 맞잖아? 가문의 어르신들부터 시작해서 외가까지 저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냐고. 오죽하면 다들 저놈 이름만 들으면 인상부터 찌푸릴까. 예언자 능력 없었으면 사달이 나도 진즉에 났어. 』

         

       『 …. 』

         

       『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아들내미 인생이 망친 게 아니라, 오히려 인생이 좋은 쪽으로 돌아온 거라고. 자식이야 뭐, 저놈이 뿌린 씨앗이 넘쳐나니 똘똘하고 장래성 있어 보이는 놈을 데리고 오면 그만이지. 』

         

       『 그렇긴…하지…후. 그래. 유령이고 어린 소녀이긴 하지만, 저런 며느리를 얻은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어….』

         

       …결국에는, 그의 부모조차도 비아트리스를 며느리로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어쩌면 친척의 말처럼 모든 것은 업보일지도 모른다.

         

       허구한 날 사고를 치고 다녔던 망나니에게 돌아온 업보.

       ‘사고를 치고 다니는 골칫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했던 그의 행보가 만든 업보.

       그러하니 어린 소녀 유령과 가정을 이룬다는 비상식적인 상황조차도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겠지.

         

       그리고.

       그리고….

         

       “미카엘께서 경고하였음이니 유럽의 민족들이여 그대들의 신성한 재보를 지켜라(Völker Europas, wahrt eure heiligsten Güter)! 구름이 걷히고 그사이에 찬란한 빛이 내려와 하늘에 신성한 십자가를 그리나니 그 빛의 인도 아래에서 천사의 날갯짓에 맞춰 우리는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

         

       들린다.

       들려온다.

         

       깊은 잠으로 빠져들려던 의식이 갑작스럽게 부상하고, 새까만 어둠에 빛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우렁찬 연설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의 뒤틀림.

       위치의 변동.

       강력한 예언자일수록 겪을 수밖에 없는 패러독스.

         

       지금 그는 괴리된 시간 속에 존재한다.

         

       “옛적 유럽을 침략했던 사악한 이들을 기억하는가! 말을 타고 질풍처럼 나타나 신앙의 형제들을 죽이고! 시체를 성안으로 집어 던지며 역병을 퍼뜨렸던 종말의 기수들을 기억하는가? 노란 피부의 그 반인반마의 악적들을 기억하는가?!”

         

       하늘에 그려진 빛으로 이루어진 십자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달콤한 향기.

       수많은 군중이 몰려있는 광장.

         

       빛으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아래, 선동가가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 경계하라! 유럽은 지금 끔찍한 위기 속에 존재한다. 위태롭게 타오르는 촛불처럼 우리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사악하고 끔찍한 바람에 언제든지 잡아먹힐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선동가는 군중에게 말한다.

       광장에 모인 이들에게, 카메라 너머로 시청하고 있을 이들에게.

         

       “노란 피부의 침략자들은 과거 그러했듯 우리를 공격하리라. 옛적에 그러했듯 유럽을 흙발로 짓밟고, 철로 된 말을 타고 우리를 학살하리라. 신앙을 짓밟고 복종하기를 바랄 것이며, 우리에게 멍에를 씌우고 우리의 아들딸을 노예로서 부리며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일 것이다!”

         

       선동가는 소리친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동쪽의 침략자들에 맞서야 한다! 세상을 찬란하게 밝히고 발전시켜온 유럽의 저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과거의 은원을 잊고 우리는 같은 피부를,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형제로서 세상이 노랗게 물드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유럽의 의무이며, 문명의 퇴보를 막기 위한 숭고한 의지이니!”

         

       선동가는.

       중국의 위협으로 유럽을 단결시킨 저 남자는.

         

       “이것은 숭고한 성전이다! 무신론을 내세우며 온 세상을 제 발아래로 꿇리려 드는 사악한 독재자에 맞서기 위한 성전! 신앙을 지키고, 민족을 지키기 위한 성전! 우리의 아들딸을 노예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한 필연적인 싸움!”

         

       유럽의 사람들을 이끌고 중국과의 전쟁을 말하고 있었다.

       성전을, 백인의 우월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고….

         

       “와아아아아-!”

         

       그 선동에 홀린 이들 중에는 아르투아 가문도 있었으니.

       윌리엄은 이 전쟁에서 흐를 피의 강물 중에는 아르투아 가문의 핏물 역시 섞여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윌리엄은 선동가에게 환호성을 내지르는 아버지에게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그 순간.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다시 시간이 뒤틀린다.

         

       [ 전 세계의 인류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현 시간부로 인류는 다시 한번 도약에 성공하였습니다. 우리는 진화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우리 기프트 코퍼레이션은 오랜 연구 끝에 유전자를 통제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베일에 감춰져 있는 유전자 지도를 파악하는 것에 성공하였고, 성공적으로 디자인된 아기를 선별하여 출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높은 지능, 뛰어난 신체, 질병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강건함.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뛰어난 외모까지. ]

         

       [ 기프트 코퍼레이션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

         

       [ 여러분. 인류는 도약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를 손에 넣었습니다. ]

         

       자신이 존재했던 미래는 사라지고 다른 미래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도 아니면 마치 평행세계에라도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윌리엄의 귀에 소리가 들린다.

         

       지지지직.

         

       그것은 시간이 파열하는 소리.

       시간이 빨리 감기며 나는 파열음.

         

       윌리엄은 지금 뒤틀린 시간 속에 존재한다.

       앞과 뒤도 없고, 위와 아래도 없다.

       빠르게 감기고 느려지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는.

       입체와도 같은 시간 속에 그는 존재한다.

         

       [ 수많은 음해가 말합니다. 유전자 가위로 디자인된 아이들에게는 크나큰 결함이 있다고. ]

         

       [ 하지만 단언하겠습니다. 유전자 지도를 완벽히 이해하고 통제하게 된 이상, 결함이란 이론상으로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지지직.

         

       [ 많은 사람은 말합니다. 디자인된 아이들의 공감 능력의 감소가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

         

       [ 여러분. 공감 능력이라는 것은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장 빛나는 것입니다. 공감 능력이 넘쳐난다는 것은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며, 많은 일에 ‘감정적’으로- 달리 말하자면 ‘비효율적’으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프트 코퍼레이션에서는 그러한 결함을 유전자 단위에서부터 통제하고 수정하였으며- ]

         

       지지지직.

         

       [ 신인류 만세! 만세! 만만세! ]

         

       [ 구인류는 통제되어야만 한다. 과거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해야만 한다! ]

         

       지지직.

         

       [ …은신처에서의 마지막 기록이 될 것 같군요. 우리는 크나큰 실수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재앙을 불렀고, 온 세상에 잠들어 있던 광기를 깨어나게 했습니다. 전 세계는 광기 속에서 잿더미와 불꽃이 가득하게 되었고, 미치광이와 그들이 만들어낸 광기의 국가들이 활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싯돌이었고, 화약을 폭발하게 만든 불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콰앙!* 아! 그들이, 그들이 왔습니다. 세상을 광기로 물들이려다가 실패해버린 신인류들이, 잔혹한 도적으로 영락한 그놈들이 지금 이곳에— ]

         

       …

       …

       …

         

       “하하하. 빌어먹을.”

         

       시간이 뒤틀리고 뒤섞인다.

       무엇이 미래고 가능성인가?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가?

       현재와 미래.

       실제 맞이할 것인지조차 의문이 드는 광기 가득한 미래들.

         

       “아-아아아악!”

         

       생생하리만큼 역겨운 광기의 미래.

       제어할 수 없는 예언 능력 속에서 윌리엄은 절규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음과 함께 찾아오는 불청객은 항상 불쾌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번 불청객은 매우 질기네요…쥐보다도 더…
    이명이 영 사라지려 하질 않으니…
    건강관리에 소홀했던 제 업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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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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