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

       “…라인 공자님.”

       

       꿀꺽. 어찌나 무겁게 넘기는지, 프란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런데 라인이 누구야?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긴 한데.’

       

       나는 죽기 직전까지 이 게임의 모든 엔딩을 보기 위해 공략 영상을 찍었기에 웬만한 등장인물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면 완전 엑스트라였다는 건데.

       

       라인이라고 불리오는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프란체 앞에 서서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프란체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저택이 떠들썩하던데. 네가 직접 설명해라.”

       “…이미 대화를 끝마치고 넘어간 문제예요.”

       “허, 형님과 공작님이랑 얘기했다고 해서 내 화가 풀리나?”

       

       라인은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아래에서 위로 쭉 훑었다.

       

       “꼴을 보니 노예 새끼가 틀림없군. 마물 특유의 악취도 나는데. 설마 이걸 사 온 거냐?”

       

       음, 그러고 보니 여태껏 씻지도 못했지. 어쩐지 더럽게 찝찝하더라니.

       

       프란체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 얘는 왜 집안에서 이렇게 약하게 나오는가. 이유가 뭘까.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왜 프란체에게 이런 시선을 보내는 건가.

       

       의혹이 가득했다.

       

       “그래서, 저 노예가 있는 이유는?”

       “제 말을 듣는 사람을 원해서 데려왔어요.”

       “말을 들어? 하,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라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끔 바라봤다.

       

       “그래, 들어나 보자. 어떻게 데려왔는데?”

       “…거금을 주고 데려왔습니다.”

       “뭐…? 아무리 돈을 막 쓸 수 있어도 그렇지, 이런 새끼한테 돈을 태워? 쓰레기나 다름없는 노예에게?”

       

       아니, 쓰레기는 너무 하잖아. 나도 엄연히 사람이라고.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국의 왕자였던 몸이란 말이다…….

       

       안에 있는 사람은 그냥 방구석에서 게임 하는 히키코모리 100만 뮤튜버지만.

       

       “이 노예는 평범한 노예가 아니에요. 망국의 왕자입니다.”

       “망국의 왕자? 그 바렌베르크의 괴물?”

       “그렇습니다. 경매장에 매물로 올라왔다길래 바로 구매했어요.”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었지? 집에만 처박힌 네가 알 방도는 없을 거 같은데.”

       “…정보상에서요.”

       

       라인과 시선을 마주치던 프란체가 고개를 돌렸다. 덜덜 떨리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려나? 흠. 나는 노예 신분이니 일단 가만히 있자.

       

       “정보상?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살롱과 파티장만 들르던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서?”

       

       프란체가 해명했다.

       

       “사실이에요! 믿을 수 없으시다면 그 정보상을 소개해 드릴 수도 있어요!”

       “내가 그걸 믿을 거 같아? 멍청하긴.”

       “제발. 제가 왜 그렇게 못 미더우신 건데요!”

       “평소에 너의 행실을 생각해봐라. 믿을 수 있겠냐, 없겠냐!”

       “저는 억울해요!”

       “그런데 이년이 감히 어디에다 대고 큰소리야!”

       

       라인의 손이 올라간다. 동생에게 손찌검이라도 하려는 건가? 이걸 막아야 하나? 하지만 나는 노예 신분. 공작가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어도 되는 건가? 이 짧은 찰나에 많은 생각을 했고, 또 고민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정은.

       

       탁.

       

       “아무리 그래도 손찌검을 하시는 건 좀 그렇습니다만.”

       

       막는 거다.

       

       라인의 표정이 심히 구겨졌다. 눈썹은 일그러진 지 오래고 입술마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벌려졌다.

       

       “노예 주제에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저는 제 주인님의 노예인 것이지, 공자님의 노예인 것은 아니라서요.”

       

       꽈악. 라인의 손목을 세게 쥐었다.

       

       “주인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저는 명을 따를 뿐입니다.”

       

       손에 계속 힘을 주니 라인이 크윽, 하면서 신음을 내었다. 자국이 남을 것 같기에 손목을 놓아주었다.

       

       “꼴에 전 왕족이라고 주제 파악도 못 하는 건가? 웃기는 새끼네?”

       

       그저 무응답으로 넘겼다. 당장이라도 대가리에 주먹을 쥐어 박고 싶은데 참아준다.

       

       “노예 새끼가!”

       

       짜악! 라인이 내 뺨을 휘갈겼다.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이 세계에 와서 뺨만 몇 번을 맞는지 모르겠다.

       

       “어쭈, 눈빛이 아직도 날카로워?”

       

       빠악! 이번엔 내 복부에 발길질을 갈겼다. 중심을 잃어 뒤로 고꾸라졌다. 솔직히 아프진 않았다. 진의 몸이 어지간히 단단해야지.

       

       “공자님, 제발…!”

       “너도 문제야, 이 망할 년아!”

       

       라인의 손이 다시 올라간다.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 그녀의 앞으로 가 막아 세웠다.

       

       짜악! 또 뺨 맞았다.

       

       “이 새끼가…!”

       

       프란체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만해…!”

       

       뭐래.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편이 되어 달라며. 해달라는 대로 해줘도 뭐라 하네. 사실 호감도 채우려는 목적이 크긴 한데.

       

       ‘답답하네…….’

       

       그때. 프란체가 이번에도 바닥에 엎어지며 애걸복걸했다.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게요.”

       

       보다 못한 라인은 쯧, 혀를 찼다. 그가 프란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

       

       이건 좀 보기가 그랬다. 그녀는 가족에게 홀대받으며 살아온 건가? 그래서 내게 자신만의 편이 되어달라고 한 거고?

       

       ‘프란체도 불쌍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군.’

       

       이유는 모르겠다만,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다.

       

       “쯧, 저 남자 노예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그때는 정말 끝인 줄 알아라.”

       

       쾅! 라인이 문을 거세게 닫고 나갔다. 미친놈. 드디어 나갔네.

       

       나는 프란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문제없어.”

       

       프란체는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괜히 내 마음만 복잡해졌다.

       

       “못 볼 꼴을 보여줘 버렸네. 뭐,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글픔이 묻어나 있었다. 괜스레 나까지 아련해진다.

       

       “그런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니? 그냥 내가 뺨 한 대 맞으면 해결될 문제를 길게 끌고 갔잖니.”

       “오직 주인님만의 아군이 되어달라는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그 명령을 이행한 것뿐입니다.”

       

       하아, 프란체가 한숨을 내쉬었다. 체념한 듯 보이지만,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아무튼. 그 상태로 둬서 미안하네. 집사장에게 말해 놓을 테니 우선 씻으렴. 냄새가 심하단다.”

       “예.”

       “그리고 방을 배정받을 거야. 아마 이제부터 공작가의 기사들과 같이 생활할 텐데…….”

       

       프란체의 표정이 복잡하다 못해 심란하다. 내가 기사들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스러운 거겠지.

       

       ‘자기도 이런 상황인데 나를 걱정해주다니.’

       

       그녀의 천성은 사실 선했던 게 아닐까? 이런 가정환경과 승승장구하는 소미레의 등장으로 악역이 되어버린 것이고.

       

       참으로 슬픈 이야기다.

       

       “그건 문제없습니다. 기사들이 괴롭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그래. 공작가의 기사들은 자존심이 높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다. 기사는 무력으로 인증하는 법. 플레이어 시스템과 진 바렌베르크의 힘이라면 공작가의 기사들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 아닐까? 내가 그냥 기사도 아니고 소드 마스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니까요.”

       

       사실 싸우는 법은 잘 모르는데. 대충 주먹 휘두르면 다 알아서 쓰러지겠지.

       

       “…문제가 생기면 내가 막아줄 수도 없단다. 너도 봤다시피 나는…….”

       “그런 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만든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요.”

       

       프란체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잊고 있는 거 같은데, 너의 신분은 노예야. 전쟁 포로. 공작가에 종사하는 기사들은 다 귀족이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처형을…!”

       “문제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노예로서 주인에게 다소 건방진 행태지만, 그녀는 나를 절대 버릴 수 없다. 이 정도야 용서하겠지.

       

       “괜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부터 그 말만 계속…!”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이유. 데카르트 공작은 철저한 실력주의자다. 아무리 내가 노예 출신이라 해도 공작가의 기사들을 전부 때려눕히면 공작은 오히려 기사들을 탓할 것이다. 그는 그런 성정이니까.

       

       그러니 문제없을 것이다. 아마도.

       

       “아무튼. 오늘은 이만 늦었으니 나가보렴. 네가 머물 방은 집사장에게는 얘기해둘 거란다.”

       “예. 좋은 밤 되시길.”

       

       방을 나와 잠시 기다리니 집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연무장은 저쪽이다. 기숙사 안에 웬만한 시설들은 다 있으니 그리 알도록.”

       “알겠습니다.”

       “옷은 제복과 평상복을 준비해두마.”

       “감사합니다.”

       

       집사장은 그리 말하고 떠나갔다. 나도 연무장으로 향했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기사들이 보이진 않았다. 아까까지 불려갔었으니 지금은 쉬고 있겠지.

       

       나는 기숙사 안을 둘러봤다. 확실히 집사장의 말대로 웬만한 시설들은 다 있었다. 배관을 연결해 만든 욕실, 휴게실, 침실 등. 역시 공작가인가. 기사들도 좋은 곳에 사는구나.

       

       우선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다행히 이 세계에서도 비누가 있었다. 물로만 씻어야 했으면 불편해서 뒤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몸을 구석구석 씻어내고, 비누로 몸에 달라붙은 마물의 피 냄새와 땀 냄새를 지워냈다. 한껏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욕실을 나오니 옷걸이에 제복과 평상복이 걸려 있었다. 나는 평상복을 입은 뒤 제복을 챙기고 욕실을 나왔다.

       

       “후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너가 배정받은 방은 따로 있다. 따라오도록.”

       

       얌전히 집사장을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들이 사는 기숙사가 이렇게 호화로워도 되는 거야? 하긴, 이 정도 재력은 되어야 노예한테 5억을 태우지.

       

       그렇게 도착한 곳은…….

       

       내 예상과는 달리, 먼지가 푹푹 쌓인 창고였다.

       

       “노예에게 줄 방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불편하다면 직접 청소하고 알아서 살아가거라.”

       

       나는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장은 눈썹을 좁힌 채 나를 응시하더니 방문을 나섰다.

       

       쿵.

       

       “개 같은 노인네.”

       

       취급 한 번 너무하네.

       

       나는 적당히 바닥을 치운 뒤 이불을 깔았다. 먼지가 어찌나 심한지 기침이 나오고 눈이 따가웠다.

       

       우선 창문을 열어 이불과 베개의 먼지부터 털어냈다. 팡! 팡!

       

       ‘그래도 잠은 자야지.’

       

       이불을 깔고 누웠다. 베개에 머리를 맞대고 창문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지금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똥별이 환하게 빛나 별자리를 이루었다. 더럽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

       

       돌아가고 싶다.

       

       치킨 먹고 싶다.

       

       닭발 먹고 싶다.

       

       닭똥집 먹고 싶다.

       

       순대국 먹고 싶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네.”

       

       개 같은 놈들아. 밥은 주라고…….

       

       ……늦은 밤이니 밥 먹을 시간은 아니긴 하지.

       

       ‘흠, 근데 지금이 어디 시점이려나. 시작 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거 같은데.’

       

       아마도 곧 메인 스토리의 시작을 알리는 파티가 열릴 것이다. 거기서 발생한 사건이 파생되어 모두를 파멸시키지…….

       

       ‘근데 파멸을 시키는 놈이 나잖아.’

       

       ……조심해야겠군.

       

       아무튼. 악역의 시점을 본 적이 없어서 유추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뭐, 곧 스토리의 시작을 알린다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이상 미래는 달라진다.

       

       나는 노예 신분에서 탈출할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다.

       

       이 험난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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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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