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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아으….”

        

        

        

        재생이 멈춘 동영상이 다시금 틀어지듯, 끊겼던 정신이 햇빛이 어렴풋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다시금 이어진다.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만 가는 낯선 방 안의 천장은 백색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천장은 참으로 여러 번 바뀌었고, 이번이 네 번째였다.

        

        

        그 처음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이라도 나간 분견대들이 쓰는 것마냥, 두껍고 거대한 천으로 씌워진 반원형 다인용 막사와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

        

        그리고 플라스틱 프레임에 대충 천만 뒤집어씌운 접이식 야전침대.

        

        그마저도 내 몸무게를 버티지 못해 부서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프라이버시도, 더위도, 추위도, 모래먼지도, 수많은 소음도, 비명도.

        

        그 아무것도 막지 못했던 그런 곳이었다.

        

        

        

       -부스럭.

        

        

        

        운동으로 개운하게 하루를 끝낸 것치곤 그다지 순탄치 못한 밤이었다.

        

        결국 어젯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불을 걷어올리며 몸을 일으키고, 구멍 안에 들어가있던 꼬리를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창문을 열고 밤 사이 체취가 누적된 공기를 내보냈다.

        

        사실 바깥도 더워서 거기서 거기긴 했지만.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난리도 아니네….”

        

        

        

        당분간은 계속해서 켜져 있어야만 할 컴퓨터의 화면은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진행 중인 수많은 서브 프로젝트들의 상황을 표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띄워놓은 팝업들.

        

        천천히 상승 중인 여러 개의 퍼센테이지 바 옆에는 어제 했던 행위들의 잔재가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겉으로 보이는 거창한 외관과는 달리 뭔가 일이 팍팍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리라.

        

        

        

       “아으, 배고파라….”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를 열자 어제 포장해왔던 수많은 패스트푸드들이 가득했다.

        

        이런 몸이 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을 꼽자면 그 어떤 음식을 양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부분이었지만, 반대급부로 보자면 지갑에 쉽게 빵꾸가 뚫렸다.

        

        그것들을 잠시간 노려보자 수많은 가격 정보들과 어제 지출한 비용들이 홀로그램의 형태로 눈 앞에 떠올랐다.

        

        수십 만원을 간단히 찍는 토탈 소비 비용을 보자 괜시리 머리가 지끈지끈해진다.

        

        

        

       ‘지갑에 그새 빵꾸 나고 있네….’

        

        

        

        지급증명서 인증만 되어도 금전과 관련된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러려면 한참 동안 기다리든가, 아니면 서버를 빌리든가, 사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지급증명서 인증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금 맞이한 최대의 문제였다.

        

        이 무슨 파멸적으로 망가진 뫼비우스의 띠란 말인가.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아, 맛있다.”

        

        

        

        갓 데운 따끈따끈한 피자는 참으로 맛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만은 위안이 되었다.

        

        

        

        

        

        

        

        

       *

        

        

        

        

        

        

        

       

        

        얼마 전까지 있던 세계에선 진즉에 고인이 되어버렸던 37대 미 해병대사령관 로버트 넬러 말하길, 한국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엔 추우며 가파른 지형까지 갖추고 있어 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평했다.

        

        까놓고 말해서,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동네가 사람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만들기에 최적화된 똥땅임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8월, 여름의 한복판.

        

        사람의 겉을 태양빛으로 바삭하게 굽고, 100%에 달하는 습도로 속을 촉촉하게 쪄버리는 어느 한낯 뙤약볕 아래.

        

        산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개들조차 바깥의 온도를 체감하고는 발버둥을 치는 그런 미친 날씨 속에서,

        

        

        

       “아으, 날씨 참 좋네.”

        

        

        

        나는 유일하게 이를 신경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극히 드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따뜻한데다가 습도까지 높아서 그런지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가기는커녕 집안에서마저 단 1초라도 에어컨을 키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그런 날씨였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물론 반대급부로 겨울에는 발열 기능 없이는 버티질 못하는 유리몸이 된다.

        

        이것이 뱀의 숙명인가.

        

        

        

        아무튼, 날씨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한복판은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100제곱평방미터당 사람이 수십 명씩은 있다고 해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듯한 도심의 광경은 내게는 되려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도시에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는 걸까.

        

        상당히 오랜 시간을 도시라는 이름의 거대한 관짝을 누비며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스캐닝과 무인 정찰 기술이 소형화되고 극도로 진보했음에도,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시가전은 그야말로 요원들을 갈아넣는다고 해도 무방할 손실률을 보였다.

        

        숨을 곳만 건물 하나에 수천 곳이요, 총안구를 내놓을만한 곳도 그만큼이니.

        

        그렇기에 나의 눈은 여전히 쉬지 않고 주변을 훑고 있었다.

        

        

        

       ‘…이것도 병이지, 병.’

        

        

        

        …솔직히 말하자면, 허전하긴 했다. 직업병과 병 사이의 무언가였다. 허벅지에서 느껴져야 할 권총의 무게감이 없다는 게 너무도 생경하다.

        

        그래도 이딴 정신상태를 보아, 실제로 가져왔다면 우발적으로 뽑아들었다가 잡혀갈 확률도 있었으니…그것보단 차라리 조금 불안한 게 낫겠지.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

        

        

        

        그냥 걸으면서 생각 중이었다.

        

        집의 컴퓨터는 앞으로 부품의 수명이 다 될 때까지 연산을 수행할 예정이었고, TV는 내가 실종된 이후 부모님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며 가져갔다. 대충 그런 내용의 포스트잇이 집에 붙어있었다.

        

        슬프게도, 집으로 돌아온 첫 날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는 추후 나를 둘러싼 상황이 좀 더 나아지는대로 확인을 해봐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산책을 이어갔다.

        

        대략 3분 정도만.

        

        

        

       “───118번 손님, 주문하신 초코 쉐이크 나왔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좀 많이 덥더라.

        

        아나콘다라도 너무 더우면 어쩔 수가 없다.

        

        음료수를 받고 대충 빈 창가 자리에 앉았다. 통유리 바깥으로 더운 날씨에도 어딘가로 바삐 향하는 인파가 끊이지 않고 보였다.

        

        그렇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달달한 초콜릿 음료수의 맛과 향을 즐기는 사이, 눈 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하나.

        

        

        

       -$4.55 지출 확인됨

        

       -Total : $165.55

        

        

        

        연동 계좌가 미국 거랍시고 단위도 달러야….

        

        아무튼, 오늘 기상 후 간신히 이 세계와의 연동에 성공한 미국 계좌와, 그 안에 남아있던 소정의 비용은 이곳에서도 무리없이 쓸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 덕분에 예전의 내가 악착같이 모아두었을 백만 원 가량의 돈을 전부 탕진하는 일은 없었다.

        

        상업은행이 아니라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던 거라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체이스 은행 같은 거대기업 보안 체계를 이카루스로 뚫으면…여기선 난리가 날 수도 있으니.

        

        

        그래도 한 국가의 재건립에 헌신하는 대가로 받아온 얼마 가량의 월급과 범국가적, 초법적 해킹 툴 정도면 양호한…가?

        

        

        

       -툭.

        

        

        

       “어우, 이게 뭔…아, 죄송합니다!”

        

       “아, 길을 막고 있었네요. 미안해요.”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감촉에 뒤를 돌아보니, 한 분이 내 꼬리 때문에 길이 막혀 난감해하고 있던 찰나였다.

        

        평소에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을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었으니…아니, 변명은 됐다.

        

        재빨리 꼬리를 거둬들여 길을 터주었다. 꼬리는 느릿하게 움직이며 길을 열어주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정신을 놓고 있었네요.”

        

       “아, 하하. 아니에요. 그…굉장히 예쁘시네요. 꼬리가….”

        

       “감사합니다.”

        

        

        

        이걸로 칭찬을 받은 건 오랜만이다. 이리 말하긴 뭐하지만 꼬리는 나름 자신이 있는 신체부위였다. 찌찌 같은 곳에 시선이 모이는 것보단 훨씬 낫기도 하고.

        

        삽시간에 가게 내의 시선이 한 지점으로 모인다. 꼬리를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수십 쌍의 눈동자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나중에 자기도 세상이 좀 멀쩡해지면 뱀을 키워보겠다고, 그땐 가끔씩 와서 걔랑 대화 좀 나눠보라는 녀석도 있었는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다 먹은 음료수 잔을 반납하고 밖으로 나오자 화끈한 공기가 휘몰아쳤다.

        

        무작정 밖으로 나와 당분을 몸에 좀 보충하자 머리가 돌기 시작했지만, 정작 이걸 써먹을 곳이 없다니.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긴 했다. 산책을 나왔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사실상 크게 할 일이 없었기에 나왔음을 의미하는 거기도 하니까.

        

        

        여전히 밖은 더웠고, 대로변을 걷는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방법을 통해 더위를 이겨내려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괜히 나와서 돈만 쓴 것 같다. 애초에 무언가의 소득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출을 원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좀 이르긴 하지만 운동이나 하러 갈까 하던 와중,

        

        

        

       -반경 50m 내 개인화기 다수 감지.

        

        

        

       “화기?”

        

        

        

        뜬금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화기?

        

        하지만 나의 시선은 아주 자연스럽게 허공에 표시된 한 줄기 라인을 따라갔고,

        

        

        

       “…오.”

        

        

        

        실탄사격장.

        

        시선의 끝에 머물고 있는 그 마성의 다섯 글자에, 나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합법적으로 화약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2.27 수정

    일부 묘사를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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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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