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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평행세계의 나오나는 내가 알던 나오나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여러가지의 작은 차이 중 하나를 꼽자면, 여기서 나오나는 아직 신작 게임이었다.

         

        내가 무려 6년 동안 인생을 들이붓게 만들었던 변화무쌍하면서도 흥미로웠던 패치들이 이곳에선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면,

         

        일부 OP성 기술들도……아직 제대로 발견되지 않은 탓에, 너프되지 않았다.

         

        신성한 랭크게임에서 이런 비합리적인 OP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적부흥운동을 위해서라면 뭐……괜찮지 않을까?

         

        응, 괜찮을 거다.

         

         

         

         

        나오나의 지하공격로는 지하던전 컨셉으로 구성되어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어둑어둑한 던전 답게 시야가 제한되어 있으며, 축축한 질감이 느껴질 듯한 돌들로 이루어진 벽에서는 언제 함정이나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미어져 나온다.

         

        지하에 한해서 일부 랜덤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

         

        물론, 내가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함정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들도 있다.

         

        -부웅!-

         

        천장에 쇠사슬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도끼날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벽에서 벽까지 시계추처럼 왕복 운동을 하는 ‘도끼날 함정’.

         

        블루팀, 레드팀, 그리고 보물상자 방으로 이어지는 ㅗ 자 형 3거리에, 각 5개씩 15개의 도끼날 함정이 배치되어 있다.

         

        각기 다른 템포로 움직이는 도끼날 5개를 연달아 통과하자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광전사다.

         

        ‘생각보다 빠른데.’

         

        어쩌면 보물상자 2개를 승리조건으로 내건 것 자체가 내 동선을 보물상자 쪽으로 유도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래봐야……이 타이밍이라면, 광전사가 아무리 사냥을 빨리 했어도 3레벨이다.

         

        《찾았다, 개새끼야.》

         

        오, 보이스챗도 키다니. 육성으로 극찬을 들을 생각에 마음이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문이 박살나며, 복도로 진입하는 광전사의 거대한 양날도끼가 시야에 들어온다.

         

        광전사 장인 광질의 트레이드 마크- 라고는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게임 개념이 부족한 빌드다.

         

        광전사는 근접 캐릭터 중 가장 딜이 센 편이고, 잃은 체력에 비례하여 공격력뿐만 아니라 이동속도도 증가한다.

         

        대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각종 행동에 대한 선/후딜레이가 크고, 갑옷 착용에 제한이 있어 방어력이 약하다.

         

        따라서 광전사를 운용할 때는 모션이 좋은 무기를 쌍수로 들고, 난타전으로 끌고 가서 서로 체력을 낮춘 후, 높은 이속을 이용해서 상대가 전투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들러붙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쉽게 말해, 광전사는 거머리다.

         

        거머리 주제에 크고 거대한 양손도끼를 들 정도로 개념이 부족한 상대라면 결투로 끌어가도 백전백승할 자신이 있지만-

         

        지금은 빠르게 끝내는 게 우선이다.

         

        도끼날의 움직임에 맞춰 양 옆으로 스텝을 밟으며 몸을 숨겼다 드러냈다 반복한다.

         

        티배깅하는 듯한 느낌을 위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도 잊지 않다가,

         

        단검을 투척한다.

         

        -챙!

         

        의도했던 대로, 던져진 단검은 중간의 도끼날 함정에 부딪혀 맥아리 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뭐하냐, 병신아?》

         

        비웃음 섞인 조롱 직후, 단검 회수를 막기 위해 빠르게 접근해오는 광전사.

         

        고일 대로 고인 챌린저 답게 4개의 도끼날 함정을 가볍게 통과하고, 단 하나 남은 도끼날 함정이 지나쳐간 직후에 전투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든다.

         

        달라붙는 움직임 하나는 정석적인 광전사의 움직임이다.

         

        달리 말해,

         

        읽기 쉬운 움직임이다.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다시 한 번 도끼날에 몸을 반쯤 감추고, 타이밍에 맞춰서 점프하며 단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듯 휘두른다.

         

        -카앙!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광질(광전사)님이 처치되었습니다!]

         

        킬로그가 올라왔다.

         

        [함정 → 광질(광전사)]

         

        * * * *

         

        『???』

        『??방금 뭐임?』

        『버그 났던 거 같은데?』

        『도끼 피하지 않았냐? 갑자기 왜 함정사야?』

        『아니 이걸 버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좃망겜 수준~』

        『버근데 무효 아님?』

        『1:1빵에 그딴게 어딨엌ㅋㅋㅋㅋ 프로 대회함?』

         

        채팅창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도적이 광전사의 리스폰 타임을 이용해서 보물상자를 열어 레어 신발을 획득하고, 2번째 보물상자가 있는 리치 방으로 향할 때까지도,

         

        분명히 타이밍에 맞춰 도끼를 피했던 광전사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1데스를 한 직후에 몰래 방송에 접속해서 방플을 시작한 이후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시발 이 개 같은 게임은 이럴 때 버그가 나!”

         

        버그로 죽었으니까 무효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여태까지 쌓아온 상남자 이미지에 치명적일 것이 뻔했다.

         

        ‘애초에 상대방 킬로 기록된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방플하면 질리가 없다.’

         

        방송 화면을 흘끗 확인해 보니, 아따먹은 제대로 사냥도 하지 않은 채 리치 방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두 번째 보물상자 따서 끝내겠다고? 그게 되겠냐?”

         

        이후남은 방플이 티가 나지 않을 수준에서 최적의 동선을 신속히 계산하고, 리치방을 향해 이동했다.

         

        그 결과, 아따먹이 리치방에 돌입한 시점에 이후남은 이미 불과 50초 거리에 있었다.

         

        ‘2레벨짜리 도적으로 아무리 신컨 해봐야 리치 잡으려면 4분은 걸린다.’

         

        남은 건 크고 거대한 양날도끼로 리치와 싸우는 도적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스폰 장소 인근 통로에서 캠핑하다가 리스폰 될 때마다 달라붙어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확정된 승리와, 쏟아질 찬사를 떠올리며 한 쪽 입술을 한껏 말아올린 이후남이 리치방에 도착한 순간.

         

        [아따먹(도적)님이 처치되었습니다!]

        [리치 → 아따먹(도적)]

         

        리치에게 도적이 처형당했다는 시스템 로그가 올라왔다.

         

        그리고.

         

        [아따먹(도적): 지지요]

         

        『???』

        『내가 뭘 본 거지』

        『??』

        『방금 상자 어케 깐 거?』

        『?』

        『뭐였지 방금』

        『리치가 왜 공격 안 했지?』

        『은신이었던거같은데』

        『아니 말이 안 되지 않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 상자 2개 4분컷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도적?』

        『뭐야 상자 까고 죽은 거?』

        『ㅇㅇ 상자 까고 템 먹은 후에 죽었음 ㅋㅋㅋㅋㅋ』

        『아니 리치 무시하고 템만 빼먹는게 가능했다고? 왜 프로들 도적 안 함?』

        『카운터 치기는 ㅈㄴ 쉬우니까; 근데 모르면 무조건 맞아야 되네 리치 상자 신화템 확률 높을텐데』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진 채팅과 함께,

         

        [아따먹님이 게임을 종료하였습니다.]

         

        승리의 증거라는 듯이 아이템 두 개를 리스폰 지역 바닥에 던진 도적이 쿨하게 게임을 떠나갔다.

         

        * * * * *

         

        처음보는 여자의 몸에서 깨어났을 때, 당연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주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깨지도 않고, 굶으면 배고프고, 부딪히면 아픈- 쾌락도 고통도 느껴지는 꿈이라면, 현실과 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대략 3주가 지난 시점부터, 나는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평소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신상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좁은 집을 구석구석 뒤지고, 컴퓨터를 샅샅이 찾아서 알아낸 ‘나’는 이예나라는 이름의, 갓 21살이 된 대학생이었다.

         

        대학교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이예나의 전공은 법학이었고, 1학기조차 채 다니지 못하고 질병 휴학 중이었다.

         

        휴학 사유에 대한 의문은, 책상 서랍 여기저기에 구겨진 채 들어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처방전, 그리고 내게도 아주 친숙한 여러 약이 담긴 약봉지들이 답해줬다.

         

        놀랍게도, 이예나에게는 나오나 아이디도 있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이라는 닉네임의 계정은, 사제만 플레이하며 브론즈와 실버를 오가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 이예나에 대한 동정심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에나, 사제 유저였다니.

         

        우울증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몰라도, 분명 관련은 있을 터였다.

         

        각설하고,

         

        여성 유저 비율 5% 미만을 자랑하던 나오나를 하고 있던 이예나 덕에,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일종의 평행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오나의 인기는 원래 살던 세상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나이트 오브 나이츠 갤러리’는 항상 글 리젠률 1위를 독차지하고 있고, 나오나 프로게이머들 중 1티어들은 TV 광고도 찍는다.

         

        심지어 여기선 옛날의 피시방마냥 동네마다 VR방이 3~4개씩 있는데도 나오나 하나로 다 장사가 되고 있다.

         

        갓겜이긴 하지만, 이쯤 되면 전 세계가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것 아닌가 싶다.

         

        하기야,

         

        다들 도적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집단 최면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긴 하지.

         

        그런 의미에서, 나도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작게나마 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

         

        [작성자: 따아먹]

        [제목: 광질님 계세요?]

        [생각해보니 저 VR방 쿠폰은 필요 없는데 그냥 알몸 도게자하시면 안 될까요

         

        아 근데 혹시 여자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새낀가 이거 진짜

        –     보이스 다 들어놓고 뭐라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여자겠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따먹! 아따먹! 아따먹!

        –     그저 알몸 도게자를 보고 싶었던 새끼…미친 새끼…

        –     님 아크가 알몸 도게자하면 저격 멈춰 줌?

       –     ㄴ 넌 고소장 달게 받아라

        –     아니 근데 아까 그거 어케 한 거?

        –     도적으로 광전사 무조건 이김 (진짜 이김)

        –     아니 진짜 어케 이긴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짝 바람을 불어주자, 안 그래도 뜨겁던 갤러리는 나와 광질의 대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근데 함정킬 그건 그냥 버그 아님?

       –     ㄴ 어차피 킬로 이긴거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     ㄴ 버그로 죽어있는 동안 상자 딴건데 당연히 상관 있지;;

        –     리치 템 빼먹기도 버그 아닌가?

       –     ㄴ 사실 그게 더 이상함 왜 리치가 공격을 안 했지

         

        일부 무지몽매한 댓글들도 있었지만- 애초에 버그가 아니라 스킬이다. 너무 OP여서 너프되는 거지.

         

        백 번을 양보하여 설령 현 시점에는 아직 버그인지 아닌지 명확하지도 않다고 해도,

         

        [작성자: ㅇㅇ]

        [제목: 도적…해야겠지?]

         

        [작성자: 도적]

        [제목: 안녕하세요 도적 1일차입니다]

         

        [작성자: 갓따먹]

        [제목: 도적 드가자~ 도적 드가자~ 도적 드가자~ ]

         

        이미 화제가 빠르게 도적으로 옮겨가 버렸기에, 갤러리 여론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1페이지에 ‘도적’이란 단어가 이렇게 많이 보인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이렇게 떠들다 보면 다들 결국은 도적의 매력을 알게 되겠지.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컴퓨터를 종료하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아, 그런데…….’

         

        여자인지 물어본 건, 그냥 혹시라도 여자한테 알몸 도게자 운운했다가 잡혀가기 싫어서였는데.

         

        댓글 반응을 보니, 갤러리 유저들이 작은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해명해야 할지도.

         

        머리 한 켠의 ‘추후 해명할 일들 목록’에 ‘알몸 도게자’를 넣어둔 채, 나는 포근한 이불을 온 몸으로 감고 기분 좋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활활 타던 갤러리의 화력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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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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