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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슬금슬금 팔을 늘리던 노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갑작스럽게 엄청난 속도로 팔을 뻗어왔다.

    “방심했구나!”

    내 발목을 움켜쥔 노인은 나를 그대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쾅

    노인의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 내려칠 때마다 돌로 된 바닥이 움푹 들어가고, 주변으로 돌파편이 흩날렸다. 유령화를 쓰면 쉽게 벗어날 수 있겠지만 내려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인의 표정이 웃겨서 두고 보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노인의 표정은 득의양양했다.

    “죽어! 죽어! 죽어!”

    노인은 바닥을 뚫어버릴 기세로 쉬지 않고 내리찍었다. 그걸 보고 있는 세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제! 그만! 좀! 죽어!”

    이젠 나를 양손으로 들고 한 번씩 끊어서 있는 힘껏 내려치기 시작했다. 노인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얼굴에 웃음을 지우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쯤 해 보면 물리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야 하는 거 아닌가? 오브젝트 중에 물리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한 게 얼마나 많은데? 세희는 내가 멀쩡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수첩을 꺼내서는 끄적거렸다.

    아마 ‘회색사신은 물리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임.’, 이런 걸 쓰고 있지 않을까?

    몇 번 더 내려치던 노인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닥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내려놓을 때는 발이 아래로 향하게 해서 정중하게 내려 놓았고,  내 몸에 붙은 돌먼지도 툭툭 털어 줬다.

    그리고 바닥에 바싹 엎드린 채로 뒤로 기어서 출구를 향하기 시작했다.

    비굴한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뒤로 물러나던 노인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엄청난 속도로 지하실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결국 노인이 오기 전후로 달라진 것은 엉망으로 박살 난 바닥뿐이었다.

    세희는 노인이 물러나자 후다닥 달려와서는 먼지를 털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와 생각보다 사신이 튼튼하구나. 그런 종류의 테스트는 해 보지 않아서 몰랐어.”

    위험등급 최상위의 오브젝트를 실험한답시고 자극해서 폭주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연구소 책임이 되어 버리니까, 사설 연구소에서는 대개 안전한 테스트만 하기 마련이다. 그런 위험한 실험은 초법적인 권한을 인정받은 국립 중앙 연구소에서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저나 여기서 나가려면 저 노인을 물리쳐야 하는 건가? 총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서울 숲에서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세희는 여기서 나갈 방법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내 생각에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해결 방법이 남아 있었다.

    괴인을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불로 만든 경단의 원천을 파괴] 이 조건을 클리어하면 괴인들은 모두 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원천’은 내 눈앞에 서 있는 강철 돼지상일 것으로 보였다. 괴인이 지하실에 숨겨두고 애지중지하는 오브젝트가 원천이 아니면 무엇이 원천이겠는가?

    문제는 저 강철 돼지 동상의 파괴 조건이다.

    [소화 불량]

    으으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

    ‘도대체 동상이 걸릴법한 소화불량이 뭐지?’

    사람들을 불러달라는 세희를 뒤로하고 돼지상 주변을 빙빙 돌며 ‘소화 불량’에 대한 수수께끼를 계속 생각했다.

    돼지상에서는 끊임없이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비명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비명 소리는 돼지상의 뱃속에서 나고 있었는데, 손잡이를 잡고 돼지상의 뱃속을 열어서 확인해 봐도 뼈무더기가 들어 있을 뿐 비명이 나올 구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돼지상에선 계속 비명 소리가 울렸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뱃속에서 나오는 소리임이 분명했지만, 그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비명의 원인을 발견하지는 못 했지만, 지하실에 가득 찬 맛있는 냄새의 원인은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돼지상 뱃속에 잔뜩 들어 있는 순수한 불로 이루어진 구체였다.

    손으로 집어서 들 수도 있고, 뜨겁지도 않은 구체였는데 생김새는 불 그 자체여서 좀 신기했다. 그야말로 오브젝트가 발생 시킨 이상 현상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척 봐도 수상해 보이는 불덩어리인데, 다들 이것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입에 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침착한 편이던 세희도 내가 불덩어리를 들고 있으면 말수가 줄어들고 눈에서 약간 광기가 돌았다.

    감옥에 갇혀 있던 몇몇 사람은 욕하면서 내놓으라고 할 정도였는데, 이걸 먹으면 아마 거의 확실하게 괴인이 될 게 뻔하니 줄 이유가 없었다.

    오브젝트가 맛있어 보이게 유인하는 무언가를 먹는다? 그건 죽겠다는 말과 동일한 소리다.

    소화불량. 소화불량. 

    머릿속으로 아무리 되뇌어봐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보였다. 

    돼지 뱃속에 직접 들어가 보기.

    겨우 돼지상정도의 오브젝트가 나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는 힘드니까,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오브젝트가 돼지 뱃속에 들어가는 게 소화불량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뼈무더기가 들어 있는 동상 안에 몸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 자체가 꺼려진다는 건데, 방법이 없어 보이니 어쩔 수 없지.

    강철 돼지상은 상당히 거대해서 돼지 뱃속의 세로 높이만 해도 내 키보다 커서 들어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뼈를 살살 피해서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간간이 울려 퍼지던 비명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돼지상의 벽면에서는 정체불명의 걸쭉한 액체가 흘려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돼지상 내부에서 불길이 사방에서 솟아오르며 내부의 온도를 사정 없이 높이기 시작했다. 

    ‘오?’

    그리고 돼지상의 내벽이 점점 멀어졌다. 아니 내부 공간이 점점 확장되고 있었다. 쇠로 된 강철 내벽은 어느새 붉은 피부로 변했고, 동상의 내부 같은 공간은 어느새 진짜 내장 속과 같이 습하고 꿀렁거리는 그로테스크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피부가 녹아내리는 사람이 내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머리카락은 이미 다 타버렸고 피부는 고무처럼 천천히 녹아내리는 끔찍한 몰골이었다.

    피부가 녹아내린 사람의 팔다리는 까맣게 불탄 해골들이 붙잡아 구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저 사람이 비명의 원천이구나.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여자는 여기서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팔다리를 붙잡은 해골들 때문에 부질없는 몸부림이었다.

    “너도 같이…”

    손목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하니 숯처럼 까맣게 불타는 해골이 내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죽어죽어죽어죽어.”

    사방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해골들은 열기를 내뿜으며 나의 신체 곳곳을 붙잡기 시작했다.

    “너도 같이 불타는 거야!”

    “너도!”

    내가 열기에 영향을 받지 않자, 사방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너도 같이 타 죽어야만 한다는 끝없는 악의가 느껴졌다.

    끝없이 강해지는 열기는 어느새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붙잡은 해골들은 재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고 내장처럼 보이는 내벽에는 불이 옮겨붙어 불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지가 진동하는 거대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철상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돌아온 지하실은 난장판이었다. 시뻘겋게 물든 강철상의 내벽은 이미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보이는 지하실은 연기와 불길로 난장판이었다.

    돼지상에서 뛰어내려보니, 이미 돼지상은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고 있었다. 힌트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저 돼지상은 소화불량으로 녹아 버린 것 같았다.

    위험해 보이는 지하실 상황에 감옥 창살을 모두 박살 내자, 세희 주도로 탈출이 시작됐다.

    허겁지겁 지하실 밖으로 나가자 보이는 광경은 불타는 집의 풍경과 사방에서 몸부림치는 괴인들의 모습이었다.

    입과 눈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괴인들은 그저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뒹굴뿐이었다. 문제는 그 불길이 집을 불태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나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5m는 훌쩍 넘어가는 노인이 불타는 집에서 불쑥 솟아올라 소리쳤다. 

    “나는 죽기 싫어! 어떻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버텨 왔는데!”

    자기 집을 엉망으로 부수며 소리치던 노인은 도망가는 사람들을 보자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혼자, 혼자 죽지는 않겠다!”

    죽어 가는 노인에게는 전과 같은 민첩함은 없었지만, 상당한 속도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거기에 짙은 연기와 뜨거운 열기로 지친 사람들은 더욱더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노인의 마지막 시도는 집에 감금되어 있던 다른 괴인들의 방해로 막혔다.

    “감히! 감히! 너희들이 어떻게!”

    거미처럼 생긴 팔다리 길쭉한 괴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엉키고 설켜 완전히 재가 되어 버릴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싸움은 아침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그 광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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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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