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7

       나와 아주 간단한 인사를 나눈 유하늘은 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로서 나쁜 것은 없었다. 원작에서 플레이어들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바로 유하늘이고, 당연히 원작에서 제일 중요한 것도 유하늘이었으니까. 얘가 무슨 능력을 어떻게 키워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나의 운명도 천차만별로 정해지게 되어 있다.

        

       뭐, 어떤 선택을 하건 나는 특별히 방해할 생각이 없긴 하지만.

        

       원작에서 예사라가 파멸하는 이유는 유하늘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세 명의 남주인공 루트를 타는 유하늘 앞을 가로막고 온갖 패악질을 부리다가 심판을 받는 것이 주요 루트였으니, 나는 얘가 무슨 선택을 하건 옆에서 손뼉이나 치면서 응원해주면 그만이다. 기왕이면 친구 관계도 유지하면서.

        

       ……라고만 생각하면 너무 쉽게 끝나겠지.

        

       분명히 그렇게 쉽게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유하늘의 앞길을 막지 않는 것, 차라리 그 앞길이 뻥 뚫리게 도와주는 것이 내 앞날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은 당연한 거다.

        

       하지만, 나는 아직 예사라가 유하늘을 그토록 혐오했던 이유를 찾지 못했다. 윤다호의 경우엔 원래 예사라가 약혼자였으니 그랬다고 쳐도, 다른 남주인공 둘은 왜?

        

       게다가, 내가 굳이 유하늘을 괴롭히지 않아도 유진 그룹의 회장이자 예사라의 계모, 최나경이 복병이다.

        

       자기 수양딸을 학대에 가까운 방치를 해두고, 친구를 만드는 것까지 하나하나 간섭했다는 정황이 있는 그녀라면, 내가 유하늘과 친구 관계를 맺는 것도 방해하려 들지 모르니까.

        

       방치한 것 치고는 내가 있는 저택 안에선 어떻게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조금 불가사의하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옆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면 다시 환한 빛이 있다. 진짜 저 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아도, 당장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육감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도 조금 어이가 없고.

        

       정말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사람들을 알아보는 감각이라면…… 그리고 예사라가 그걸 알고 있었다면 게임에서 예사라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겠지.

        

       “별 생각 안 했어. 그냥 언제쯤 끝나나 하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래야 유하늘의 표정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 어렴풋이 보이는 표정으로 판단해보건대, 별로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

        

       유하늘은 잠깐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혹시 학교 끝나고 같이 뭐라도 먹을까? 아마 오늘은 일찍 끝날 테니까…….”

        

       붙임성도 좋지.

        

       내가 고등학교 왔을 때도 첫날부터 친구랑 놀고 그랬던가? 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친구란 건 처음 만나던 순간이 잘 떠오르지 않는 법이니까. 어지간히 강렬한 인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원래 인간관계에서의 첫 만남은 희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에 손전등을 달고 다니는 건 어지간히 강렬한 인상이긴 했다.

        

       “글쎄.”

        

       마음 같아서는 응하고 싶었지만,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

        

       졸업식 때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찍는 것조차 막으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이번에도 갑을관계로 밀어버리면 어찌어찌 될지도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게 회장의 귀에 들어갔다간 내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딱 잘라 거절하는 것도 조금 그래. 이제 처음 얼굴을 봤는데 벌써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이유는 없었다.

        

       “봐서, 될 것 같으면.”

        

       “응!”

        

       유하늘은 한없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화영고등학교는 기본적으로 남녀 공학이지만,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은 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체육수업같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수업 때 학생들이 불편할 것을 고려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불순 이성 교제를 막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여자 반에는 여자만, 남자 반에는 남자만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아예 격리되어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입학 안내문에 따르면 학생 식당이나 체육관 등, 교실에서 받는 수업 외에 다른 수업을 듣거나 수업 외의 활동을 해야 할 때는 남녀 구분 없이 한 장소를 사용했다. 부 활동도 마찬가지라 특별히 성별 제한이 있는 동아리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남녀 학생이 섞여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내에서 돌아다니는 범위도 기본적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남학생이 여학생 교실이 잔뜩 몰려있는 복도 쪽을 지나가거나, 반대로 여학생이 남학생 교실이 잔뜩 몰려있는 복도를 지나다닌다고 학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탈의실은 애초에 체육실 옆에 따로 붙어있었으니 옷 갈아입는 이성을 보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기도 했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화영고등학교 학생의 대부분은 굉장한 부잣집 자재들이다.

        

       그리고 그 말뜻은, 그중에는 일단 명목상 예사라의 약혼자인 윤다호도 끼어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윤다호가 내가 수업을 듣는 교실 앞까지 찾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입학식 내내 담임이 하는 말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원인이 바로 교실 밖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는 윤다호의 존재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아직 사회 초년생이기는 했지만 어른이었던 내 시점으로 볼 땐 아직 어린 티가 엄청나게 많이 나는 얼굴이었다. 이건 윤다호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유독 윤다호가 내 눈에 애새끼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마 그 외모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까지 직접 보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객관적으로 보면 키 크고 잘생겼으니까. 예사라는 마르긴 했어도 그렇게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윤다호는 그런 예사라의 몸으로도 확실하게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한 오 년쯤 지나면 자기네 기업 광고할 때 굳이 배우를 따로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건 본인은 입학식을 듣지 않았다는 건가?

        

       교실 밖 복도에 서서 창밖에서부터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창문 쪽에 기대서 있는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이기라도 했는지, 교실 안의 아이들은 차마 나가지 못하고 복도 쪽으로 향하는 창문 쪽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동물원 동물 구경하는 감각인가? 아니, 창문 밖으로 자기 보고 있다는 거 다 보일 텐데, 쟤는 쪽팔리지도 않나?

        

       아니면 이미 왕자병 말기라서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는 걸지도.

        

       “멋지다…….”

        

       심지어 내 옆에 서 있는 인간 랜턴도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멋져 보이긴 하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여자 시점에선 또 이야기가 달라 보일지도 모르지.

        

       …….

        

       굳이 반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의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긴 했지만, 나는 쟤가 왜 저기에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날 기다리는 거겠지.

        

       나랑 사이가 좋든 나쁘든, 일단 서로 약혼한 관계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팍 상했다.

        

       “하아.”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자애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자 처음에는 짜증 섞인 소리를 내던 여자애들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모두 쭈뼛거리며 자리를 터주었다. 나랑 친해지는 것만 겁이 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 앗, 사라야!”

        

       창밖 소년의 외모에 넋을 놓고 있던 유하늘도 내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자 급히 따라붙었다. 나는 굳이 떨쳐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윤다호와 길게 이야기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뒷문을 드륵 열고 나가자, 창문 쪽에 기대어 서 있던 윤다호가 시선을 돌려 이쪽을 보았다. 본인 딴에는 카리스마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나로선 이제 막 중학교 졸업한 꼬맹이가 카리스마 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교복 입은 존재가 무서워 보이는 건 교복 입고 몰려다닐 때지, 혼자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거침없이 윤다호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 앞 두 걸음쯤 앞에 척 멈추어 섰다.

        

       “…….”

        

       “…….”

        

       팔짱을 끼고 선 윤다호와 그 앞에 그냥 서 있는 나.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내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건가? 빤히 올려다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건강한 것 같네.”

        

       “……그거 인사야?”

        

       되물어봤지만, 딱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미안하다.”

        

       다만 다짜고짜 사과가 돌아왔다.

        

       “뭐?”

        

       내가 조금 놀라서 되묻자, 윤다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말했다.

        

       “지난번 만남에서 말실수 한 거. 사과하고 싶어서.”

        

       “…….”

        

       나는 윤다호의 얼굴을 다시 빤히 올려다보았다. 눈을 피하지 않겠다는 오기라도 부리는지, 얼굴에 대놓고 쪽팔리다는 감정을 드러내고도 윤다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번 만날 때 나에게 돼지라고 하려고 했던 것을 사과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어른들이 시켰겠지.

        

       뭐, 나와 얘의 나이 차를 생각한다면 내가 사과를 받아주는 쪽이 좋을 거다. 그게 덜 쪽팔린 짓이니까.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몰라도 ‘예사라’는 윤다호와 동갑이다.

        

       “아, 그래.”

        

       애초에 얘랑은 잘 될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그냥 그렇게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나는 남자한테 안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원래 세계에 있었을 적 내가 가지고 있던 성적 지향도 버릴 생각이 없었고. 지금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어 내가 예사라의 몸에 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몸이 바뀌었다고 해서 ‘나’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눈앞의 파멸부터 막아야지.

        

       그리고 그 파멸로부터 떨어지는 방법의 하나는 나를 파멸시키게 되는 전개를 아예 만들지 않는 거고.

        

       “그럼, 하늘—”

        

       유하늘에게 말을 걸어 이만 돌아가자고 하려는데 갑자기 시선이 확 돌아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윤다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목이 아팠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윤다호는 내 왼손을 잡아끌어 자신 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왼손이 잡아 들린 채 윤다호 쪽으로 몸이 휙 돌아간 것이다.

        

       진짜 체력 한 번 저질이네. 시간 나면 운동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과는 원래 받아주고 싶은 사람 마음이잖아?”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윤다호의 시선이 험악해졌다. 과연, 역시 사과할 생각 없었던 게 맞는 모양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면 사과받아주지 않았다고 화를 낼 이유도 없으니까.

        

       “아니면, 나를 통제하고 싶기라도 한 건가?”

        

       사실 약혼자를 돼지라고 부르는 윤다호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돈이 우선인 집안끼리의 계산에 의한 약혼이긴 하지만 결혼생활에 감정이라는 게 전혀 섞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서로 바람을 피우고, 다른 사람과 자식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서로의 관계에 긍정적으로 바라볼만한 구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결혼하면서 한 상호 간의 계약을 한 쪽이 깨지 않을 거라는 의리라도 있어야지.

        

       그리고 그 최소한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예의라도 차려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날, 윤다호가 한 행동은 마치 자신이 예사라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상대방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아마 이전에 한 번 만났을 때도 윤다호는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고, 예사라는 그 태도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윤다호가 계속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한가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윤다호는 예사라에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예사라의 태도가 원래부터 소심했다면, 어떻게 잘 구워삶아서 후에 결혼했을 때 본인들이 잘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뭐, 추측일 뿐이다. 아직은 내 망상이나 다름없고, 누구한테 들려준다고 백 프로 동의를 얻을 수도 없을 테지.

        

       가스라이팅 당하는 예사라라는 캐릭터가 상상이 가지 않기도 하고.

        

       윤다호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리고 그의 입이 벌어지고, 그가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에,

        

       “잠깐!”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힘으로 여자애를 그렇게 거칠게 대하면 안 되지!”

        

       그런 고리타분한 소리를 외치며 내 팔을 잡은 윤다호에게 외치는 아이는, 얼굴에서 강렬한 빛을 뿜고 있었다.

        

       우리의 여주인공께서 상황에 즉각 끼어든 것이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