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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수련장에 고요가 찾아왔다. 삼장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련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오시지요. 몇 수 내어드리겠습니다.”

       “오냐.”

       

       몸 안에 내기를 확인해 보았다.

       

       흐음. 적어도 너무 적다. 내기까지도 어린 시절에 맞추어 두었다니. 이 광경을 만든 게 누군진 모르겠으나 참으로 철저하구나.

       

       천마신공은 패도다.

       

       누구보다도 강한 힘으로 모든 걸 찍어 누르는 무공. 상대보다 내가 강함을 전제로 하는 포악한 무다.

       

       때문에 천마신공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막대한 내기를 필요로 한다.

       

       신공의 사용자 중에서 사술에 물든 이가 많은 것이 이 이유다.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고선 무공에 필요한 내기를 충당하지 못하니까.

       

       내가 보기에 지금 이 몸으론 천마신공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다.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터이지만 기껏해야 두 번이 한계이리라.

       

       이 몸뚱아리로 마교의 장로를 상대해야 하는 건가.

       

       흥미롭구나.

       

       내가 불리한 입장에서 싸움을 해 본 것이 얼마만이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무림의 지존과 다투었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무척 즐거웠지. 한 수를 잘 못 두면 목숨의 위기가 찾아왔으니. 그 위기감은 진정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과연 삼장로가 그 감각을 재현할 수 있을까.

       

       첫 수는 무엇으로 할까. 삼장로가 쓰던 것이 권이니 나도 권으로 가는 게 맞겠지.

       

       그리 마음을 먹고 발을 앞으로 내딛은 순간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진각은 형편없었고. 힘의 이동도 쓰레기 같았다. 관절을 움직이는 것도. 근육이 요동치는 것도. 모든 요소 하나 하나가 문제였다.

       

       그 결과 내질러진 것은 권이라기 보단 주먹질이라는 표현이 어울린 무언가였다.

       

       “이 정도로 대련을 청하신겁니까?”

       

       내 주먹을 가볍게 받아낸 삼장로가 눈썹을 치켜 들며 탄식을 흘렸다. 그 모습이 꼴사나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내 몸이 내 의지를 따르지 않았을꼬. 기이한 사술에 당한 것도 아닐 터인데.

       

       이 게임 자체에 무언가가 있는 걸까. 엔리가 알려주었던 아피스에 대한 지식을 생각하다 한 가지 기능을 떠올렸다.

       

       보정 시스템이란 것이 있었지.

       

       무림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현대의 사람들은 무에 익숙치 못하다. 그들에게 폭력은 해선 안 될 행동이고. 그걸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 또한 흔한 취미라 할 수는 없다.

       

       현대의 사람들을 VR세상에 그대로 던져 놓으면 그들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아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보정 시스템이다.

       

       개인의 실력과는 관계없이 AI의 도움을 빌려 무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었지.

       

       나야 직접 무를 펼칠 것이기에 그에 관한 설명은 대충 읽고 넘겼다마는 이게 기본적으로 적용된 설정일 줄이야.

       

       허어. 이것을 어찌 꺼야한담. 안 그래도 불리를 안은 상태에서 이런 허술한 기술로 삼장로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데.

       

       [보정 시스템을 조정하시겠습니까?}

       

       이런 내 의사를 읽은 듯 눈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그래. 조정을 좀 하자꾸나.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예 꺼버렸으면 좋겠구나.

       

       [보정 수치를 0으로 조절하시겠습니까?]

       [※주의 : 보정시스템이 없을 땐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 기술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무얼 걱정하는 걸까.

       

       무림에서 보낸 백년은 곧 무공을 수련한 세월이었다.

       

       이 따위 보조가 없다고 내가 무술을 펼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경고를 넘겨버리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보정이 0으로 설정되었습니다.]

       

       “더 오지 않으실 겁니까?”

       

       삼장로의 도발에 웃음으로 답했다.

       

       내가 행한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권을 내지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나 기본은 똑같으니까.

       

       진각을 밟고. 땅에서 시작한 힘의 흐름을 주먹으로 이끄는 것.

       

       달라진 것은 하나. 동작의 세세함이었다.

       

       진각을 밟는 방식을 예로 들자면. 다리 사이의 거리. 발가락 어디에 힘을 주는지. 다리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 모든 하나하나를 상황에 맞추어 바꾸는 것이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삼장로가 대놓고 기술을 맞아주겠다 했으니 최대한의 위력을 낼 수 있도록 해야지.

       

       쾅!

       

       주먹을 받아낸 삼장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아예 박살 낼 생각으로 뻗은 주먹이거늘. 이 허약한 육신으로는 이게 한계인가.

       

       “놀랍군요.”

       “이제 더 놀라울 게다.”

       “흐음. 이번엔 제가 가지요.”

       

       네 걸음에 달하던 거리가 한 달음에 줄어든다. 삼장로는 한 손은 뒷짐을 진 채로 주먹을 뻗었다.

       

       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권이거늘 거기에 담긴 위력은 가볍지 않았다.

       

       받아낼 수 없다. 어설프게 받아치려다간 뻗은 손 채로 박살 날 것이 뻔했다. 육신의 차이도. 내공의 차이도 극심했으니.

       

       그럼? 흘려 내야지.

       

       “도가의 무공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배우지 않았다. 빼앗은 것이지.”

       

       과거 도가의 최고수라 불리던 이를 상대하며 그의 오성을 훔쳤다.

       

       공명(空明)의 권. 강맹함에 부드러움과 허실로서 맞서는 무공. 극성에 이르면 하늘의 분노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무술이었다.

       

       정작 이걸 사용하던 도가의 노친네는 제 제자의 분노 앞에서도 쩔쩔맸다마는.

       

       그와는 별개로 이 무공은 유용했다. 이 안에 담긴 깨달음은 천마신공에도 크게 뒤처지지 않으니.

       

       삼장로의 주먹이 계속해서 허공을 스친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힘을 더했으나 공명의 권은 단순한 힘만으로 깨부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윽고 다급해진 삼장로에게 커다란 틈이 생겨났고 난 그 틈을 노려 삼장로의 복부에 큰 충격을 가했다.

       

       “소천마를 얕보았군요.”

       “진심을 다하거라. 이 몸은 그리 허약하지 않다.”

       “알겠습니다.”

       

       수련장의 분위기가 바뀐다. 그저 삼장로가 몸 안에서 내기를 끌어냈을 뿐이거늘 대기의 무게가 몇 배로 불어난 것 같았다.

       

       이래야지 싸울 맛이 나지. 삼장로의 매서운 눈빛에도 나는 웃었다.

       

       삼장로는 경지에 이른 무인이다. 절정이야 지나친 지 오래이고 화경의 중반에 돌입한 고수 중의 고수. 천마신교 내에서도 저 이보다 강한 이는 많지 않았다.

       

       실력 있는 무인답게 그의 움직임에 떨어지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특출난 곳은 있었다. 천마신교의 패도를 강맹한 힘 그 자체로 해석한 삼장로의 무공은 한없이 무거웠다.

       

       “도가의 것을 너무 믿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선 부드러움도 의미를 잃지요.”

       “해봐야 아는 것 아니겠느냐.”

       

       온다.

       

       눈을 크게 뜨고 삼장로가 쥐려는 흐름을 본다.

       

       발의 움직임을. 다리의 근육을. 허리춤의 반동을. 어깨가 뒤틀리는 것을. 팔꿈치가 굽혀지는 것을. 그리고 주먹이 날아드는 것을.

       

       그 안에 담긴 패도를 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손을 끼워 넣어 흐름을 뒤튼다.

       

       삼장로의 주먹이 내 관자 옆을 지나쳐 허공을 분쇄했다.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호선을 그리는 삼장로의 눈이 보였다.

       

       분명 삼장로의 권을 파훼하는 데 성공했으나 내겐 여유가 없었다.

       

       무공을 펼쳐 주먹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상처가 났다. 삼장로의 주먹은 단순한 파공성만으로도 인간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흐름은 여전히 삼장로의 것이었다. 연격이 이어진다. 팔에 강기를 두르고 대응했으나 손이 저릿 거렸다.

       

       이 대전을 오래 끌 순 없다. 저 치의 주먹에서 빈틈을 찾아내는 것보다 이 몸의 내기가 떨어지는 게 빠를 터이니.

       

       이류에도 이르지 못한 몸으로 진심을 내는 화경의 무인을 쓰러트려야 하는 건가.

       

       재밌구나. 가슴이 뛴다. 이 얼마 만에 겪어보는 고난이고. 위험인가.

       

       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국 난 무인이었다. 무림의 미치광이였고, 자신의 무공을 증명하고 싶은 정신병자였다.

       

       방어를 이어가는 와중에 내 안에 남은 내기를 확인했다. 본래 내가 지닌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으나 이 정도면 한 번을 노릴 만했다.

       

       내겐 그 한 번이면 충분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삼장로의 품 안으로 들어갈 세 걸음.

       

       뇌를 회전시킨다. 수십의 상황을 가정해 움직여 본 후 그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길을 고른다.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걸 기다렸다는 듯 삼장로의 권이 날아들었다. 자세가 불안정했으나 괜찮았다. 모든 걸 흘려낼 필요는 없었다.

       

       피부가 찢기며 허공에 피가 튀겼다. 짜릿한 고통이 뇌에 새겨졌다.

       

       이걸로 한 걸음.

       

       삼장로는 눈을 살짝 치뜨더니 대련장의 바닥을 분쇄할 만큼 위협적인 진각을 밟았다.

       

       거대한 힘으로 나를 밀어낼 셈이구나. 영악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한 걸음만으로 내 의도를 파악했구나.

       

       뭐어. 상관은 없다. 내가 무얼 하려는지 눈치챘다 해도 밀고 나가면 그만이다. 천마의 패도는 그런 것이니.

       

       이번의 주먹은 태산을 연상케 할 만큼 거대했으니. 아무 대가 없이 흘리는 건 불가능했다.

       

       계산은 빨랐다. 왼 팔로 삼장로의 주먹을 흘려내는 대신 쳐냈다. 부드러움 속에 힘을 담을 줄은 몰랐는지 삼장로가 탄성을 냈다.

       

       이걸로 두 걸음. 대가로 왼 손목이 꺾였으나 이 정도면 싸게 치인 셈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삼장로가 미소와 함께 한 발을 뒤로 뺐다. 허나 그것은 후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절기를 보이기 위한 준비였다.

       

       “금파의 주먹도 버텨보시지요!”

       

       금파. 소림 무인의 금강불괴를 부셨다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리고 삼장로가 결정적인 순간에 쓰기를 즐기는 기술이기도 했다.

       

       내가 노린 건 바로 이 기술이었다.

       

       큰 힘을 사용하는 데는 당연 준비가 따른다. 삼장로의 금파 또한 그러했다. 준비를 위한 시간은 짧았으나 예상했다면 충분히 노릴 수 있는 틈이었다.

       

       세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이것은 단순한 걸음이 아니었다.

       

       천마 신공 중 하나. 천마의 포악한 패도를 상징하는 무공.

       

       천마군림보.

       

       “어찌!”

       

       가진 내공이 크지 않았기에 그 위력은 미묘했으나.

       

       삼장로의 준비를 무너트리기엔 충분했다.

       

       자세가 흐트러졌다. 삼장로가 다급히 내공을 움직여 공격에 대비하려 하나 늦다.

       

       방비가 되지 않은 몸에 권이 꽂힌다.

       

       담은 것은 세상에 균열을 내겠다는 의지 그 자체이니. 한낮 인간이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충격을 견디던 삼장로는 얼마 안 가 거센 파도에 밀려나듯 바닥을 굴렀다. 그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윽고 삼장로가 움직임을 멈췄다.

       

       삼장로를 발로 툭 건드려 몸을 뒤집었다. 그는 눈을 뜬 채로 기절했을 뿐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

       

       발을 들려하던 때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클리어!]

       [삼장로를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별 보상 : 천마의 비녀(커스터마이징)]

       

       내 손 위로 비녀 하나가 떨어졌다.

       

       끝에 나비가 조각된 검은 색의 비녀.

       

       눈을 끔뻑이다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정말이지. 이 게임을 만든 게 누군지 궁금하구나. 이건 또 어찌 아는 게야.

       

       보상으로 주어진 비녀는 내가 예전에 잊어버린 소중한 물건이었다.

       

       천마의 딸로 전생하고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준 선물. 아끼고 아끼다 한번도 착용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던 것.

       

       이걸 줄 테니 삼장로를 살려 달라는 게야?

       

       후후. 그래. 알겠다. 욘석아. 어머니의 비녀 앞에서 피를 보일 순 없지.

       

       그나저나 비녀는 어떻게 차는 거더라. 내가 기억하기로 긴 머리를 고정할 때 사용하는 물건일 터인데. 지금 내 머리는 삐죽거리는 단발아닌가.

       

       하. 제기랄. 이거 다시 외모의 조정을 할 수는 없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을 해주신 분이 50분을 넘었습니다. 기쁘네요.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은 후기에 오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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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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