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

       아으.

         

        이런 비슷한 일이 벌써 세 번째인 것 같다.

         

        얼굴 가리고 계속해서 걸으라고 하는 거.

         

        그래도 세 번째라 그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허억… 허으… 하아…”

         

        첫 번째는 언제였더라.

         

        17살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입양돼서 학교 다닐 때였는데, 같은 학교 친구들이 나를 괴롭혔었다.

         

        잘은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건 없었던 걸로 기억난다.

         

        새아빠가 살인마였다는 게 밝혀진 이후부터 였나?

         

        날 입양해 준 새아빠가 사실은 사람을 끔찍하게 죽인 살인마라는 게 전교에 소문이 난 그 다음날부터 괴롭혔던 것 같다.

         

        살인마의 자식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친자식도 아닌데.

         

        하하.

         

        참 여러 방식으로 괴롭혔는데 그중에 기억 남는 것 하나가 이거였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씌우고 계단을 오르라고 했었다.

         

        숨도 안 쉬어지고 많이 무서웠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뭐였더라?

         

        아아 맞아 감옥에서 였지.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었다.

         

        듣기로는 조폭이라고 했는데, 옷에 물을 조금 묻혀서 얼굴에 돌돌 말고 운동장을 뛰라고 했었다.

         

        그때도 숨 안 쉬어지고 죽을 뻔 했는데.

         

        차라리 지금이 나은 건가?

         

        숨이 아예 안 쉬어지는 것도 아니고 계단 오르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고.

         

        음.

         

        잘 모르겠다.

         

        “우회전.”

         

        “허억 허억!”

         

        “우회전이라고 이새끼야.”

         

        아, 오른쪽!

         

        ***

       

        “하… 이새끼들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

         

        이시현은 자신이 죽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전부 주황색 옷을 입고 있었다.

         

        범죄자들이었다.

         

        이 거대한 미로의 이름은 튜토리얼 미궁.

         

        이 미궁에는 우리처럼 100명이 넘게 단체로 소환된 무리가 총 넷이었다.

         

        전체 미로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우리가 남쪽, 이 새끼들이 동쪽이었다.

         

        소환 기준은 랜덤이었다.

         

        이시현, 그녀가 있던 무리처럼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거나.

         

        혹은 단체로 소환됐거나.

         

        이번의 경우에는 범죄자들이 단체로 소환된 것이었다.

         

        참으로 운이 없었다.

         

        몬스터 뿐만 아니라 이놈들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끝자락으로 도달한 거였지만, 서아를 찾으러 가기 2시간 정도 뒤, 이놈들 무리와 마주쳤다.

         

        그리고 2시간이 넘게 싸웠다.

         

        12대 1.

         

        너무나 극명한 차이였지만, 회귀자로써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그녀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으득.”

         

        또 이가 갈렸다.

         

        서아.

         

        분명히 찾아야 했다.

         

        애초에 그 아이 말고 찾아야 할 이가 하나 더 있었다.

         

        이 설.

         

        절대로 죽으면 안되는 인물.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끝까지 살려 놔야 하는 좆같은 인물이었다.

         

        “빨리.”

         

        빨리 찾아야 한다.

         

        서아부터.

         

        그리 생각하며 다시 발을 놀릴 때였다.

         

        “어?”

         

        “…?”

         

        바로 옆 코너에서 박지원을 만났다.

         

        “시현 씨?”

         

        “지원… 씨? 지금 안고 계신 건…”

         

        “아아, 다친 아이에요. 이 설이랑 같이 있던 걸 발견해서 지금 데리고 있어요.”

         

        “이 설 말입니까…?”

         

        “저기 뒤에요.”

         

        이시현이 잠시 시선을 무리의 뒤쪽으로 옮기자 커다란 포대를 뒤집어 쓴 채 밧줄에 묶여 남자에게 끌려오고 있는 작은 남자가 보였다.

         

        저 후드.

         

        이 설이 맞았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지금 찾아야 하는 인원 둘 다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까.

         

        멀쩡한 채로.

         

        그렇게 안심이 드니, 그녀의 관심은 절로 서아에게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그 피는…”

         

        “아, 이 아이가 다리를 다쳤더라고요. 그래서 포션으로 치료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이 설이 문제입니다.”

         

        “네?”

         

        “저 새끼, 이 아이를 강간하려고 했어요.”

         

        “무슨…!”

         

        “이 다친 애의 치마를 찢고 있었어요.”

         

        최악의 경우.

         

        이시현이 상정했던 최악의 경우가 발생했다.

         

        “그럼 그 아이는…”

         

        “아, 다행히 일이 발생하기 전에 저희가 발견해서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설 저새끼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막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이 설에게 분노가 차올랐다.

         

        범죄자.

         

        그것도 아주 흉악한 범죄자.

         

        그럼에도 죽일 수 없고 모순적이게도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살려 놓아야 하는.

         

        그 끔찍하고 흉악한 범죄자.

         

        그런데도 내 관리에서 벗어나 탱탱볼 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 튀며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던 이 망할 새끼.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분노가 차올랐다.

         

        “지원 씨. 이렇게 무리를 모여 돌아다니시는 건…”

         

        “아현 씨가 의견을 내서요. 전투 관련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나서서 탐사 좀 하자는 의견을 내서 말이죠.”

         

        “그럼 다른 무리는 없습니까?”

         

        “네, 일단 저희만 탐사하기로 했어요.”

         

        “그건 다행이군요.”

         

        “무슨 일 있나요?”

         

        “그건 이따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 돌아가시는 길입니까?”

         

        “네.”

         

        “그거 잘 됐군요.”

         

        이시현은 그대로 이 설에게 달려나갔다.

         

        그리고.

         

        “끄헥!”

         

        퍽!

         

        포대를 쓰고 있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이 설이 넘어졌다.

         

        하지만 이시현은 망설임 없이 그의 얼굴을 발로 가격했다.

         

        퍽! 퍽! 퍽! 퍽!

         

        이시현은 화가 났다.

         

        자신의 계획대로 계속해서 상황이 풀리지 않은 것에.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려고 한 이 설에게.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이 설의 얼굴을 발로 때렸다.

         

        으득.

         

        하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지만, 기껏해야 이빨 몇 개랑 코가 부러졌으리라.

         

        딱히 죽지는 않았겠지.

         

        “끄헥…! 끄륵… 께헥…!”

         

        지금 이렇게 숨 쉬는 거 보면 말이야.

         

        이 설이 쓰고 있는 포대에 피가 번져나갔다.

         

        “후우.”

         

        잠시 진정된 마음으로 이시현이 숨을 내뱉었다.

         

        “이제 출발합시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두 남자는 생각했다.

         

        박지원보다 무섭다.

         

        ***

         

        어라.

         

        오늘따라 많이 맞은 것 같다.

         

        왜지.

         

        근데 나를 때린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인 것 같은데.

         

        오해 때문에 그런가?

         

        내가 서아를 아프게 하려 했다는 그런 오해.

         

        그것에 분노해서 나를 때린 것 같았다.

         

        그럼 나쁜 사람은 아닌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렇게 오해받을 상황을 만든 내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었다.

         

        나쁜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코가 찡하고 얼얼했다.

         

        갈색빛만 보이던 포대 자루가 붉게 보였다.

         

        입에서는 피 맛이 났다.

         

        아팠다.

         

        지금 내 얼굴은 어떠려나.

         

        잘 모르겠다.

         

        그냥 힘든데.

         

        아무 생각하지 말고 걷자.

         

        그게 나을 거 같아.

         

        또 맞는 건 무서우니까.

         

        히히.

         

        ***

         

        시간이 지났다.

         

        계속 걸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그저 걷기만 했다.

         

        앞에서 다들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린다.

         

        방금 전에 맞을 때 이후로 귀가 잘 안 들렸다.

         

        그냥 그들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만 듣고 좋은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무슨 좋은 일일까.

         

        처음에는 독심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너무 머리가 아파서 포기했다.

         

        나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시간이 또 지났다.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엔돌핀… 이라고 하던가?

         

        아마 그게 도는 거 같았다.

         

        이제는 얼굴의 아픈 게 잘 안 느껴지고 아까보다는 걷는 게 덜 힘들었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걸까?

         

        덜 힘들 때 끝났으면 좋겠다.

         

        또 시간이 지났다.

         

        얼굴이 뻐근했다.

         

        나는 이전에 이 증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얼굴이 부었구나.

         

        그런 것 같았다.

         

        아마 이 정도 맞았으면 팅팅 불었을 것 같다.

         

        마치 풍선처럼.

         

        히히.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웃길지도.

         

        못생긴 물고기처럼 생긴 거 아닌가 모르겠네.

         

        히히.

         

        까득 까득.

         

        코로 숨이 안 쉬어져서 입으로 쉬고 있는데 자꾸 이빨이 걸리적 거렸다.

         

        뱉고 싶은데 뱉을 수도 없었다.

         

        음.

         

        그냥 먹어야 하나?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시간이.

         

        흘렀다.

         

        결국에는 이빨을 먹지 않기로 했다.

         

        잠시 정지했기 때문.

         

        새로운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아니 익숙한 목소리인가?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이전에 나를 살려줬던 그 붉은 머리 여자인 것 같다.

         

        아.

         

        다시 이동한다.

         

        이동한다.

         

        이동한다.

         

        이동한다.

         

        그리고.

         

        퍽.

         

        “윽.”

         

        다시 몸이 걷어차이며 넘어졌다.

         

        뭐지?

         

        이제 쉬어도 되는 건가?

         

        어.

         

        일어서야 하나?

         

        멈추면 죽는다고 했는데.

         

        “어딜 일어나!”

         

        퍽!

         

        아.

         

        일어나지 말라는 거구나.

         

        아.

         

        그러면 앉아있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후욱!

         

        빛이 눈에 들어왔다.

         

        포대가 벗겨진 것이었다.

         

        뭐지?

       

       

        오른쪽 눈은 여전히 깜깜하다.

         

        왼쪽 눈은 흐릿한데 세상이 빨갛게 보였다.

         

        앞에 누군가 여러 명이 있었다.

         

        뭐하는 거지?

         

        ***

         

        “이건…”

         

        “어우…”

         

        “좀 심하네요.”

         

        강아현은 그리 말했다.

         

        이시현은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부러져서 박살난 코.

         

        하도 맞아서 피멍이 든 채로 퉁퉁 불은 얼굴.

         

        핏줄이 터져 충혈된 양 눈.

         

        입과 코에서 흐르다 굳은 피.

         

        남이 본다면 도저히 이 설이라 볼 수 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강아현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이시현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대답한 것은 이시현이 아니었다.

         

        “이 설이 이 아이를 강간하려던 것을 막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담담히 사실을 말하는 박지원.

         

        몇몇 과정이 생략된 것 같기는 했지만, 강아현은 그것을 굳이 트집잡지 않았다.

         

        치마가 거칠게 찢어져 있는 여자아이는 그녀에게 안겨 곤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아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심각한 건, 이 상황이었군요… 우선 아이부터 쉬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강아현이 다른 사람들을 불러 남은 옷가지들을 바닥에 깐 뒤, 그 위에 서아를 올려놓았다.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천사같아 보였다.

         

        ‘이런 아이를…!!’

         

        박지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절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시현도 마찬가지였다.

         

        “아현 씨, 이 설에 대한 처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지금 저에게 의견을 물으시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왜 저죠?”

         

        “그야 아현 씨가 짧은 시간 내에 이 모든 것을 이뤄내 주셨으니까요.”

         

        이시현은 돌아오는 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작 몇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이미 그 안에서는 어느 정도 규칙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경비부터 불침번, 식량의 분배와 보관, 노동의 분업까지.

         

        강아현은 이 모든 것을 고작 몇 시간 만에 만들어 내며 총괄을 담당하고 있었다.

         

        참으로 보면 볼수록 놀라울 정도로 유능한 그녀였다.

         

        “너무 띄워주시네요. 이 자원들 모두 시현 씨가 선두 지휘를 해주신 덕에 얻을 수 있던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묻고 싶은 겁니다. 이 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아현이 이 설을 쳐다봤다.

         

        얼굴이 전체적으로 망가진 작은 남자.

         

        키가 150은 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남자였다.

         

        강아현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이곳에 이목이 전부 집중된 상태.

         

        이 쉘터가 좁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넓은 공간도 아니었다.

         

        그 내부에서 70명 조차 되지 않는 인원에게는 이미 전부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을 터.

         

        “어머… 저 작은 아이를…?”

         

        “허…”

         

        “저 찢어죽일 새끼…”

         

        이 설에 대해 욕을 하고 있는 이가 나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강아현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부터 이 설에 관한 처우를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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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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