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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나는 지금까지 뭔가를 특별하게 하려고 한 적이 없었어.’

     나는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한 적은 없었으나, 나의 자리에서 내 역할에 충실했다.

     ‘어렸을 때는, 그냥 평범한 도련님이었지.’

     20살이 되기 전, 왕국이 망하기 전에는 백작가의 후계자로서.

     ‘어른이 되었어도, 백작으로서 백작가를 운영한 게 전부.’

     20살이 된 이후, 제국이 왕국을 지배한 뒤에는 백작으로서.

     ‘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뒤에나, 나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랐다.

     ‘백작위에서 정말 여러 가지를 해보기는 했지만, 그걸 진심으로 한 건 아니었어.’

     그 자리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백작으로서 나름 영지를 운영해보기도 했다.

     ‘할 줄 아는 건 경영뿐인데, 내가 그녀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그 경험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나리아를 위해 보답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렇게 해서, 내가 이루어내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나리아 공주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은 뭐지?’

     일단 그 의문에 대한 시발점으로서, 한 가지 확실한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이 나라는 답이 없다.’

     노스트럼 왕국은 망해야 한다.

     ‘도려내야 할 부분이 왕국 전체에 퍼져있어.’

     이 나라에는 너무나도 병폐가 많다.

     귀족도 그렇고, 상인들도 그렇고, 일반 농민들마저도 그렇다.

     ‘국왕만 봐도 그렇잖아. 과거의 사랑 때문에 변경백 아내를 건드리는 미친놈인데.’

     그 정점인 국왕만 보더라도 ‘무능왕’이 아닌가.

     그걸 전부 도려내야만 왕국이 안정화될 수 있다.

     아니면 차라리 왕국을 통째로 뒤엎어버리거나.

     ‘그렇다고 제국에 왕국을 넘겨줄 수는 없어.’

     제국의 황제는 미쳤다.

     ‘제국에 왕국을 넘긴다? 나리아 공주는 분명 살해당할 거야.’

     왕국을 점령하는 즉시 왕국민들을 노예로 삼을 것이며, 잔인하게 가지고 놀 것이다.

     왕족은 죽이고, 귀족은 몰락시켜 노예로 삼고, 백성들은 식민지의 주민으로 평생을 두려움 속에 살아야겠지.

     ‘걸레처럼 이용할 만큼 이용하다가, 새로운 걸레가 생기면 가차 없이 버려버릴 거야.’

     

     자신들이 왕국을 지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지브롤터 백작가를 토사구팽한 것처럼.

     ‘그럼, 가만히 있으라고?’

     이대로 흘러가게 둔다?

     미래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바르게 사는 건? 아버지를 몰아내고, 지브롤터 백작으로서의 명예를 다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브롤터 백작으로서 제국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가능은 한데, 그래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왕국과 귀족들은 지브롤터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며, 그 어떤 영광도 보람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인정은 받겠지만, 그뿐이야. 보상조차 주변에서 차단하겠지.’

     아.

     그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자들이 훼방을 놓겠지.

     밝은 미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오물은, 소독이 답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밝게 만드는가는 내 역할이 아니다.

     ‘나는 바른 정치 따위 몰라.’

     그쪽으로는 나도 자세히 모르고, 애초에 그런 걸 고민해본 적이 없다.

     반올림하면 30년에 이르는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는데, 지금 그런 고민을 해봐야 의미는 없다.

     그 대신.

     ‘부정한 것들을 치우는 건 할 수 있지.’

     더러운 걸 닦아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가장 부정한 것을 손에 꼽자면-

     무능왕.

     귀족들.

     제국의 황제.

     셋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장은 무리.

     그렇다면 차근차근, 계단을 쌓아 올리듯 움직이면 된다.

     언젠가 나리아 공주가 대관식을 치를 때, 적어도 그 옆에 간신이 없도록.

     내가 간신들의 구심점이 되어, 나와 함께 모두 숙청된다면?

     ‘완벽한 계획은 아니야.’

     완벽이라는 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최대한 지워낼 수는 있겠지.’

     나리아가 대처할 수 있는 정도만 남긴다면, 나머지는 내가 함께 데리고 가면 된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제일 잘 아는 법.’

     더러운 물에 구더기가 꼬이듯, 나리아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나리아의 대척점으로 들어오게 되겠지.

     그러니.

     ‘매국노들을 한자리에 모아, 파티라도 열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바탕으로 모든 쓰레기를 내 아래에 규합한다.

     ‘그 자리에서 다 같이 독이 든 와인이라도 마셔서 전부 죽게 된다면, 그것도 좋겠네.’

     그를 위해, 나는 철저히 매국노가 되어야 한다.

     

     나라 팔아먹는 쓰레기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 * *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예산을 허투루 쓰신 적이 있으십니까?”

     “…….”

     “없으시겠죠. 예, 당연합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지브롤터’셨으니까요.”

     아버지는 가만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생각해보도록 하죠. 청렴결백. 이 한 단어로 지브롤터 변경백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크흠.”

     아버지는 쑥스러워하며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누가 저 얼굴을 30대 후반이라고 생각하겠냐만, 안타깝게도 그건 무능왕이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청렴결백한 자가 갑자기 비리를 저지르고 범죄에 손을 댄다면, 왕국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하겠죠.”

     “…….”

     “그러니, 아들인 제가 나서는 겁니다. 아버지께서도 제게 부탁했던 것처럼.”

     “아니, 나는 그렇게까지는-”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부정하지만, 나는 그 속내를 알고 있다.

     “오탁은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아버지는 그저 망나니 아들을 둔 변경백으로서, 자식 농사에 골머리를 썩이는 걸로 지내시면 됩니다.”

     “…….”

     “그 누구도 아버지를 의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모든 시선을 끌 테니, 아버지는 그저 제가 사고를 치는 걸 수습해주시고,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다해주십시오. 동생들에게.”

     “…네게 큰 짐을 씌우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미안해하시면 안 됩니다.”

     미안할 이유가 없다.

     “결국 저도, 제가 편하려고 그러는 거니까요.”

     “…….”

     “착하고 어진 호구로 살기에는, 제가 아무래도 그 부분은 지브롤터답지 않은 모양입니다.”

     “으하하하!”

     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지브롤터가 호구란 말이더냐?”

     “틀렸습니까?”

     “아니, 맞다. 상스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대대로 호구였지. 우국충정의 머저리.”

     조상님들이 지켜보고 있는 서재에서 하는 말치고는 과격하지만, 아버지는 말을 취소하지 않았다.

     “…조상님들도 이해하실 거다. 내 아내가 왕에게 희롱당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착각일까.

     근엄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조상님들의 초상화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것 같은 느낌은.

     ‘저건 나도 공감해서 그런 걸지도.’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희롱을 당하다.

     실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아버지가 인식하고 있는 사실’만 놓고 봐도 아버지의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면 지브롤터가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제, 슬슬 본론을 이야기해보자.”

     아버지는 잠겨진 서랍 중 하나를 연 다음, 수북하게 쌓인 양피지를 책상에 꺼냈다.

     “지브롤터 게이트에 관한 자료들이다.”

     “…….”

     사실은, 이미 다 봐서 안다.

     10년 뒤의 데이터, 그리고 내가 직접 작성한 자료들까지 전부 다 안다.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될까. 게이트의 기원에 대하여?”

     “괜찮습니다. 자세한 건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은…’구름다리’에 대한 건만 이야기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래?”

     아버지가 살짝 아쉬워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지브롤터인 만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내게 말하기를 기대한 모양이다.

     ‘그건 누아르나 레타르, 동생들한테 실컷 해주시고.’

     관문의 기원?

     하나. 지브롤터의 시조는 마법사였다.

     둘. 초대 국왕과 친우였고, 시조는 후손 대대로 왕국을 지키는 방패가 되기로 결의했다.

     셋. 그 대신, 지브롤터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맹약을 맺었다.

     아버지는 두 가문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겠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이 세 번째.

     “왕국은 관문의 유지와 보수에 대하여, 충분한 지원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 오랜 맹약에 따른 관습법이죠. 선선대…증조부님 대부터는 사실상 없어진 법입니다만.”

     현재의 사다리 및 구름다리는 협곡이 건축되고 한참 뒤에 만들어졌다.

     “증조부님 전대에는 매번 변경백이 시찰을 나가서 관문을 열고 유지보수를 해야 했죠.”

     “그래. 세 개의 문 중 적어도 두 개는 매번 열어서 확인해야 했니.”

     “증조부께서는 50m에 이르는 사다리를 제작하셨고, 인부들이 사다리를 통해 오르내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 사실상 반영구적인….”

     “즉, 당대에 이르러 설비를 좀 보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

     아버지는 다시금 턱을 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다리를 없애고 새로 설치하자는 말이더냐? 아니면 옆에 또다른 사다리를?”

     “사다리보다는…그래요, 그게 좋겠군요. 왕국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목적이 있어야 하니.”

     이왕 만들 거라면, ‘그녀’에게도 편리한 물건이 좋겠지.

     언젠가 나리아 공주가 이곳에 왔을 때, 편하게 50m 성벽 위를 볼 수 있도록 하려면.

     “승강기 만드시죠.”

     역시, 자동으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드는 게 답일 것이다.

     “승강기라…. 알고는 있다만, 그걸 만들기에는….”

     “예. 단순한 유지보수 이상의 예산이 들 겁니다. 쉽게 통과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 한 가지 허락을 구하겠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 목을 걸어야 한다.

     “어머니를 이용하시지요.”

     “……뭐라?”

     서재의 기온이 차갑게 내려간다. 

     친아들이고 나발이고, 순간적으로 흘린 살기를 거두지 않는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지금은 어머니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저는 10살의 꼬마이며, 막대한 예산을 국왕으로부터 얻어낼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너.”

     “어머니는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

     아버지가 눈썹을 찌푸린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꾼과 반역을 결심한 매국노가 안에서 의견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한눈에 느껴진다.

     “샬롯을 이용해, 그 자식에게서 예산을 타낸다고? 쓰으읍….”

     하지만 아직은 사랑꾼의 기질이 더 크기에, 아버지는 불쾌감과 살기를 거두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아버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나를, 위한 일이라고?”

     “예.”

     이용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이용한다.

     “잘만 엮는다면, 어머니와 다시 합방하실 수도.”

     “!!”

     왕궁에서의 귀환 이후.

     현재까지, 지브롤터 백작과 부인은 각방 생활 중이다.

     “…….”

     “어머니를 잠시 위로할 수 있는 건 자식일 수 있지만, 매일 밤 곁에서 어머니를 토닥여주실 수 있는 분은-”

     “나, 뿐이지.”

     허락을 받아냈다.

     * * *

     ‘어떻게’라는 부분에 있어 아버지는 계속 의구심을 던졌지만, 나는 그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왜냐고?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니…?”

     “예.”

     나는 어머니를 달래고 설득하러 온 게 아니라, 약점을 쥐고 협박하러 온 거니까.

     “아버지의 반역은 확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장남으로서, 반역을 성공시키기 위해 물밑에서 최선을 다해야지요.”

     “너….”

     “어머니. 반역을 저지르더라도, 국왕 전하를 죽이는 게 아닙니다.”

     “!!”

     어머니가 가장 걱정하던 부분을 파고든다.

     “이것은 일종의 반정입니다. 국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폐위시키고, 다른 자를 왕으로 올리는 정권교체입니다.”

     “정권…교체?”

     “예. 아버지는 노스트럼에 반기를 드는 게 아니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반기를 드는 거니까요.”

     “…….”

     “그 방법으로 조금 극단적이게도 제국과 손을 잡는다는 결론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이해는 합니다. 당장 어머니만 하더라도 반역에 부정적인 입장인데, 백작가의 병사 중 누가 진심으로 반역에 따르겠습니까?”

     명분 없는 반역은 대의가 없다.

     그리고 현재는 감정적인 반쪽짜리 명분만 있을 뿐.

     “조만간 아버지를 중심으로 협곡 재정비 및 신규 토목 사업에 관한 제안서가 작성될 겁니다. 어머니는 그 제안서 아래, 국왕에게 전해질 편지 한 통만 써주시면 됩니다.”

     “편지….”

     “들키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당분간은 아버지를 자극하지 말자고.”

     “!!”

     어머니가 파르르 손을 떨었으나, 나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답했다.

     “어머니의 편지는 제가 직접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죠?”

     “…….”

     “아. 물론, 밀봉해주셔야지요. 저는 그저,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국왕 폐하께 아무것도 모르고 편지를 전하는 순진한 장남일 뿐이니까요.”

     밀서가 있다고 한들, 나는 밀서를 펼쳐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응원은 못 해드려도, 그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후후후.”

     “…너, 내 아들 맞니…?”

     “그럼요.”

     아들이니까, 봐주는 거다.

     “제가 서자였으면 저는 진작에 어머니를 고발하여, 적자의 자리를 차지했을 겁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효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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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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