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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이름 모를 숲에서의 여정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1장 시작 지점답게 루시와 린을 위협할만 적은 없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적이 없을 뿐 그들을 괴롭히는 요소는 차고 넘쳤다.

         

        작은 독충부터 뱀 같이 사각에서 사람을 노리는 유해조수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드는 죄다 똑같이 보이는 나무들과 기타 등등.

         

        비전투원과 사지 절단 장애인에게 충분히 위험했다.

         

         

        “아~.”

         

         

        린은 최대한 루시 위주로 행동했다.

         

        자세가 불편해도 포대기로 감싸인 루시가 편하다고 하면 그대로 쭉 걷거나 안고 있었고, 자신은 땀범벅이 되어도 강행군을 하면서 루시가 조금이라도 지친 기색을 보이면 즉시 쉬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루시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린은 주저없이 벌꿀을 꺼내 루시의 입으로 스푼을 가져다 댔다.

         

         

        “우응, 아~.”

         

         

        린을 따라 입을 벌리는 루시.

         

        그가 떠주는 벌꿀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손발이 없으니 별 수 없다고 쳐도 루시는 자신이 다 먹었는지 잘 먹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린을 볼 수 있는 식사 시간이 좋았다.

         

         

        “린은 밥 안먹어?”

         

        “필요하면.”

         

        “린도 먹어야지….”

         

        “아직은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시도때도 없이 린의 배는 꼬르륵 거렸다.

         

        루시가 아무리 걱정을 해도 린은 너무 허기져서 쓰러질 것 같을 때만 품에서 갈색 풀떼기를 꺼내 입에 넣고 씹었다.

         

        뭐냐고 물으니 물에 삶아 불린 고사리란다.

         

        보다 못한 루시가 그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라고 강하게 말하려 했지만,

         

         

        “내가 다 불안해, 제발 좀…!”

         

        “괜찮아, 마왕 토벌 여정에서부터 단련해온 거라 익숙해.”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그를 보고 흠칫 굳어버렸다.

         

        과거에 비전투원인 그가 잠시 다른 일을 하러 간 사이, 준비 해놓은 식사를 다른 파티원들과 함께 다 먹어치운 적이 빈번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너무 굶주렸던 탓에 모두가 정신없이 퍼먹은 게 계기였지만 자신은 괜찮다고 태연히 말하길래 당연하게 여기고 말았다.

         

        사실은 그도 배가 고팠던 거다.

         

        억지로 참으면서 허기에 익숙해지고 오로지 용사 파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었다.

         

        하는 것 없는 걸어다니는 인벤토리 창이라고 수시로 비하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루시를 괴롭히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린이 좋다.

         

        나의 유일한 아군, 최고의 동료, 나의 린.

         

        이 말을 해줬을 때 그가 따스하게 지은 미소를 기억한다.

         

        하지만 고작 말만 가지고는 그와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어떤 비하와 무시에도 묵묵히 견뎌온 린은 그녀가 우물쭈물하며 조금씩 드러내는 호감 표시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아무리 밀어내도 멀어지지 않던, 적지 않은 그와 거리를 이제 좁히고 싶었지만 그다지 변할 것 같지 않았다.

         

         

        “어디 불편해? 안색이 안 좋네.”

         

        “아냐 괜찮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네가 날 보면 꾸밈없이 웃어줬으면 좋겠어.

         

        그러나 루시는 그런 요구를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냐 괜찮아.”

         

        “그래.”

         

        “린.”

         

        “응?”

         

        “…….”

         

        “왜 그래?”

         

        “…그냥 고맙다구.”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

         

         

        루시는 린의 호의가 의무감에 나온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

         

         

         

        린이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면서 이동에 힘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로 추격자의 존재였다.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있다고 가정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했다.

         

        라인폴드는 철두철미한 남자였다.

         

        황태녀를 위해 혹시라도 있을 위험의 가능성은 아무리 적더라도 제거하고 싶어한다.

         

        그의 독단으로 은밀하게 추격자를 보내왔을 수도 있었다.

         

        또한, 그가 아니더라도 리나시엔이 직접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다.

         

        정점에 서고 싶어하는 그녀는 필요나 우선 순위에 따라 걸림돌을 잠깐 방치하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인내심은 늘 부족했지. 어릴 적부터 말야.’

         

         

        돌부리가 걸림돌이 될지, 구원줄이 될지 제대로 확인조차 안하고 행동하는 황태녀의 성향을 린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적극적인 면을 린은 좋아했었다.

         

         

        “린 듣고 있어?”

         

        “미안, 주변에 뭐 있나 신경 쓰느라.”

         

        “내 귀에는 아무 기척도 안 느껴져.”

         

        “다행이다.”

         

        “린.”

         

        “응.”

         

        “내게 집중해.”

         

        “알았어.”

         

        “나한테는 너뿐이잖아.”

         

        “꼭 그렇지는….”

         

        “너뿐이잖아. 너 말고 누가 내 곁에 있어?”

         

        “…없지.”

         

        “너한테도 나뿐이잖아.”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용사로써, 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었다.

         

        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의 얼굴이 환해졌다.

         

         

        “린은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뭘 하고 싶어?”

         

        “평화로워진다면?”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알고 싶어.”

         

         

        루시는 입이 근질거렸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내놓은 주제였다.

         

        계속 옛날 이야기를 해봤자 손해만 보니 차라리 미래에 대해 대화를 해보자는 묘안을 도출해냈다.

         

        루시는 린에게서 남은 여생을 자신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 말을 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걸 알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기대하고 있었다.

         

         

        “음, 좀 쉬고 싶네. 루시만큼은 아니지만 쉼없이 달려왔으니까.”

         

        “아…. 그것뿐?”

         

        “제대로 쉬어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해.”

         

        “그 다음에는? 쉴만큼 쉬고난 다음에는? 세상을 구했으니 많은 금은보화에다가 명성도 높아졌을 거잖아. 그걸 이용해서 뭔가 해보고 싶은 건 없어?”

         

        “그런 건 직접 몸으로 고생한 루시가 받아야지.”

         

        “그래도! 용사 파티원이니까 나보다는 아니더라도 꽤 받을 거잖아!”

         

        “음.”

         

         

        린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잘 와닿지가 않네. 매일 쪼들리며 살아서 그런가.”

         

        “그렇구나….”

         

        “그래도 돈이 있다면 한적한 곳에 내 집은 만들어 놓고 편히 살지 않을까?”

         

         

        말하고 나서 씁쓸했다.

         

        어느새 자신의 소원은 평범하게 바뀌어 있었다.

         

        패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정이 넘치던 지난날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혼자서?”

         

        “응?”

         

        “집에 혼자서만 살거야?”

         

        “내 집이니까 나 혼자겠지?”

         

        “그, 가정을 꾸린다거나? 그런 건?”

         

        “나 인기없어.”

         

        “아냐, 린 잘생겼어.”

         

        “음.”

         

        “그땐 내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말한 거니까!”

         

         

        그때라는 건 린을 처음 본 날이다.

         

        못생겼으니 가면 쓰라고 한 그 날이 맞다.

         

        대화가 자꾸 난관에 부딪치자 루시는 단도진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면 이상형은? 린의 이상형은 뭐야?”

         

         

        린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상형?”

         

        “응, 이상형.”

         

         

        솔직히 말하자면 린은 이 대화가 거북했다.

         

        너무 오랫동안 무관심 혹은 악의에 노출되었던 탓일까.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게 이상하게 다가왔다.

         

        나긋나긋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가 그에게 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삶의 주인공은 분명 자신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었기에 매우 이질적이고 낯설었다.

         

        흔히 말하는 인싸 그룹에서나 나올법한 주제에 린은 혼란스러웠다.

         

         

        “린…?”

         

         

        그러나 그는 지금 루시를 돌보고 있었다.

         

        그녀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그녀의 사지를 회복시키고 다시 다가올 세상의 위험에 맞서 싸우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이상형이라면 그, 좋아하는 사람?”

         

        “자신이 가장 바라는 연인이나 배우자상 말야.”

         

        “어….”

         

        “없어?”

         

        “딱 떠오르지는 않지만 음…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

         

        “외모는?”

         

        “날 좋아해주기만 한다면 감사할 따름이지.”

         

        “그, 그래?”

         

        “응, 너무 고마운 사람이잖아. 그것만으로도 내게 과분해.”

         

         

        루시는 드디어 한 건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그를 좋아하는가? 당연하다.

         

        자신은 계산적인 사람인가? 그랬으면 앞뒤 안 가리는 시건방짐이라고 뒤통수 맞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동료들에게 극진했던 자신이었다.

         

        …린에게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제는 자신도 달라질 것을 다짐한 상태기 때문에 루시는 조만간 그에게 입후보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다.

         

        어차피 경쟁자도 없을 테니 그의 마음만 얻으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는 루시는 이상형이 뭐야?”

         

        “내 이상형?”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웬일로 루시에 대해 물어보는 린.

         

        이번에야말로 그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암시를 적당히 눈치 챌 수 있게 전하리라.

         

         

        “나는 상냥하고.”

         

         

        자신이 아무리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다 받아주는 린.

         

         

        “배려 깊고.”

         

         

        몸 한 번 뒤척이면 바로 눈치 채고 물어보는 린.

         

         

        “날 지켜주는 사람.”

         

         

        용사 파티의 배신에서 자신을 구해주고 지켜주는 유일한 아군인 린.

         

        이 정도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까?

         

         

        “그럴 줄 알았어.”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상큼한 맺음으로 더 뭔가 말 붙일 건덕지가 없었다.

         

        그보다 그럴 줄 알았다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미 린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던 걸까?

         

        혼자서 바쁘게 의혹과 의문을 이어가던 루시는 종국에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나는 상냥하고.”

         

         

        금발벽안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모두에게 상냥한 라인폴드

         

         

        “배려 깊고.”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며 부드러운 언행을 쓰는 라인폴드

         

         

        “날 지켜주는 사람.”

         

         

        마족과의 전투 때마다 방패를 들어 방어해주고 약혼녀였던 그녀를 손끝 하나 함부로 대지 않고 지켜주던 라인폴드.

         

         

        “아니야!!!”

         

        “루시?!”

         

        “아니라고!”

         

         

        자충수를 둔 걸 깨달은 루시는 소리를 지르며 부정했다.

         

         

        “무슨 일이야, 루시?”

         

        “린!”

         

        “그래 나 여기있어.”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고!”

         

        “알아, 아까도 말해줬잖아.”

         

        “절대로 라인폴드를 떠올리고서 한 말이 아니야.”

         

        “라인폴드? 아, 이상형 말이구나.”

         

        “아니라고! 라인폴드를 떠올리고 한 게 아니야! 그놈이 모두를 부추겨서 내 팔다리를 자른 거 잊었어?!”

         

         

        난감하다.

         

        린은 그저 루시가 과거에 라인폴드를 좋아했던 이유가 이상형에 부합해서 라고 여겼다.

         

        그때야 라인폴드가 이빨을 드러내기 전이었고 당시의 모습만 본다면 바람직한 약혼자이자 보호자의 상이었다.

         

        그래서 그럴 줄 알았다고 한건데 루시의 발작 버튼을 잘못 눌러버렸나 보다.

         

         

        “린, 린… 린이니까 내 마음을 그런 식으로 넘겨짚으면 안 돼. 알겠지?”

         

        “당연하지.”

         

        “린 나는… 너밖에 없어. 네 품이 아니면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고, 잘 때 네 심장소리가 없으면 매일 악몽을 꿔. 그 빌어먹을 라인폴드 자식이 날 찢어발기는 꿈을!”

         

        “루시 괜찮아. 난 네가 원하면 곁에 있을 거야.”

         

        “정말이지? 약속하는 거지?”

         

        “응 약속해.”

         

        “난 라인폴드를 좋아하지 않아. 알고 있지?”

         

        “누가 원수를 좋아해.”

         

        “난 그 자식이랑 약혼했던 나날들을 죽도록 후회하고 있어.”

         

        “당연히 그렇지. 널 아프게 만든 놈인데.”

         

         

        맞물리는 것 같지만 서로의 말은 엇나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정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루시와 어떻게든 달래며 지금을 흘려 보내려는 린.

         

        그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할수록 루시는 더욱더 린을 갈구했다.

         

        내게 다리가 있었다면 직접 그에게 다가서고, 팔이 있었다면 직접 그를 안으며 속삭였을 텐데.

         

        루시에나 에스텔이 린을 얼마나 연모하고 있는지 밤이 새도록 사모곡을 불러주웠을 텐데.

         

        이런 몸뚱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갈구는 초조함을, 초조함은 조바심을 낳고, 조바심은 답답함을 낳았다.

         

         

        “이 망할 숲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루시가 짜증을 낼 때쯤, 린의 발걸음이 또 멈췄다.

         

        바로 앞에 나무 팻말로 된 이정표가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희망찬 냉기의 도시 에팔테르가!]

         

        정작 루시는 자신을 참을성 없는 여자로 만든 저 이정표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에팔테르가.

         

        북방 혹한 산맥 아래에 위치한 유일한 도시.

         

        이 숲을 벗어나서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거점.

         

         

        “올 것이 왔군.”

         

         

        오랜만의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그 혼잣말에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마수도 없는 숲이 끝났다. 즉, 튜토리얼이 끝났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틀릴 리가 없는 린, 전생자 이씨의 기억에 의하면 저 도시에는 마족이 숨어 있었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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