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기사를 메이저리그로 예시를 들었듯, 야구시합(전투)이 없을 때 선수(기사)들은 한가하다.

       전쟁이나 반란, 동맹국에 대한 지원 등이 있으면 또 모르겠으나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그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굳이 하는 일이랄 게 있다면 어떤 비상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기량을 높이는 게 그들이 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일 터.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 출근이란 행위 자체도 보여주기 식 행위에 불과했고,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일 뿐이다.

         

       이 말은 즉 뭐냐.

         

       “나 퇴근한다.”

       “벌써?”

       “할 일이 있어서.”

       “…아아, 공사장 가는 거구나.”

       “그렇지, 뭐. 돈이랑 시간 넘치는 귀족이랑 다르게 돈 없는 평민은 투잡을 뛰어야 되니 않겠냐.”

       “하하….”

         

       기사단과 메이저리그의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월급이 일반 병사보다 약간 높은 정도일까?

       애초에 무력이 강한 자들이 돈을 벌고 싶었으면 용병이 되는 편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나, 돈 대신 ‘명예’와 ‘권위’ 등을 얻으려 입단하는 게 기사란 종자였으니.

       월급조차 품위유지비에 불과했으니, 평민 입장에선 한없이 부족한 것이 맞다.

         

       다만.

         

       “넌 딱히 돈 때문에 공사장을 가는 것도 아니면서.”

       “착각이야.”

         

       몸을 돌리며 멀어지는 그였고, 손을 대충 휘적거리며 그는 인사를 대신했다.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는 녀석이.”

         

       제이크는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한 속내를 읊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리한 선배님은 어디 가시는 겁니까?”

       “응?”

         

       방금 전 이한에게 깨졌던 신입 기사, 요르드가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파먼 경을 뵙습니다. 죄송합니다, 말부터 먼저 걸어서.”

       “으음.”

         

       이한만 상대하다 보니 반말이 익숙해진 탓인지, 이러한 예절은 간만이다.

       특히 한미한 가문 출신이 많이 모인 3기사단에서 더욱.

         

       “…그냥 편하게 말해주겠나? 그렇게 예의를 따지니 낯간지럽군.”

       “그렇지만….”

       “괜찮네. 그리고 경보단 그냥 나 또한 이한 녀석처럼 선배라 불러주게. 그편이 나도 듣기 좋을 것 같군.”

       “아, 알겠습니다, 제이크 선배.”

       “후우, 이제야 한결 듣기 편하군.”

       “…….”

       “하하, 이한이랑 너무 붙어 다녀서 그렇다네.”

         

       제이크 파먼은 변명 아닌 변명을 했고, 요르드는 멋쩍게 웃으며 그의 변명에 어울려줬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이한이 신경 쓰이는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봤고, 손이 근질거려 보였다.

       이를 보며 제이크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호오, 호승심이 전혀 죽지 않았군.”

       “…비록 지금은 넘지 못해도 훗날에는 넘겠다는 각오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무, 물론 방금 전처럼 대련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이미 그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그저 담론이나 좀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군.”

         

       드문 경우다. 귀족 자제 녀석이 이한에게 호감을 보이는 게.

       오늘 대련이 그 정도로 인상적이었나?

         

       ‘나쁘진 않군.’

         

       개인적으로 친구라 여기는 녀석이 항상 적만 있는 게 안타까웠는데, 따르는 후배 녀석이 생긴 건 기꺼워해야 할 노릇이다.

       제이크는 기꺼이 이한과 가까워지려는 후배에게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이한 녀석은 부업 뛰러 갔다네. 자기 말로는 투잡이라고 하더군.”

       “부, 부업 말씀이십니까? …후원자가 없는 겁니까?”

         

       요르드는 해괴한 얘기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민 출신이라고 한들, 이한은 기사다.

         

       그것도 왕실(王室) 직속 기사단이자, 왕국 최강인 백은사자 소속이다.

         

       이만한 인물이라면 상인들에게 상위 투자 대상이며, 연을 트고 싶은 상대임은 분명할 터.

       당장 요르드만 하더라도 한미한 출신이라 마땅한 재산은 없지만, 어느 상인과 후원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계약을 맺었다고 무력으로 도와주는 건 아니고,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걸 허락해주는 요식행위와 같으나, 이 또한 상인에게 중요한 점이라고 하던가.

       어쨌든 백은사자 소속들에게 후원을 약속하는 이들은 넘쳐나는데, 그런 기사가 돈이 없다고 부업을 뛰다니.

         

       …해괴한 경우였다.

         

       “그렇지, 그게 정상적이지.”

         

       제이크도 요르드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며 고개를 주억거리길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후배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좋은 선배였다.

         

       “저 녀석은 일부러 후원을 안 받는 거야. 계약하고자 하는 상인이 많은데도.”

       “그, 그런 경우가 있습니까?”

       “저놈은 그렇더라고. 뭐라더라. ‘후원계약 받으면 나중에 퇴직할 때 찜찜해’ -라고 하던가?”

       “……?”

       “하하, 이해하지 마. 그게 정상적이니까.”

         

       명예스러운 백은사자의 기사단에서 불명예스러운 전역은 있어도, 퇴직자는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한데 퇴직자를 희망하기에 아무것도 받아먹지 않을 거라니.

       하여튼.

         

       ‘성실한 건지 특이한 건지, 원.’

         

       알고 지낸 세월이 제법 됐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 * *

         

       이한은 도끼를 들었다.

         

       콰직!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정확히 나무를 내려찍으니, 통나무에는 벌써 균열이 생겼다.

       숙련된 이들조차 대못보다 큰 정 여러 개를 망치로 박은 후에야 시원하게 쪼갤 수 있는 통나무였지만, 이한은 벌목용 도끼 한 자루만으로 통나무를 쓰러트렸다.

         

       “이야, 역시 리한 형씨야.”

       “깔끔하구먼.”

       “여전히 탐나는 솜씨라니까. 어떻게 병사가 아니라, 그냥 이쪽으로 그냥 넘어오지?”

         

       여기 벌목업체에서 일할 때 이한은 ‘리한’이란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본업도 기사가 아니라 병사라 표기해놓은 상태였다.

       괜히 기사라고 했다가 일만 꼬일 것을 아니, 이한 나름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꼼수를 부렸다고 한들, 그는 정말 성실하게 일했고. 나무꾼들 사이에서도 에이스 취급일 정도였다.

         

       “본업은 안 그만둘 거야. 그리고 그만 떠들고 그냥 일이나 좀 해. 뭐가 그리 말이 많은지, 원.”

       “이놈아. 이런 일을 하는데 입이라도 떠들어야 덜 힘들지.”

       “아무렴, 아직 젊어서 잘 몰라.”

       “너도 술이나 한잔 혀!”

       “…됐어.”

         

       어느 노가다판을 가나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술기운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냐 싶긴 하다만, 이한은 빽빽하게 굴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이 다치면 저들 책임이지, 제 책임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한은 그저 묵묵히 할 일만 했고, 젊은 놈이 재미없게 산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다만.

         

       ‘뭐가 재미없다는 거지?’

         

       한 가지 부정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한은 부업삼아 나무를 패는 일을 하지만, 이 일에 큰 매력을 느끼는 중이었다.

         

       ‘근육이 쫙쫙 당겨오지, 이게.’

         

       어찌 보면 당연하려나.

       많고 많은 일 중 일부러 나무꾼 일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돈도 벌며 좋은 트레이닝이 될 일을 찾다가 찾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벌목은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쫘악!

         

       나무를 팰 때마다 등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온몸 근육이 자극된다.

       광배근과 척추기립근은 물론이지만, 미세근육을 비롯하여 그밖에 팔과 손가락 등등 안 쓰이는 근육이 없다.

       근육의 떨림과 힘이 쓰일 때 어떤 식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흘려보내는지를 궁리하다 보면 이건 정말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롭고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기술이야.’

         

       특히 도끼질이란 건 단순히 힘을 무식하게 준다고 해서 잘 사용하는 것이 아닌,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도구였다.

         

       못질을 생전 처음 해보는 순간 못질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도끼질 또한 만만한 게 아니고, 제법 섬세하면서도 깔끔한 자세와 기술, 경험 등의 노하우 등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가끔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검을 도끼처럼 쓸 수 있다면 어떠할까 싶은 아이디어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런 걸 보고 생활 속 지혜라고 하던가?’

         

       이한은 나무를 해체하는 작업을 통하여 좋은 트레이닝도 하고, 마치 전생에 보았던 TV 속 달인이 되어가는 느낌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오묘함을 느꼈다.

         

       ‘전생과 현생의 나는 너무 다르단 말이지.’

         

       전생의 그는 이토록 무언가에 열정적이지도,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삶의 환경이 이토록 사람을 다르게 만드는구나.’

         

       전생의 이한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조부 밑에서 컸었다.

       부모 없는 아이란 이유로 또래에게 따돌림도 많이 당하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다 보니 소심하고도 얌전한 아이가 되었으나, 고등학교 시절 조부마저 그의 곁을 떠난 후론 혼자 살아가기 위하여 곧장 군인으로 진로를 틀었다.

         

       부사관의 길을 갔는데, 군인이 된 이유는 별거 없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나마 끈기와 노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 중 군인이 그럴듯하게 보여서, 그래서 군인이 된 것이다.

       물론 군인 생활하며 오만 더러운 꼴 보며 1년도 안 되어 후회하게 됐지만, 어쩌겠는가.

       먹고 살려면 까야지.

         

       그러다가 휴가 도중 사건에 휘말려 죽게 됐는데, 아마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도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죽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생의 삶은 처음엔 더러웠지만 지금은 나름 보람찼다.

       비록 여전히 기사단에 속해 있지만, 그렇다고 한들 충실하긴 하고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전생 시절 남 눈치만 보고 살다가 끝낸 인생이 서러워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지 모르게 삐뚤어진 경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전생에도 군인이었고, 지금도 군인인 거 보면, 참 해괴한 인생이야.’

         

       이한은 그렇게 과거의 현재를 비교하며 헛웃음이 갑작스레 나오려던 중.

         

       킁킁.

         

       “응?”

         

       땀 냄새 가득한 곳에서 느껴질 리 없는 고급 진 향수 내음을 맡았다.

       그리고 그 향수의 내음의 주인을 안타깝게도 이한은 기억한다.

         

       “…또 왔네.”

         

       단장 아재 못지않은, 만나고 싶지 않은 ‘진상 친구’가 아무래도 찾아온 모양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