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


    ​
    ​
    ***
    ​
    ​
    보통 개그 세계에선 커다란 개나 사람이 달려들어 몸통 박치기를 하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게 당연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슥 입가를 닦으며 태연하게 말할 뿐이었다.
    ​
    ​
    “힘이..좋네..스프에 고기를 넣어서 그런가? 하하..”
    “지금 농담이 나와?!”
    “혀,형 주..주그면 안돼…흐아아앙!”
    ​
    ​
    어느새 다가온 노아가 소매로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네로는 내 허리춤에 매달려 눈물을 보였다. 나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
    ​
    “아냐,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니까 -..”
    “이게 어떻게 별거가 아니야!”
    ​
    ​
    노아가 단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나는 움찔 몸을 떨며 말했다.
    ​
    ​
    “그으…금방 괜찮아지니까. 정말 괜찮아.”
    “너어…”
    ​
    ​
    노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뭐지? 나 뭔가 크게 잘못한 거야?
    ​
    ​
    “흐윽,흐어어엉..”
    “어어? 네로 형 안 죽어. 정말 괜찮아!”
    ​
    ​
    우는 아이를 둥기둥기 달래며 계단을 올라가면서 먹으려고 종이 포장지로 포장해놓은 쿠키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
    ​
    “자, 달콤한 거라도 먹고 진정 -…”
    ​
    ​
    슉,와작.
    ​
    ​
    순간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손에 쥐고 있던 쿠키가 사라졌다.
    ​
    ​
    “어..?”
    ​
    ​
    고개를 돌리자 붉은 머리의 소녀가 와작와작 쿠키를 먹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
    ​
    “마싯서.”
    “어..그거 내껀데..?”
    “마니 마싯서.”
    “그으..고마워?”
    ​
    ​
    내 반만 한 소녀는 나에게 날아오듯 다가오더니 덥석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니…매달렸다.
    ​
    ​
    “어억! 자,잠깐!”
    “마싯는거 주는 사람! 쮠님!”
    “뭐,뭐? 뭔 쥐?”
    “내 쮠님!”
    ​
    ​
    소녀가 말할 때마다 쿠키 부스러기가 머리에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떼어내고자 소녀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네로와 노아도 소녀를 떼어놓고자 했지만, 소녀가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려 도울 수 없었다.
    ​
    ​
    “안 떨어지면 이따가 점심을 준비하기 힘든 -..”
    ​
    ​
    스슥!
    ​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떨어져 버렸다.
    ​
    ​
    “여기 얌전히 있어. 그러면 이따가 고기 들어간 수프 또 가져다줄 테니까.”
    ​
    ​
    그러자 소녀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머리 위에 뿅 하고 동물 귀가 솟아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긴 치마 아래로 붉은 꼬리가 튀어나와 바닥을 마구 쓰는 게 보였다. 
    ​
    ​
    ‘저번에 수프를 먹을 때도 좋아하긴 했는데…오늘은 더 극적이네.’
    ​
    ​
    묘한 뿌듯함에 웃음을 흘리며 감옥을 빠져나왔다.
    ​
    ​
    철컹.
    ​
    ​
    나는 문을 잠그며 감옥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
    ​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절대 감옥 밖으로 나오지 마. 큰 소리가 나면 구석에 숨어있고, 알았지? 내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
    ​
    마지막에 말을 흐리며 뻗어버린 라니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천장에 떠 있던 천체를 맞고 쓰러져버렸지만, 지금쯤이면 깨어났을 터였다.
    ​
    ​
    라니아에 대한 고민으로 흐린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리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
    ‘쿠키라도 더 구워주면 얌전해지려나? 아니, 그전에 덮쳐지는 게 더 빠를지도 몰라.’
    ​
    ​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
    ​
    끼이익.
    ​
    ​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라니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혹시 돌아갔나?”
    “뭐가 돌아가?”
    “흐악!”
    ​
    ​
    귓가에 바짝 붙어 들리는 목소리에 문을 퍽 차며 앞으로 굴렀다. 
    ​
    ​
    “잘도 도망갔더라?”
    “그,그게…”
    “흐응, 나에게서 도망쳐서 간 게 고작 여기야? 왜? 여기에 좋은 거라도 숨겨놨어?”
    ​
    ​
    라니아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안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딜은 그다지 풍족하지 않아 지하 계단이 꽤 짧은 편이었다. 고개가 잘 틀면 지하 감옥이 보일 정도였다. 나는 다급하게 일어나 라니아의 몸을 밀어내며 말했다.
    ​
    ​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아까는 그렇게 무서워서 도망 다니더니,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거야?”
    ​
    ​
    나는 라니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열린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
    ​
    “지하에 있는 건 오딜님의 실험체뿐이에요. 지금 오딜님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 언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서 조심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
    ​
    나는 최대한 그녀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
    ​
    “내가 있는데도?”
    “쭉 여기 있으실 거예요?”
    “아니.”
    ​
    ​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에 나는 그거 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
    ​
    “오딜님이 언제 돌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오실 때까진 최대한 실험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잖아요.”
    “그렇게 조심해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실험체가 있단 말이야?”
    “아뇨, 그건 아닌데…”
    ​
    ​
    나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말했다.
    ​
    ​
    “그냥 평범한 실험체라도..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실험체는 그다지 없어서요.”
   “흐응,하긴.”
    ​
    ​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에 있는 건 어린아이들 뿐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실험체는 성인부터 어린아이까지 골고루 사용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고작해야 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내가 실험체를 막지 못한다는 말을 쉽게 믿었다.
    ​
    ​
    “그런데 -..오딜 녀석 안 돌아올 거 같은데..”
    “예? 어째서요?”
    “같은 흑마법사라서 알 수 있거든. 보통 흑마법사가 자기 실험실에 두는 물건들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그렇다는 말은..”
   “너희는 전부 여기에 방치되었다는 말이지! 하하! 얼마 있으면 노예 상인에게 다 끌려가겠네!”
    ​
    ​
    그녀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는 듯 눈물까지 보이며 “꺄하하하!”하고 웃었다. 이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 
    ​
    ​
    “그,그럴 수가!”
    ​
    ​
    축 늘어져 절망하고 있으려니, 내 앞에 그림자가 졌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들자 라니아가 내 앞에 쭈그려 앉아 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
    ​
    “무서우면 나랑 같이 갈래? 내가 잘해줄게.”
    “히익!”
    ​
    ​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면 모를까, 사천왕 중에서도 ‘미친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라니아라면 말이 달랐다. 지금이야 나에게 흥미가 있어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간 사지가 산산이 부서질 터였다.
    ​
    ​
    ‘그거 조립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
    ​
    산산이 조각난 몸을 꾸물꾸물 조립해서 멀쩡하게 ‘짠!’하고 나타나면 분명 더욱 흥미를 느끼고 그녀 전용 샌드백으로 사용할 터였다. 상상만 해도 배가 아릿했다.
    ​
    ​
    “괘,괜찮습니다. 저는 오딜님의 충실한 종인지라…”
    “그렇게 말하니까 더 흥미가 돋네.”
    ​
    ​
    그녀의 얼굴에 새카만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
    ​
    덥석! 그녀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
    ​
    “내,어디가,오딜보다,못한,걸,까나?”
    “힉?!”
    ​
    ​
    내가 어깨를 움츠리며 굳어있던 그때.
    ​
    ​
    쿵쿵.
    ​
    ​
    묵직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살았다는 듯 눈물을 폭포수가 흐르는 것처럼 줄줄 흘리며 희망차게 웃었다.
    ​
    ​
    끼익.
    ​
    ​
    오딜이 마법을 걸어둔 탓에 굳게 닫혀있어야 할 문이 가볍게 열렸다. 그 모습에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생각했다.
    ​
    ​
    ‘진짜 도망갔구나 오딜…내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여줬는데..’
    ​
    ​
    그런 생각을 하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남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가슴 아래를 조여주는 코르셋이었다.
    ​
    ​
    영화에서 보던 귀족 영애처럼 허리를 꽉 조이는 코르셋이라기보단 허리 라인을 부각해주는 옷처럼 보였다. 내 시선이 정확히 코르셋을 향한 건 아니었다. 코르셋으로 인해 부각된 웅장한 가슴을 향해 있었다.
    ​
    ​
    ‘와..’
    “와..”
    ​
    ​
    너무 아름답고 충격적인 장면에 넋을 놓아버렸다. 뒤이어 내 시선은 그녀의 하체로 향했다. 코르셋과 이어진 바지는 그녀의 긴 다리를 더욱 길고 늘씬하게 만들었다. 연신 감탄을 토해내는 나와 달리 라니아는 귀찮은 무언가를 마주한 것처럼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
    ​
    “억.”
    ​
    ​
    라니아가 일어나면서 나를 놓아버린 탓에 난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라니아는 나를 지나쳐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
    ​
    “미아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하아…그건 제가 해야 할 말 아닌가요? 스승님.”
    ​
    ​
    미아는 얼굴의 반을 가릴 정도로 커다랗고 둥근 안경을 검지 손가락 끝으로 밀어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얇은 은태 안경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
    ​
    “스승님께선 사천왕이십니다. 이렇게 함부로 자리를 비우시면 -..”
   “아, 몰라몰라! 난 마왕님 말만 들어!”
    “하아…”
    ​
    ​
    그녀가 한숨을 쉬며 한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미아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족히 내 키만 했는데, 사납게 자란 나뭇가지가 둥그런 구슬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였다. 구슬이 검붉은색으로 웅웅거리며 울었다. 딱 봐도 불길해 보였다. 
    ​
    ​
    “언제 돌아가신다는 말인가요?”
   “으응, 사실은 오늘 만나기로 했던 녀석이 도망쳐버려서어 -.”
    “그럼 이만 돌아가시면 되겠네요.”
    “그게 또 곤란하단 말이지?”
    ​
    ​
    라니아가 나를 엄지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이 녀석이 갈 곳이 없다잖아.”
    “…?”
    ​
    ​
    미아의 얼굴에 ‘도대체 뭐가 문제지?’라는 생각이 둥둥 떠올랐다. 이내 그녀는 “아.”라며 짧게 감탄사를 흘리더니 지팡이를 들어 보였다.
    ​
    ​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죠?”
    ​
    ​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불길해 보이는 검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안드로몬 님! 후원 감사합니다!

; ㅁ;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봐주셔서 정말 행복하네요!

그래서 연참을 쪄왔습니다…!다음화 보기

***

보통 개그 세계에선 커다란 개나 사람이 달려들어 몸통 박치기를 하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게 당연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슥 입가를 닦으며 태연하게 말할 뿐이었다.

“힘이..좋네..스프에 고기를 넣어서 그런가? 하하..”

“지금 농담이 나와?!”

“혀,형 주..주그면 안돼…흐아아앙!”

어느새 다가온 노아가 소매로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네로는 내 허리춤에 매달려 눈물을 보였다. 나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냐,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니까 -..”

“이게 어떻게 별거가 아니야!”

노아가 단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 모습에 나는 움찔 몸을 떨며 말했다.

“그으…금방 괜찮아지니까. 정말 괜찮아.”

“너어…”

노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뭐지? 나 뭔가 크게 잘못한 거야?

“흐윽,흐어어엉..”

“어어? 네로 형 안 죽어. 정말 괜찮아!”

우는 아이를 둥기둥기 달래며 계단을 올라가면서 먹으려고 종이 포장지로 포장해놓은 쿠키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자, 달콤한 거라도 먹고 진정 -…”

슉,와작.

순간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손에 쥐고 있던 쿠키가 사라졌다.

“어..?”

고개를 돌리자 붉은 머리의 소녀가 와작와작 쿠키를 먹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싯서.”

“어..그거 내껀데..?”

“마니 마싯서.”

“그으..고마워?”

내 반만 한 소녀는 나에게 날아오듯 다가오더니 덥석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니…매달렸다.

“어억! 자,잠깐!”

“마싯는거 주는 사람! 쮠님!”

“뭐,뭐? 뭔 쥐?”

“내 쮠님!”

소녀가 말할 때마다 쿠키 부스러기가 머리에 떨어졌다. 나는 그녀를 떼어내고자 소녀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네로와 노아도 소녀를 떼어놓고자 했지만, 소녀가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려 도울 수 없었다.

“안 떨어지면 이따가 점심을 준비하기 힘든 -..”

스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떨어져 버렸다.

“여기 얌전히 있어. 그러면 이따가 고기 들어간 수프 또 가져다줄 테니까.”

그러자 소녀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머리 위에 뿅 하고 동물 귀가 솟아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긴 치마 아래로 붉은 꼬리가 튀어나와 바닥을 마구 쓰는 게 보였다.

‘저번에 수프를 먹을 때도 좋아하긴 했는데…오늘은 더 극적이네.’

묘한 뿌듯함에 웃음을 흘리며 감옥을 빠져나왔다.

철컹.

나는 문을 잠그며 감옥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절대 감옥 밖으로 나오지 마. 큰 소리가 나면 구석에 숨어있고, 알았지? 내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마지막에 말을 흐리며 뻗어버린 라니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천장에 떠 있던 천체를 맞고 쓰러져버렸지만, 지금쯤이면 깨어났을 터였다.

라니아에 대한 고민으로 흐린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리안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쿠키라도 더 구워주면 얌전해지려나? 아니, 그전에 덮쳐지는 게 더 빠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끼이익.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라니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돌아갔나?”

“뭐가 돌아가?”

“흐악!”

귓가에 바짝 붙어 들리는 목소리에 문을 퍽 차며 앞으로 굴렀다.

“잘도 도망갔더라?”

“그,그게…”

“흐응, 나에게서 도망쳐서 간 게 고작 여기야? 왜? 여기에 좋은 거라도 숨겨놨어?”

라니아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안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딜은 그다지 풍족하지 않아 지하 계단이 꽤 짧은 편이었다. 고개가 잘 틀면 지하 감옥이 보일 정도였다. 나는 다급하게 일어나 라니아의 몸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아까는 그렇게 무서워서 도망 다니더니,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거야?”

나는 라니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열린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지하에 있는 건 오딜님의 실험체뿐이에요. 지금 오딜님이 자리를 비운 상태라 언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서 조심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나는 최대한 그녀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있는데도?”

“쭉 여기 있으실 거예요?”

“아니.”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에 나는 그거 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오딜님이 언제 돌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오실 때까진 최대한 실험체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잖아요.”

“그렇게 조심해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실험체가 있단 말이야?”

“아뇨, 그건 아닌데…”

나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냥 평범한 실험체라도..제가 감당할 수 있는 실험체는 그다지 없어서요.”

“흐응,하긴.”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에 있는 건 어린아이들 뿐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실험체는 성인부터 어린아이까지 골고루 사용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고작해야 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내가 실험체를 막지 못한다는 말을 쉽게 믿었다.

“그런데 -..오딜 녀석 안 돌아올 거 같은데..”

“예? 어째서요?”

“같은 흑마법사라서 알 수 있거든. 보통 흑마법사가 자기 실험실에 두는 물건들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그렇다는 말은..”

“너희는 전부 여기에 방치되었다는 말이지! 하하! 얼마 있으면 노예 상인에게 다 끌려가겠네!”

그녀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는 듯 눈물까지 보이며 “꺄하하하!”하고 웃었다. 이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

“그,그럴 수가!”

축 늘어져 절망하고 있으려니, 내 앞에 그림자가 졌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들자 라니아가 내 앞에 쭈그려 앉아 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무서우면 나랑 같이 갈래? 내가 잘해줄게.”

“히익!”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면 모를까, 사천왕 중에서도 ‘미친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라니아라면 말이 달랐다. 지금이야 나에게 흥미가 있어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간 사지가 산산이 부서질 터였다.

‘그거 조립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산산이 조각난 몸을 꾸물꾸물 조립해서 멀쩡하게 ‘짠!’하고 나타나면 분명 더욱 흥미를 느끼고 그녀 전용 샌드백으로 사용할 터였다. 상상만 해도 배가 아릿했다.

“괘,괜찮습니다. 저는 오딜님의 충실한 종인지라…”

“그렇게 말하니까 더 흥미가 돋네.”

그녀의 얼굴에 새카만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덥석! 그녀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내,어디가,오딜보다,못한,걸,까나?”

“힉?!”

내가 어깨를 움츠리며 굳어있던 그때.

쿵쿵.

묵직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살았다는 듯 눈물을 폭포수가 흐르는 것처럼 줄줄 흘리며 희망차게 웃었다.

끼익.

오딜이 마법을 걸어둔 탓에 굳게 닫혀있어야 할 문이 가볍게 열렸다. 그 모습에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생각했다.

‘진짜 도망갔구나 오딜…내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여줬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남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가슴 아래를 조여주는 코르셋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귀족 영애처럼 허리를 꽉 조이는 코르셋이라기보단 허리 라인을 부각해주는 옷처럼 보였다. 내 시선이 정확히 코르셋을 향한 건 아니었다. 코르셋으로 인해 부각된 웅장한 가슴을 향해 있었다.

‘와..’

“와..”

너무 아름답고 충격적인 장면에 넋을 놓아버렸다. 뒤이어 내 시선은 그녀의 하체로 향했다. 코르셋과 이어진 바지는 그녀의 긴 다리를 더욱 길고 늘씬하게 만들었다. 연신 감탄을 토해내는 나와 달리 라니아는 귀찮은 무언가를 마주한 것처럼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억.”

라니아가 일어나면서 나를 놓아버린 탓에 난 바닥에 철퍽 쓰러졌다. 라니아는 나를 지나쳐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미아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하아…그건 제가 해야 할 말 아닌가요? 스승님.”

미아는 얼굴의 반을 가릴 정도로 커다랗고 둥근 안경을 검지 손가락 끝으로 밀어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얇은 은태 안경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스승님께선 사천왕이십니다. 이렇게 함부로 자리를 비우시면 -..”

“아, 몰라몰라! 난 마왕님 말만 들어!”

“하아…”

그녀가 한숨을 쉬며 한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미아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족히 내 키만 했는데, 사납게 자란 나뭇가지가 둥그런 구슬을 감싸 안고 있는 형태였다. 구슬이 검붉은색으로 웅웅거리며 울었다. 딱 봐도 불길해 보였다.

“언제 돌아가신다는 말인가요?”

“으응, 사실은 오늘 만나기로 했던 녀석이 도망쳐버려서어 -.”

“그럼 이만 돌아가시면 되겠네요.”

“그게 또 곤란하단 말이지?”

라니아가 나를 엄지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갈 곳이 없다잖아.”

“…?”

미아의 얼굴에 ‘도대체 뭐가 문제지?’라는 생각이 둥둥 떠올랐다. 이내 그녀는 “아.”라며 짧게 감탄사를 흘리더니 지팡이를 들어 보였다.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불길해 보이는 검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