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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마리아의 인형이 되어줘.”

판타지 세상에선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다 벌어지기 마련이다.

보통 같으면 자신의 장난감이 되라는 무례한 발언이, 내 사람이 되어달라는 감성적인 말로 변모하는 것처럼.

“괜찮겠어···? 거부감은 안 들어? 나, 일단은 마수인데···.”

소녀가 두어 번 고개를 저었다. 그녀 기준에서 보면 최대한 열정적으로 부정해 준 게 아닐까.

“으응. 전혀. 마리아는 인형들이랑 살아.”

증거랍시고 달랑 하나 남은 망치 소녀를 보란 듯이 내세우는 모습에는 웃어줘야 할지.

인형과 각각 내미는 손에 드디어 악수를 받아주었다. 인형 104개가 장렬히 전사한 자리에서.

“···죄다 부서져 버렸네.”

“금방 고칠 수 있어. 마리아 손재주 좋아.”

자연스럽게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구조를 파악해 가는 걸 보면 허세는 아닌 듯하다.

···스스로를 여전히 남자라 여기고는 있다지만, 거긴 만져도 아무것도 없단다. 슬퍼지려니까 그만둬주련?

“신기방기···.”

그래···네가 좋다면 그걸로 된 거지.

“그러고 보니 마리아. 왜 굳이 물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공격부터 한 거야? 그 고생 안 했을 수도 있었잖아.”

“여기는 잘만 개조하면 다시 달 수 있을지도···응? 그게에. 마리아는 확신을 주고 싶었어.”

“확신?”

“응. 마리아한테는 오빠의 본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확신.”

마리아가 이르길, 나는 로브로 꽁꽁 싸매고 있었기도 하고. 상당히 티 나게 주변을 경계했다고 한다.

이 역시도 시자쿠마우르 사람들의 1인칭 광신도 시점으론 눈치를 못 챘던 것.

‘또 당신들입니까···.’

“마리아가 물어봐도 더 회피하기만 할 것 같았어.”

그렇게 계속 피하고, 도망치다. 혼자만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경계심을 풀고, 단숨에 몰아쳤다고. 마리아는 설명에 사과의 말을 덧붙였다.

“···무슨. 고개도 못 들 정도로 배려를 받아버렸네. 그냥 무시해도 됐을 텐데, 왜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평범한 아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결단.

이에 마리아는 꼬옥 안겨 오며. 몹시도 당연한 걸 말하는 투로 정답을 제시했다.

“마리아, 인형 좋아해.”

간단한 이야기다. 소녀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소녀는 나약하지 않았다.

[시간은 어떤 머저리도 B까지는 끌어 올려 준다. 하지만 A가 되기 위해선 쓸모없는 부분을 도려내고, 느슨한 자신을 날카롭게 깎아내야만 한다.]

A급 모험가 소녀는, 강인했다.

* * *

마리아를 따라간다는 선택지는 필연적이었다.

내가 언젠가는 외부로 나가야 함에도, 나간 이후에도 타인과 철저히 거리를 두려 한 이유가 뭔가. 정체를 들킬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아, 마리아. 의뢰 잘 마치고 돌아왔냐?”

“들어갈게.”

하지만 A급 모험가라는 든든한 보증인이 생기면 그런 걱정은 대부분 사라진다.

당장에 상위 모험가라는 굵직한 인맥에 더불어, 차후에 이름값이 올라가면 함부로 의심하지도 않겠지.

“어 그래. 근데···옆에는 뭘 달고 온 거야?”

만에 하나 정체가 드러나도 괜찮다.

‘짜잔, 사실 마리아의 인형 쇼였습니다.’로 얼버무리면 그만이니까.

마리아가 뻔뻔한 얼굴로 팔 좀 휘적이면 알아서들 귀엽게 넘어가고 말 거다.

“새 가족.”

다른 무엇보다도. 낯선 세계에서 우려를 비집고 나를 긍정해 주는 우군을, 은인을 만난 거다.

나 하나에 매달려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봤으면서도 그녀의 호의를 몰라주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물론 사람이 아니긴 한데.

“시골 바닥 가서 허수아비라도 쌔벼 왔냐? 저런 못생긴 걸. 너도 참 너다 야.”

마리아를 신분증 삼아 당당히 도시로 입성했다. 그녀로부터 다정하게 팔짱이 껴진 채였다.

경비병은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발이라도 걸렸는지, 대뜸 자리에서 넘어졌다.

“환영해. 여기가 마리아 사는 곳.”

“와아···”

<여펨아을>

지역 이동에 따른 알림이 떠오름과 동시에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고퀄리티의 오픈 월드 게임을 본, 아니 그 이상의 전율이 있지도 않는 신경 세포를 자극했다.

화면 너머가 아닌. 눈으로, 귀로, 몸으로 실감하는 세상. VR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 경지였다.

중세풍이 섞인 특유의 건물, 꼬마들이 올라타 새들과 부대끼는 나무,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그 모든 게 다.

여기엔 한낱 코드로 구현된 결과물도, 주어진 말만 반복하는 NPC도 없었다.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수많은 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알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아예 딴판이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세월의 풍파가 느껴진달까. 몇 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것 같은 미묘한 위화감.

“마리아. 혹시 지금이 몇 년도야?”

“응? 제국력 2012년.”

게임상의 시간 배경은 제국력 1912년. 딱 100년 차이.

트레일러가 [때는 제국력 1912년] 이러고 시작해서, 이 뭔 바로 뒤로가기 누를 양판소 도입부냐며. 커뮤니티에서 각종 조림돌림을 해댄 터라 분명하게 기억한다.

이러고도 세계적으로 흥행한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설마 100년 뒤 시점에 빙의된 거였다니···’

시자쿠마우르에선 제대로 살펴보지를 않았어서 차마 몰랐다. 애초에 시골이라 딱히 바뀔 뭔가가 없기도 하고.

그야 이장이 다르긴 했지만. 게임에서 현실로 넘어오면서 생긴 차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겼었다.

‘내 100년 전짜리 지식으론 안 통하는 영역도 있겠지···.’

혼자라면 막막했을 거다.

“가자, 오빠. 마리아랑 들를 곳이 많아.”

그러나 동일한 관심사를 공유할 누군가와 함께라면. 떡밥을 물고 늘어지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게임이 아니라고 해도.

“그래. 가자.”

마리아와 가도를 거닐었다.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걷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 * *

반드시 즐거운 건 또 아니더라.

집에서 입을 옷을 뭐 그리 많이 사주는지. 단순 치장템이라 스탯도 안 오르는 걸 몇십 벌은 입느라 혼났다.

‘캐시샵 둘러볼 때는 안 이랬는데···.’

-“어머~ 머리가 금발이라 뭘 입어도 잘 어울린다~”

척 보기에도 친화력 숙련도 만렙인 사장 아주머니의 영향이 컸을 거다.

금발은 개뿔이. 이제 처맞으면서 소리까지 지르면 영락없이 내가 그 낚시성 게시글의 주인공이다. 망할.

-“이것도 어울리네요!”

어린애가 인형 옷 갈아입히는 거에 신나서 참전해서는. 자극을 받은 마리아도 더 불이 붙었다.

그 사람한테는 절대로 마리아를 맡기지 말자. 나로도 그랬는데, 마리아는 필시 욕망 해소용 옷걸이로 전락하고 말 거다.

“오늘은 여기서 모험가 등록만 하고 돌아가자.”

이런 고난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모험가 길드.

“여기. 마리아가 주는 용돈.”

[동화 10개를 습득하였습니다.]

[스킬:‘밸류 익스플로전’을 습득하였습니다.]

[밸류 익스플로전:본인 소유의 재화를 폭발시킨다. 가치가 높을수록 폭발력이 증가한다.]

“모험가 접수는 직접 해야 하니까, 그 돈으로 하면 돼.”

“응. 고마워 마리아.”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다시 만난 모험가 길드도, 원래라면 튜토리얼 과정에서 배웠어야 했을 스킬도, 게임에선 그냥 원화로 퉁쳐서 표기했던 재화도.

[새로 배운 스킬을 사용해 보세요!]

퍼엉-

그리고 그중 재화는 폭발 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리아의 얼탱이 또한 사라지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

“···마리아, 이건 그러니까.”

“그럼 못 써. 나빠.”

마리아가 평소보다 눈썹을 5도 정도 기울이며 꾸짖었다. 콩콩콩콩- 솜방망이 찜질도 당해야 했다.

빌어먹을 시스템 같으니. 튜토리얼은 끝난 걸로 취급됐는데, 그 중간 과정이 뜨니까 강제 진행을 해버리냐.

동화라서 살았다. 방금 날려 먹은 건 1,000원 남짓. 혹시라도 대금화로 이랬으면···상상도 하기 싫다.

“모험가 길드에 어서 오세요.”

“이 오빠 모험가 등록해 줘.”

“네. 동화 10개입니다.”

“이번엔 터뜨리면 안 돼.”

“방금은 정말 실수였어···.”

미심쩍어하는 마리아로부터 동화를 받아, 그대로 빠르게 접수원에게 건넸다.

남 앞에서 어린애의 돈, 그것도 고작 1,000원을 꾸는 이 상황도 돈을 소중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마리아 나름의 처벌일까.

“A급 모험가님이 보증인으로 계시니 다른 절차는 필요 없고, 여기 인적 사항만 적어주시면 등록은 끝나십니다.”

신원 확인이랍시고 면접에 심부름까지 한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새록새록 했다. 이를 싸그리 무시하고 곧장 최종 절차라니.

최고다 A급 모험가 인맥. 동화 10, 아니 20개는 오빠가 금방 벌어서 갚을게.

“아, 죄송합니다. 잘못 적었네요. 혹시 새로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여깄습니다.”

직업란에 실수로 마검사를 적었다. 이제는 마법 하나 못 쓰면서 미련하게 마검사는 무슨.

···그러고 보니 나, 직업을 뭘로 적어야 하지?

‘궁수나 마법사 계열은 절대 아니고. 나머지도 살짝씩 애매해.’

대충 검사라고 적어서 제출했다.

낫이나 검이나 베는 건 비슷하잖아? 허수아비라 써서 낼 수도 없고.

“네. 모험가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모험가 아이 님.”

“감사합니다. 혹시 바로 의뢰를···”

“지명 의뢰 외에는 게시판을 통해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아, 넵.”

멋쩍게 의뢰 게시판을 향했다.

100년 전에는 지명 의뢰 아니어도 접수원 통해서 받아볼 수 있었는데, 시대가 지났다고 물처럼 셀프인가 보다.

“마리아. 우리 둘이서 같이 할 수 있는 의뢰로 찾아보자. 구하는 등급 폭이 넓은 단체 호위 같은 거.”

“응.”

우리는 이건 어떠니, 저게 좋겠느니 하며 게시판을 뒤졌다.

“마검사, 아이···라.”

멀어져가는 접수원의 말은 듣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천 원만 버리면 미소녀가 때려줍니다. 저는 이걸 천 원의 행복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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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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