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

   EP.7

     

   – 키륵…!

     

   두개골이 깨짐과 동시에 괴물의 단말마가 흘러나왔다.

   놈이 짧게 몸을 떨더니 뻥 뚫린 허공을 바라보며 서서히 옆으로 쓰러진다.

     

   쿵!

     

   육중한 해골이 쓰러진 것을 지켜본 세 사람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혹시나 저 괴물이 다시 일어나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감.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새로운 알림창이었다.

     

   띠링!

     

   [누군가가 튜토리얼 더미를 쓰러뜨렸습니다.]

     

   우리가 이 위기를 벗어났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장치.

     

   스스슷.

     

   쓰러진 괴물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리는 사막의 모래알 같이 흩날리는 괴물의 신형.

     

   그것과 동시에 문 너머 어둠 속을 질주하던 수많은 그림자가 사라졌고 괴물들이 사라짐에 따라 자연스레 건물을 울리던 소음도 거짓말처럼 소멸했다.

     

   사방이 고요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적막 속에서도 시스템은 여전히 요란한 알림을 띄우고 있었다.

     

   띠링!

     

   [조건을 완수함에 따라 튜토리얼#1이 조기 종료됩니다.]

   [축하합니다! 살아남으셨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에게 축하를 받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감정이 북받치기는 했지만, 그 감정이 기쁨은 아니었던 듯싶다.

     

   [남은 생존자 : 30/401]

     

   생존율 10% 미만.

     

   갑작스럽게 난이도가 상승하며 괴물들이 진화했을 때, 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판단됐다.

   하지만 우리가 사망자들을 애도하든 말든 시스템은 시끄러운 알림을 주기적으로 띄울 뿐이었다.

     

   [튜토리얼#1 클리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 1,000 코인을 획득합니다. ]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가 당신이 보여 준 활약에 크게 만족합니다.]

   [ 1,000 코인을 후원 받았습니다. ]

     

   상태창의 끝자락에 적혀 있던 코인란에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튜토리얼#1 업적을 정산합니다.]

     

   [튜토리얼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를 획득합니다.]

   [튜토리얼에서 ‘가장 강한 자’를 획득합니다.]

   [튜토리얼에서 ‘최초로 각성한 자’를 획득합니다.]

     

   [ 2,000 코인을 추가 획득합니다. ]

     

   그렇게 얻게 된 누적 코인은 총 4,000 코인.

   1,000 코인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힘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꽤 많은 양인 듯싶었다.

     

   하지만 코인은 뒷전이었고 알림들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코 마지막에 떠오른 한 문장이었다.

     

   [업적 정산 결과. 당신은 현 좌표의 랭킹 ‘1’위 입니다.]

   [보상으로 능력치 ‘마력 Lv.1’을 획득합니다.]

     

   ‘마…력?’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만화, 혹은 게임에서 주로 표현되는 이능력을 사용하는 힘.

     

   나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며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인지 느껴보려 애썼다.

   특별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 상황.

   하지만 더 알아보기에는 현재 나의 상황이 그 이상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공간 좌표, (■■■,■■■)에 도우미를 파견합니다.]

     

   익숙한 노이즈가 귓가를 울렸다.

   그리고 곧이어 스피커를 통해 듣고 싶지 않았던 그놈의 목소리가 또다시 흘러나왔다.

     

   – 아아, 하나둘, 마이크 테스트 하나둘!

     

   처음 등장했던 것과는 달리 능숙하게 음향기기를 사용하는 토끼.

   놈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격양되어 있었다.

     

   – 대박이에요. 초대박! 저는 진짜 여기에서 다 죽을 줄 알았는데 이런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오다니!

     

   토끼는 잔뜩 흥분한 채, 목소리를 듣고 있을 성좌들에게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도전자들은 너무 빈약했다는 둥, 적당히 코인 후원만 먹고 빠지려고 했다는 둥…

     

   그래도 재밌는 장면이 나왔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을 하며 토끼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토끼. 한껏 아양을 떠는 놈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소름이 끼쳐 온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나에게 1,000 코인을 개인적으로 후원한 성좌.

     

   – 아무튼, 이번 튜토리얼을 아주 흥미롭게 이끌어 준 플레이어에게도 박수를 보내줍시다! 짝짝!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이제 그만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라 말합니다.]

     

   – 에이, 알겠어요.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하겠…… 음 뭔가 이상한데?

     

   성좌라 불리는 자들의 재촉에 토끼가 잠시 뺀질거렸지만 이내 멈칫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다.

     

   – 아맞다? 저희 임무가 바뀌었었죠? 어쩐지 시간이 좀 빠르더라.

     

   놈의 말에 나는 우리가 클리어한 임무를 떠올렸다.

   원래는 24시간을 버텨야 하는 임무에서 1시간으로 내용이 변경된 임무.

     

   – 아, 원래 이런 특혜는 안 주는데 여러분들이 잘했으니 한 번만 봐드리는 거예요.

     

   토끼가 한껏 생색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잠시 후,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들리며 우리의 눈앞에 새로운 임무가 떠올랐다.

     

   띠링!

     

   +

   『튜토리얼 #2-0 (준비)』

     

   주제 : 휴식

   난이도 : 없음

   임무 : 이 건물의 위협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다음 임무를 위해 남은 시간을 알뜰히 준비하십시오.

   보상 : 없음

   실패 페널티 : 없음

   +

     

   [남은 시간 11:49:20]

     

   새로운 타이머가 나타났다.

   숫자를 보니 원래 우리에게 주어졌던 임무의 남은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돌린 것 같았다.

     

   – 캬아! 이런 도우미가 또 없다 그죠? 바쁜 와중에 이렇게 여유까지 챙겨 주다니! 남은 시간을 꽤 많이 드렸으니 잘 준비해서 다음 시나리오도 재밌는 모습 많이 보여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치직.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사라진 토끼.

   스피커가 잠잠해지자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짧게 주어진 틈을 누리기로 했다.

     

   과도했던 긴장이 풀리는 지금.

   이 지옥이 시작되고 12시간 10분이 더 지난 후였다.

     

   ***

     

   “으윽… 아파요!”

     

   우리는 탕비실에서 작은 의료함을 발견해 자잘하게 일어난 상처들을 꼼꼼히 소독했다.

     

   “따가워도 참아요. 지금 소독 안 하면 염증 생길 수도 있으니까.”

     

   괴물을 잡겠다고 검을 너무 과격하게 휘둘렀던 모양이다.

   나의 손바닥은 꽤 깊은 찰과상이 일어나 피부가 상당히 찢어진 상태였고 그런 내 손에 붕대를 감는 서세영도 상처가 보기 흉했던지 살짝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혼자 할 수 있다니까…”

   “붕대로 본인 손을 혼자 어떻게 감아요. 이게 훨씬 빠르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요.”

     

   나는 내 손을 치료하는 서세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썩 친하지도 않고 지난 1년간 그저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이.

   그 긴 시간을 완전한 남으로 살다가 이렇게나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색한 기분을 누르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뭐가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서세영.

   나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녀의 눈을 슬쩍 피하며 옆에서 조금 결(?)이 다른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박조철과 남궁천호를 바라봤다.

     

   “아악! 잠깐, 잠까아안!!!”

   “쓰읍! 가만히 있어 보라니까요!”

     

   서세영이 나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의미였지만 조금 다른 느낌.

     

   드드득!

     

   “끄어어어어!”

     

   남궁천호가 박조철의 빠진 팔을 돌리며 어찌저찌 끼워 맞추고 있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조금 기괴했다.

     

   하지만 웃긴 건 남궁천호의 처치법이 나름 효과가 있었다는 것. 박조철이 맞춰진 팔을 슬쩍슬쩍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궁천호의 얼굴이 한껏 밝아진다.

     

   “허억… 허억… 감, 감사합니다. 이런 건 어디에서 배우신 거예요?”

     

   눈물을 찔끔 흘리던 박조철이 그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본인의 입으로 들었던 남궁천호의 직업은 게임개발자.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그가 어떻게 저런 기술을 가졌는지 궁금할 법도 했다.

     

   “아? 빠진 팔 맞추는 거요?”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유튜브에서 봤어요. 저도 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거꾸로 들어가는 줄 알고 식겁했네 하핫.”

   “이런 씹.”

     

   안 듣는 게 나을 뻔했을 대답이었다.

     

   졸지에 인체 실험 대상이 된 박조철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화를 낸다는 건 너무나도 몰상식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박조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괴물 사냥을 성공한데에는 남궁천호의 역할이 아주 컸으니 오히려 감사를 해야 할 판.

     

   ‘그 정신없는 틈에 포션을 먹일 생각을 했다니…’

     

   저만치 굴러다니는 속이 빈 작은 유리병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튜토리얼#1 상점에 있던 소형 체력 포션.

   내가 괴물 대가리를 내려치는 동안 남궁천호는 곧장 자신의 100코인을 사용해 박조철에게 포션을 사 먹였다.

     

   ‘저 사람 보기보다 판단력이 좋아.’

     

   그때 박조철이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괴물을 붙잡을 힘이 부족해 놈을 놓치고 목숨이 위태로워지지 않았을까.

     

   ‘포션이라…’

     

   나는 상점에 판매 중인 판타지스러운 물약을 떠올리며 나의 상처를 바라봤다.

   박조철이 저렇게 회복된 것을 보면 포션의 효과가 확실하긴 할 것 같았다. 지금 손에 느껴지는 이 정도의 쓰라림은 금방 사라지겠지.

     

   하지만 나는 이내 고민을 접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토끼의 말에 따르자면 지금은 시스템이 허락한 확실한 휴식 시간. 여유가 확보된 상황에서 굳이 코인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처음 코인을 얻었을 때 포션을 구매해 튜토리얼#2 상점의 아이템 박스를 못 샀어봐라.

   아마 그랬다면 지금 이 시간쯤, 서세영과 함께 의자를 집어 들고 괴물의 대가리에 체어샷을 날리며 포션을 빨고 있지 않았을까.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

     

   나는 손에 붕대가 깔끔하게 감긴 것을 보고는 서세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은 과거.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였고 곧 있을 미래는 10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이후에 있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세 사람을 불렀다.

     

   치직.

     

   “……!”

     

   하지만 그때, 다시 한 번 천장에서 방송 시작을 알리는 노이즈가 들려왔다.

   허나 이번에는 토끼의 불쾌한 음성이 아니었다,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 사람의 성대에서 만들어졌을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 훅. 훅. 지금 방송되고 있는 건가? 음, 온에어… 맞겠지 뭐.

     

   음향장비를 통해 계속 토끼의 이질적인 소리를 듣다가 사람의 음성을 들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흠흠!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한가민이라고 합니다. 다들 무사하신가요?

     

   다소 어색하지만 얇고 날카로운 목소리.

   자신을 한가민이라 소개한 여성은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겠다고 운을 띄우고는 곧장 말을 덧붙였다.

     

   –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화면을 보고 계신다면 현재 생존자의 수를 다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생존자 30명]

     

   분명 12시간이 남았을 때는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었지만 우리가 괴물을 사냥하는 단 10분 사이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 이미 파악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난이도가 올라간 10분 사이에 상당한 인원이 줄어들었어요.

     

   또박또박한 발음이 두드러지는 여자는 짧은 설명 사이에 죽음이라는 표현을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움직인다.

   말 한마디로 용기가 샘솟을 수도 있고 단어 하나의 남용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박살 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흩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저희 모입시다. 도움이 될 정보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힘이 있다면 도움을 주세요. 나중에 따로 움직이셔도 좋습니다. 지금은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한가민이라는 여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저 말로 인해 로비로 내려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충분히 일리가 있었고 나 또한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었으니까.

     

   – 저는 지금 이 방송이 끝나는 즉시, 내려갈 예정이에요. 그럼 생존자 여러분… 1층에서 뵙겠습니다.

     

   뚝.

     

   그렇게 짧았던 방송은 끝이 났다.

     

   “저희도 로비로 이동하나요?”

     

   서세영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말은 그럴싸했지만 내심 불안감은 남아 있는 상황.

     

   30명이라는 인원이 문제없이 통제된다면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런 경우 오히려 믿을 수 있는 4인으로 이동하는 게 훨씬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우선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나리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저희만 동떨어져 있는 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

   1층에 모인 사람들 중,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철컥.

     

   나는 조심스레 나의 검을 집어 들었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 법.

     

   상대가 누구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든 만만하게 보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음화 보기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