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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7 – 괴력과 병약 사이>

     

    한손으로는 집사를, 반대손으로는 메이드를.

    셋이 나란히 손을 잡고 있으니 사방에서 흐뭇한 시선이 이어진다.

    작은 키 때문인지 꼭 젊은 부부와 함께 다니는 애처럼 보이나보다.

     

    “한창 좋을 때구만.”

    “신혼여행으로 신정산인가. 실력에 자신이 있나?”

    “집사에 메이드라. 어디 귀족가에 고용된 전직 모험가 부부인가보군.”

     

    들려오는 소리들이 퍽 흥미롭다.

     

    “두분은 어때요?”

    “리프양처럼 아름다운 메이드와 부부로 보인다니,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영광입니다.”

     

    말할 때마다 감정이 실려서 그런지 맞잡은 손에 꾹꾹 힘이 실려 온다.

    좋은 건 알겠지만 손이 아프니까 두 분 다 참아줬으면 좋겠다.

     

    “대기줄이 길군요. 기다리시겠습니까?”

    “일주일만 놀고 오십시오. 자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우리 메이드는 사람 미안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시험 치러 온 험악한 남정네들 사이에 메이드만 일주일을 방치하고 놀러가라니.

    너무 쓰레기처럼 보이잖아.

     

    “테이블을 하나 마련해주세요.”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금화 1매를 걸고 대기표 내기를 할 거예요.”

     

    다 이기면 공짜로 일주일을 아끼는 거잖아.

    나 좀 천재인 듯?

     

    “…내기의 주제는 뭘로 하실 겁니까?”

    “팔씨름이요.”

     

    식사시간에는 물컵이랑 수저도 제대로 못 드는 병약미소녀지만, 그래도 그건 열심히 훈련을 해서 지친 뒤의 얘기가 아니던가.

    마차에서 이틀을 보내고 몸도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지금이라면 팔씨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겉보기엔 여리여리한 병약미소녀.

    그 안에는 엄청난 초기투자 근력 능력치.

    겉만 보고 덤벼들면 큰 코 다친다.

     

    “부서지지 않게 주의해주십시오. 호객 이벤트 대신 빌린 테이블인지라 부서지면 변상해야 합니다.”

    “네에~.”

     

    가게매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집사의 이야기를 들은 여관 측에서 팔씨름이벤트 홍보까지 대신해주기로 약속하였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부유한 모험자 아가씨를 팔씨름으로 이기면 금화 1매를 가질 수 있다! 참가비는 아가씨의 순번보다 빠른 여관 대기표!”

     

    여관 호객꾼의 외침에 대기줄을 섰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어이, 형씨. 그거 진짜요?”

    “저길 봐. 완전 조그맣잖아.”

    “나부터! 나부터 할래!”

    “비켜, 인마. 내가 먼저 왔어.”

     

    홍보 효과는 확실했다.

    지끈.

    가벼운 두통과 함께 익숙한 창이 떠오른다.

     

    <팔씨름 돌발이벤트>

    금화 1매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한 푼도 지불할 마음이 없습니다.

    한 번도 지지 않으면 금화는 주지 않아도 되니까요.

    티켓시험에 비하면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

    그렇죠?

     

    플레이어의 주체적인 행동으로 등장하는 이벤트.

    이벤트 클리어에 따르는 소정의 보상을 생각하면 이벤트는 많이 등장하면 많이 등장할수록 좋다.

     

    ‘이런 이벤트에서 이기면 평판이 생기지.’

     

    평판. 명성. 혹은 칭호.

    이런 것들은 모으면 무조건 이득이다.

    보유효과로 능력치 점수를 최소 1점씩 올려주는데, 이 점수가 쌓이면 능력치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아무래도 상태창이 없으니 정확한 수치를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고인물의 감으로 기댓값이 어느 정도이고 실제로 얼마나 오르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괴력의 소녀, 보유효과 근력 2점 증가. 뭐 그 정도겠지.’

     

    영광의 첫 상대가 된 청년이 아자, 하고 팔까지 들며 기뻐하고 있다.

    주변에서 퍼져나가는 탄식만 들어도 벌써 청년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준비…… 3, 2, 1. 시작.”

     

    집사가 양 주먹을 감싼 손을 들어올리기 무섭게 청년이 잔뜩 힘을 주며 팔을 당겼다.

     

    “끄으으으읏!”

    “하하하, 뭐하는 거야? 저 녀석.”

    “미소녀의 손이라고 너무 오래 붙잡지 말라고.”

    “집사 표정을 보라고. 그러다 한 대 맞겠어.”

    “저 녀석, 아동성애자 아니야?”

     

    얼굴까지 벌겋게 변한 청년과 달리, 내 쪽은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는다.

    훈련장 칭호작까지 끝낸 몸인데 당연히 이 정도 흔해빠진 모험가한테 질 리가 없지.

     

    능력치 상승의 매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1부터 9까지는 1점 당 1 상승.

    11부터 19까지는 2점 당 1 상승.

    21부터 29까지는 3점 당 1 상승.

    이런 식으로 91부터 99까지는 10점 당 1 상승.

    10, 20, 30 같은 십의자리 능력치는 해당 숫자만큼의 점수를 모아야 1 상승.

     

    시작 시점에서 이미 근력 20을 턱걸이로 찍어놓은 몸에 칭호작까지 했으니, 고인물식 어림짐작 계산에 따르면 현재 내 추정근력은 29.

    근력 29를 점수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75점 이상.

    근력 20(47점)이었던 몸이 27점 이상을 올려 능력치 29에 주차를 마쳤다.

     

    검술연습 천 번, 근력+1점.

    궁술연습 천 번, 근력+1점.

    권술연습 천 번, 근력+1점.

     

    일만 번에서 또 각각 +1점.

    십만 번에서 또 다시 각각 +1점.

    백만 번에서 또 다시 각각 +1점.

     

    연습 횟수는 베기 한 번, 휘두르기 한 번, 활 쏘기 한 번 같은 동작횟수 단위로 카운트 된다.

    하루 한 가지 동작으로 1만 번씩, 각 무술마다 세 가지 동작씩은 소화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이미 9만 번이 되고, 심화동작으로 넘어가면 일일 훈련 10만 번은 가볍게 찍는다.

     

    30일간 꾸준히 연습을 했으니 현재 총 횟수는 삼백만 회.

    3점을 4번 얻어서 12점이다.

    여기서 검술 궁술 권술을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무술연습횟수를 카운트하는 무술연습 점수까지 감안하면 추가로 3점.

    ‘연습용 허수아비 파괴’,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활을 쥐는’, ‘샌드백을 터뜨린’ 등을 달성해서 얻은 자잘한 점수가 12점.

    그렇게 모은 칭호로 오르는 합계 근력점수가 27점 되시겠다.

    그걸 햇병아리 청년이 감당하라고?

    어림도 없지.

     

    꽈당탕!

     

    “아가씨의 승리!”

    “으악!”

    “아, 저런 병신.”

    “얼마나 근력훈련을 안했으면.”

    “아니, 니들이 해보고 말하던가! 여자애의 팔힘이 아니야!”

    “우우우~”

    “나가 죽어!”

     

    빗발치는 야유에 청년이 얼굴을 붉히며 사라진다.

    청년이 건 대기 자리를 본 직원이 말한다.

     

    “925번!”

     

    진짜 여관 대기줄에 925번이 말이 되냐고.

    평범하게 장기투숙객을 받는 여관이면 일주일은 무슨 한 달도 걸렸겠다.

    이것도 다 상급시험관에게 시험을 듣고 여관을 나가는 사람이 있는 덕분에 회전율이 올라서 줄고 줄은 시간이 일주일이다.

    애초에 시험관이 아니었으면 이런 줄이 모이지도 않았겠지만.

    여관주인 입장에서는 반짝 특수라는 거지.

     

    “다음 참가자는 925번보다 앞 순번으로만 받겠습니다! 자, 그쪽의 머리 큰 형씨. 920번이요? 그걸 누구 코에 붙여! 자, 그쪽의 대머리형씨! 850번이요? 얼른 나오세요!”

     

    두 번째 도전자는 머리가 맨들맨들한 대머리.

    대머리의 등장에는 조금 긴장했다.

     

    ‘대머리들은 위험해. 수련을 엄청 열심히 해서 머리가 벗겨졌을지도 몰라.’

     

    설렁설렁 한 가지 무술로 하루 3만 동작씩 수련해도 10년만 지나면 1억 950만 번.

    일만, 십만, 백만, 천만, 억 단위로 무려 다섯 번의 점수상승이 따른다.

    게다가 검술이든 권술이든 궁술이든 무술연습량은 덩달아 계산이 되니 다섯 번의 점수가 추가로 오른다.

    사이사이 부가적인 점수습득을 추가하면 아무리 못해도 20점은 더 오를 터.

     

    ‘도합 30점. 타고난 근력이 10인 일반인 평균만 되어도 근력 능력치 19는 찍을 수 있겠지.’

     

    만일 수련기간이 더 길고, 단련한 무술이 하나가 아니며, 타고난 용력이 조금만 더 크다면.

    29의 근력 능력치를 따라잡을 막상막하의 실력자가 출현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꽈당탕!

     

    “아가씨의 승리!”

     

    뭐, 이 대머리는 그냥 선천적 탈모가 빨리 진행된 대머리였던 모양이지만.

    그런 느낌으로 파죽지세의 9연승을 거두며 순번도 97번까지 앞당기자 슬슬 대기줄을 선 사람들도 내 힘이 보통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저 가녀린 몸의 어디서 저런 근력이 나오는 거지?”

    “소문으로만 듣던 마나연공법을 익혔나?”

    “부잣집 아가씨처럼 보이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쳇, 또 부자들의 유희에 놀아났구만.”

    “아무리 그래도 이쯤 되면 지칠 법도 하지 않나?”

     

    140도 안 되는 작은 키로 장정들의 힘줄이 선 팔뚝을 휙휙 넘기는 괴력미소녀가 있다?

    상상도 못한 이벤트에 신이 나서 달려온 사람들이 사설내기까지 벌이면서 여관주인의 입만 헤벌레 벌어져 다물어질 줄을 모른다.

    여관 측에서 돈 떼이지 말라고 돈을 맡아주는 대가로 10%씩 수수료를 떼고 있거든.

     

    “주인아저씨.”

    “하하, 우리 복덩어리양. 물이라도 한 바구니 드릴까? 아니다. 내 통 크게 점심도 쏜다!”

    “됐고, 5 대 5로 나눠요.”

    “응? 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수수료 떼는 거 다 봤거든요?”

     

    눈을 가늘게 뜨고 힘주어 말하니 주인아저씨가 분해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3 대 7.”

    “반띵 안하면 영주한테 신고할 거예요. 가녀린 소녀를 사설내기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고.”

     

    너 같은 괴력소녀의 어디가 가녀리냐고 할 말이 많아 보이던 주인아저씨가 흠칫 놀랐다.

    어느새 뒤에 선 조나가 대놓고 살벌한 눈매를 치뜨며 말은 신중히 가려서 하라고 여관주인에게 압박을 넣고 있었다.

     

    ‘나보다 능력치가 훨씬 더 높은 집사가 어디 보통 집사겠냐고.’

     

    이미 먹은 음식은 수집도 안 되어서 반찬투정 한 번 해봤다가 힘에 밀려서 포기하고 그냥 먹은 적도 있다.

    요리수집도 안 되는 시금치구이와 오이볶음을 열 번이나 먹어야 했던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

     

    “드리겠습니다…….”

    “히히. 용돈을 벌었네요.”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아가씨. 힘을 많이 쓰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쉬시지요.”

    “으음…… 결국 외박인가?”

     

    쳇, 아쉽네.

    어떻게든 오늘 중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래도 한 번 지치면 병약미소녀(탈진)가 되어버리는 오크노디의 몸으로 너무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훈련장과 달리 이곳은 거리.

    약한 모습을 함부로 노출해도 좋을 정도로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아가씨처럼 병약하신 분은 쉴 때 충분히 휴식을 취해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기줄을 선 사람들이 이게 뭔 미친 소리냐며 황당해하였다.

     

    “저런 괴력의 어디가 병약하다는 거야?”

    “완전 괴물아가씨잖아.”

     

    투덜거리던 두 모험가 옆의 나무등치에 푹 하고 무언가가 박혔다.

     

    “죄송합니다. 메이드 일에 익숙지 않은 몸이라 그만 실수로 호신용 단검을 던졌군요.”

     

    모험가들이 덜덜 떨며 침을 꿀꺽 삼킨다.

    단검을 주우러 간 리프가 모험가들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한 쪽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다른 한 쪽은 기겁하며 달아났다.

     

    “리프 씨. 방금 뭐라고 했어요?”

    “집사님은 저보다 열배 더 강하다고 했습니다.”

    “우와.”

     

    리프의 열 배가 조나.

    조나의 십분의 일이 리프인가.

     

    “리프 씨도 그렇게 엄청 센 건 아니었구나.”

    “…….”

    “가끔 운동 가르쳐드릴까요?”

     

    밤에 먹은 사탕은 유독 맛이 독했다.

    다음날, 배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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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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