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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반 배정 평가.

       

         메르헨 아카데미에는 A 클래스, B 클래스, C 클래스, D 클래스가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A 클래스에 속하게 되고, 열등생들은 D 클래스에 속하게 된다.

       

         마력량 측정 결과와 반 배정 평가 결과로 학생들은 어느 클래스에 속하게 될지 결정된다. 특히 비중이 큰 건 단연 반 배정 평가.

       

         한 학기 동안 속하게 될 클래스가 결정되는 시험인 만큼 반 배정 평가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일단 나는 클래스고 자시고 마족을 쓰러뜨리는 게 최우선 사항이지만.

       

       

         현재 델핀 숲엔 마법학부 1학년생 전원이 들어와 있다.

        

         그 말은 즉, 얼마 못 가 다른 학생들을 만날 위험이 높고.

        

         즉각적으로 전투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교수가 언급한 ‘서바이벌’이란 단어가 가져다준 파급효과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주치면 싸워야 하는 줄 안다.

        

        

       퍼엉!!

        

       화르르르륵!!

        

       콰아아아아!!

        

        

         사방에서 마법으로 치고 박는 소리가 들린다. 배틀 로얄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좀 현명한 녀석들은 팀을 짜려고 한다. 그러면 수적 우위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이 시험의 목적인 마나 알갱이를 찾는 일도 더욱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력량 E급인 나와 팀이 되어 줄 자비로운 녀석이 있을 리 없었다. 이용이라도 당하면 다행인 수준이다.

        

         아, 그나마 내가 강하다고 착각 중인 카야한테는 기댈 수 있으려나?

        

         ···아니다. 변수가 너무 많다. 카야가 반드시 날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고, 내 밑천이 드러날 위험도 크고, 오히려 내가 위험 요소라며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내 선택지는 하나다.

        

        

         ‘···여기다.’

        

        

         숨는 것뿐.

        

         여기, 나뭇잎이 우거진 나무. 숨기 딱 좋아 보인다. 어제 미리 봐두었던 곳이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마법 주머니]

       : 마법의 힘으로 많은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주머니. 휴대성이 좋다.

       

       등급 : 6티어

       

       

         등급 6티어. 아이템의 희귀성을 따지는 단위인 티어는 숫자가 낮을 수록 희귀하다는 의미다.

        

         마법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나무 쪽에 물을 뿌렸다. 거기다 [얼음 생성] 스킬을 써서 조잡한 얼음 계단을 만들었다.

        

         나는 [원소 시너지]가 다른 능력치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원소 시너지]가 높을수록 내 원소 마법이 다른 원소와 겹쳤을 때 나타나는 효과가 더욱 커지게 된다.

        

         덕분에 평범하게 [얼음 생성] 스킬을 썼을 때보다 더 큰 얼음덩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얼음 계단을 밟으면서 겨우겨우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안락하네.’

       

       

         나뭇잎 무리 속, 굵직한 나뭇가지 위에 앉아 나무에 등을 기대고서.

       

         빙결 해제로 얼음 계단을 없앴다.

        

        

         “…….”

        

        

         이것이 최약체인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존버’였다.

        

         이러고 무능하게 가만히 있다가, 다른 학생들이 마나 알갱이를 전부 쓸어 가면 어쩔 것이냐?

        

         괜찮다. 이 반 배정 평가에는 맹점이 하나 있다.

        

        

         ‘마나 알갱이는 발광체. 어두워지면 맨눈으로 구분하는 게 수월해져.’

        

        

         마나 감지력이 낮은 나로선 오히려 나중에 마나 알갱이를 찾아다니는 편이 이득인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자세를 유지한 채 청각에 집중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이 있는지 없는지.

        

       

         ···20분 뒤,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나무 주변, 눈에 안 띄는 곳에 손잡이를 붙여 얼린 새총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새총]

       : 나무와 통고무줄로 만든 평범한 새총. 내구도가 약하다.

       

       등급 : 9티어

       

       

         새총은 통고무줄에 돌멩이를 끼고, 고무줄을 쭉 잡아당긴 채로 얼려서 고정시킨 상태였다.

       

         설치해둔 새총은 총 10개. 각 위치는 전부 외워두었다.

        

        

         ‘빙결 해제.’

        

        

         새총 고무줄을 고정시켜놨던 얼음을 풀었다.

        

         얼음은 푸른빛의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새총은 돌멩이를 발사했다.

        

       

       휘익.

       

       

        

         새총이 날린 돌멩이가 공기를 가로지르고, 풀숲을 헤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여학생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돌멩이가 풀숲을 헤치고 떨어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맞서려는 걸 보니 실력에 자신 있는 모양이었다.

        

         남은 새총은 이제 9개.

        

        

         ‘버티자···.’

        

        

         긴장감 때문에 지루하진 않았다.

        

         제발 제시간까지 버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학생들이 시전하던 마법 소리는 어느새 사그라졌고.

        

         숲엔 고요가 찾아들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30분.

        

         나는 나무 위에 숨은 채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다.

        

        

         ‘이제 슬슬 내려갈까.’

        

        

         다행히 존버 전략은 성공했다.

        

         새총은 10개 모두 다 썼다. 모두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마법 주머니에서 남은 물병을 꺼내 물을 뿌린 뒤, [얼음 생성] 스킬을 써서 계단식으로 얼음을 만들어냈다. 역시나 컨트롤이 어려워서 주먹구구식 계단이 만들어졌다.

        

         조심스럽게 나무에서 내려가 얼음 계단에 착지한 후, 아래로 내려갔다.

        

        

         “오메.”

        

        

         오랜만에 지면을 밟는 듯한 기분이었다. 4시간 정도 나무에 앉아 있기만 했던 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제 체력 단련실에서 얻은 근육통은 덤이다.

        

         나는 다리를 주무른 뒤, 마법을 해제해 얼음 계단을 없앴다.

        

         이제 움직여야 한다.

        

        

         ‘걔네 어디 있냐?’

        

        

         나는 이안과 루체가 어디서 마족이랑 싸우게 되는지 모른다.

        

         게임에서는, 반 배정 평가에서 잘 살아남으면 갑자기 스토리 컷신이 나온다. 이안과 루체가 만나는 장면이다. 그렇게 자동으로 장소가 바뀌는 것이다.

       

         이제부터 그 장소를 찾아봐야 했다.

        

         슬슬 결계 너머 하늘이 어두워져 간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겸사겸사 마나 알갱이도 좀 찾고.’

        

        

         이번 반 배정 평가를 위해 전 재산을 털었다. 여기서 겔을 제대로 못 벌면 굶거나 은행에서 대출 받아 채무자 신세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마나 알갱이를 찾는 일도 중요했다.

        

        

         ‘···망했는데?’

        

        

         하, 망할. 마나 알갱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털어간 것이다.

        

         어두워지면 그나마 남아 있을 마나 알갱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이 처참히 박살 났다.

        

         간과했다. 여기는 명문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들의 마나 감지력이 뛰어난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제발, 나도 마나 알갱이 좀···.’

        

        

         그렇게 마나 알갱이를 샅샅이 찾아다니던 와중이었다.

        

         마나 알갱이에 집중하던 탓에, 내게로 다가오던 작은 발자국 소리를 차마 인지하지 못했다.

        

        

         “어?”

        

        

         내 앞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나 알갱이를 찾아 다니느라 상체를 숙이고 있던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식은땀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쩌지, 어쩌지···?’

        

        

         생각해보자.

        

         아직 내겐 마도구가 남아 있다. 이걸 이용해서 싸운다면 어느 정도의 레벨 차이는 극복이 가능하다.

        

         그래, 지금 앞에 있는 녀석 레벨이 한··· 3, 40대 정도라면 비벼볼 만 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을 눈에 담았다.

        

        

       [ 카야 아스트레앙 ]

        

       Lv : 90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얼음

       위험도 : X

       

        

         “…….”

         “…….”

        

        

         뭐라고 해야 할까.

        

         음.

        

         카야구나.

        

        

         “아, 아, 안녕하십니까···?”

         “…….”

        

        

         몸과 목소리 둘 다 떨고 있는 카야. 무척 겁먹은 듯 보였다.

        

         그녀는 신입생 차석. 내가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려도 그녀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나를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힘을 숨기고 있는 강자’ 쯤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차분히, 차분히 생각하고 행동하자. 그 인식을 이용하면 여기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켜.”

       

        

         나는 연기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본색을 드러내듯 눈을 가늘게 뜨고, 분위기 있는 냉소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조금도 떨리지 않는 척이었다.

        

        

         “아···! 네, 넷···!”

        

        

         덜덜 떨면서 길을 비키는 카야.

        

         그래, 이러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도감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일이 틀어지지 않아서 다행···.

        

        

         “아, 아이작 님···!”

        

        

         갑자기 카야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이작 ‘님’은 뭐야?’

       

       

         이런 부담스러운 경칭을 써줄 줄은 몰랐지만, 카야니까 그러려니 했다.

        

         다시 재빠르게 표정 굳히기.

        

         나는 걸음을 멈추고 냉철한 표정으로 카야 쪽을 돌아보았다.

        

        

         “그, 그래도 이건 시험 같은 거니까···, 저희 한번 싸, 싸워보는 게 어떻습니까···?”

         “…….”

        

        

         ···아니요.

        

        

         “물론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아이작 님한테 저 같은 건 땅 밑의 개미 만큼이나 우습겠지만···. 그래도 한번 당신께 부딪쳐보고 싶습니다!”

        

        

         아니, 그러지 마. 결연한 표정 풀어.

        

        

         “한 수 부탁드립니다, 아이작 님···!”

        

        

         아냐, 마법진 전개하지 마. 그거 지금 전개하는 거 아니야. 어서 치워.

        

         ···제발요.

        

        

         ‘앞으로 20분 뒤에 마족이 나오는데···.’

        

        

         어느덧 시험용 시계는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빨리 마족이 나타날 장소를 찾아내야 했다.

        

         그런데 지금, 허공에 전개된 카야의 연녹색 법진이 느리게 회전하며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나라는 거대한 존재와 싸워 보고 싶어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차석의 모습.

        

        

         “…….”

        

        

         나 약하다고. 나 마력량 E급이라고, 최하위! 마법학부 최약체라고···!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넌 못 이긴다고···!

        

         일단 진정해라. 진정하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뭐라 말해야 저 녀석이 마법진을 거둬줄까?

       

         그냥 내가 마족 담당일진이라고 솔직하게 밝힐, 은 안 되겠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차후 얼마나 머리 아픈 흐름이 될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

        

         ···하나 떠올랐다.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지껄여 보자.

        

        

         “후우.”

         “……?”

        

        

         일단 한숨으로 시작.

       

         아무리 봐도 저 마법진은 위험해 보이지만, 최대한 가소로워 보인다는 표정을 짓고 카야를 쳐다보았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카야.

        

         이렇게 된 이상 모 아니면 도다.

        

         나는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듯이, 카야가 허공에 전개한 연녹빛 마법진을 훑어보았다.

        

        

         “고작 그따위 마법으로?”

         “……!!”

        

        

         두 눈이 휘둥그레진 카야. 방금 내가 한 말은 그녀의 마음에 스크래치 좀 입혔을 거다.

        

        

         “고작 그따위···?”

         “지금은 시간 낭비밖에 안 돼.”

        

        

         나는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진다.

        

         살려주세요···.

        

       

         “당신이 굉장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당신이 한 말은 제가 피땀 흘리며 노력해온 시간들을 무시하는···.”

         “‘지금은’ 말이지.”

         “네?”

       

       

         우디르급 태세 전환을 취했다.

        

         살기가 사그라진 게 느껴졌다. 아마도 카야는 내 의중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듯했다.

        

        

         “‘실피아’랑 친하지?”

       

       

         화록청의 요정, 실피아. 식물 마법을 사용하는 요정의 이름이다.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너한테서 [위그드라실]의 기운이 느껴지니까.”

         “……!!”

        

        

         일부러 안 보고 있었는데도 카야가 엄청 놀란 게 느껴졌다.

        

         [위그드라실]의 기운? 뭐야 그거. 그냥 씨부려본 거다. 마나 알갱이도 못 찾고 있는데 그런 걸 어떻게 느껴.

        

         아무튼, 카야는 화록청의 요정 실피아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건 아무에게도 들킬 수 없는, 그녀 혼자만의 비밀이다.

        

         게다가 그녀는 실피아에게서 받은 ‘위그드라실의 씨앗’을 목걸이 형식으로 목에 걸어 두고 다닌다. 씨앗을 상시 몸에 지니고 있어야 식물 속성 마나에 감응될 수 있으니까.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씨앗처럼 보인다. 마나를 응축하고 있지, 발산하고 있진 않아서 마나 감지도 어렵다.

        

         그녀는 2학년이 되면 식물 속성 마나에 완벽히 감응된 상태가 된다. 그러면 ‘위그드라실의 씨앗’을 촉매제로 써서, 요정의 힘이자 나라 멸망급인 8성급 식물 속성 마법 [위그드라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 미래시를 알고 있는 나만이, 지금 이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꽤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네.”

         “실피아와 아는 사이셨습니까?!”

        

        

         당근 모르지.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눈을 내리 깐 채 뜸을 들였다.

        

         엄청난 과거를 회상하는 척이었다.

       

       

         “…네 진가는 미래에 발휘되겠지. 그때 조금은 봐줄 만한 정도가 된다면, 한번 상대해주마.”

         “…….”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에서 카야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슨 사고과정을 거쳤는지도 모르겠다.

        

         상관없었다. 마법진이 일으키는 자그마한 소음이 사라졌다는 게 중요했다. 카야가 마법진을 거둔 것이다!

       

         입가에 웃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인가.

        

         너무 중2병스럽게 허세부리긴 했지만, 아무튼 일이 잘 풀려서 다행···.

        

        

         “아이작 님.”

        

        

         아, 또, 왜, 왜?

        

         못 들은 척하려고 했지만, 카야가 한 번 더 소리 내서 “아이작 님!”이라고 불러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춰야 했다.

        

        

         “왜 당신은 여기 와서 ‘약한 척’하시는 겁니까?”

        

        

         확실히, 그건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었다.

        

         사실은 진짜로 그냥 약할 뿐인 게 맞았지만.

       

         카야가 보기에 난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뭐, 이 정도는 거뜬하지.

       

         여기서 내가 내보일 반응은 하나였다.

        

        

         “···알 거 없어.”

        

        

         이거지. 이러면 상대는 말없이 벙 찌는 게 국룰이다.

        

         그러고 나는 다시 발을 움직였다.

        

         역시나 카야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걷고 나서, 뒤를 돌아봐도 카야가 시야에 안 들어오게 됐을 때.

        

        

         “후우우우우우.”

        

        

         아주아주 깊은 안도의 한숨을 푸우우우욱 내뱉었다.

        

         키야, 살았다! 이게 사네.

        

         운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의 기쁨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표정을 갈무리했다. 어서 마족이 나타날 장소, 이안과 루체가 마주칠 장소를 찾아야 했다.

        

         어디지? 어딜까?

        

         ···마나 알갱이 하나 찾았다. 일단 이건 줍자.

        

         손목시계를 갖다 대니까 돌멩이에 붙어 있던 마나 알갱이가 반딧불이처럼 날아와 시계 밴드에 착 달라붙었다.

        

        

         ‘이제 10분 남았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50분.

        

         마족이 나오기까지 10분 남았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단서는 마족이 나타날 장소가 낮은 절벽이 있는 공터라는 점.

       

         어제 델핀 숲 이곳저곳을 조사해봤으나, 숲이 넓은 나머지 그곳은 미처 찾아내지 못했다.

        

         그곳을 찾아내야 한다.

       

         아마 제시간에 찾는 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전답사한 기억을 되살려 냇가에 도착했다. 아무리 나무가 우거져 있는 델핀 숲이라 해도, 여기선 하늘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7시···.’

        

        

         노을이 사라지고, 하늘에 진청색 기운이 감싸 흐르는 시각.

        

         지금쯤 마족은 이안과 루체 앞에 나타났을 터.

        

         여기서 더 헤매는 건 시간 낭비다.

        

         겸사겸사 마나 알갱이 찾는 건 잠시 접어두자. 최우선 순위로 할 일은 배드 엔딩을 막는 거니까.

        

         나는 가만히 서 있기로 했다.

        

         분명, 이안과 루체가 마족과 싸울 땐 꽤 큰 규모의 마법들이 오고 갈 것이다.

        

         그 마법들이 시전된 장소로 가면 된다.

        

         여기서 더 움직였다간 그 장소에서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보자.

        

         조금만···.

       

       

         “…….”

       

        

         서서히 어둠으로 들어차기 시작한 숲속.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 있던 중.

        

        

       쿠우우우우우우!!!

        

        

         “……!!”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재빨리 굉음이 울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냇가여서 나무가 위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 굉음의 정체를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달리면 10분 이내로 도착할 만한 거리에, 뾰족한 얼음 기둥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기둥은 평범한 얼음처럼 푸른색이 아닌,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어도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어둠 속성을 담은 얼음 마법이 시전된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마족의 마법이었다.

       

         얼음 기둥은 단번에 검은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곧바로 그 검은 얼음 기둥이 솟구쳤던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발 내가 도착할 때까지 버텨주라, 이안! 이겨 주면 더 좋고!

       

        

         “어이쿠, 이런.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것이냐?”

        

        

         아니, 아.

        

         으아아아···.

        

        

         “···뭐냐, 큭. 마력량 E급의 미천한 평민 나부랭이가 아니더냐?”

        

        

       [ 트리스탄 험프레이 ]

        

       Lv : 71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위험도 : 중

        

        

         마법학부 신입생 상위권이자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

       

         놈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하도 플레이해온 덕분에, 나는 주요 캐릭터들의 특징을 전부 머릿속에 담아둔 채였다.

       

         내 레벨은 26. 저 녀석과의 레벨 차이는 무려 45. 하지만··· 다른 녀석은 몰라도, 잘만 하면 저 녀석 만큼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르게 저 놈을 쓰러뜨리고.

       

       

         ‘지나간다.’

       

       

         나는 몸속 마나의 흐름을 가속화시켜 얼음 마나를 예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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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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