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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늘 먹던 우주식량을 입 속에 우겨넣으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지구의 모습에, 심란한 마음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갤러리에서 조우한 큰손 덕분에 어찌저찌 두 끼를 때우긴 했지만, 그래봐야 추가로 주어진 유예는 하루조차 되지 못한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식수는 그대로니까 어차피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똑같은가.

       

       “계속 사는 의미가 있나? 이거.”

       

       갤러리를 쳐다보며 즐거움과 위안을 얻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과 암울한 현실은 별개의 문제였다. 식량 부족, 식수 부족. 그나마 산소는 전기만 충분하면 산소 발생기로 한 명 분만큼은 계속 보충할 수 있었고, 우주선 내부의 필요없는 기능은 전부 꺼놓았기에 전기도 소형 발전기가 고장나지 않는 이상은 당장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화성 한복판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똑같이 화성에 조난당하는 모 영화에선 주인공이 뭔가 이것저것 노력해서 물도 구하고 감자도 심고 그랬지만, 그 양반은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였으니까. 나는 탐사선 조종사지, 연구원이 아니란 말이다. 연구원은 이제는 저기 바닥에 묻혀있는 두 사람이 연구원이었고.

       

       “이륙도 착륙도 못하는 우주선의 조종사라… 나 참.”

       

       그야말로 말 없는 기사 신세 아닌가.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랜 기간 씻지도 못해 떡이 진 머리에서 불쾌한 가려움증이 느껴졌다. 좆같지만 어쩌겠나. 마실 물도 부족한데 씻을 물이 있을 턱이 없었다.

       

       퀭한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단순 짐작에 불과하지만 아마 식량과 식수 문제는 갤러리를 통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차원간 배달서비스를 통해 막 튀긴 치킨을 단번에 보내주던 스윗퍼리남의 모습을 떠올렸다. 

       

       “뭐든 구할 수 있겠지… 적절한 대가만 치르면.”

       

       문제는 지금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건데. 사실 그건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눈에 불을 켜고 방법을 찾다 보면 먹고살 방법이 하나쯤은 나오겠지. 정 뭐하면 추하고 구차하지만 구걸이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먹고살 걱정 없는 갤러리의 누군가가 연민을 느낀 나머지 불우이웃 돕기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아니야? 그럼 죽어야지 뭐 어쩌겠어.

       

       아무튼,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래, 갤러리를 통해 어떻게든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했다 치자.

       

       그래서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화성에 계속 있어봐야 미래가 없지. 그렇다고 지구는 답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지금쯤 지구는 변종 바이러스와 방사능으로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될 텐데, 어찌저찌 지구로 돌아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초에 아무도 없는 지구에 굳이 애를 쓰면서까지 돌아가야 할 가치가 있기는 하고?

       

       “막혔네, 씨발.”

       

       나라고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상황이 좀 답답하다고 죽을 거였으면 진작에 바깥의 두 명이랑 같이 사이좋게 손 잡고 죽었겠지. 그러나 눈앞에 산적한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답답함에 미간을 찡그리며 앓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표정을 확 풀며 소리쳤다.

       

       “역시 모르겠다!”

       

       암만 고민해도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는 문제를 두고 머리를 싸매봐야 답이 없다. 그나마 갤러리라는 미지의 영역에 접한 덕에 희망이 조금이나마 생기기는 했잖아. 갤질이라도 하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그렇게 믿고 갤러리를 다시 켰다.

       

       

       [‘종말 후 외톨이 갤러리’]

       

       

       어제도 그랬고 아까도 그랬듯 갤러리에 접속했지만, 이번에 보려는 건 단순한 게시글이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잡담을 나누고 있는 유저들을 지나쳐, 전체글 게시판과는 별개의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갤러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인기를 사, 따로 박제까지 될 정도의 게시글들. 그런 게시글만을 모아 분류한 카테고리.

       

       

       ‘개념글’을 보려는 것이다.

       

       

       [Tip. 개념글이란?]

       [갤러리에서 일정 수 이상의 추천과 댓글을 얻어 박제된 게시글을 이르는 말. ‘개념을 갖춘 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며, 줄여서 념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신이 쓴 글이 개념글로 등록된다고 뭔가 특별히 이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명예에 민감한 갤럼들은 호시탐탐 념글각을 노리곤 한다.]

       [드문 경우지만, 이따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 사람에게 치욕을 주기 위해 개념글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공개처형과 박제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마음 같아선 이 갤러리의 모든 게시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고 싶지만,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짐작컨대 내가 10페이지를 정독한다 치면 그동안 사람들이 싸지르는 글이 최소한 5페이지는 될 것이다. 실시간으로 퇴적되는 글의 무게를 견디려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리고 적어도 시간이 내 편은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꼴랑 3주 가지고는 갤러리의 10%조차 맛보기 힘들 게 뻔했다. 그러니 불필요한 분량은 최대한 걸러내고 엑기스만 섭취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개념글이란 갤러리에서 돌았던 떡밥의 약도와도 같은 것…! 비록 념글 중에도 유머글이나 분란글 등 내게 필요없는 정보가 분명 섞여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개념글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성자 : 바위처럼단단하게*]

       [제목 : 슉.슈슉.시.시밸럼아. 슉. 슉슈슉. 시밸.럼아.]

       [(사진 첨부)]

       

       

       그러나 당초의 판단이 무색하게도, 기념비적인 첫 개념글부터 이미 뭔가 내 기대와는 많이 어긋나 있었다. 본문 하나 없이 덩그러니 첨부된 사진을 보며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 석상? 칼은 또 왜 들고 있는 거야.”

       

       무언가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두 자루의 대검을 움켜쥔 석상의 사진이 글의 전부였다. 무언가와 대치하는 듯한 그 기묘한 포즈에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 댓글란을 빠르게 훑었다.

       

       [화룡점정* : ㅋㅋㅋㅋㅋㅋㅋ 골렘쉑 머리에 똥칠한 것 보소]

       [콜드슬립* : 개빡쳤나본데 ㅋㅋㅋㅋㅋㅋ 미동도 안하던 표정 일그러진 거 봐라]

       [ㅇㅇ(023.708) : 최강의 유적수호자(새똥은 못 피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곤혹스럽지만 아무래도 사진의 주인공은 단순한 석상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스톤 골렘인 모양이었다. 그 또한 엄연히 이 갤러리의 일원이자 한 명의 생존자였던 것이다. 어째 회색인 몸통에 비해 정수리만 하얗다 하더라니, 원래 그런 색인 게 아니라 새똥에 맞아서 저렇게 된 듯했다.

       

       [ㅇㅇ(001.068) : 아 뭐야 난 또 탈모인줄 알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이게 뭐가 웃기다는 건지. 슬며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지그시 내리누르며 다음 글로 넘어갔다.

       

       

       [작성자 : 天上天下唯我獨存*]

       [제목 : 이런 건 무림이 아니야!!!]

       [화산의 타구봉법? 마교의 백팔나한진?? 남궁세가의 아수라역천공???

       갈!!!! 감히 이딴 불쏘시개를 본좌에게 건네다니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이번 글은 방금 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소린데 이 씹덕들아. 무협지라고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본문이 무슨 뜻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 나와 달리 댓글란은 거의 무슨 축제 분위기였다.

       

       [지혜의샘* : 호오, 버티는가? 그럼…]

       [ㅇㅇ(001.124) : 서명하시오, 무틀딱!]

       [ㅇㅇ(023.708) : 천마데스빔은… 본좌의 성명절기다…]

       [지혜의샘* : “내상 500배”]

       [天上天下唯我獨存*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가 어떻게 되가는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현장은 갤창들에 의한 집단 노인공격이 한창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아수라장을 지나쳐 다음 념글로 조용히 넘어갔다.

       

       

       [작성자 : 화룡점정*]

       [제목 : 냉법새끼들 진짜 죽여버리고 싶네]

       [지금 생각해도 존나 화난다 시발

       진짜 이 개십새끼들만 아니었어도 하]

       [(사진 첨부)]

       

       

       이번 념글은 아까 발화주의라고 메모해놨던 고닉 중 한 명이 쓴 장문의 글이었다. 중간에 첨부된 사진은 아무 내용물도 없이 온통 새하얘서 나는 처음엔 사진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보이냐? 이게 지금 우리 집 앞마당이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그야 그렇겠지 레어 입구가 눈에 완전히 파묻혔는데 아 ㅋㅋㅋ

       유희 끝나고 잠깐 잠 좀 자는 그새에 백탑주 이 좆병신이 사고를 쳐도 제대로 쳤거든

       마탑에서 마법 실험한답시고 화이트 드래곤 하트로 빙계 마법 썼다가 세상이 통째로 얼어붙었다.

       위력이 어찌나 셌는지 그 지랄 난지 500년이 넘었는데도 빙하기가 끝나질 않는다…

       그 드래곤들조차 나 말곤 다 얼어뒤졌음 염병ㅋㅋㅋㅋ 코미디도 아니고 무슨

       

       내가 입갤한 것도 다 그새끼 덕분임ㅋㅋ 너무 고마워서 이걸 어쩌냐 십거

       진짜 마법 좀 쓸 줄 알면 뭐하냐 뇌가 얼어붙어서 그런가 능지가 해츨링 미만인데

       저딴 새끼들이 마법사랍시고 꺼드럭대는 거 볼 때마다 풀화력 브레스 마렵다…

       니들도 주변에 냉법새끼들 보이면 조심해라 언제 개트롤할지 모른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장문글에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부르르 떨며 댓글란을 내려다봤더니 그쪽은 아예 한술 더 떴다.

       

       [콜드슬립* : 그냥 텅 빈 짤 갖다놓고 소설 쓰는 거 봐라 ㅋㅋㅋ 하여간 불쟁이 아니랄까봐 주작은 존나 좋아해요]

       ㄴ[화룡점정* : 대가리 냉동빔 맞은 냉법새끼들한테는 그렇게 보이겠지 ㅋㅋㅋㅋㅋ 찔리냐?]

       ㄴ[콜드슬립* : 내가 느그세상 조져놨냐 내가 왜 찔려 십련아 ㅋㅋㅋㅋ 그리고 난 법사가 아니라 주술사야 알못새끼야]

       ㄴ[화룡점정* : 주술도 계통 따지면 마법이야 빡통아ㅋㅋㅋ 진짜 하는 말 중에 맞는 게 없네]

       ㄴ[콜드슬립* : 미개한 기도메타 유사마법이라면서 꼽줄 땐 언제고 ㅅㅂㅋㅋㅋㅋ 고드름 맛 좀 볼래?]

       ㄴ[화룡점정* : 말 잘했다 이 트롤새끼 오늘 날 잡고 바베큐 한번 겉바속촉으로 구워보자]

       

       대략 수십 줄이 넘어가는 키배의 향연에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얼핏 비생산적으로만 보이는 이 키배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뭐지? 말다툼의 결말은 암만 봐도 현피를 암시하는 것 같은데. 서로 다른 차원 거주자들끼리 뭘 어떻게 만나서 싸우려고?”

       

       어쩌면 저들에게는, 차원의 장벽을 넘어 혈전을 벌일 수단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 법…

    항만기본계획님 후원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이야말로 신이십니다!!
    그리고 데차앗님 후원과 팬아트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살면서 팬아트를 받아보는 건 처음입니다! 2021년 7월 16일은 틀림없이 제 인생에 있어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겁니다! 팬아트를 보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3연참이라기엔 좀 애매하지만 오늘 안에 이번 화를 포함해 총 세 편을 올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닷…!

    다음화 보기


           


Gallery for Loners After Demise

Gallery for Loners After Demise

GFLAD 종말 후 외톨이 갤러리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community for the last people who survived on Earth. This is ‘The Lonely Gallery After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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