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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모든 게 이해됐다. 하스펠트가 요 며칠간 나에게 잘해주었던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황제의 편지를 읽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향하는 곳은 지계마도 연구동 3층. 골렘을 만드는 교수와 대학원생이 주로 서식하는 장소였다. 이곳 복도의 끝쪽을 둘러보다 보면 익숙한 이름이 적힌 푯말을 볼 수 있었다.

         

       [메리가 헤를라인 / 재실]

         

       똑똑똑.

         

       욕실에 갇힌 고양이처럼 문을 긁듯이 두드렸다. 다급해진 나머지 손에서 진땀이 났다.

         

       “들어오세요.”

         

       문을 여닫고 들어가자 특유의 희토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화계마도 연구실과는 사뭇 다른 내음이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상급 마수의 팔을 뜯어보고 있는 헤를라인 교수가 있었다.

         

       “어머, 어쩐 일이니?”

       “급히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나는 헤를라인 교수에게 모든 걸 설명했다.

         

       하스펠트 교수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편지를 봤는데, 그 편지를 보낸 주인이 황제더라. 그 황제의 아들이 날 황실의 시종 내지 첩으로 들이려는 얘기가 있다더라.

         

       자초지종을 들은 헤를라인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방법이 하나밖에 없겠네.”

       “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

         

       “제아무리 황자라도 아카데미의 유구한 전통을 깨뜨리진 못하겠지.”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는 교육과 국방을 겸하는 기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북쪽 국경에서 마수를 막아내는 평민이나 하급 귀족 출신 마도사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서는 아카데미만의 독자적인 신분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걸 노예 하나 황궁에 들이겠다는 뭔 병신같은 이유로 어겨버린다? 장담컨대 황실에서 칼춤 추는 연놈 하나 나타난다.

         

       “좋아. 드래곤 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지금부터 속성 과정에 들어가자.”

         

       헤를라인이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내 손목을 잡아챘다.

         

       “일단 정보부터 알아야겠지?”

         

       첫 목적지는 도서관이었다.

         

       **

         

       탁.

         

       클라이스 하스펠트가 분필을 내려놓으며 손을 털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번 주 숙제는 반장이 걷어 과제 제출함에 올려놓도록 하세요.”

         

       학생들의 인사를 받은 뒤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선생님께서 요새 진도를 잘 안 나가시네.”

       “그러게. 고민이 많으신가?”

       “히히,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등 뒤로 그런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클라이스는 낙엽으로 너저분해진 복도를 걸으며 수심에 잠겼다.

         

       교사를 넘어 연구동으로 이어지는 회랑. 그저께까지만 해도 이 회랑을 쓸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수수한 머리 색과는 달리 금색으로 빛나는 홍채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에테르.

         

       3년 전, 자신이 시장에서 사 온 금안족 노예.

         

       시종일관 무리한 요구를 해왔음에도 단 한 번의 불평불만 없이 모든 일을 척척 수행해왔던 아이였다. 오죽하면 자신이 너무 세게 굴려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리일 줄 알면서도 자신이 그렇게나 에테르를 부렸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더 강한 위력을 지닌 마법이 필요해요.’

         

       불과 5년 전, 아카데미를 막 졸업하고 종군마도사로 있었을 시절. 소령 계급장을 막 달았던 그녀는 최전방에서 수많은 마수를 상대로 피 튀기는 전투를 벌여야 했다.

         

       많은 동료가 죽었다. 시체로 산을 쌓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선배는 팔을, 후배는 다리를 잃었다. 수천만에 달하는 골렘을 진두지휘하며 제1차 저지선까지 진격했던 헤를라인조차도 끝내 한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써 클라이스는 탈력감을 얻었다.

         

       수석으로 졸업했으면 뭐 해. 화염마도의 선구자라고 떠받들어지면 뭐 해.

         

       재앙급 마수를 상대로는 동료를 지켜가며 싸울 수 없었고, 절멸급 마수를 상대로는 자신의 마법조차도 먹히지 않았는데.

         

       교수직에 오른 뒤 그녀가 완성해낸 최상급 화염마도는 딱 두 개였다. ‘체이서 플로우’와 ‘코로나’. 아렌스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위력이 강한 화염마도들이었다.

         

       그마저도 절멸급 마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말했다. 화염마도의 위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스승이, 후배가, 동료들이 꺼낸 말이었다. 그들은 진작 마법의 위력을 늘리는 대신, 잔탄 수를 증가시키거나 마수를 안쪽에서 파괴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쪽으로 연구목표를 바꾼 뒤였다.

         

       그 얘기가 사실처럼 포장되어 성도에 나돌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황성으로부터의 지원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마수는 원래 있는 마법으로도 제압할 수 있었고, 최상급 화계마도는 절멸급을 잡기 위해 나라에서 투자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게 불가능하단 소리가 학계에서 나돌았으니 지원할 명목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화염마법의 위력 증강을 연구하는 학자는 점점 줄어들어서 이젠 클라이스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근처 노예시장에서 비밀리에 금안족 경매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대학원생의 연이은 이탈로 일손이 모자랐던 클라이스에겐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이었다.

         

       결국 클라이스는 금화 1천 장에 달하는 거금을 지출하고서 그 소녀를 사들였다.

         

       ─ 중급 스크롤입니다. 상급 수준의 출력으로 바꿔오세요.

       ─ 다 했어요.

         

       ─ 하급 마석이에요. 이것만 사용해서 상급 마법진을 작성해오세요.

       ─ 이거면 되나요?

         

       ─ 개화부에 아르곤 기체를 넣고 최상급 마도가 새겨진 스크롤을 사용했을 때 20 시버트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지 증명해오세요.

       ─ 해드렸습니다.

         

       금안족의 천재성은 설화에서 보고 듣던 것 이상이었다. 화염마도의 위력 증강에만 미쳐 살던 클라이스가 부려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 금화 3만 장과 맞바꾸는 건 어떻겠는가?

         

       이틀 전 받은 편지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앞으로 4개월인가요.’

         

       4개월 뒤 자신의 조수를 황자의 직속 시종으로 둘 테니 막대한 자금을 주겠다는 거래.

         

       안 그래도 연구자금에 쪼들리고 있던 클라이스였다. 에테르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지만, 금화 3만 장에 비교하면 당연히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는 자명했다.

         

       무려 금화 3만 장이다. 노예시장에서 사들인 것에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에테르의 가치가 금안족인 것만으로는 결정되지 않았으니까. 물론 황자가 국고를 헤프게 쓰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다른 게 아니다. 클라이스의 전속 조수는 능력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절세(絶世)라는 이명을 달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빼어났다.

         

       황실과의 계약은 체결됐다. 그래도 비싼 돈 주고 산 금안족 소녀였으니 클라이스는 에테르를 황궁에 보내기 전에 한 가지 일만 더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황성에 가야겠어요.”

         

       오전 10시 10분. 클라이스는 외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연구실에 들렀다. 지금 이 시간대라면 조수가 일하고 있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연구실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클라이스는 치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에테르가 주로 작업하는 책상에 쪽글이 하나 놓여있다는 걸 발견했다.

         

       [헤를라인 교수님이 호출하셔서 잠시 다녀올게요]

         

       “메리가? 걔가 갑자기 왜….”

         

       깊이 따지고 들 겨를은 없었다. 클라이스는 외투와 마녀모를 챙긴 채 황성으로 향했다.

         

       [황궁 다녀옴. 일주일 전 중단했던 작업을 속행하고 있을 것.]

         

       딱 그 쪽지만 남긴 채로.

         

       **

         

       황제, 옐친 필리우트는 클라이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신이 하고 있던 업무조차도 내팽개치고선.

         

       알현실은 순식간에 접객실로 바뀌었다. 108명에 달하는 황궁 시종들이 고급스러운 이동형 테이블과 다과, 홍차가 담긴 포트 따위를 준비했다.

         

       쪼르륵. 라벤더향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홍차를 따르며, 황제 폐하께서 입을 여셨다.

         

       “그래. 자네라면 금방 올 줄 알았어.”

       “혹여라도 폐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가 송구스럽습니다.”

         

       평소 말할 때 ‘-해요’체를 사용하던 클라이스는 이곳에 없었다. 그녀가 한껏 진중한 목소리로 황제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해나가기 시작한다.

         

       “제안은 어떤가? 금화 3만 장이면 괜찮지 않을까?”

       “차고 넘칩니다.”

         

       보통 단가를 생각한다면 말이죠, 라는 뒷말은 삼켰다. 클라이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무언가 더 바라는 점은 없나? 짐이 특별히 자넬 생각해서 소원 한 가지 들어주겠네.”

       “어떤 소원 말씀이십니까?”

       “뭐 영지를 넓혀 준다거나, 좋은 사윗감을 찾아준다거나 하는 거 말일세. 그런 건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지 않겠는가.”

       “제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필요한 건 오직 연구자금, 땅이나 신랑감 따위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다. 아니, 오히려 있으면 거슬린다.

         

       클라이스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홍차를 들이켰다.

         

       “그럼 이 얘기는 바로 끝내도록 하지. 자네도 어지간히 바쁜 몸이니 말이야.”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뭔가? 말해보게.”

        “제2황자께선 어째서 제 노예에 눈독을 들이시는지?”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네.”

         

       제국의 제2황자가 여색에 미쳐있다는 것은 전 국민이 아는 이야기였다. 벌써 측실로 삼은 영애만 열셋에, 제 방으로 불러들인 시녀는 일흔에 달한다고 한다. 그 덕에 정비로 정해 둔 약혼녀의 저혈압이 진작 치료되었다나 뭐라나.

         

       제아무리 경국지색인 소녀라지만 신분격차가 너무 심하다. 체통과 품위를 지켜야 하는 황자께서 도가 지나치신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리따운 여인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존귀하신 황자께서 미천한 핏줄의 아이와 정을 나누시려는 걸 이해하기 어려습니다.”

       “짐이 들어보건대, 그 아이가 금안족이라고 하더군. 그 말이 사실이던가?”

       “그렇습니다.”

       “하이엘프보다도 희소한 종족인데 뭐하러 귀천을 따지겠는가 싶은 게지. 심지어 금안족은 종족 태반이 절세미인이라지?”

       “한낱 설화일 뿐입니다.”

         

       물론 에테르가 여신님에 준하는 미모를 지닌 것만큼은 설화가 아니었지만.

         

       “설화건 동화건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짐의 아들이 그대의 종을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지.”

         

       클라이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황자께서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그 황자께서 저희 아카데미에 지원하신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네. 방탕해도 나름대로 재주는 있는 놈이니 쉽게 통과하리라고 생각하네만.”

         

       황제는 알현실이 떠나가랴 한숨을 쉬어댔다.

         

       제2황자의 인성은 영 좋지 못하기로 성도에 소문이 나 있는 상태였다. 황제의 한숨은 분명 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이 상황에서 클라이스는, 하스펠트 공작은 침묵을 택했다.

         

       황제와 사대공작(四大公爵)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게.”

         

       클라이스가 아카데미로 돌아오는 덴 20분이면 충분했다. 애당초 황성과 아카데미 모두 수도 안에 있는 곳이었으니.

         

       “……?”

         

       그녀가 돌아온 뒤로도 에테르는 보이지 않았다. 곧 화염마도 연구동 내를 이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그 어디서도 금안족 소녀를 보았다는 제보는 없었다.

         

       다음으로 지계마도 연구실도 가 보았다. 다 죽어가는 대학원생에게 물어보니 헤를라인 교수가 그 아이를 어딘가로 데려갔다고 한다.

         

       ‘제아무리 친구라지만 허락도 없이 제 노예를 가져가다니, 예의가 아니네요.’

         

       그 친구는 충언을 해 줘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녀석이었으니까. 따끔하게 혼내기보다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근면한 그녀로서는 아주 잠깐이라도 시간 낭비하는 걸 싫어했다. 조수가 돌아오기 전까지 학부생 과제부터 채점하기로 했다.

         

       상급 회로의 출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과제. 구조상 1학년이 이 과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소수의 도전적인 아이들만이 겨우 손이라도 대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은 백지로 내거나, 조금만 깔짝거리고선 바로 제출한 채였다.

         

       0점, 0점, 3점. 이건 꽤 했으니까 10점. 그리고 다시 0점.

         

       전체 점수는 50점 만점이었다. 반타작도 못 한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턱─.

         

       “이건…….”

         

       간단하면서도 정교하게 메꿔진 회로였다. 클라이스는 마력을 흘려 개화부의 출력을 확인해보았다.

         

       36시버트. 합격점에서 6시버트나 앞선 수치였다.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세 명의 학생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놓았다. 미묘하지만 차이는 분명 있었다. 서로 베꼈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특별한 종류의 마석을 사용했다는 것. 그 외에는 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그 마석이 무엇인지, 클라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트랜지스터, 라고 했나요.”

         

       테뉴어까지 받을 정도로 명석한 그녀가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일순 하나의 언질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클라이스는 다시 침묵을 택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2/07/31 : 클라이스가 에테르를 팔아야 하는 이유의 개연성을 보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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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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